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루스포럼 이영훈 교수 이승만
이영훈 박사가 강연을 전하고 있다. ©트루스포럼 캡쳐

이영훈 박사(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이승만학당 교장)가 1월 30일 서울대학교 우석경제관에서 열린 트루스포럼 제74회 강연에서 ‘이승만의 꿈과 그의 적’이라는 주제로 강의했다.

이 박사는 “우리나라 국부로 평가받는 이승만 대통령은 중·고등학교 역사교과서에선 주로 ‘해방 이후 그가 추진한 남한의 단독정부 수립으로 분단을 야기했다’ ‘대통령 시절 대외종속, 친일파, 부정부패’ ‘4.19 혁명으로 쫓겨난 대통령’ 등을 서술하면서 이 대통령의 이미지는 독재자로 얼룩졌다”며 “독재자는 법치를 파괴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이승만 대통령은 법치를 파괴하며 권력을 휘두른 사람이 결코 아니”라고 했다.

이어 “미국은 1945년 해방 이후 대한민국을 신탁통치 하고자 했고 미(美) 군정은 이승만이 신탁통치를 방해할까 그의 귀국을 막았지만 결국 허용했다. 이 대통령은 1946년 한국으로 귀국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후 그는 천안, 대전, 김천, 대구, 목포 등 전국 각지를 돌며 최대 수십만 군중들이 그의 연설을 듣고자 몰려들었다. 당시 북쪽은 러시아, 남쪽은 미국이 신탁통치를 하자 민중들은 나라의 앞길을 매우 걱정했다. 이승만 대통령의 연설을 듣기 위해 몰려든 것”이라고 했다.

이영훈 박사는 “이승만 대통령은 당시 목포역에서 ‘당신의 동생이 공산주의자 훈련을 받았다면 이제는 당신의 동생이 아니’라고 연설했고, 정읍에서 전한 연설에서도 ‘남한만이라도 임시정부 혹은 위원회 같은 것을 조직해 38 이북에서 소련이 철퇴되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고 했다.

이영훈 박사에 따르면, 이승만 대통령의 정치 고문으로 일했던 올리브 박사는 그의 책에서 “이승만 대통령은 미 군정의 신탁통치에 따라 소련과 함께 좌우합작 정부를 세운다면, 향후 대한민국의 헤게모니는 소련 등 외국에 의해 장악되고, 결국 공산주의를 찬성하는 것이기에 신탁통치를 반대했다”고 했다.

또 이승만 대통령은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 취임사에서도 “민주정치는 개인의 근본적 자유를 보호하는 것”이라며 “국민이나 정부는 언론과 집회와 종교와 사상 등 자유를 극렬 보호해야 될 것”이라고 했다. 당시 민중들은 자유에 대한 개념이 희박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이승만 대통령이 “대한민국 건국 기념 취임사에서도 개인의 근본적 자유를 보장하는 민주주의의 뿌리는 미국의 독립혁명에 있다면서, 우리 대한민국도 민중들이 일제강점기 30년 동안 투쟁한 노력으로 이뤄낸 결실이 민주주의”라고 역설했다고 이영훈 박사는 전했다.

이영훈 박사는 “양반가 출신인 이승만 대통령은 조선의 신분제가 갑오개혁으로 공식 철폐됐으나 이후 당대 문화 속에서 뿌리 깊게 박힌 상황에서, 민중의 공평의식을 바탕으로 민주공화제를 꿈꾸며 독립정신을 1905년 썼다”고 했다.

이 박사는 “이승만 대통령은 독립정신에서 자유의 본질은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존귀한 형상대로 지음받았다는 사실에 근거를 둔다고 강조하며, ▲동서양의 분기점은 종교개혁과 신대륙 발견 ▲자유와 통상은 신의 섭리로서 필연 ▲독립과 자유는 통상, 경쟁, 기술전파, 과학을 통해서 이뤄짐 ▲세계는 장차 자유와 통상으로 하나가 될 것이라고 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승만 대통령은 당시 감리교 선교사들을 통해 당대 조선이 낯설어 했던 자유와 통상 개념을 기초로 독립정신을 저술할 수 있었다”고 했다.

  • 네이버 블러그 공유하기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press@cdaily.co.kr

- Copyright ⓒ기독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승만대통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