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환 목사
김창환 목사

한국 교회는 청교도적 계율의 전통에 따라 주초를 엄히 금하고 있다. 주초 문제는 구원과는 관계가 없으나 금주와 금연은 경건과 건덕의 미덕인 것이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 안에서 우상 숭배 이후 받쳐진 음식에 대해 먹는 문제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권하고 있다.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은 아니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은 아니니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고전 10:23-24).

한국 교회의 금주와 금연은 경건과 건덕의 미덕으로 내려오고 있고 앞으로도 이 전통을 계속 유지하는 것에 대해 특별히 다른 의견을 제시하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갈 5:24)라는 고백과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 2:20)라고 고백하는 사람들이라고 했다.

예수님의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버릴 수 있는 사람들이다. 주초 문제도 마찬가지라 생각한다. 더 이상 주초문제가 믿는 이들에게서 이슈화된다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다. 바울은 “고기도 먹지 아니하고 포도주도 마시지 아니하고 무엇이든 네 형제로 거리끼게 하는 일을 아니함이 아름다우니라”(롬 14:21)라 했다.

믿음은 나의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하나님이 성경을 통해서 주시는 그분의 뜻은 분명하다. 그런데 세상은 타협이라는 모습을 통해서 기독교인을 유혹해 온다. 그래서 아직도 교인 중에 여전히 세상의 풍속 가운데 젖어 있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다. 이런 교인 가운데는 물론 그리스도의 생명이 없는 단지 종교인들도 있을 것이고, 구원은 받았지만 하나님의 뜻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여 여전히 자기 생각 가운데 남아 있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1. 술에 대하여

인간에겐 ‘죄’ 성이 있어서 어떻게든 유리한 쪽으로 해석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술 취하지 말라”(엡 5:18)는 명령 앞에서 취하지 말라고 했지 마시지 말라고 했지 않느냐면서 음주를 합리화를 한다. 이것이 우리의 본성이다. 그러나 한 잔을 마시면 한 잔만큼 취하고, 두 잔을 마시면 두 잔만큼 취합니다. 처음에는 사람이 술을 마시고, 다음엔 술이 술을 마시고, 마지막엔 술이 사람을 마시게 된다고 한다. 술 취함은 방탕한 것이기에 잠언 23:31에는 “술을 쳐다보지도 말라”고 말씀했다. 우리의 생각과 관계없이 하나님의 뜻은 단호하다.

“재앙이 뉘게 있느뇨 근심이 뉘게 있느뇨 분쟁이 뉘게 있느뇨 원망이 뉘게 있느뇨 까닭 없는 창상이 뉘게 있느뇨 붉은 눈이 뉘게 있느뇨 술에 잠긴 자에게 있고 술을 구하러 다니는 자에게 있느니라 포도주는 붉고 잔에서 번쩍이며 순하게 내려가나니 너는 그것을 보지도 말지어다 이것이 마침내 뱀 같이 물 것이요”(잠 23:29-32).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엡 5:18).

최초의 사람이 밭에다 포도를 심고 있었다. 그때 사탄이 와서 무엇을 하는가? 라고 물었다. 사람은 말하기를 멋진 식물을 심고 있지! 이것이 아주 달콤하고 맛있는 열매가 맺는데 그 열매를 가지고 즙을 만들어 마시면 아주 기분이 상쾌해지지... 사탄은 음흉한 미소를 지으면서 말하기를 그렇다면 자기도 한몫 끼워 줘 하고는 양과 개와 돼지와 원숭이를 데리고 와서 이 네 마리를 죽이고 그 피를 비료로 쏟아부었다. 그래서 생긴 것이 바로 술이다. 이 술을 참으로 신기하다 먼저 마시기 시작할 때는 양처럼 순하고, 좀 마시면 개처럼 소리 지르게 되고, 그보다 더 마시면 돼지처럼 더럽게 되다가, 너무 지나치면 원숭이처럼 볼품 사납게 된다. 이것이 사탄이 인간에게 준 첫번째 마약이라고 한다.

술은 뇌를 조건반사적으로 움직이게 만드는 물질이다. 가벼운 음주가 반복되면 뇌는 술을 갈망하기 시작한다. 뇌는 쾌감을 기억하고 이를 반복하게 만드는 의존성을 키운다. 술잔이 늘어나고 음주 횟수가 잦아지며 어느 순간 편안한 집에서조차 통제력을 잃기 시작했다면 이는 위험 신호다. 습관적인 음주는 주량을 키울 뿐 아니라 술에 대한 경계심까지 무뎌지게 만든다.

중동 지역에서 전해지는 이야기이다. 사탄이 한 사람에게 접근해 위협했다. “목숨을 빼앗기지 않으려면 다음 세 가지 중 한 가지를 택하라.” “세 가지가 무엇입니까?” “네 어머니를 죽이든지 누이동생을 창녀로 팔든지 그렇지 않으면 술 열 잔을 지금 먹든지 하라.” “어떻게 어머니를 죽이고 누이동생을 거리에 팔겠소. 그러니 마지막 조건인 술을 먹겠소.” 이렇게 말한 그는 술 열 잔을 현장에서 먹고 집에 돌아갔다. 그러나 그는 술에 취해 누이동생을 팔고, 나중에는 어머니까지 살해했다.

2. 담배에 대하여

담배를 피우는 것이 합당하지 않은 몇 가지 이유를 살펴보자.

1) 우리의 몸이 성령의 전이기 때문이다.
성경은 우리의 몸이 “성전”이라고 말씀하신다(고전 3:16). 즉 거듭난 사람 안에는 하나님의 영이 그 몸 안에 들어와 계신 것이다. 그래서 우리 몸이 하나님을 모신 성전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을 모신 몸속에 담배 연기를 빨아 넣는 것은 육신의 건강뿐 아니라 안에 계신 성령께서 기뻐하실 수는 없을 것이다. 선생님이나 대통령이 집에 오셔서 안방에 계실 때 그 안방에서 담배 연기를 뿜어낼 수 없을 것인데 하물며 하나님이 계신 몸이야 무엇을 더 말할 필요가 있겠는가?

2) 중독성이 있기 때문이다.
주변에서 담배를 끊어 보려고 부단히 애를 쓰는 것을 본다. 참된 자유인은 담배를 피우고 안 피우는 것이 자신의 자유 아래 있어야 하는데 한번 담배의 노예가 되면 고귀한 인격체가 담배의 노예가 되는 것이다. 기독교인은 오직 주님의 노예이어야 한다. 기독교인들도 커피 같은 기호 식품을 사용하기는 하지만, 담배는 이것에 비하면 중독성이 강하고 심지어 몸에 해롭다.

3) 기독교인의 간증과 복음전파를 위해서다.
구원받은 사람은 그리스도의 생명을 소유한 자다. 생명의 능력은 구체적인 열매로 맺히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은 사람은 그의 삶이 변화된다. 구원받기 이전과 이후의 삶의 모습이 같을 수는 없다. 기독교인은 “그리스도의 향기”(고후 2:14-15)와 “생명의 향기”(고후 2:16)를 남겨야지 담배 냄새나 세상의 악취를 풍겨서는 안 된다. “너희는 이 세상과 일치하지 말고 너희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써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입증하도록 하라”(롬 12:2). 우리는 변화된 삶을 살아야 한다. 또한 우리는 세상과 구별된 삶을 살 때에만 복음을 효과적으로 전할 수 있다. 세상 사람들은 자기들과 잘 어울리는 세상적인 기독교인을 겉으로는 환영하고 추켜세우며 좋아하지만 뒤로 돌아서서는 비난을 하는 법이다. 이 밖에도 담배는 역겨운 냄새를 낸다. 건강에도 좋을 것이 없다. 재산과 인명의 손실을 가져오는 많은 화재가 담배 불로 말미암는다. 담배에 대하여 성경이 직접적으로 언급하고 있지는 않지만 마귀적이라는 암시가 있다.

욥기 41장은 사탄인 리비아단의 모습을 그리고 있는데, 꼭 담배 피우는 모습을 연상하게 한다. “그의 콧구멍에서는 연기가 나오니, 마치 끓는 솥이나 가마솥에서 나는 것 같도다”(욥 41:20). 따라서 담배를 피우는 것은 마귀를 따른 행동이지 결코 하나님의 자녀에게 합당한 습관이 아니다. 어린 청소년들이(심지어 초등학생까지도) 어른들이 그렇게도 말리는 담배를 숨어서라도 피워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마귀의 정욕에 따른 죄의 본성이기 때문이다. 결국 담배를 피우는 것은 마귀의 정욕을 따르는 것이요, 어린이들의 교육상으로도 좋지 않다. 사실이 이러함에도 담배를 피워야 하겠다면 그것은 본인의 선택이지만, 그 사람은 신실한 기독교인으로 인정받을 수는 없다. 그 사람이 담배를 끊을 수 없는 이유는 거듭나지 못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분명하게 거듭났는데도 아직도 주님의 뜻보다는 자기 편한 대로 살고자 하는 죄의 욕망에 강하게 사로잡혀 있는 것이라면 이제 성령을 통하여 몸의 행실을 죽이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우리를 위해 자신의 아들을 아끼지 않으신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온 영과 혼과 몸이 온전히 거룩하게 보존되기를 원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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