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병채 총장
서병채 총장
나는 한국에서 사역할 때에 평신도 사역자들의 호칭에 관해 관심을 많이 가진 적이 있다. 지금도 호칭(naming)이라는 것이 꽤 중요함을 다시 상기해본다. 멜빈 목사님도 그의 소논문에서 이것을 다룬 적이 있다: “PACE 사역하는 사람들은 무엇이라 불러야 하는가!” 그 소논문에서 그는 미국의 교회들에서 많은 다른 호칭이 있다는 것을 이해하지만, 그들이 비록 다른 이름을 붙이더라도 마치 장미는 어디에 갖다놓더라도 같은 향기를 내는 것처럼 원래의 의미와 뜻은 바뀌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멜빈 목사님은 감리교, 장로교에서 신학공부를 하였고, 안수는 장로교에서 받고, 세 군데의 장로교회에서 목회하셨다.)

이 사역을 하는 사람들의 원래 이름은 Lay Pastors 평신도 목회자이고, 사역은 일대일의 돌봄(PACE)이다. 평신도들이 교사, 선교사, 구역장 등등으로 불리듯이, 남을 돌보는 데에 전문가는 목회자라고 불러도 된다는 논지이다. (목사는 아니다. 오해가 없기를 바란다.) 목사는 신학교육을 받고, 안수받은 사람을 말한다. 물론 목회자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정확히는 목사이다(ordained person). 그러나 돌봄에 은사 받고, 특별히 구별되어 훈련받은 평신도는 “평신도 목회자”라고 불려도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호칭을 결정한 것은 멜빈 목사님 혼자서 한 것이 아니고, 당시 그 교회(오하이오, 칼리지 힐 장로교회)의 목회자들과 평신도들이 모여서 수개월에 걸쳐 성경을 연구하고 공부하면서 결정한 것이라고 한다. 성서적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본 것 같다.

예를 들어보자. 미국에서 이 사역을 하는 큰 교회 중의 하나는 앨라배마주 몽고메리에 있는 Frazer Memorial Church(프레즈 교회)이다. 그들은 수년 전에 이 사역 PACE를 도입했는데, 그들을 평신도목회자(lay pastor)라고 부르지 않고 평신도 사역자(lay minister)라고 불렀다. 물론 이 두 이름은 여러분도 알다시피 매우 다르지만, 그 교회는 원래의 이름과는 약간 다르게 불렀다. 그 교회는 큰 교회라 이미 평신도 사역자(lay minister)라는 호칭과 제도가 있어서 멜빈의 PACE 사역을 도입은 했지만, 호칭은 옛것을 그대로 쓰면서 새로운 사역을 도입했던 것이다. 어쩌면 새 술을 새 부대에 담지 않고, 헌 부대 그대로 담은 꼴이 되었다. 그렇게 함으로써 많은 다른 교회들이 그들의 스타일을 따라 하여 평신도 사역자라고 불렀다. 물론 PACE의 정확한 의미와 뜻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큰 문제는 없었지만, 다른 교회들에는 조금 오해가 생길 수가 있으면서 혼란스럽게 만들 수가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을 어떻게 불러야 할지, 호칭에는 매우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들을 평신도 목회자라고 부르는 데에는 또한 위험 요소가 있다는 것은 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목회자라고 하면 신학교를 졸업하고 안수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대표적으로 분당의 할렐루야교회인데, 미국에서 담임목사님(당시 김상복 목사)께서 대치동 할렐루야교회에 부임하실 때 이미 ‘평목’이라는 브랜드를 갖고 오셔서 평목원을 운영하시던 10년 차에 멜빈의 lay pastor에 대한 구체화 사역 PACE를 도입하셔서 한국교회에 ‘평신도 목회자’라는 호칭을 공개적으로, 또 의도적으로 사용하셨다. 2001년 6월, 그 교회에서 한국교회 역사상 처음으로 ‘평신도 목회자 컨퍼런스’를 개최하면서, PACE 사역을 도입했고 그 교회에 PACE 훈련원을 개설해서 1,000명이 넘는 평신도 목회자를 배출했다. 담임목사님(당시 김상복 목사)은 이런 호칭 문제로 수년간 사모님과 다투기도 했다는 일화가 있다. 담임목사님은 끊임없이 그들을 ‘평신도 목회자’라고 불러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많은 교인들은 그 호칭이 평신도들에게는 적합하지 않다고 말했기 때문에, 사모님은 그 호칭에 대해 항상 불편하여 목사님께 10여 년 동안 수십 번 얘기했다는 것이다. 그것에 관해 이야기할 때마다 담임목사는 그들을 ‘평신도 목회자’라고 부르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멜빈이 말했듯이, 호칭은 그 사람의 마음과 영혼, 그리고 자신들이 누구인지를 정확하게 표현해주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 목사님은 이 사역의 의미를 정확히 이해했다.

서두에서 얘기한 것처럼 “장미는 어디에 갖다놓더라도 같은 향기를 내야 한다”는 멜빈 목사님의 얘기처럼, 호칭이라는 것이 중요한데, 상황과 신학적인 입장에 따라서 달라질 수는 있다. 그러나 일반 사역자(lay minister)와 돌봄 사역자(lay pastor)가 섞어져서는 안 될 것이다. 섞여지더라도 원래의 의도와 뜻, 그리고 특히 ‘효과면’에서 어떻게 될 것인지를 한 번 더 신중하게 생각하여 결정하는 것은 담임목사님들의 과제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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