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가 1일 일제강점기 조선인 강제징용의 현장인 ‘사도광산’을 끝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추천했다. 이로써 한일 간에 역사전쟁이 또 다시 뜨겁게 타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사도광산’은 일본 니가타현 사도 섬에 위치한 금광으로 태평양 전쟁 기간에 2,000명 이상의 조선인이 일제에 의해 강제 동원돼 가혹한 노역에 시달린 곳이다. 이곳에서 수천 명의 조선인이 강제 노역을 했다는 사실은 지난 1997년 사망한 조선인 징용자 임태호 씨가 생전에 남긴 증언으로 백일하에 드러났다.

그런데도 일본 정부는 ‘사도광산’에서 조선인 강제 노역이 있었다는 사실조차 부인해 왔다. 그러다 논란이 일자 일제 강점기만 쏜 뺀 채 17세기 에도시대부터 금광으로 유명했다며 이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공식 추천을 한 것이다.

이런 일본 정부의 계획은 자국 내에서조차 회의적인 분위기였다. 지난달 29일자 아사히신문보도에 의하면 일본 문화청 문화심의회가 사도 광산을 세계유산 추천 후보로 선정할 때만 해도 일본 정부 내에 보류하자는 의견이 주류였다고 한다. 한국이 ‘조선인 강제노역 피해 현장’이라는 이유로 반발하고 있는 이상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심사과정에서 탈락할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에서다.

여기에다 대외적인 변수도 있었다. 특히 미국은 중국을 상대하는 현실에서 한일 관계가 역사문제로 자꾸만 퇴보하는 것을 누구보다 우려했던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미국 국무부 관계자는 지난달 21일 바이든 미 대통령과 기시다 총리가 화상으로 정상회담을 한 직후 “중국이라는 거대한 존재를 동맹이 마주하고 있는 지금, 한국과 일본이 서로 으르렁거리는 것은 곤란하다”는 메시지를 일본 측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흔들리던 일본 기시다 총리를 집권 자민당 내 강경 보수파들이 강하게 압박하고 나서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특히 자민당 내 최대 파벌의 수장인 아베 전 총리가 기시다 총리의 저자세 외교를 비판하며 압박에 나서자 결국 기시다 총리도 ‘보류’에서 ‘강행’으로 선회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일본 정부의 이런 태도 돌변에 대해서는 일본 내에서조차 환영일색이 아니다. 마이니치신문은 1일자 ‘문화의 정치 이용을 위험하게 여긴다’는 제목의 사설에서 “이웃 나라(한국)와 대결 자세를 연출하려는 의도로 문화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듯한 행동은 오히려 국익을 해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일본의 유력 일간지가 이런 사설을 낸 것에 주목할 점은 일본 정부가 당초 한국의 반발을 고려해 ‘사도광산’ 추천을 보류하려고 했으나 아베 전 총리를 비롯한 자민당 보수파가 정치적 압박을 가해 정부가 입장을 바꾼 것을 비판하고 나선 데 있다. 이 신문은 일본 정부의 태도 돌변의 배경을 “7월 참의원 선거를 염두에 두고 보수 표를 의식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우리 외교부는 일본 정부가 ‘사도광산’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추천하기로 한 날인 지난달 28일 고이치 주한 일본대사를 불러 “강한 유감과 항의”의 뜻을 전달했다. 이와 함께 외교부 주도하에 TF를 구성해 여러 외교 채널을 통한 전방위적인 대응에 나설 방침이다.

우리 정부는 일본의 사도광산 유네스코 등재를 무조건 막겠다는 생각이다. 그 첫 번째 이유는 일본이 한국인 강제노역의 아픈 역사를 외면하고 있다는 데 있다. 사도광산과 마찬가지로 조선인 강제노역 역사의 현장인 ‘하시마섬’(군함도)이 지난 2015년 세계유산으로 등재될 때 일본이 한국과 국제사회 앞에서 했던 약속을 일본 정부가 아직까지 이행하지 않고 있는 점도 집중 부각시킬 계획이다.

솔직히 ‘하시마섬’ 문제는 일본의 ‘사도광산’ 세계문화유산 등재에 가장 큰 암초가 될 수 있다. 유네스코는 지난 2015년 ‘하시마섬’을 세계 유산에 등재하면서 일본 정부에 해당 근대 산업시설과 관련해 조성인 강제징용 희생자들을 기리기 위한 후속조치의 이행을 한국과 국제사회에 약속했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7년이 지나도록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이 문제를 들고 나온 게 다름 아닌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다. 세계유산위원회는 지난해 7월 일본이 ‘하시마섬’의 근대 산업시설과 관련해 희생자들을 기리기 위한 후속조치를 이행하지 않았다고 지적하는 결정문을 채택했다. 해당 시설들이 1910년 한·일 강제병합 이후 강제징용 등 ‘어두운 역사’에 대해 제대로 조명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적시한 것이다.

일본 정부는 중국이 난징대학살 관련 자료를 세계기록유산에 등재하려하자 전방위적인 외교 수단을 총 동원해 관계국의 협의를 중시하도록 지난해 세계유산 심사제도 개편을 주도한 바 있다. 그런 일본 정부가 한국과의 사전 협의는커녕 문제가 될 조선인 강제징용 역사는 싹 오려내고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추진하는 것 자체가 손바닥으로 해를 가리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런 이유 때문에 자국 내 여론조차 썩 호의적이지 않은 ‘사도광산’ 세계문화유산 등재의 공은 이제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로 넘겨졌다. 다만 사도광산의 세계유산 등재 여부가 결정될 내년 여름까지 그 과정은 그다지 순탄할 것 같지 않다. 예정대로라면 유네스코 자문기관인 국제기념물유적회의 등이 현지 조사를 실시한 후 2023년 5월을 전후로 등록 적부를 권고할 예정이지만 무엇보다 관계국인 한국 정부의 반발에 발목이 잡힐 수도 있기 때문이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은 인류가 공유해야 할 보편적 가치가 있는 문화재를 보호하는 제도이다. 그런 점에서 일본 정부가 ‘하시마섬’과 ‘사도광산’ 같은 강제 노역의 현장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려는 시도 자체만으로도 역사를 기만하는 행위가 될 수 있다. 일본 정부의 입장에서는 자기 선조들이 저지른 부끄러운 행위들을 어떻게 해서든 감추고 지우고 싶겠지만 그럴수록 진실은 더 또렷이 드러나게 마련이다. 이것을 역사의 역설(逆說)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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