양기성 박사
양기성 박사
오래 전부터 인간실체에 대해 많은 연구가 있었다. 사람들은 인간을 사회적 동물이니, 고등동물 이니, 이성적 존재니 하는 말들을 한다. 종교사회학에서는 영적 존재라 말하기도 한다. 어쨌든, 인간은 영혼을 가진 존재다. 인간의 영혼은 크리스챤들은 잘 알다시피 하나님의 형상(The Image of God)이다. 인간의 영, 또는 영혼은 하나님의 모습임을 말한다. 이는 구약 창조론을 통해서 인간은 영혼을 가진 존재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 인간이 살아있다는 것은 궁극적으로 영이 살아 있는 것을 말한다. 육체의 살아있음은 유대주의에서나 고대 그리스 세계에서는 그리 가치를 가진 논리로 인정받지 못했다. 영이 살아있어야 살아있는 것으로 인정되었다. 영이 죽었다는 것은 영을 주신 이를, 즉 하나님을 알지 못하거나, 인식하지 못하거나, 불신하거나 하는 상태를 말한다.

기독교 외 환경에서 인간의 영(Spirit)을 가치있는 것으로 이해하고 설명한 사람은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이다. 그는 인간 존재 실체는 영이라 하였다. 영은 거룩한 것이고, 선한 것이라 하고, 또 영원하다 하여 영혼불멸을 주장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영은 선한 것이며, 육은 언젠가 죽어 없어지거나 사라져 버리는 것이기 때문에 가치가 없다 하여 악한 것으로 설명하였다. 다시 말하면 영, 또는 영혼은 선한 것으로 보고, 나아가 가장 숭고한 생명의 실체로 보았다는 것이다. 이것은 플라톤의 선과 악에 대한 이해다.

인간의 영, 영혼중심의 생활을 집중적으로 영위한 그룹이 있는데, 이는 1세기 즈음 엣세네파다. 유대국가는 그리스의 침략과 그후 로마의 침략으로 인해 예수 전 160여 년경, 국가의 국민정신은 분분히 나뉘어 졌다. 국가의 중심권력체계가 잦은 외세침략을 받게 되니 국민정신을 하나로 통합할 조직도, 지도자도 없었다. 이러한 현상 때문에 여러 분파가 나타나게 된 것이다. 첫째, 제사장 그룹은 그래도 국가 체제를 유지하고자 하였는데 이들을 사두개파라 부른다. 오래 전 제사장 사독 정신을 따르겠다 하여 사두개파라는 이름이 붙여진 것이다. 로마 침략에도 침략자들과 손발을 맞추어 권력을 유지하던 그룹이다. 의회기능을 가졌던 산헤드린 멤버도 대부분 사두개파였다. 둘째, 이 즈음 바리새파도 나오게 되었다. 그들은 율법을 중심으로 그룹을 형성하였다. 법률조항에 매달려 진심보다는 외형주의의 행동을 하던 사람들이다. 인간존엄성보다 법을 더 높이는 행동들을 하다 예수님과 심하게 마찰하고 다투던 그룹이다. 셋째로, 일명 젤롯당이라 부르는 젤롯파다. 이들은 주로 유대의 독립을 위해 무장투쟁하던 독립운동가 그룹이다. 예수의 제자들중에도 젤롯당 멤버가 있었다(행 1: 13). 마지막으로, 엣세네파다. 엣세네파는 세속사회의 혼란을 피하여 사막으로 들어가 영성 운동하던 그룹이다. 생각해 보자, 얼마나 살아가기 힘든 시기, 사회구조, 국가적 위기였었나. 그래서 그들은 세상 것 다 버리고 광야에 들어가 오직 구약성경 읽기, 금식, 금욕, 절제나 경건, 성결로 신앙 공동체 생활을 했다. 그곳에서 영성향상에 노력했다. 오늘날의 복음성가 중 “세상 등지고 십자가 보네”와 같이 세상 등지고 광야에 들어가 하나님께 예배하고 경건한 생활에 힘쓰는 영성운동에만 치중하였던 것이다. 엣세네파는 그렇게 물질이나 권력쟁취의 사고 형태에서 벗어나 영성위주의 생활을 했었다.

예수님도 40일 금식하셨고, 기도와 성경읽기, 경건성 추구로 영적 생활을 하신 것으로 보아 영성운동을 활발하게 하던 엣세네파로 분류할 수 있다. 예수 승천 후 성령의 임재도 사실, 이와 무관치 않다. 성령은 거룩한 영으로 영성생활을 하시던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계셨던 것이다. 결국,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라 할 수 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시며 지상에서의 활동은 성령이 하는 것이다.

영혼이 타락하면 물질에 초점을 둔 삶을 살아가게 된다. 반대로, 물질에 초점을 둔 생활을 하면 영혼이 타락한다. 마태복음에서의 사탄의 시험(Temptation)은 인간 육신과 연관 된 것들이다. 먹고 사는 일, 권력에 대한 탐욕, 명예같은 것들이다. 그렇게 하다보니 갈등이나 투쟁 같은 것으로 혼란이 발생한다. 탐욕 때문에 분쟁이나, 전쟁, 살육, 폭력, 혁명, 봉기 등 살벌한 상황이 발생하는 것을 인간 역사를 통해 보아왔다. 사회가 혼탁한 것은 인간들이 그렇게 육신에만 관심을 둔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성령의 오심도 이러한 물질중심의 감각적 삶에서 영적 삶의 자세로 바꾸기 위한 것이다. 성령이 지배하는 사회현상이어야 질서가 잡히게 되고, 혼란이 없고, 안정과 평화가 조성된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박해나 멸시 상황속에서도 그러한 무질서한 인간정신과 사회를 하나님 나라로 이끌어 질서를 잡고자 성령운동을 하였다. 그래서 베드로는 뜨거운 성령받을 것을 강하게 설교했다.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라”(행 2: 38). 그 결과, 제자들의 성령운동은 유대의 관료주의나 율법주의 사회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다 주었다. 베드로의 설교로 수천명의 사람들이 회개하고 예수를 주로 믿었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영의 충만한 현상을 배경으로 하여 바울은 이방세계, 특히 그리스에 복음을 능력껏 전할 수 있었다. 결국, 물질 세계를 존재의 근원으로 삼고 살던 사람들이 그리스도 중심의 영적 삶을 살게 되었다.

근세에 이러한 영적 세계를 배경으로 하는 삶을 재강조하고 실현한 인물이 있다. 그가 곧 종교개혁의 완성자 영국의 존 웨슬리다. 물질주의의 혼돈 속에 살던 영국인들을 복음중심의 성령운동으로 말미암아 인간 정신이 변하고 사회가 개조되는 역사가 발생하게 되었다. 도덕성이나, 사회질서가 다시 세워졌다. 그 변화를 불러 온 힘은 성령이다.성 령은 인간 영혼과 연결되어 있어서 영혼을 변화시키니 개인이 변하고 사회가 변하는 것이다.

21세기의 특징은 이성을 바탕으로 한 과학주의가 정신세계를 지배하고 있다는 것이다. 과학은 이성을 기초로 하여 조직된 학문이기 때문에 인간 깊은 내면의 영적 세계에 대해서는 말하지 못한다. 과학은 인간을 영적 세계로 이끄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물질 감각적 세계로 인도한다. 모든 것에 있어서 경험해야 하고 증명될 수 있어야 진리로 믿는 주의가 과학인데, 그러한 과학의 발달은 인간의 삶, 특히 육체적 삶을 편안하게 만들긴 했으나 인간 영혼에 대해서는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하고 있다. 그 결과 점점 더 인간의 도덕성은 침체해 있게 되거나 무시당하게 된다. 영혼이 매마른 사회를 만들어 간다는 말이다. 양심, 도덕, 동정, 사랑같은 가치들이 없어져 더욱 냉냉한, 또는 바싹 마른 삶의 세계를 만든다. 그도 그럴 것이 과학은 인간의 도덕적 행위의 회복이나, 나아가 영혼을 구원할 어떤 기능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존재케 하는 일종의 도구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인간삶에서 혼란이나 부도덕, 또는 무질서는 계속된다.

이러한 종류의 사건들은 인간육체적 세계를 바탕으로 하여 오는 것이기 때문에 정신, 즉 영혼을 다스리는 기관의 역할이 필요하다. 말할 것도 없이 성령이며, 성령운동이다. 성령의 활동은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적 열정에 의해 그 효력이 좌우된다. 성령의 은사를 인정하고 높이면 “산도 옮길 수 있는 능력”이 나타나지만, 반대로 무관심 하고, 오히려 세상에 관심을 가지면 그 역량이나 활동은 감소된다. 요한1서 2:15,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즉, 그리스도인들이 뜨거운 성령의 신앙정신줄을 놓으면 성령의 역사함을 잃어버리게 된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이 식었음을 뜻하는 것이 된다.

오늘날, 성령운동을 내세워 많은 이단이나 비기독교적 목회자들이 나타나 활동하고 있다. 그러한 오염된 복음운동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온전한 정신으로서의 성령운동이 이 시대에 절실히 필요하다. 엣세네파처럼 피안의 세계를 지향하는 것이 아닌, 현실의 물질문화나 과학 만능주의에 단호히 대처하여 세속사회를 극복하는 영적 힘이 필요하다. 오늘 이 시대 성령운동을 주도할 영적 카리스마 지도자는 과연 누가 될 것인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사도행전 1:8)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로마서 8:16)

  • 네이버 블러그 공유하기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press@cdaily.co.kr

- Copyright ⓒ기독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양기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