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6일 주일예배에서 은퇴를 선언한 청파교회 김기석 목사가 최근 모 방송 유튜브 채널에서 은퇴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 김 목사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계획”이라며 “어떤 일이 닥쳐와도 기쁘게 받아들일 것”이라는 말로 40년 목회를 마무리하는 소회를 전했다.

한국교회는 상당수의 교단이 목회자의 정년을 법에 정하고 있다. 예장 합동과 통합, 기감 등은 목회자의 정년을 70세로 정한지 이미 30년이 넘었다. 그런데 당시의 신체나이 70세와 지금의 건강 나이 70세에 차이가 크다는 지적과 함께 매년 총회 때마다 정년 연장을 요구하는 헌의안이 올라오는 게 현실이다.

주요 교단들은 아직은 이런 목소리에 요지부동이다. 사회 통념에 맞지 않고 목회자 수급 불균형을 초래할 것이라는 게 이유다. 그러나 은퇴 시기를 앞두고 교단을 이탈해 제약이 덜한 교단으로 옮기는 사례가 빈번해지자 언제까지 이 제도를 고수해야 할지 고민에 빠져있다.

목회자 ‘정년제’를 한국교회에 처음 시작한 교단들이 요즘에 와선 반대로 은퇴 시기를 늦추거나 아예 폐지해야 한다는 여론의 압력을 받는 때에 스스로 은퇴 시기를 앞당긴 목회자도 있다. 특히 수도권에서 이름이 알려진 대형교회 목회자들의 조기 은퇴 선언은 교계 일각에서 부는 정년 연장 분위기와 대비돼 눈길을 끈다.

선한목자교회 유기성 목사는 정년을 5년 남기고 지난 4월에 조기 은퇴했다. 그는 “은퇴 후 여전히 할 일이 있겠지만 주 예수님과 하나 되고 친밀하게 동행하는 성도의 삶을 살기에 더욱 힘쓰려 한다”고 은퇴 소감을 밝혔다. 교인들은 유 목사처럼 오랫동안 목회 일선에 섰던 담임 목회자의 은퇴를 서운해하면서도 다음 세대 목회자에게 목회를 넘긴 후 이어나갈 ‘제2의 사역’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는 분위기다.

다만 이런 사례는 언론이 미담으로 보도할 정도로 한국교회 풍토에서 아직은 비교적 드문 케이스에 해당한다. 목회자의 은퇴문제로 갈등을 겪었거나 현재 겪고 있는 교회들이 여전히 많다는 뜻이다. 담임 목사의 은퇴와 은퇴 후 예우, 후임 목사 청빙 문제 등에서 적절한 합의점을 찾지 못해 교회 내분으로 번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앞서 김기석 목사는 은퇴와 관련 “젊을 때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많을 것 같았다. 나이가 드니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주 적다는 것을 알아채기 시작했고, 슬프지만 그 현실을 받아들이고 나니까 오히려 여유가 생겼다”라고 속마음을 털어놨다.

그런데 그런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해서가 아니라 받아들이기 힘든 여건과 환경에 처한 목회자들도 많다. 특히 귀국한 은퇴선교사 중 상당수가 최저생계비에도 못 미치는 불안정한 노후 생활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은퇴는 이상이 아닌 냉혹한 현실이다.

한국선교연구원(KRIM)이 발표한 ‘2022 한국선교현황 통계조사’에 따르면 한국교회가 전 세계 169개국에 파송한 선교사 수는 2만2천여 명이다. 이들 중 선교 1세대들이 최근 은퇴 시기와 맞물려 한꺼번에 고국으로 돌아오면서 갖가지 후유증이 나타나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귀국 선교사의 상당수가 고국에 돌아와 노후를 보낼 마땅한 주거지나 생활기반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평생을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데 헌신했지만, 은퇴 후 돌아온 고국에서 자신을 선교사로 파송한 교단이나 후원해준 교회 어느 곳도 노후 생활을 보장해주지 않는다는 현실이 이들을 더 힘들게 하고 있다.

전 세계 선교사들의 사정이 모두 우리와 같진 않다. 미국 교회는 대부분의 교단이 은퇴선교사에게 교단 연금, 퇴직금 등을 제공하며 든든한 노후 생활을 보장해주고 있다. 미 남침례회의 경우, ‘가이드 스톤’이라는 은퇴 계획 시스템에 의해 사역 기간 생활비를 받고 생활비와 별도로 은퇴 노후자금과 근무 연수에 따른 퇴직금도 지급한다. 15년 이상 활동한 선교사에게 저렴한 비용으로 주택까지 제공한다니 우리의 현실에선 꿈 같은 일이다.

은퇴선교사에 대한 대책 마련에 있어 한국교회는 아직 기초 수준이다. 예장 고신은 교단 세계선교회(KPM) 차원에서 은퇴선교사의 노후 정책을 제도적으로 마련하는 데 역점을 두고 있다. 기독교한국침례회도 19일 열린 총회에서 열악한 노후 환경으로 어려움을 겪는 은퇴 사역자(목사·선교사)들을 교단 차원에서 지원하기로 결의했다. 은퇴사역자 주거안정사업 추진위원회를 신설해 관련 활동을 전개하기로 한 건데 아직 갈 길이 멀기만 하다.

어떤 목회자는 은퇴시 상당한 전별금을 받고 또 다른 사역의 길이 활짝 열린다. 이런 이들에게 은퇴는 빛나는 영예요 제2의 출발점이다. 그러나 평생을 복음 사역에 매진하다 나이가 찼다는 이유로 아무런 보장 없이 무작정 임지를 떠나야 하는 이들에게 이런 사례는 꿈같은 얘기일 뿐이다. 특히 해외에서 복음 사역을 펼치다 은퇴 연령이 돼 귀국한 선교사 상당수가 생활고에 시달리는 현실은 선교 한국을 기치로 쉼 없이 달려온 한국 한국교회에 드리운 어두운 그림자다. 교단과 선교단체가 이들 선교사의 노후 걱정 없는 은퇴 대책을 서두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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