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병채 총장
서병채 총장
나는 최근들어 compelling이라는 단어와 개념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사전적인 의미는 “주목하지 않을 수 없는, 설득력 있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안 하면 안 되는 것’으로 이해된다.

외적인 compelling이 내적으로 뭔가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게 생기면서(impelling), 동기부여가 충분히 되면(motivation), 행동으로 옮기게 된다고 본다. 꼭 이 순서는 아니지만 compelling >Impelling >motivation >action으로 쉽게 표현해볼 수 있겠다.

그러면 이런 ‘부득이함’은 어디서 오게 되는가!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나 같은 경우는 두 가지 예가 있는데 두 번의 임명장을 받으면서다. 다들 이런 경험들은 있을 것인데, 하나는 한국에서 사역을 시작할 때 미국의 멜빈 목사님으로부터 받은 ‘한국사역의 대표’라는 증이었다. 그 당시는 잘 몰랐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나에게 ‘안 하면 안 되겠구나’라는 외적인 강요가 생겼던 것 같다. 그것이 시간이 지나면서 자발적이 되면서 오랫동안 사역을 했던 것 같다. 다른 하나는 몇 년 전 멜빈대학교 개교식 때 받은 ‘총장 증’이었다. 그동안 이 직함을 몇 번은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그 증(종이 한 장)이 나를 계속하게 만든 compelling이었다고도 보는 것이다.

하나를 더 추가한다면 ‘연구소’를 하다가 ‘학교’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질 때이다. 연구소로서는 장기적이 되기 어렵다는 것을 느끼면서 계속적인 고민을 해오다가 학교를 탄생시킨 것도 결국 compelling의 작용이었다고 볼 수 있겠다.

부득이함에서 자발적으로 움직이게 되는 것은 축복이라고 본다.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은데 부득이함이 오히려 짜증나게 하여 진전이 없이 주저앉는 경우가 많다. 기회로 삼아 감사할 것인가 부담이 되면서 짜증과 불평으로 갈 것인가! 이것은 전적으로 개개인의 선택과 몫이라고 본다.

기회란 꼭 즐겁고 행복한 경우에만 오는가! 오히려 힘들 때에 오는 경우도 많다고 본다. 오래 전 옥한흠 목사님께서 쓰신 책 제목, ‘고통이 주는 의미’가 다시 생각난다. 어쩌면 고통은 기회가 될 수도 있는 요소인 것 같다. 마치 조용할 때 아이디어가 많이 떠오른다고들 말하듯이 힘들고 고통스런 환경에 처했을 때 창조적인 생각이 떠오를 수도 있겠다.

얼마 전에 글을 하나봤는데 세계적으로 알려진 유명한 조각가의 얘기였다. 어릴 때에 부모님이 헤어져서 양부 밑에서 자랐는데, 그분은 술꾼이라 매일 집에서 난동만 부리다가 결국은 총으로 엄마를 쏴 죽였다는 얘기이다. 그런데 엄마께서 늘 “너는 그림과 조각하는 데에 소질이 있는 것 같다”라는 애기를 들으면서 자랐는데, 그것이 생각이 나서 결국은 그 소질을 갈고 닦아서 세계적으로 알려진 조각가 되었다는 얘기였다. 어쩌면 그렇게 불운한 삶을 살아왔으면 일반적으로 비관하고 자포자기하는 경우가 허다한데, 그런 환경이 어쩌면 더 나은 삶을 살도록 해준 compelling이 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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