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복협 월례회 10월
한국복음주의협의회가 14일 오전 7시 서울 을지로 영락교회에서 ‘한미수교 140주년과 기독교’라는 주제로 10월 조찬기도회 및 발표회를 개최했다. ©최승연 기자

한국복음주의협의회(회장 최이우 목사, 이하 한복협)가 14일 오전 서울 영락교회(담임 김운성 목사)에서 ‘한미수교 140주년과 기독교’라는 주제로 10월 조찬기도회 및 발표회를 개최했다.

이날 1부 기도회에선 김원광 목사의 사회로 김상복 목사(한복협 자문위원, 할렐루야 교회 원로)가 설교했으며, 이어진 발표회를 통해 박명수 교수(한복협 교회갱신위원장, 서울신대 명예교수)가 ‘한미교류 협의’, 윤영관 교수(서울대 명예교수, 전 외교통상부 장관)가 ‘한미관계’라는 주제로 각각 강연했다.

김상복 목사는 시편 127장 1절 말씀을 본문으로 설교했다. 이어진 기도회 순서에서 김운성 목사가 '한국교회를 위하여', 김윤태 교수(한복협 신학위원장, 백석대 기독교전문대학원장)가 '한미관계와 기독교를 위하여'라는 제목으로 각각 기도한 뒤 참석자들은 이 두 가지 제목으로 합심 통성기도를 드렸다.

2부 발표회에서 강연한 박명수 교수는 “조미조약은 19세기의 마지막 폐쇄국가를 서구문명에 편입시킨 사건이다. 아울러 제국주의 침략의 출발점이 된 사건이기도 하다. 저는 조미조약은 미국이 극동 제국의 위협으로부터 조선을 지켜줄 것이라는 믿음에서 체결된 조약이라고 주장하고 싶다”며 “조미조약이 맺어지기 직전 상황을 보면 중국은 1879년 1월 청나라 황제의 칙서를 통해 서구 세력을 통해 조선에 대한 종주권을 유지하고자 했다. 미국은 제너럴 셔먼호 문제, 통상문제가 있었으며 조선은 기독교 금지, 치외법권제한, 관세주권인정 등의 상황이었다”고 했다.

박명수 교수
박명수 교수가 '한미교류 협의'라는 주제로 발표했다. ©최승연 기자

그러면서 “조미조약은 1882년 천진회담에서 3차례의 회담을 통해 체결되었다. 중국의 입장은 러·일의 위협 아래 미국과 함께 조선을 속방으로 유지하고자 했으며 미국은 태평양 국가로 나가기 위한 항로개척 및 유럽국가와는 다른 외교정책을 펼치고자 했다. 조선은 원산 개항 이후 조미조약을 통해서 좋은 선례를 남기고 거중 조정을 통해서 도움을 받고자 했다”며 “조미조약이 체결된 후 1884년 가을부터 조선 땅에 선교사들이 입국하기 시작했다. 알렌, 언더우드, 아펜셀라 선교사 등이 입국을 하게 된 것”이라고 했다.

박 교수는 이어 “기독교가 선교사를 통해 조선 땅에 들어온 이후 선교사들은 일제 시기에도 조선을 도왔으며 기독교는 조선과 미국을 연결하는 유일한 통로였다. 해방 이후 기독교는 여전히 미국과 한국의 다리 역할을 했다. 6.25 전쟁에서 기독교는 월드비전과 전쟁고아 문제, 포로 석방과 한미동맹의 체결에 관여했으며 박정희 대통령 시대의 기독교는 닉슨 독트린과 빌리그래함 전도집회를 개최하게 되었다. 민주화 시대를 거치며 기독교는 자유민주주의의 보루가 되었다”고 했다.

끝으로 그는 “조미조약이 체결된 이후 우리 역사는 매우 어려운 상황을 겪어 왔으며 지금도 어려움 가운데 있다. 그러나 기독교를 통해 나은 세상,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어나가고자 하는 소망을 품으며 나아가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고 한국 기독교가 아시아의 복음화를 위해 끝까지 사명을 감당하길 소망한다”라고 했다.

윤영관 교수
윤영관 교수가 '한미관계'라는 주제로 발표했다. ©최승연 기자

마지막으로 발표한 윤영관 교수는 “잘 알다시피 한반도는 중국, 러시아, 일본 그리고 태평양 건너 미국이라는 대국들로 둘러싸여 있다. 이들 주변국은 끊임없이 한반도를 둘러싸고 세력 경쟁을 해왔다. 이제 한미관계가 이러한 역사의 전개 과정에서 어떻게 변화해왔는지 그리고 앞으로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 살펴보도록 하겠다”며 “청일전쟁, 러일전쟁 등의 어려운 정치적 상황 속에도 한 가지 긍정적인 사건이 있었다. 그것은 1880년대부터 미국에서 파송된 선교사들이 교육기관과 병원을 짓는 등 선교 활동을 시작하면서 한반도에 기독교 복음의 씨앗이 뿌려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1945년 8월 15일 해방을 맞아 미군정이 수립되었지만, 미국 소련 양국의 타협으로 한반도가 분단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바로 이 시기에 대한민국의 국가 정체성이 자유, 민주주의, 인권, 시장경제라는 가치에 근거하게 되었다는 점”이라며 “한국전쟁 이후 한미관계는 냉전이 끝날 때까지 군사동맹 관계로 발전했다. 소련 해체 이후 1991년부터 지금까지 한미관계는 군사 안보 위주의 동맹에서 서서히 포괄 동맹으로 확장되었다. 이것은 한국의 국력 신장을 반영하는 것으로 한국의 비중과 역할이 재고되었음을 의미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미관계는 구한말의 냉담기, 해방 직후의 혼란기, 냉전기의 군사동맹, 탈냉전기의 포괄 동맹이라는 4단계를 거쳐 오늘날에 이르렀다. 여기에는 한국의 국력 성장과 국제적 위상의 재고가 중요한 동력이 되었다. 이에 따라 한미관계는 점차 폭이 넓어지고 좀 더 수평적인 호혜 관계로 발전해왔다. 이제 대한민국이 좀 더 주도적으로 한반도 미래를 열어나가고, 국제사회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하는 상황이 온 것”이라고 했다.

윤 교수는 이어 “한미관계가 어떤 방향으로 발전해가야 할지 생각해볼 때 한미관계가 직면하고 있는 오늘날의 국제정치 현실부터 살펴봐야 할 것이다. 현재 국제정치 상황의 핵심은 미·중 경쟁의 심화라고 말할 수 있다. 이처럼 동맹인 미국과 경제 관계가 깊은 중국 간의 관계가 악화되면서 한국은 곤란한 지경에 처해있다. 이에 대해 대응할 때 한국은 지경학적 요인, 북한의 존재, 국가 정체성을 필수적으로 고려하며 선제 조건으로 제시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한미관계의 미래에 대한 방향에 4가지를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 한국의 국가 정체성을 고려하여 바이든 행정부의 민주주의 가치 외교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둘째, 지구촌의 팬데믹, 기후변화, 개발 협력 등 다양한 분야에서 좀 더 적극적인 이바지를 해야 하며 이 분야에서 미국과 파트너가 되어 협력해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라며 “셋째, 첨단분야에서 산업협력을 통해 경쟁력을 강화해야 하며 넷째, 군사적으로 협력을 지속하되 한미동맹의 대상을 북한에서 중국으로까지 확대하는 것에 대해 신중하게 제안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끝으로 윤 교수는 “한국은 19세기 구한말 독립운동할 때나 적합할 저항적 민족주의 관념이나 패배주의에서 벗어나 당당하게 진취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자세로 나아가야 할 때이다. 또한 선진국에 걸맞게 전 세계를 상대로 선진국 외교를 펼쳐나가야 한다. 또한 우리는 전략적 사고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라며 “열린 세계관과 진취적인 자세 전략적인 사고를 하고 우리 국민과 정치인들이 단합해 나간다면 우리는 당면한 여러 가지 어려움을 극복하고 한반도와 지구촌의 평화와 번영에 크게 이바지하는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을 만들어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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