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2025학년도 입시부터 의대 정원을 현재보다 2000명 더 늘리겠다고 발표한 데 대해 전국의 의사들과 의사협회 등 의료계가 휴업과 파업 등 집단행동을 예고하는 등 파열음이 커지고 있다.

정부가 의대 입학정원을 늘리겠다고 발표한 배경은 늘어나는 환자들을 감당하기에 지금의 의사 수로는 태부족이란 판단 때문이다. 의사들은 아무리 그래도 매해 2000명씩 늘리는 건 지나치다고 하지만 의료 현실을 감안할 때 지금부터 늘려나가도 부족하다는 게 정부의 생각이다.

정부의 발표에 교계는 환영하는 분위기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와 한국교회총연합(한교총)은 지난 14일 일제히 정부 정책을 지지한다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 한기총은 “지금도 응급실이나 소위 돈 잘 버는 진료과가 아니면 의사 인력이 부족하고, 충원도 잘되지 않는 현실”이라며 정부의 의대 증원 발표에 힘을 실었다. 한교총도 “지금 의료 현실은 인력 부족으로 인한 응급체계 마비, 비인기 진료과 기피 현상, 의사들의 과중한 업무와 피로 누적 등 악순환이 되풀이되고 있다. 국민이 제대로 된 의료 혜택을 받지 못해 생명권이 위협받는 불안한 상황을 맞게 될 것”이라며 정부의 발표에 지지를 표했다.

교계가 정부의 의대 증원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 의료계의 집단 발발에 대해선 자제를 당부하고 나선 이유는 의료계가 필요한 부분, 필수의료분야에 의사를 배치하고 인력을 확충하려는 노력이 부족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의사들 스스로 자구 노력은 하지 않고 기득권만 지키려 하는 게 아니냐는 거다.

현재의 의사 수로 늘어나는 환자를 감당하기 힘들다는 건 정부나 의료계 모두 인정하는 사실이다. 의사들의 환자를 돌보는 일이 점점 인술(仁術)이 아닌 중노동의 현장으로 변한 원인을 꼽는다면 의사 한 명당 돌봐야 할 환자 수가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늘어나고 있는 현실을 외면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다. 사실 의사들이 파업 등 집단행동에 들어갈 경우 후폭풍이 가장 클 곳이 응급실이다. 응급의료시설은 중환자 등 생명과 직결된 곳이나 지역의료 인력 부족으로 인해 의료 취약지대로 꼽힌다. 전국 412개 의료기관 내 응급실 대부분이 야간 당직 등 취약 근무시간 대에 주로 전공의 인력으로 운영되는 실정이라 과로사의 위험에까지 노출되고 있는 형편이다.

그런데 응급실 등에서 위중한 환자를 돌보며 수면 부족 등 과로에 시달리는 전공의들까지 정부의 의사 증원에 왜 그토록 강하게 반발하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이치대로라면 본인들의 밤낮없는 고생을 덜어주겠다는 정부의 발표를 두 손 들어 환영해도 모자랄 판인데 말이다.

의료계는 현재 우리나라 의료체계 문제의 본질은 의사 수의 절대 양(量)의 문제라기보다 소위 ‘쏠림 현상’에서 비롯된 문제라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내·외과나 소아과, 산부인과와 같은 필수의료분야의 의사 수 부족이 가장 심각한 문제인데 정부 정책은 의사 수만 늘리면 된다는 식이어서 본질에서 비켜나 있지 않냐는 것이다. 결국, 문제 해결의 열쇠는 의사의 수를 늘리기에 앞서 의사 인력의 재분배를 유도할 수 있는 정책이 우선 강조돼야 한다는 게 의료계의 입장이다.

이 부분에 관해서는 기독 의료인들로 구성된 한국복음주의의료인협회(한복의협)가 얼마 전 발표한 성명 내용을 주의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한복의협은 정부의 의대 증원과 이에 맞선 의료인들의 집단행동, 이로 인해 발생할 의료 공백 사태 등을 우려하며 국가의 의료정책이 의료 현장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를 진단한 바 있다.

한복의협은 이 성명에서 “단순히 의사가 많아진다고 필수의료 공백이 해결된다고 보는가. 그건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것”이라며 우리나라의 불합리한 수가 제도와 의료전달체계의 붕괴, 보람과 만족을 얻을 수 없는 의료 현장의 문제가 근본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환자에게 최고의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 의료인들의 절박한 호소를 ‘밥그릇’ 싸움으로 치부하는 행태를 심각히 우려한다”고 했다.

의료계의 거센 반발에도 정부의 의대 증원 발표에 여야 정치권이 모처럼 한목소리로 반기는 분위기다. 주요 언론들까지 정부의 발표에 호의적이다. 반면에 의료계를 향해선 파업 등 집단행동을 자제하고 정부의 지시에 따를 것을 주문하고 있다.

정부와 정치권, 언론까지 강하게 의료계 압박에 나서자 의료계는 고민에 빠진 모습이다. 이미 집단행동을 예고했으나 그것이 휴업, 파업 등으로 이어질지 의사들의 개별 행동으로 그칠지 단언하기 어렵다. 다만 이 사태가 장기간 의료 공백으로 이어져 국민 건강과 생명에 직접적인 위해로 나타나는 일만은 막아야 할 것이다.

지금의 파열음은 의사 수를 늘리려는 정부와 필수의료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이 우선이라는 의료계의 입장 차가 좁혀지지 않는 한 쉽게 가라앉기 어려워 보인다. 다만 정부는 총선을 앞둔 시기에 ‘포퓰리즘’이란 소리를 듣지 않으려면 숫자로 밀어붙일 게 아니라 필수의료 배치라는 원인 처방을 놓고 의료계와 다시 한 번 진지하게 대화에 임할 필요가 있다. 의료계 또한 직업 이기주의, 특권의식이란 말이 나오지 않도록 국민 건강을 볼모로 한 집단행동을 자제하고 정부와 허심탄회하게 대화하며 타협점을 찾는 노력을 기울여 주길 당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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