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코로나19 감염 확산세가 심상치가 않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지난 13일 “2020년 2월부터 오늘에 이르는 2년 3개월에 걸쳐 굳건히 지켜 온 우리의 비상방역 전선에 파공이 생기는 국가 최중대 사건이 발생했다”며 코로나19 확진자 발생 사실을 처음으로 인정했다. 전 세계적인 코로나19 대유행 속에서도 ‘코로나 청정국’임을 자랑해 온 북한이 감염 확산 사실을 대외적으로 알리고 ‘최대 비상방역 체계’를 선포한 것만 봐도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 짐작할 수 있다.

북한은 그동안 전 세계적인 코로나19 확산세에도 코로나 확진자가 단 한 명도 없다고 큰소리쳐왔다. 국제 백신 공동 구입 프로젝트 ‘코백스’(COVAX)가 배정한 백신뿐 아니라 중국·러시아 등의 백신 지원도 거부했다. 그런 북한이 코로나19 확진자 발생 사실을 외부에 공개했다는 건 더는 은폐할 수 없을 만큼 심각한 상황이란 증거다.

북한은 그동안 ‘국가비상방역체계’를 선포하고 봉쇄 위주의 방역정책을 고수해 왔다. 하지만 이런 방식으로 코로나19 감염 확산을 막을 수 있을지 회의적인 시각이 많았다. 북한의 의료수준을 놓고 볼 때 주먹구구식 방역체계로 전 세계적인 유행을 막기 어려울 것으로 봤다. 결국, 그런 우려가 현실이 되고 말았다.

북한은 중국 우한에서 발생한 폐렴 증세가 전 세계적인 유행으로 번지기 시작한 2020년 1월 말부터 본격적으로 비상방역 대책에 돌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그 이후에 간혹 공개된 북한 내 모습에서 마스크를 쓴 사람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였다. 특히 지난 4월 15일, 김일성 주석 생일 110주년 경축행사와 조선인민혁명군(항일 빨치산) 창설 90주년 열병식이 열린 지난달 25일에는 김정은을 비롯해 참석한 수 만명의 군중이 거의 마스크를 쓰지 않았다.

그런데 지난 12일 김정은이 마스크를 쓴 모습으로 TV에 등장했다. 미리 회의장에 들어와 있던 간부들도 하나같이 모두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북한 최고지도자가 마스크를 썼다는 변화만으로도 북한 내 코로나19 상황이 얼마나 엄중한지 대번 알 수 있다.

조선중앙통신은 코로나19 확진을 처음으로 인정한 12일 하루에만 북한 전역에서 1만8천여 명의 ‘발열자’가 새로 발생해 6명이 사망했다고 발표했다. 그다음 날인 13일에는 전국적으로 17만 4천 4백여 명의 ‘발열자’가 발생해 그중 21명이 사망했다고 보도했다. 지금까지 누적 확진자 82만620명, 사망자는 50명으로 공식 집계됐다.

그러나 북한의 공식 발표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북한이 ‘확진자’를 ‘발열자’로 구분하는 것만 봐도 코로나19에 대응하는 의료장비가 얼마나 취약한지 알 수 있다. 국내 전문가들은 외국에서 나온 예측 자료들을 근거로 이번 북한의 유행 상황에서 적어도 10만명 이상의 사망자와 100만명 이상의 확진자가 나올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처럼 북한 내 코로나19 상황이 갈수록 더 나빠질 것으로 보는 근거는 열악한 보건의료 인프라에 있다. 진단 장비는 물론이고 백신을 맞은 사람이 전무한 현실은 영양 상태가 부실한 북한 주민들에게 더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코로나19가 북한 전역으로 퍼지면 북한 주민들에게는 1990년대 식량난만큼이나 심각한 위협이 될 거라는 지적이다.

지금으로선 무엇보다 백신과 진단 장비 등의 인도적인 지원이 시급해 보인다. 정부는 지난 5월 3일 발표한 윤석열 정부의 ‘110대 국정과제’를 통해 “북한이 호응할 경우 코로나19 관련 긴급 지원을 추진하겠다”며 이미 인도적 지원 의사를 밝힌 바 있다. 지난 15일에도 “북한에 백신을 비롯한 의약품을 지원할 방침”임을 재확인했다.

그런데 가장 큰 걸림돌이 북한의 계속된 미사일 도발이다. 또 한미정상회담이 열리는 21일을 전후해 북한이 예정대로 핵실험을 재개할 경우, 정부를 비롯한 국제사회의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 분위기는 차갑게 식을 수 있다.

김정은은 북한 내 코로나 확산 상황을 “건국 이래 대 동란”이라고 표현했다. 그런 만큼 일각에서는 당분간 북한이 무력시위를 자제할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었다. 그러나 북한은 윤석열 대통령 취임 이틀 만인 12일 저녁에 탄도미사일 세 발을 동해상으로 발사했다. 12일 오전에 코로나19 확진자 발생을 처음 공식 인정하고, 오후에는 미사일을 발사한 건 코로나19 비상사태와 도발 행위가 별개라는 뜻이다.

새 정부 출범 후 첫 북한의 무력 도발에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은 “중대한 도발”로 규정하고 강력히 규탄하고 나섰다. 여기서 더 나가 북한이 한미정상회담에 맞춰 핵실험을 재개한다면 윤석열 정부가 거듭 의지를 밝힌 백신 등의 인도적 지원도 물거품이 될 공산이 크다.

남북 간의 인도적 지원과 협력은 말 그대로 ‘인도적’인 차원에서 이뤄져야 한다. 코로나19 바이러스의 확산이 북한 주민에게 얼마나 치명적일 것인가를 생각할 때 정치적 계산 이전에 생명을 살리는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그렇지만 아무리 ‘인도적’ 차원이라도 미사일을 쏘고 핵실험을 하는 상대에게 무조건 도움의 손길을 펼 수는 없다. 윤석열 정부가 적극적인 대북 인도적 지원을 통해 남북 간의 신뢰가 회복되는 길이 열리면 좋겠지만 문재인 정부 때처럼 질질 끌려다니며 핵무장의 시간을 벌어주는 대북 굴종을 되풀이해선 안 된다.

“건국 이래 대 동란”을 겪고 있는 북한이 지금의 위기에서 벗어나려면 미사일 도발과 핵실험 재개 등 평화를 위협하는 일체의 행위를 중단하는게 우선이다. 그러고 나서 정부와 국제사회가 내미는 인도적인 손을 잡으면 된다. 공은 이미 북한으로 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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