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도시화시대와 조용기목사: 대도시의 출현과 근대기술문명의 수용

박명수 교수
박명수 교수

산업화는 필연적으로 도시화를 먼들었다. 해방 직후 수십만에 불과하였던 서울이 피란민을 중심으로 백만이 넘어섰다. 그러나 서울이 급속하게 성장하게 된 것은 결국 산업화를 경험하면서 부터였다. 서울에 공장이 생기고, 사람들은 새로운 직장을 찾아 서울로 올라왔다. 서울은 얼마지나지 않아 수백만의 인구가 되었고, 급기야 천만을 자랑하는 세계의 중심도시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6.25 전쟁과 더불어 한국에 들어온 오순절운동은 지구정복(Global Conquest)라는 선교정책을 세웠다. 지구정복 프로그램은 바로 도시선교운동이었다. 복음으로 도시에 집중적으로 집회를 개최하여 교회를 세우자는 것이다. 도시는 사람들이 몰려 오는 장소이다, 오순절운동은 여기에 초점을 맞추었다. 같은 시기에 한국에 들어온 나사렛교회는 시골을 선교의 주대상으로 하였다. 복음이 들어가지 않은 것에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사렛교회는 아직도 이들이 집중적으로 전도했던 경기도 아중지역을 제외하고는 큰 성공을 하지 못했다.

서울시의 역사를 살펴보면 몇 차례의 중요한 변화가 있었다. 첫번째 단계는 해방직후에서 50년대까지 피란민을 중심으로 서울시가 형성되었고, 둘째는 60년대부터 80년대까지 영등포산업단지를 중심으로 산업도시가 형성되었고, 셋째는 80년대부터 서울에는 강남, 노원등을 중심으로 새로운 신도시가 형성되며, 넷째는 분당, 일산등 신도시가 형성되었다. 조용기목사는 정확하게 이런 신도시의 형성과 더불어서 교회를 성장시켰다.

조용기목사와 최자실목사가 불광동에서 사역할 때 그 대상은 서울의 가난한 피란민이었다. 복음전도를 시작한 것은 서대문이었다. 여의도순복음교회가 비약적인 발전을 하게 된 것은 여의도로 이전하면서 부터였다. 1970년대 한국사회는 매우 중대한 위기를 맞이하였다. 하나는 닉슨의 데탕트로 말미암아 미중관계가 개선되고, 미국은 반공정책을 약화시키고 베트남을 월맹에게 넘겨주고 말았다. 많은 사람들은 한국이 제 2의 베트남이 되지 않을 까 염려하였다. 이런 위기의식은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교회로 나오게 만들었고, 이것은 빌리그래함전도대회, 엑스플로 74, 77대성회등 소위 한국기독교의 여의도시대를 열었다. 한국교회가 여의도시대를 맞이하면서 이곳에 여의도순복음교회가 당시로서는 거대한 성전을 짓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 당시 여의도에서 진행되던 많은 집회들이 여의도순복음교회의 건물과 그 신자들의 협조를 받아서 진행되었다. 필자는 여의도순복음교회가 한국교회의 중심위치에 오르게 된 것은 바로 여의도시대의 등장과 궤를 같이 한다고 생각한다. 한국교회의 변두리에 있던 조용기목사는 결국 84년 한국기독교백주년기념대회에서 주강사로 서개 됨으로 한국교회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

70년대가 여의도시대라고 한다면 80년대는 강남시대라고 말할 수 있다. 구 서울시지역으로는 늘어나는 주택문제등을 해결할 수 없어서 8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강남시대가 열렸고, 아울러서 노원등 다른 지역에서 신도시가 만들어지기 시작하였다. 90년대가 들어서면서 정부는 서울시 분당, 일산과 같은 외곽에 위성도시를 만들게 되었다. 또한 서울의 인구팽창은 주변의 기존도시들의 인구를 늘렸다. 서울과 그 주변은 거대한 메트로폴리탄이 되었다.

여의도순복음교회가 최초로 지성전을 세운 것은 1983년이다. 이 해에 인천, 부천, 성남에 지성전을 세웠다. 그 이후에 서울의 외곽지대에 지성전이 세워지게 되었고, 나중에는 서울시내에도 많은 지성전이 세워지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조용기목사가 만든 여의도순복음교회는 여의도에 있는 순복음교회 외에도 서울의 신도시외 위성도시에 있는 수많은 교회를 포함하는 거대교회가 된 것이다. 이것은 당시 한국의 다른 지역의 대형교회에서 찾아볼 수 없는 새로운 제도이다. 조용기목사는 시간이 지나가면서 지성전을 지교회로 독립시키게 되었다. 이런 과정에서 여의도순복음교회의 지성전은 점점 그 지역의 대형교회로 성장하였다. 여의도순복음교회는 단지 여의도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전국에 흩어져 있는 것이다.

여의도순복음교회가 이렇게 지성전과 지교회를 만들 수 있는 것은 정보통신기술의 발달 때문이다. 이런 기술의 발달로 각각 지역은 다르지만 영상으로 조용기목사의 동일한 메시지를 들을 수 있었다. 여의도순복음교회는 1995년부터 예배실황을 지성전과 지교회에 동시에 중계하였는데, 이것은 여의도순복음교회가 새로운 과학기술을 예배에 적극적으로 수용했기 때문이다. 여의도순복음교회는 성경의 엣 메시지를 오늘의 근대 과학기술을 통하여 전달하였다.

이런 지성전은 공동체에 대한 새로운 개념이 없이는 가능하지 않다. 그것은 얼굴과 얼굴을 맞대는 대면이 아니고서도 영상을 통해서도 하나의 공동체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전제되지 않으면 가능하지 않은 것이다. 이런 비대면공동체의 출현은 근대문명을 수용하면서 변화하는 시대를 수용하는 유연성이 없이는 가능하지 않다. 이런 점에서 여의도순복음교회에는 사도행전의 원시복음으로 돌아가려는 근원성과 현재의 과학기술을 사용하는 근대성이 공존하는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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