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월 10일, 미국 제39대 대통령을 지낸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의 영결식이 미국 워싱턴 D.C. 국립 성당에서 엄숙하게 거행되었다. 그곳에는 생존해 있는 미국 역대 전·현직 대통령, 그리고 전·현직 부통령들이 카터 전 대통령의 장례의식에 참여하여 고인을 추모했다. 빌 클린턴, 조지 부시, 버락 오바마, 도날드 트럼프, 현직 조 바이든이다. 앨 고어, 펜스, 카멜라 부통령의 모습도 볼 수 있었다. 패기 만만했던 시절 거대한 미국이라는 국가를, 아니 미국을 넘어 세계를 호령했던 인물들이 한자리에 모여 카터 대통령의 장례의식을 지켜보았다. 여기서 마치 제국통치를 했던 로마 황제들의 위엄과 그 모습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줄리어스 씨저, 콘스탄틴, 데오도시우스 같은 황제들 말이다. 통치 순간 순간 고비 고비마다 대범한 정치스케일로 역사를 이끌어왔던 그들의 모습에서 그들 개인은 말할 것도 없고 미국의 위대함을 느낄 수 있었다.
미국 역대 대통령들의 특징 몇 가지가 있다. 첫째, 정치든 군사든 전체적으로 역량이 크다. 이들이 미국을 건설 할 때, 험한 대서양을 요즈음에 비하면 형편없이 작은 배들을 타고 두려움 없이 건너와 우선 13개 주로 독립 국가를 건설했다. 그 후 미국 중부 및 서부까지 진출, 전 대륙을 국가 영토화했다. 마치 로마황제가 지경을 넓히되, 유럽 대륙을 제국화 했던 것 처럼 말이다. 당시 13개 주만 해도 그 땅은 어마어마하게 넓은 것이었지만 그들은 그것에 만족하지 않고 땅을 넓혀갔다. 현지인들이나, 유럽 다른 국가들이 지배하고 있던 땅을 매입해 사 들이기도 하고, 전쟁을 해서 얻기도 하고, 그렇게 해서 지금의 미국을 만든 것이다.
이런 것을 보면서, 참 우리의 옛 모습을 비교하여 살펴보지 않을 수 없는 감정을 가진다. 한반도 조그만 땅에서 서로 정복하겠다 사투를 벌였던 삼국시대, 신라가 백제 정복 후 당과 연합하여 북방의 넓은 땅을 다스리던 고구려를 무너트리고 하나의 국가체제를 이루긴 했는데, 한반도 남쪽지역 뿐이었다. 그 광활한 고구려가 지배하던 땅은 당시 당나라에 고스란히 빼앗겨 버리고 한반도 남쪽지역만 경계선을 둔 왕국을 세우고 말았다. 그러고도 삼국통일을 했다 한다. 정권의 입김에 놀아난 역사가 김부식의 어용의 소치가 들어난 모습을 보게 된다.
둘째, 통치정신이 경외롭다 할 수 있다. 독립 선언 후 국가 정부 체제를 어떤 것으로 할까에 대한 지도자들의 회의에서 대통령제로 하자 하여 대통령제 국가정부 체제를 만들게 되었다. 그들은 영국에서 건너온 인물들이었기 때문에 왕정체제 개념에 익숙했으나 왕정의 전제정치로 인한 폐해에서 벗어나기 위해 민주정치를 기반으로 하는 대통령제를 채택한 것이다. 미국 초기 국가를 세운 인물들은 대부분 의회중심의 입헌 민주주의 정치 실현을 위해 전제정치에 저항했던 명예혁명 정신을 존중했던 인물들이었기 때문에 3권 분립 민주주의 의회중심의 대통령제를 택한 것이다.
이 부분에서도 우리나라가 3권 분립 중심의 민주주의 체제를 갖게 된 것은 참으로 다행으로 생각한다. 어떤 사람들은 오랜 기간동안 왕정 치하에서 지배받던 체제 전통에 얽매여 왕을 하늘 모시는 듯한 정신을 하고 사는 사람들이 21세기에도 있는 것을 보기도 한다. 독재자가 시키는 대로 사는 것이 편하다 생각하고 독재자를 모시고 사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다는 것이다. 또 그런 정신으로 통치하려는 자들도 21세기에도 많은 것을 본다. 국가가 통치자 자신을 위해 존재한다는 망상을 가진 자들이 아직도 있다는 것이다.
셋째, 정치 도의적 도량이 넓다. 민주주의 의회정치에 경외감을 가지므로 상대당 의견을 존중하기 때문이다. 법을 잘 지키는 법정신과, 의회토론을 존중하기 때문에 정치적 무질서가 발생할 수 없다. 예를 들어, 어느 선거에서 당선되면 낙선한 자는 당선인에게 축하의 인사를 하며, 당선인은 낙선한 자를 격려하여 정치적 도의를 상호 상실하지 아니하는 정신을 가지고 있다. 그런 인물들을 호걸이라 한다. 사실, 영원히 당선되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당선됐다가 그 다음엔 어떤 사람에 의해 낙선되기도 하기 때문에 당선이나 낙선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하나의 과정을 거치는 것이라 생각하여 도의를 잃지 않는 삶을 산다.
그러나, 소인배들은 한번 상대방 인사에 당하거나 낙선하면 낙선인은 당선자를 그 순간부터 영원한 적으로 대한다. 오랜 역사 가운데 민주주의의 전통을 체험하지 못하고 살아, 어떤 직에 죽자살자는 태도를 보인다. 아니, 오히려 당선자가 낙선자를 격려하기는 커녕, 매장하려 하기까지 한다. 동서고금 한국이나 중국역사 통치자들을 보면 이런 류의 지도자들이 많은 것을 본다. 이번 카터 전 대통령 장례식에 참석한 전·현직 대통령들이 당은 달라도 같이 담소를 나누는 것을 보고 언론들은 그런 상황을 부러워하는 투로 보도하기도 했다. 이는 특별한 것으로 보도하기도 하는데, 우리사회가 워낙 보편성을 갖지 못한 결과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라 말 할 수 있다. 어쨌든, 적수였던 상대당의 지도자들이 모여 담소할 수 있었던 것은 정치적 예의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아무리 그렇다 해도 자도자의 넉넉한 마음의 도량이 없고서는 함께하기 어려운 일이라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한 국가가 강대국으로 커 가기 위해서는 지도자의 지도력 역량과 인성적 도량이 커야 한다. 골짜기에서 큰 사람들은 하늘 넓은 줄을 모를 가능성이 있다. 로마 황제들은 역량이 커서 유럽을 지배 할 수 있었듯이, 미국 대통령들도 역량이 컸기 때문에 어마어마한 대륙을 국가로 만들 수 있었던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세계관이 넓어야 세계적인 일을 할 수 있음을 다시 한번 느끼는 것이다.
21세기 들어 기독교에 대한 부정적 견해들이 많다. 교회나 성도 감소현상이 이를 말한다. 이런 현상들은 목회자들이 복음의 세계화 정신을 갖지 못하고 있기 때문으로 본다. 기존 교회에 안주하고, 성전건축에 관심을 쓰고, 그런 것에 헌금을 쓴다. 교회 역할의 범위를 넓히기 위한 것으로 기껏 해야 선교가 전부인데, 그나마 얼마나 효과적이며, 지속적인지 의문스럽기도 한 입장이다. 특히, 기독교인들이 정치이론화, 즉 정치 이념에 목회보다 더 관심을 가지고 있어 복음의 강화가 일어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교회 본질인 경천애인 정신을 상실하여 나타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것들이 교회성장과 발전을 저해한다.
기독교 교회의 확장이란 지나간 언어가 되었고, 이러한 때, 웨슬리 복음운동이 이 시대에 재생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가 영국을 변화시킬 때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말씀을 선포했지, 당시 영국의 정치논리나 정치상황에 편승하여 한 것이 아니다. 웨슬리의 신앙관에서 나온 “세계는 나의 교구”라는 슬로건은 그가 세계적인 복음운동가요, 사회사업가요, 조직행정가며, 신학자인 것을 증명하는 일이라 할 수 있다.
한국교회의 존립과 성장을 위해 이젠 그 확장성에 있어서 방법론적 패러다임을 다시 세워야 한다. 긴급히 해야 할 일은 세속 철학이나 정치논리에 휩쓸리지 말고, 좀 더 사회로 나가,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것들을 채워주는 일을 해야 한다. 미국 대통령들이 민주주의로 미 대륙을 넓혀 나갔던 것 같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구제, 갈등 해결의 길 제시나 선도, 상담센터 운영, 화해나 화합을 위한 평화의 사도역할을 하는 목회로 그 지경을 넓혀 나가야 한다. 사람들이 무당들이나 주술사들을 찾아가는 것을 보고 있지 않는가. 이런 상황을 목회자들이 소 닭 쳐다보듯 해서야 되겠는가? 괜한 정치적 걱정, 이념 걱정, 속된 말로 세상문제를 자신 홀로 해결하려는 듯한 그런 일 해서는 안 된다. 예수님도 말씀하셨다. “걱정한다고 키가 한자나 더 클줄 아느냐?” 그런 걱정들은 하나님의 역사운행에 대한 믿음이 적기 때문이다.
미국 대통령들이 민주주의의 지경을 미 대륙뿐만 아니라 온 세계로 넓혀 갔듯이 목회자들은 교회에서 예배 설교 하나로 그날 할일을 다했다는 것으로 생각하지 말고, 살아있는 설교자로, 상담가로, 영적 질병치유자로 활동해서 이 사회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정치 지도자들과 교회 지도자들이 융합적 차원에서 로마황제들과 미국 역대 대통령들의 위대함을 본받고, 구약의 야베스처럼 ‘곱하기 복’을 받되 패러다임의 지경을 크게 넓혀 대한민국이 6.25 전쟁 이후 가장 비침한 탄핵의 환난에서 속히 벗어나 근심없는 대한민국이 되길 주님께 간구한다(역대상 4: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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