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진수 교수
가진수 교수

에스겔은 유다 역사에서 예루살렘의 몰락과 유배 생활에 걸쳐 있습니다. 그는 혈통을 따라 하나님 백성의 제사장이 되었으며 BC 597년에는 예언자가 되었습니다. 에스겔의 메시지에는 심판과 회복이라는 두 가지 주제가 담겨있습니다. 첫 번째 주제는 예루살렘으로 빠르게 돌아올 것이라는 잘못된 기대를 없애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나 두 번째 주제는 언젠가는 이들이 돌아갈 것이며 예루살렘은 재건될 것이라고 백성들에게 안심과 소망을 주고 있습니다. 에스겔은 이상한 환상과 낯선 행동을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이는 그가 진실에 마비된 자들을 상대하고 있었으므로 때때로 특이한 행동을 통해 하나님이 주신 메시지에 주목하도록 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신의 메시지를 설명하기 위해 1년 이상을 옆으로 누워있기도 했습니다.

유다 백성들이 바벨론 포로 생활에서 낙심하며 시들어갈 때 희망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대신 하나님은 포로로 잡혀있던 제사장 에스겔에게 환상을 보여주셨습니다(겔 1:1). 에스겔은 빛나고, 불타오르고, 통치하시며,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모습에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렸습니다. “그 사방 광채의 모양은 비 오는 날 구름에 있는 무지개 같으니 이는 여호와의 영광의 형상의 모양이라 내가 보고 엎드려 말씀하시는 이의 음성을 들으니라”(겔 1:28) 그는 선지자로서 자주 땅에 엎드린 자세를 취했습니다. 에스겔서를 통해 하나님을 예배할 때 허심탄회한 마음과 친구와 같은 평안함으로 다가가기도 하지만 또한 거룩하고, 장엄하며 신비로운 하나님 앞에서 엎드림의 자세와 마음이 필요함을 깨닫게 됩니다.

에스겔의 첫 번째 주요 부분(겔 1-24장)은 예루살렘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임박했음을 알려줍니다. 백성의 죄가 너무 컸기에 하나님은 심지어 사랑하시는 나라와 성전까지도 파괴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아는 하나님은 모든 민족을 다스리시는 분이시며 모든 백성을 그분의 거룩한 잣대로 심판하시는 분이십니다(겔 25-32장). 에스겔서는 우리가 의로우신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의 절대적인 명령에 따라 살지 못할 때 즉시 회개할 것을 촉구합니다.

예루살렘의 멸망(겔 33장) 후에 에스겔의 예언은 놀랍게도 새로운 방향으로 바뀝니다. 그의 예언은 하나님이 포로된 백성을 구원하실 미래를 내다보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죽은 자인 마른 뼈에게 새 생명을 주실 것입니다(겔 37장). 그리고 그분의 양떼에게 좋은 목자가 되어 주실 것입니다.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나 곧 내가 내 양을 찾고 찾되 목자가 양 가운데에 있는 날에 양이 흩어졌으면 그 떼를 찾는 것 같이 내가 내 양을 찾아서 흐리고 캄캄한 날에 그 흩어진 모든 곳에서 그것들을 건져낼지라”(겔 34:11-12) 공의와 심판의 거룩하신 하나님은 잃어버린 양을 찾으시는 사랑이 많으신 목자이십니다. 선한 목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를 찾고 구원해내신 하나님의 자비로우신 은혜를 날마다 찬양해야 합니다.

에스겔은 하나님의 자비하심과 은혜를 알리기 위해 창조적인 이미지를 반복해서 사용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깨끗한 물을 백성에게 뿌려서 그들을 깨끗하게 하실 것이라고 예언했으며(겔 36:25-27), 여호와를 자신의 양을 돌보시고 푸르른 초원으로 이끄시는 목자로 묘사했습니다(겔 34:11-16). 그리고 이스라엘을 재건하실 하나님의 능력을 표현하기 위해서 에스겔은 마른 뼈가 모이고 생명의 숨결이 주어지는 놀라운 장면을 사용했습니다. “주 여호와께서 이 뼈들에게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생기를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아나리라 너희 위에 힘줄을 두고 살을 입히고 가죽으로 덮고 너희 속에 생기를 넣으리니 너희가 살아나리라 또 내가 여호와인 줄 너희가 알리라 하셨다 하라”(겔 37:5-6) 또한 오실 메시아의 사역과 힘을 나타내기 위해 만지는 모든 것마다 치유하는 능력을 성전에서 흘러나오는 강물로 묘사했습니다(겔 47:1-12).

이와 같은 상징들은 하나님의 자비하심과 하나님의 성품을 쉽게 이해하도록 우리의 예배를 도와줍니다. 예배에서 하나님의 은혜와 감사를 경험케 하는 우리가 잘 아는 상징은 ‘침례(세례)’와 ‘주의 만찬’입니다. 물과 빵 그리고 포도주와 같은 상징적 이미지들을 통해 하나님이 그분의 백성과 맺으신 은혜의 언약을 더욱 깊게 생각하게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에스겔의 예언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합니다. 유다의 만성적인 죄는 하나님의 영광이 성전에서 떠나게 했습니다(겔 8:6, 10:1-22). 하지만 성전 재건에 대한 말씀이 시작되며 하나님이 영광스러운 새 성전에 돌아오셨을 때 영광이 가득한 임재의 절정에 이릅니다(겔 43:5). 다른 선지자들과 같이 에스겔은 지금 겪는 고난이 기쁨으로 바뀔 것이라는 말씀을 전하며 백성들을 위로했습니다. 그 기쁨은 모든 우상이 버려지고 하나님의 백성들이 다시 그분을 향하게 되는 참된 예배로부터 실현될 것입니다. 이를 통해 에스겔은 추방과 폐허의 절망 가운데서도 하나님께 진실된 예배를 드리기 위한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었습니다.

에스겔이 환상 속에서 하나님을 만난 것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초기 교부였던 제롬(Jerom, 347-420)은 이 사건에 대한 에스겔의 묘사를 “미로와 같은 하나님의 신비”라고 불렀습니다. 에스겔의 예언들은 날개가 있는 생물, 여러 색상의 독수리 그리고 마른 뼈 군대와 같은 대단히 흥미로운 이야기로 가득했습니다. 신비롭고 놀라운 환상들은 새로운 성전의 모습을 보이며 마무리되었습니다. 이 환상을 통해 우리는 놀랍고 아름다운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깨닫게 됩니다.

에스겔서의 흥미로운 환상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진실을 전하려고 노력하는 한 사람을 볼 수 있습니다. 에스겔은 백성들이 반역의 심각성을 깨닫고 돌아서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습니다. 그의 예언은 회개에 대한 하나님의 부르심이었지만 그의 백성들은 듣지 않았습니다. 만약 그들이 마음이 하나님께로 향하기만 했더라도, 하나님은 자비로우심으로 그들이 진실된 마음으로 예배할 수 있도록 회복시켜 주셨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에 관한 에스겔의 환상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이 성막과 성전에 내렸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압도되었던 것처럼, 지금도 여전히 우리를 예배 속에서 압도하신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는 사람의 언어로 온전히 표현할 수조차 없는 영광스럽고 존귀하신 하나님을 예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비하심과 사랑으로 우리를 만나주기도 하시지만 에스겔의 환상과 같이 존귀하심과 경외함 속에서 압도적으로 나타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관계 속에서 우리의 반응은 오직 ‘예배’입니다. 하나님께 경배와 찬양으로 나아갈 때 항상 진실하고 겸손한 예배자의 모습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에스겔의 마지막 부분(겔 40-48장)은 새 예루살렘과 새 성전의 환상을 담고 있습니다. 에스겔은 하나님의 임재가 결코 그의 백성을 떠나지 않을 것임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그 때에 예루살렘은 ‘여호와께서 거기에 계시다’란 뜻인 ‘여호와삼마’라는 새 이름을 얻을 것입니다. “그 사방의 합계는 만 팔천 척이라 그 날 후로는 그 성읍의 이름을 여호와삼마라 하리라”(겔 48:35)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임마누엘’(마 1:23)의 예수님이 우리의 큰 축복이며 은혜임을 알아야 합니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마 1:23)

지금도 하나님께서는 성령님을 통해 항상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에스겔을 통해 말씀하신 미래의 계시를 바라보고 있습니다(계 21장).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계 21:1-2)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님을 통해 비록 불완전하지만 우리는 ‘지금 이미 그 미래(already not yet)’를 살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아직 닿을 수 없는 하늘에 계시며 영광중에 거하시는 하나님을 예배할 뿐 아니라 우리의 마음과 우리의 교회 안에 계시는 하나님을 전심으로 예배해야 합니다. 에스겔이 바라본 하나님에 대한 환상은 거룩하고 존귀하신 하나님께 쉽게 다가가기 어려워 보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통해 실현된 에스겔의 희망과 같이 주님은 언제나 우리 곁에서 친밀한 교제를 원하십니다.

에스겔서를 통해 우리는 몇 가지 예배의 통찰을 깨닫습니다. 첫째, 하나님과의 만남은 너무 놀라워서 사람의 언어로는 온전히 표현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에스겔 1:1-28). “그 사방 광채의 모양은 비 오는 날 구름에 있는 무지개 같으니 이는 여호와의 영광의 형상의 모양이라 내가 보고 엎드려 말씀하시는 이의 음성을 들으니라”(겔 1:1-28)

둘째, 진정한 예배자는 반드시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해야 하며 다른 이들이 듣든 안 듣든 관계없이 다른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내가 네게 이를 모든 말을 너는 마음으로 받으며 귀로 듣고 사로잡힌 네 민족에게로 가서 그들이 듣든지 아니 듣든지 그들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이 이러하시다 하라”(겔 3:10-11)

셋째, 우리는 거짓 메시지를 전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는 자들을 항상 경계해야 합니다(겔 13:1-23). “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너희가 허탄한 것을 말하며 거짓된 것을 보았은즉 내가 너희를 치리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겔 13:8)

넷째, 우리가 하나님 대신 다른 것에 충성한다면 하나님은 우리의 예배를 받지 않으신다는 사실입니다(겔 20:39-41).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이스라엘 족속아 너희가 내 말을 듣지 아니하려거든 가서 각각 그 우상을 섬기라 그렇게 하려거든 이 후에 다시는 너희 예물과 너희 우상들로 내 거룩한 이름을 더럽히지 말지니라”(겔 20:39)

다섯째, 진실한 예배는 우리를 회개하게 합니다(겔 20:43-44). “이스라엘 족속아 내가 너희의 악한 길과 더러운 행위대로 하지 아니하고 내 이름을 위하여 행한 후에야 내가 여호와인 줄 너희가 알리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겔 20:43-44)

그리고 여섯째, 하나님과의 마주함은 그 힘이 너무나 강하므로 우리의 유일한 반응은 오직 그분 앞에 엎드려 예배하는 것입니다. “그 모양이 내가 본 환상 곧 전에 성읍을 멸하러 올 때에 보던 환상 같고 그발 강 가에서 보던 환상과도 같기로 내가 곧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렸더니”(겔 43:3)

에스겔의 예언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 어느 곳에서나 가능하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지역을 초월해 하나님은 어느 곳에나 계십니다. 에스겔은 어느 곳에서든 하나님의 백성들이 함께 모여 진실된 예배를 드릴 때, 하나님의 영과 말씀이 함께 하신다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예배는 매우 영적인 것입니다. 예수님도 영과 진리로 예배해야 함을 말씀하셨습니다(요 4:24). 로버트 웨버 박사는 “참된 예배란 요한계시록 4장과 5장의 천상의 예배와 같이 하나님의 영에 우리의 영이 합치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에스겔은 심판과 희망을 함께 전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죄를 깨닫게 될 때, 하나님의 용서하심이라는 소망 안에서 쉴 수 있으며, 그분의 회복에 대한 약속에서 안전함을 찾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에스겔이 43장에서 경험한 눈부신 하나님의 영광 가운데 나타난 위로의 말씀이 예배 때마다 항상 감동으로 경험되어야 합니다. 예배가 단지 의식적인 순서가 아닌 하나님의 놀라운 영광에 압도되어 살아계신 하나님을 경험하는 영과 진리의 살아있는 예배가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참된 예배입니다.

“영이 나를 들어 데리고 안뜰에 들어가시기로 내가 보니 여호와의 영광이 성전에 가득하더라”(겔 43:5)

가진수(월드미션대학교 예배학과 교수)

  • 네이버 블러그 공유하기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press@cdaily.co.kr

- Copyright ⓒ기독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독교 종합일간지 '기독일보 구독신청 바로가기'

#가진수 #예배가이끄는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