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보 목사
김희보 목사

“금식할 때에 너희는 외식하는 자들과 같이 슬픈 기색을보이지 말라. 그들은 금식하는 것을 사람에게 보이려고 얼굴을 흉하게 하느니라.”(마태복음 6:16)

주 예수께서 잘못된 금식의 폐풍을 금하신 것은 당시의 바리새인들이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슬픈 기색으로 금식하였기 때문이다. 금식의 핵심은 사람의 칭찬을 받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며 고요히 기도하는 데 있다. 금식하는 자는 사람 앞에서는 금식하지 않던 때와 같이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어야” 한다. 사람들에게 “나는 40일 금식기도를 하였다” 하고 자랑하는 사람에게 주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금식할 때에 너희는 외식하는 자들과 같이 슬픈 기색을 보이지 말라. 그는 자기의 상급을 이미 받았느니라.” 이것은 금식하는 것을 감추는 행위라기보다는 그저 평소의 자연스러운 태도를 취하라는 뜻이다.

자칫 위선자(僞善者)가 되기 쉬운 것이 기독교인들이다. 세상을 살며 기독교인이라고 해서 여느 사람들보다 죄를 덜 짓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기독교인에게는 여느 사람들과는 달리 회개(悔改)하여 죄 사함을 받는 특권이 있다. 이 문제를 다룬 것이 이제하(李祭夏, 1937-)의 중편소설 <홍해(紅海)>이다.

주인공인 ‘나’는 이지적인 사나이. 그와 대조적으로 그의 아내 순임은 사랑에 사는 정열적인 여자이다. 개성이 다른 두 부부 사이가 원만할 리 없다. 순임은 새로운 사랑을 찾아 나의 친구인 황빈과 사랑의 도피행(逃避行)을 떠나버린다.

어느 날 서 장로의 부인인 한 집사와 함께 길을 가던 나는, 황빈이 몰매를 맞아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져 있는 것을 보았다. 나는 그를 병원에 옮겼다. 왜 그런지 당황해 하는 표정을 숨기지 못하는 한 집사에게 황빈을 당부하고, 나는 병원에 돌아와보니 황빈은 이미 사라져버린 뒤였다.

며칠이 지난 후 황빈은 내 집에 찾아왔다. 황빈을 통하여 나는 가출(家出)한 아내가 죽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황빈은 내 아내와 함께 정사(情死)하려 했지만 죽은 것은 순임뿐이었다. 죄책감 때문에 죽지 못하였노라고 고백하였다.

나의 집을 다녀간 지 보름쯤 지난 후부터 황빈은 내가 출석하는 교회의 교인이 되었다. 학습교인이 되고 세례 받을 준비도 하였다. 그 단계에 이르렀을 때에 다시금 사건이 벌어지게 되었다.

황빈은 예전부터 서로 좋아하던 한 집사와 은밀하게 정을 나누었고, 그것이 교회 안에서 표면화되자 한 집사와 함께 종적(踪迹)을 감추어버리고 만 것이다.

나는 이미 내 아내를 황빈에게 빼앗겼던 쓰라린 경험이 있었다. 황빈과 한 집사는 이미 결혼하기 전부터 사랑했던 사이가 아닌가. 그들은 애초부터 결혼했어야 할 짝인 것이다. 그들의 애정은 필연적일 수밖에 없지 않은가. 얼마 후 황빈에게서 내게 편지가 왔다.

“세 시에 일어나 나 홀로 기도를 하고 그리고 네 시에는 아내와 함께 새벽 예배를 나가네. 길이 어떻게나 맑고 숙연한지……”

작자는 교회의 타락을 비판하여 작품에서 이렇게 말한다. “그저 무조건 하나님을 믿으면 되고, 실수해서 한 거짓말은 회개하기만 하면 되는……아아 그런 하나님, 그들이 믿는 독생자, 그들의 신이 나의 신이라면 나는 서슴지 아니하고 그 신을 버리고 나의 겁죄(劫罪)에 몸을 기대리라.”

김희보 목사는

예장 통합총회 용천노회 은퇴 목사로, 중앙대 국문과와 장신대 신학대학원(M.div.)을 졸업하고, 샌프란시스코 신학교에서 목회학박사(D.Min.)와 명예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월간 「기독교사상」 편집주간, 한국기독공보 편집국장, 서울장신대 명예학장을 역임했다. 주요 저서로는 「한국문학과 기독교(현대사상사)」, 「그림으로 보는 세계사(3권)」, 「지(知)의 세계사(리좀사)」, 「세계사 다이제스트100」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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