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I. 윤리적 과제와 선교적 과제를 분리할 수 없다고 보는 관점

1. 에큐메니칼 진영의 선교와 윤리에 대한 통전적 인식

안승오 교수
안승오 영남신대 선교신학 교수

앞에서 살펴본 대로 에큐메니칼 진영은 대략 이차 세계 대전 후부터 선교의 과제를 윤리적 책임 실천으로 보는 경향을 지녔다. 즉 세계의 복음화보다는 이 세계의 인간화에 더 깊은 강조점을 두었다. 그러나 1975년 나이로비 대회를 기점으로 에큐메니칼 진영은 사도적 책임과 윤리적 책임을 분리할 수 없는 하나의 책임으로 보는 관점 즉 통전적 관점을 보이고 있다. 사이더는 선교에 관한 4가지 관점들을 말하면서, 그 중 세 번째 관점을 “개인의 회심과 사회의 정치적 개조는 동등한 중요성을 갖는 구원의 각 부분들이다” 라는 제목 붙인 후에 “이 세 번째 관점은 에큐메니칼 진영에서 가장 보편적인 것이다. 구원은 개인적이고 사회적이며, 개별적이고 집단적이다. 그리스도께서 가져오신 구원은 영혼과 몸의 구원, 개인과 사회의 구원, 인류와 신음하는 피조물의 구원이다”고 말하고 있다. 에큐메니칼 진영은 구원의 개념 자체를 개인과 영혼으로 제한하지 않고 육체와 사회 그리고 모든 피조물을 포함하므로 사도적 책임과 윤리적 책임을 분리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이라고 본다.

에큐메니칼 진영의 선교인식을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문서 중 하나인 “선교와 복음전도: 하나의 에큐메니칼 확언”은 “사람이 사는 모든 곳에 지역교회를 심고 확장하는 일은 기독교 선교의 핵심이다. 복음의 씨를 심으면 하나님의 백성들은 말씀과 성례전을 중심으로 모이게 되며, 나아가 하나님의 계시된 목적을 선포하는 사역에로 부름받는다.” 고 말함으로써 에큐메니칼 진영이 사도적 책임을 무시하지 않는 통전적 관점을 지니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런 경향을 보면서 이형기는 "1982년 ‘선교와 복음전도 - 하나의 에큐메니칼 확언’은 직접적으로는 1980년 멜버른 CWME의 치우침을 수정하였고, 간접적으로는 1975년 나이로비의 통전성을 이어받았다고 보여진다."고 평가하였다. 물론 여전히 에큐메니칼 진영은 사도적 책임과 윤리적 책임 가운데 윤리적 책임에 더 치우친 경향이 있지만, 어찌되었든 에큐메니칼 진영은 두 가지 책임을 분리하지 않고 하나의 책임으로 보면서 두 가지가 다 선교의 과제라고 보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2. 로잔을 중심으로 한 복음주의 진영의 통전적 인식

복음주의 진영은 본래 선교적 과제와 윤리적 과제를 분리해서 생각하면서 윤리적 책임을 선교의 다리 또는 열매로 생각하는 전통적 이해를 소유하고 있었다. 하지만 복음주의 진영은 1974년 1차 로잔 대회부터 선교적 과제와 윤리적 과제의 관계를 두고 고민하기 시작하였다. 로잔언약 6항은 “교회가 희생적으로 해야 할 일 중에 복음전도가 최우선이다. 세계 복음화는 온 교회가 온전한 복음을 온 세상에 전파할 것을 요구한다.”라는 말 속에서 윤리적 과제보다 복음을 전해야 하는 선교적 과제가 우선순위를 지님을 표명하면서도, 약 반세기 이상 선교의 한 부분인 사회, 정치적 책임을 무시하고 양극화하여 배타적으로 생각한 것에 대하여 유감을 나타내면서, ”물론 사람과의 화해가 곧 하나님과의 화해는 아니며 또 사회 참여가 곧 복음전도일 수 없으며 정치적 해방이 곧 구원은 아닐지라도, 우리는 복음전도와 사회 정치적 참여는 우리 그리스도인의 의무의 두 부분임을 확언한다.“고 5항에서 말함으로써 사회 정치적 참여를 교회의 핵심사역으로 바라보았다.

이처럼 로잔이 선교적 과제와 윤리적 과제의 관계에 대하여 고민하게 된 배경에는 로잔진영에 속해 있으면서도 에큐메니칼 진영과 뜻을 같이하여 선교적 책임과 윤리적 책임을 동등하게 인식해야 함을 주장한 그룹의 영향력이 있었다. 소위 ‘급진적인 제자도 그룹’(Radical Discipleship Group)이라고 명명되는 이들이 복음전도와 사회적 책임을 함께 붙잡아야 함을 강조하는 문서인 ‘로잔에 대한 반응’(A Response to Lausanne)을 제출하였고 이것이 로잔 언약의 부록으로 채택되어 사회적 책임 문제가 선교의 개념으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 즉 1974년 로잔은 사도적 책임과 윤리적 책임 가운데 사도적 책임에 우선순위를 두었지만, 이미 이때부터 복음주의 진영 안에서도 윤리적 책임을 사도적 책임과 동등선상에 놓고 선교의 목표에 포함시키자는 의견이 나타났던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후 1989년에 마닐라에서 열린 2차 로잔대회 역시 로잔 1차 대회 때처럼 복음전도의 우선순위에 대하여서는 양보하지 않았다. 마닐라 선언문 2부 제 4항은 “우리의 주된 관심은 복음에 있으며, 모든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할 기회를 갖도록 하는데 있기 때문에 복음 전도가 우선이다.”라는 점을 분명히 밝힌다. 하지만 바로 뒤이어 말하기를, “오늘 우리 역시 이와 같이 겸손한 마음으로 말씀을 전파하고 가르치며, 병자를 돌보며 굶주린 자에게 먹을 것을 주고, 갇힌 자들을 살피며, 억울한 자와 장애가 있는 이들을 도와주며, 억압당하는 자들을 구하는 일을 해야 한다. 영적인 은사가 다양하고, 소명과 상황이 다르더라도 복된 소식과 선한 행위는 분리할 수 없음을 단언한다.”라고 언급하였다. 즉 제2차 로잔대회는 복음전도의 우선순위를 강조하면서도 사도적 책임과 윤리적 책임을 분리할 수 없음을 말한다는 점에서 두 가지 사명을 통전적으로 보는 에큐메니칼 진영의 입장에 더 가까이 다가간 모습을 보여주었다.

로잔대회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에서 열렸던 제3차 로잔대회 ©lausannemovement

이어 2010년 남아공 케이프타운에서 열린 제3차 로잔대회에서는 복음주의 선교신학의 마지막 보루라 할 수 있는 복음전도의 ‘우선순위’라는 용어가 사라지고, ‘총체적 선교’(integral mission)라는 용어가 등장하게 된다. 3차 로잔 대회 선언문 1부 10조 B항은 “그러므로 우리의 모든 선교에서 복음전도와 세상에서의 헌신적인 참여가 통합되어야 하며, 이 둘은 모두 하나님의 복음에 관한 성경 전체의 계시가 명령하고 주도하는 일이다.”라는 표현을 통해서 복음전도와 세상에의 참여는 통합된 형태를 지님을 강조하고 있다.

즉 3차 로잔대회에 오면 복음주의는 선교에 있어서 사도적 사명의 우선순위를 포기하고 윤리적 사명을 복음전도의 사명과 동일하게 선교의 개념 속에 포함하는 통전적 사고를 갖게 되는 것이다. 이제 사이더의 “바야흐로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교회의 제 일차적 과제는 ..... 이다’라는 문장을 사용하기를 거부할 때가 도래하였다. 본인은 여러분이 그 빈 칸에 복음 전도라고 써넣건 사회 활동이라고 써넣건 간에 개의치 않는다. 그 어떤 것도 비성경적이며 오도하는 것이다.”라는 주장이 복음주의권에서도 완전히 자리를 잡게 되었고, 이로써 윤리적 과제는 사도적 과제와 분리될 수 없고 동일한 중요도로 인식되는 통전적 선교신학이 에큐메니칼과 복음주의 양 진영에서 모두 수용되는 선교신학으로 위치를 굳히게 되었다고 할 수 있겠다. (계속)

안승오 교수(영남신대)

성결대학교를 졸업하고 장로회신학대학원(M.Div)에서 수학한 후, 미국 풀러신학대학원에서 선교학으로 신학석사(Th.M) 학위와 철학박사(Ph.D) 학위를 받았다. 총회 파송으로 필리핀에서 선교 사역을 했으며, 풀러신학대학원 객원교수, Journal of Asian Mission 편집위원, 한국로잔 연구교수회장, 영남신학대학교 대학원장 등을 역임했다.

저서로는 『Rethinking the Theology of WCC』, 『사도행전에서 배우는 선교 주제 28가지』, 『현대 선교학 개론』(공저), 『한 권으로 읽는 세계 선교 역사 100장면』, 『성장하는 이슬람 약화되는 기독교』, 『현대 선교신학』, 『현대 선교의 핵심 주제 8가지』, 『현대 선교의 프레임』, 『제4 선교신학』, 『성경이 말씀하는 선교』, 『현대 선교신학(개정판)』, 『현대 선교의 목표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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