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제 2) 생물학과 철학의 차이를 혼동하는 문제

허정윤 박사
허정윤 박사

[질문] 만약 생물학적 진화가 사실이라면, 그것은 우리가 단지 우리의 유전자에 의해 주도되는 동물들에 불과하다는 것, 그리고 우리에 대한 모든 것이 자연선택으로 설명된다는 것을 의미하는가?

[답변] 아니다. 생물학적 과정으로서의 진화에 대한 믿음은 세계관으로서의 진화에 대한 믿음과 같지 않다.

[켈러의 관점]
(1) 켈러는 먼저 진화 생물학적 과정(EBP)과 세계관으로 믿는 진화의 거대 이론(Grand Theory of Evolution)의 개념을 구분하여 설명한다.

(2) 이윤석은 켈러의 답변에 대해 “진화를 믿으며 진화가 옳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님”이라고 주장하고, “오히려 기독교인이라면 혹시 EBP에 대해서는 찬성하더라도 GTE에 대해서는 반대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임”이라는 주장을 내놓는다. 이윤석은 켈러가 CECL은 물론, ‘난제 2의 질문과 답변’을 왜 썼는지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 다시 읽어보기를 권고한다!

(3) 이윤석은 “기원의 설명으로 EBP에 대해 찬성하는 기독교 목회자들, 신학자들, 과학자들이 그와 동시에 GTE에 반대하는 데 더 많은 강조를 해야 한다고 믿는다”는 켈러의 말을 끌어다 놓는다. 만약 이윤석의 위의 주장이 맞다면, 켈러는 자기가 찬성하거나 믿지도 않으면서 EBP를 찬성하는 기독교 신자들에게만 GTE에 반대하는 데 더 많은 강조를 하도록 요청한단 말인가? 이윤석의 주장은 한결 같이 저자인 켈러의 의도를 벗어나 임의로 주장하고 멋대로 결론을 내린다. 이윤석은 켈러의 CECL을 때로는 이렇게 때로는 저렇게 왜곡 해석하면서 켈러와 그의 글을 읽는 독자를 얼빠진 바보로 만들고 있거나 조롱하고 있는 것 같다. 이윤석이 인와겐의 글을 인용 비판한 김병훈을 비판하면서 사용했던 말이 자신에게로 돌아감을 알아야 한다.

[이윤석의 김병훈 비판]
이윤석은 김병훈이 3가지 문제를 제시하면서 켈러를 유신진화론자로 단정한다고 비판한다. 그러나 여기서 김병훈의 켈러에 대한 3가지 문제 비판은 틀리지 않았다.

(1) 김병훈은 켈러가 ‘진화를 GTE로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단지 EBP로 생각하는 기독교인이 숱하며, 세상에서 가장 큰 가톨릭교회도 그런 생각을 지지한다고 말하면서 자신의 판단에 힘을 더한다’고 말하는 켈러를 유신진화론자로 단정함. 유신진화론은 EBP 없이 성립하지 않는다. 나아가 ‘자연선택’은 무신진화론에서도 빠질 수 없는 기초이론이다.

(2) 김병훈은 켈러의 위 주장을 어떠한 검토도 없이 EBP를 검증된 과학적 사실이라고 믿는 사실을 전제하고 있다고 단정함

(3) 켈러는 진화를 자연선택이나 유전자 변이를 통하여 생물이 변하는 과정이라고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단정함.

[이윤석이 간과한 것들]
(1) 여기에서 이윤석은 켈러가 그의 견해를 뒷받침하기 위해 중요하게 인용한 데이비드 에킨슨(David Atkinson)의 말(The Message of Genesis I-II(IVP, 1990. p.31)을 빼놓았다. “만일 ‘진화’가 사물의 존재방식을 바라보는 세계관의 지위로 올라간다면 성경적인 신앙과 정면으로 충돌할 것이다. 하지만 ‘진화가 과학적이고 생물학적인 가설 수준에 머문다면, 창조주를 믿는 크리스천의 생각과 하나님이 창조 과정을 시작하신 방식에 대한 과학적 탐사(생물학적인 차원의) 사이에 충돌이 일어날 이유가 없다.’” 여기에서 두 사람의 견해에 차이점을 발견해야 한다. 켈러는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를 세계관 수준으로 믿지만, 아킨슨은 그런 주장을 ‘가설’이며 ‘과학적 탐사’ 수준으로 보고 있다.

(2) CECL 외에도 켈러가 자신이 진화론을 수용하는 범위에 대해 밝힌 말이 있다. “분명하게 말해 두자면, 하나님이 일정 부분 자연선택의 과정을 이끄셨다고 생각하지만, 진화가 모든 것을 아우르는 이론이라는 개념은 단호하게 거부한다.”(『하나님을 말하다』, p.161). 켈러는 이렇게 자신이 주장하는 진화론의 EBP(자연선택의 과정)과 GTE(모든 것을 아우르는 이론)를 구별하여 그의 수용 범위를 말했다. 결국 100%는 아닐지라도 60% 이상 유신진화론을 수용하는 것이라고 본다. 그것이 켈러가 바이오로고스와 관점이 다르다고 하는 차이다.

난제 3) 아담과 하와 / 죄와 고통

[질문] “만약 생물학적 진화가 참이고 역사적 아담과 하와의 존재가 없는 것이라면 우리가 어떻게 죄와 고통의 기원을 알 수 있는가?”

[답변] “진화에 대한 믿음은 역사적 타락 및 문자적 아담과 하와에 대한 믿음과 양립 가능하다. 이 주제에 대하여는 답변이 이루어지지 않은 질문들이 많이 있고 그래서 하나님이 진화를 사용했다고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다른 사람들의 관점들에 열려 있어야 한다.”

켈러의 답변에서 주목할 점은 “진화에 대한 믿음은 역사적 타락 및 문자적 아담과 하와에 대한 믿음과 양립 가능하다”는 주장이다. 이 말 또한 켈러가 진화를 믿는다는 사실을 증거하는 것이다. 진화를 믿지 않는다면, 애써 주장할 필요가 없는 말이기 때문이다. 이어지는 “성경의 신뢰 가능성” 항목에서 켈러는 창세기 1장을 문자 그대로 믿지 않는 이유를 “저지가 그렇게 기대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켈러의 관점]
(1) 이윤석은 “창세기 2-3장과 로마서 5장의 기록이 역사적 인물인 아담에 대한 역사적 기록임을 진술하며, 정통적인 언약신학의 구조와 교리를 그대로 충실하게 따라 설명함.” 그리고 바로 이어서 “바로 이 부분에 아담과 하와에 대한 켈러의 신학적 입장이 잘 담겨 있음”을 주장한다. 그러나 켈러가 저자의 의도를 따른다는 핑계로 창세기 1장을 비문자적으로 읽고 역사적 사실을 부인하는 켈러의 신학적 입장을 “정통적”이라고 주장하는 이윤석의 신학적 입장은 과연 무엇인가? 정통적 개신교의 언약 신학은 창세기 1장의 기사에 대해 문자적 해석은 다를 수 있지만, 역사적 사실로 믿는다는 공통적인 믿음을 바탕으로 성립하는 것이 아닌가?

(2) 이윤석은 켈러의 관점에서 “아담과 하와가 EBP의 결과물일 수 있을까”라는 의문을 던지고, 켈러가 제시한 데릭 키드너(Derek Kidner) 모델을 설명한다. 키드너 모델은 켈러가 기독교 신앙과 양립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EBP의 핵심 내용을 담고 있으며, 켈러가 주장하는 아담과 하와의 역사적 존재 과정을 설명하는 모델이다. 이윤석은 그것을 “성경에 나오는 아담보다 수준이 훨씬 떨어지는 인간 종(원문은 homo faber)이 당시에 이미 존재했고, 그들 중에 한 아담이 진화를 통해 나타났으며, 하와는 특별하게 창조하여 이 한 쌍을 하나님의 대리 통치인으로 세운 후에 그 후손들이 번성하게 되었다고 제안함”이라고 소개한다. 켈러가 그리스도인들에게 믿기를 권유하는 모델이고, 켈러의 관점에서 현생 인류의 기원을 설명하는 모델이다.

(3) 여기서 알 수 있듯이 켈러의 EBP는 하나님이 아담을 직접 만드신 것이 아니라, 진화론에서 주장하는 공통 조상으로부터 ‘도구 사용자’로 진화한 무리 중에서 하나님이 선택하셨다고 보는 것이다. EBP는 키드너 모델을 뒷받침하는 이론이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들에게 창세기 1장의 기사를 믿지 말고, 키드너 모델을 믿으라고 권고하는 켈러를 유신진화론자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가?

(4) 켈러는 알렉산더 데니스(Alexander DenDenis)에게서 다른 모형들을 빌려온다. 이윤석은 켈러가 키드너 모델을 유신진화론과 (오랜 지구) 점진적 창조론을 혼합한 “하이브리드 유형의 한 가지”로 볼 수 있다고 말했음을 제시한다. 이윤석은 이 말에 근거하여 켈러를 창조론자에 포함시킬 수 있다고 본 것 같다. 그러나 켈러의 말은 유신진화론자라는 비판을 피하려는 말장난일 뿐, 키드너 모델은 사실상 유신진화론에 더 가깝다.

(5) EBP를 믿는 켈러는 ‘하나님의 형상’이 진화된 아담과 창조된 하와에게 부여되었을 뿐만 아니라, 당시 존재했던 방계 사람들(다른 도구 사용자들)에게도 부여되었고, 아담의 타락의 원죄는 혈통적으로 상속된 것이 아니라고 했다. 켈러는 하나님이 선택한 인류의 언약적 대표자 아담의 대표성 안에서 아담의 원죄는 아담의 자손들은 물론 당시에 존재했던 방계 사랃들과 그들의 후손들도 모두 벌을 받아야 하는 것이라고 본다. 켈러는 성경에서 그와 같은 사례로서 아간이 죄를 지었을 때 그 일족이 같이 벌을 받은 것(여호수아 7장)을 말한다. 이윤석은 켈러의 관점에서 이토록 중요한 설명을 논의하지 않고 넘어간다(의도적인가?).

[이윤석의 난제 3에 대한 비판]
(1) 이윤석은 “키드너의 모형은 켈러의 표현처럼 창의적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낯설고 생경한 생각일 수 있음”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이 글을 읽거나, 강의를 듣거나, 동영상을 보는 기독교 신자들에게는 신자들에게 유신진화론을 믿으라고 권고하는 팀 켈러 목사를 유신진화론자가 아니라고 강변하는 이윤석 목사의 모습이 더욱 낯설고 생경하다.

(2) 이윤석은 난제 3에 대한 켈러의 “논의의 답변은 충분히 정리되지 않은 느낌”이라고 평가했으나, CECL의 본문을 잘 읽어보면, 켈러의 답변은 충분히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정리되어 있다. 사람마다 이해력의 차이는 있겠지만.

(3) 이윤석은 “키드너 모형, 유신진화론, 점진적 창조론→ 켈러는 문자적 아담과 하와에 대한 믿음의 중요성을 주장하면서도, EBP를 이용하여 하나님을 믿는 몇 가지 방식을 보여주었다고도 하지만 잘 정리되지 않고 끼워 맟춘 느낌(성공적이지 않음)”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비판자들은 켈러의 CECL을 읽고, 그가 유신진화론자임을 인식하고 적극적으로 비판하지 않았는가? 그렇다면 이윤석은 왜 같은 켈러의 CECL을 읽고 “잘 정리되지 않고 끼워 맟춘 느낌(성공적이지 않음)”이라는 말로 그치고 마는가? 켈러가 유신진화론을 주장하지 않는다고 어떻게 반론했다는 건가? 이윤석의 “팀 켈러의 창조론”도 그런 것이 아닌가? 그리스도인이 왜 그런 창조론을 믿어야 하는가? 켈러가 믿는 키드너 모델은 아담을 진화되었다고 보면서 창세기 1장을 문자대로 읽지 않는다. 알렉산더의 다양한 모델에도 속하지 않는다. 그의 말대로 유신진화론과 오랜 지구 점진적 창조론의 혼합이나, 유신진화론에 더 가까운 것으로 평가된다.

5. 나가는 말

(1) 이윤석은 CECL의 결론 부분에서 두 개의 구절을 인용하여 그의 글에 결론을 맺는다.

첫째 구절은 “성경과 과학을 연관시키고자 하는 사람들(원문: 그리스도인)은 반과학적 종교인이나 반종교적 과학자가 아니라 ‘더 큰 텐트’(bigger tent)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함”.

이 글의 각주를 보면 알렉산더 데니스의 것임에도 이윤석은 밝히지 않았다. 그냥 읽으면, 켈러가 일반 사랍들에게 주장하는 것처럼 이해될 것이다. “사람들”이라는 말도 원문에서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을 이윤석이 임의대로 바꾼 것이다. 무책임한 저자의 행동이다.

둘째 구절은 “이런 일을 하는 사람들(원문: 그리스도인들)이 가져야 할 태도를 제안함”에 덧붙여서 인용하는 “ ... 그는(원문: 나) 그(원문: 나)의 관점이 ‘탐색적인 제안으로 ... 단지 잠정적이며, 개인적인 관점이다. 그것은 수정과 더 나은 종합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 말은 켈러가 키드너의 말을 인용한 글에서 “나”를 “그”로 바꿔 놓았다. 켈러는 맨 끝에 자신의 말 “그것이 이 분야에서 일하는 우리 모두가 가져야 할 바른 태도이다.”라는 한 마디를 얹어 놓고 끌을 맺는다.

이 글 전문에서 이윤석은 켈러의 말과 비판자들, 또는 다른 저자들의 말을 인용하면서 “자신의 잣대로 마음대로 단정하고 비판하는 경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남”이라는 자신의 말을 넘어 잘라내고 바꿔치기까지 하는 성향이 있음을 보여준다.

(2) 켈러의 글을 보면, 먼저 자기의 의견을 개진한 다음에 자기와 같은 견해를 가진 저자들에게서 글을 인용하여 자기의 주장을 대변하거나 강조하는 경우가 많다. 이윤석은 켈러의 글 쓰는 방식에 제대로 따라가지 못하고, 문맥을 오독하여 EBP를 믿으라고 권유하는 켈러의 입장을 제대로 읽어내지 못하는 것 같다.

(3) 켈러의 본거지 미국에서 최근에 나오는 신학자 또는 목회자들의 자료들을 보면, 이제는 켈러가 유신진화론자인가, 아닌가의 문제는 논의의 대상이 되지도 않을 만큼 결론이 내려진 상태인 것 같다. 켈러의 유신진화론자적 입장은 바이오로고스 홈페이지 “scholar essays”란에 게재되어있는 CECL만으로도 충분히 입증되었기 때문이다. 남은 쟁점은 EBP 수용을 권고하는 켈러를 지지하느냐, 아니면 거부하느냐의 문제일 뿐이다. 뒤늦게 한국에서 켈러를 창조론자로 보는 견해가 쟁점으로 떠오른 것은 그의 유신진화론적 견해가 국내에 아직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어쨌든 창세기 1장을 역사적 사실로 믿지 않는 켈러의 유신진화론을 전통적 창조론의 범주에 넣고 수용하면, 보수적 신앙을 바탕으로 하는 국내 신자들과 교회에 상당한 해악을 끼칠 수 있다는 우려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신앙의 자유가 있는 나라에서 어떤 신앙을 가지든지 자유이지만, 기독교인들이 켈러의 말에 따라 하나님의 창조를 기록한 창세기 1장을 버리고, 확증되지도 아니한 EBP(진화적 생물학 과정)를 믿는다는 것은 풍문을 믿고 자신의 정체성을 버리는 것과 같다고 본다. 그런 어리석은 그리스도인이 되지 말자는 것이 이 글을 쓴 필자의 우려 섞인 당부이다.

[부록] 이윤석의 첨부한 “켈러의 창조에 대한 관점을 찾아서”의 웹 사이트에 대한 내용 평가

1. 개혁의 딸 블로그

① “팀 켈러와 바이오로고스: DR. TIM KELLER AND BIOLOGOS”(2012) 기사: 켈러 박사는 바이오로고스의 지도적 인물 목록에서 삭제되었지만, 바이오로고스 이야기를 전하는 것이 “목회자의 일”이라고 믿는다. 그는 BioLogos와 그 진화론적 견해에 대한 그의 지지가 꽤 확고한 것 같다는 내용

② “켈러 박사는 점진적 창조론자인가?”(2012) 기사: ‘켈러가 자기를 오랜 지구 점짐적 창조론자(old earth progressive creationist)라고 말해서 놀랐다. 만약 그렇다면, 휴 로스의 RTB가 활동하기에 더 낫지 않느냐고 물었다.

2. vimeo.com/ 켈러와 Eric Metaxas의 인터뷰(2012) 동영상(앞의 개딸 블로그 기사의 원천): 켈러는 “아담과 하와의 실재를 믿는 오랜 지구 점진적 창조론자”라고 했다. 필자 주 : 켈러는 CECL에서 아담을 진화된 무리 가운데 하나로 하나님이 선택하여 하와와 짝을 맺고, 하나님의 형상을 받았다고 했다. 아담의 진화를 주장하는 건 유신진화론과 거의 같지 아니한가?

3. youtube.com/켈러, 무어 던컨: 창조에 대한 타협 불가한 믿음: TGC(The Gospel Coalition: 복음 연맹) 의 토론 동영상(2017)

(던컨) 정통 창조론의 필수요소: 주장 ⓵ 무로부터의 창조 ② 창조의 선함 ③아담과 하와의 특별 창조 주장

(켈러의 응답) “지금으로서는, 아담과 이브가 있었고, 모든 인간이 아담과 이브에서 비롯되었으며, 그들은 특별한 창조물이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과학 친구들에게 대답할 수는 없지만, 그것이 내 입장이다.>” 이윤석의 이해(=번역) 인용 “그리고 혹 내가 내 과학자 친구들에게 할 답변이 없을지라도 그게 내가 서 있는 곳이다.” 켈러의 말은 곳에 따라 조금씩 바뀐다.

4. 휴 로스의 RTB(Reasons to Believe) / reasons.org/ 휴 로스가 앞의 TGB의 동영상을 보고 쓴 글(2017): “아담과 하와에 대한 켈러와 던컨의 입장에 대해 감사하며”, 앞 3항의 TGC 동영상 대화에서 보듯이, 던컨의 3원칙 주장에 켈러는 대답을 얼버무리고 있다. (끝)

팀 켈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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