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신앙의 시대

1) 장로회신학교의 시작

소기천 교수
소기천 교수
미국 시카고에 있는 맥코믹 신학교를 졸업한 마포삼열은 1890년 1월 20일에 서울 마포 나루에 도착하였다. 그 후 언더우드가 세운 고아원 후신인 예수교학당에서 일하면서 본 교단 최초로 신학사업을 시작하였다. 김인수에 의하면, “이 학당에서는 학생들에게 성경을 중심으로 가르치면서 후일 한국교회를 위한 복음의 역군을 길러내는 신학교로 발전시키려 했으나 이는 후일 서울이 아닌 평양에서 기초되고, 실현되었다.”

1890년 언더우드에 의해 처음 시작된 사경회는 1898년 12월에 마포삼열이 처음 주도하는 사경회로 이어지면서 ‘동기신학반’으로 개설되어 105명의 학생이 등록하고, 그중에서 34명을 뽑아 고급반을 편성하기도 한다. 이 때 가르친 과목이 히브리서, 갈라디아서, 성경지리, 노방전도 등이다. 특히 1891년 2월 미국 북장로교 선교부 연차총회에서 채택된 한국선교에 대한 규정“에 신학교육에 대한 방향과 원칙이 나오는데, 그 첫 번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선교부는 다양한 한국교회 지도자들을 여름이나 겨울 신학반을 통해 교육시킨다. 때가 되면 보다 조직적이고 철저한 신학교육을 신학교를 통하여 실시한다.

이 내용에 의하면 우리는 이미 1891년에 평양신학교 설립이 추진되고 있었던 것을 알게 된다. 1896년에 이눌서(W. D. Reynolds)는 한인 교역자 양성의 유의점을 정리하면서 ‘영적 체함을 가진 사람 곧 성령의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과 기독교의 기본 진리와 사실을 철저히 통달한’ ‘청년목사 지원자를 예수 그리스도의 정병’으로 훈련시킬 것을 미국 남장로교 선교부에 보고하기도 한다. 1899년 7월에 미국 북장로교회의 한국 선교 전략이라는 글에 신학훈련이라는 항목이 나오는데, 거기에 ‘조사나 교회 지도자들을 일 년에 한차례씩 모아 훈련’하는데, 보통 2-3주에서 한 달간 교육을 시키면서, 성서주해, 제목별 성경공부, 성경입문, 교회사, 성서지리, 교회정치, 찬송, 설교 등을 가르치게 된다. 이러한 엄격한 기준에 의하여 그 당시 목사 후보생은 수세 후 5년이 경과하고 지역교회에서 적어도 2년 이상 자도자로 경력을 쌓은 사람을 대상으로 하다 보니, 평양신학교의 시작은 1901년에 이르러서야 시작되기에 이른다.

평양신학교는 1901년부터 김종섭, 방기창 두 사람을 데리고 마포삼열의 사랑방에서 신학반을 운영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1903년 공의회는 이것을 ‘장로회신학교’로 결의하여 공식적으로 신학교육이 시작된 것이다. 1903년의 담당교수의 과목은 다음과 같다.

신학일반 및 소요리문답(마포삼열), 구원론(배위량), 유대사기(소안론), 목회학(이길함), 마태복음 및 고대사(헌트), 모세오경(배위량, 소안론), 산수(편하설)

위의 과목에서 시선을 끄는 것이 ‘마태복음 및 고대사’인데, 마태복음을 정해놓고 고대 기독교의 배경사와 연결을 지어서 수준 높은 신학교육을 시작한 최초의 신학교는 성경과목을 직접 가르치면서, 한국교회를 성경의 기초위에 든든히 세우려 한 것이다. 산수는 단순히 계산법을 가르친 것이 아니라, 목회현장에서 헌금을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지 수입 지출과 예결산을 가르친 것으로 보인다.

1905년에는 디모데전후서와 로마서를 가르치고, 시험을 치르기도 하였다. 드디어 1907년에 7명의 첫 졸업생이 배출되는데, 졸업 후에 치룬 목사고시의 담당교수와 과목은 다음과 같다.

조직신학(이눌서), 교회정치(애덤스), 교회사(전위렴), 성경상식, 강도, 주석(기일), 설교(배위량)

목사고시에서 기일 선교사가 주석을 담당했는데, 다시 논의하겠지만 그가 후에 신약석의로 공관복음서를 다룬 것을 보면 이미 1907년 최초의 목사고시에서 주석은 신약석의라고 추정된다.

2) 1910년과 1916년의 신약학 교과과정

1910년 교과과정을 분석해보면 당시 교과과정이 지니고 있는 특성을 알 수 있다. 1학년 1학기부터 한 학기당 18시간으로 고정되어있고, 처음부터 신약석의로 공관복음서를 가르쳤다. 첫 신학 수업에서 첫 시간이 신약석의를 가르친 것은 성경에 근거한 설교자 양성이 시급했기 때문인데, 지금도 그런 요구는 목회 현장에서 변함이 없다. 5학년 2학기에만 14시간으로 총 176주 공부하는 과정으로 되어 있다. 신학교 과목을 성경 신학, 이론신학, 실천신학, 교양과목 4개로 나누어서 시간별로 퍼센트(%)로 구분해보면 다음과 같다. 성서신학은 75주(42.6%), 이론신학 70주(39.7%), 실천신학(16.4%),교양과목(0.01%)이다. 여기에서 볼 수 있듯이 당시 신학교는 성서신학과 이론신학의 비율이 전체의 약 82%가 될 정도로 비중의 차치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1910년대에 이미 신약석의 과목이 창의적으로 개설된 점을 중시해야 한다. 기일 선교사는 장신대에서 석의 과목으로 ‘신약석의’란 교과목을 만들어서 공관복음서를 최초로 석의한 교수이다. 이때 2학년과 4학과 과정에서 신약석의를 사도행전과 로마서의 석의에 집중하여 강의한 것을 주목할만하다. 특히 5학년 과정에서 레위기와 히브리서를 비교 연구하는 신약석의 과목은 당시에도 아주 창의적인 과목이었는데, 오늘날에도 시도되기가 쉽지 않은 과목이라는 점에서 아주 흥미롭다. 2023년도에 들어서 교과과정 개편 움직임이 있는데, 성서학 교수들이 구약석의와 신약석의를 합쳐서 신구약석의로 하자고 먼저 제안하는 때도 있는데, 이것은 더욱 성서학의 교과목을 약화하는 결과를 낳을 것이기에 그런 생각 자체를 철회하여야 한다.

1916년까지 초기교육과정에 채택된 신약학과목은 다음과 같다.

1학년
신약석의- 복음서 대조(6주), 담당교수-기일

2학년
신약성서 지리학(2주) 담당교수- 불, 신약석의- 사도행전(4주), 성경강독- 갈라디아에서 데살로니가전후서까지 개관(2주)

3학년
신약석의- 고린도전서(4주) 담당교수- 배유지, 신약석의- 에베소서(2주) 담당교수- 배유지, 성경강독- 고린도후서, 디모데에서 히브리서까지 개관(2주)

4학년
신약석의- 요한복음(4주) 담당교수- 왕길지, 신약석의- 로마서(4주) 담당교수- 매커첸, 신약강독- 야고보서, 유다서 개관(2주)

5학년
신약석의- 히브리서(레위기와 비교 6주)

이상을 보면, 초기 신학교육은 주로 성경과목을 위주로 교수한 것을 알게 된다. 한 학기당 6주간씩 5년제 과정으로 공부하였다. 이러한 교육과정에서 보는 것처럼 한 교수가 여러 과목을 담당했다. 불의 경우 구약석의, 신약성서 지리학, 목회신학 등을 강의했고, 어도만은 구약해의, 배유지는 신약해의, 마로덕은 신구약해의, 언더우드는 설교학, 교회와 치리, 신학-성령론 심리학 등이다.

그 가운데 1학년 때부터 신약석의가 복음서 대조부터 시작되었다는 사실은 획기적이다. 복음서가 서로 유사하여 대조하면서 각 복음서의 특징을 살펴본 것이다. 이 과목을 가르친 기일 선교사가 누구인지 한국교회에 잘 알려지지 않지만, 좀 더 관심을 두고 연구할 필요가 있다. 5학년 때에 신약석의로 요한복음을 별도로 가르친 것을 보면, 기일은 공관복음서 문제에 집중한 것으로 보인다. 과연 기일이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의 공통자료인 마가복음과 Q 문서도 가르쳤을까? 위의 각주 85번이 살펴본 바와 같이 삼복음합이란 과목에서 Q를 가르쳤을 가능성이 크다. 칼빈의 후예들이기에 칼빈이 남긴 단권 주석인 복음서 주석이 자료비평에 근거하여 복음서를 철저하게 비교 분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외에 초기 교수와 교과목은 다음과 같다.

배유지- 신도 신약해의(1908년-1916년), 마로덕- 신구약해의(1909년-1916년), 라부열- 신구약해의(1913년-1916년)

이 교과목에서 신도 신약해의와 신구약해의라는 과목이 궁금해진다. 신약해의와 신구약해의는 신구약성경구절를 풀이하여 그 뜻을 헤아린 과목이다, 그런데 신약해의 앞에 ‘신도’라는 수식어가 붙었는데, 이는 새로운 가르침이란 의미로 후에 가면서 교과목 앞에 신도라는 단어를 붙이는 일이 잦아졌다.

1916년에는 정교수 5인을 중심으로 교육과정을 개설하였다. 목회학과 선교 역사는 마포삼열, 실천신학과 종교학은 곽안련, 교회사기는 왕길지, 구약 주석은 어도만, 조직신학은 이눌서, 신약주석은 라부열, 목회학은 이길함, 기독교 윤리, 구약 및 신약 주경학은 소안론 등이 담당했다. 모든 학년은 음악과 국어를 배우고, 학생들은 성경 전체를 읽어야 하는데, 이것은 학기 중에 강독이나 개관이 많았기 때문이다. 1916년에 개정된 과목에는 정식과목과 열람과목이 함께 제시되었다.

이때 정시과목, 필수과목, 열람과목, 선택과목이 나누어서 개설되었지만, 모두 수강하는 과목이라 편의상 나눈 것으로 보인다. 고전 언어인 헬라어나 히브리어는 제외하고 5년제(1920년전)에서 구약과목은 10과목(22%), 3년 2학기제(1920년후)에서 구약과목은 9과목(19%), 3년 3학기제(1925년후)에서 구약과목을 14과목(20%)을 교육함으로서 목사 후보생들이 배우는 과목의 20%이상은 구약성경이었다. 이는 신학교 전체과목의 40%이상이 신구약성경이므로 신학생 훈련은 성경의 기초 위에 세워진 교육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졸업생들의 계속 교육을 위한 매년 1개월씩 후과를 설치하여 졸업생들의 계속 교육을 지원하였다. (계속)

  • 네이버 블러그 공유하기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press@cdaily.co.kr

- Copyright ⓒ기독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소기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