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성탄절이다. 주님은 죄악에 빠진 나를 구원하기 위해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낮고 천한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셨다. 성탄절이 기독교인뿐 아니라 온 인류에 특별한 의미를 갖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부활과 함께 사람의 몸으로 오셔서 인간의 죄를 대속하시고 무한 사랑을 실천하신 주님을 기쁜 마음으로 맞아들이는 날이기 때문이다.

성탄절은 20세기 들어 종교색을 뛰어넘는 전 세계적인 축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그것이 주님의 성탄이 갖는 참된 의미가 온 세상에 확장된 것으로 보기 어렵다. 오히려 반대로 적그리스도적이고 세속적인 문화풍조가 복음을 뒤흔드는 세상을 걱정해야 할 형편이 되었다.

최근 유럽연합(EU)이 직원들에게 포괄성이라는 명분 아래 크리스마스를 ‘휴가’(Holiday) 시즌으로 언급하도록 지침을 내렸다가 논란 끝에 철회했다. 해당 지침은 크리스마스 전후에 사용되는 언어와 기독교식 이름 사용을 변경하라고 조언한 것이다. EU가 그런 지침을 내린 배경에는 특정 종교가 편협적이고 고정관념을 부추긴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논란은 교황청과 일부 국가 정치인들의 거센 항의로 막을 내렸지만 언제든 재점화할 수 있다.

크리스마스, 즉 성탄절이 연말연시의 ‘홀리데이’ 개념으로 변용되는 예는 비단 유럽만의 문제는 아니다. 미국에서는 성탄절 시즌에 ‘메리 크리스마스’(Merry Christmas) 대신 ‘해피 홀리데이’(Happy Holidays)라는 인사가 보편화되는 추세에 있다. 기독교 정신으로 세워진 미국에서조차 ‘메리 크리스마스’가 특정 종교색을 띤 불편한 인사말로 여겨지는 현실은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한다. 성탄절에 ‘예수 그리스도’가 아닌 ‘산타클로스’가 주인공이 되고 성탄 축하송인 캐럴이 사행성을 부추기는 상업 음악으로 변질되고 있는 현상 또한 ‘주객이 전도’된 예가 아닐 수 없다.

이런 풍조의 만연을 무조건 세속 탓으로 돌릴 수는 없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세상에 바로 가르치지 못하고 실천하지 못한 책임은 전적으로 교회와 기독교인에게 있다. 세상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지 못하고 휩쓸려 떠내려가는 세속교회의 모습이 성탄의 의미조차 희석시킨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눈을 우리 내부로 돌려볼 필요가 있다. 한국교회는 선교 1세기에 엄청난 양적 성장과 부흥을 이뤘다. 이는 세계교회사적으로도 독보적인 기록이다. 단일 규모로 세계에서 가장 큰 교회가 탄생했고, 단기간에 세계 선교와 복음화에 기여한 분량은 전통적인 기독교 국가들을 훌쩍 뛰어넘었다.

그러나 거침없이 질주하던 한국교회에도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우기 시작했다. 근자에 유럽의 오랜 기독교 국가들이 걸었던 길과 비슷한 염려스런 지표들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최근 10년 사이에 거의 모든 교단에서 성장 둔화 현상이 나타나더니 급격히 내리막길에 접어든 모습이 그렇다.

국내에서 가장 큰 교단이라 할 수 있는 예장 합동과 통합, 기감 등의 최근 교세 통계를 보면 심각 수준을 넘어 위기 단계로 접어들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들 교단들은 지난해 하루에 250명에서 450명까지 교인이 감소한 것으로 보고됐다. 매일 중형교회가 하나씩 사라지고 있는 셈이다.

이런 지표들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이 코로나19 팬데믹이다. 강화된 방역조치로 교인이 자연스럽게 교회에서 분리되는 상황이 벌어졌다. 작은 교회를 중심으로 1만여 교회가 문을 닫은 것으로 추정되는 일부 보고는 가히 충격적이다. 그러나 이 모든 걸 코로나, 정치방역 탓으로 돌릴 수는 없다. 빨간 경고등은 이미 그 이전부터 켜져 있었기 때문이다. 단지 코로나19가 여기에 쐬기를 박았을 뿐이다.

최근 우리나라 4대 종단인 기독교와 천주교, 불교, 원불교에 대한 호감도 조사결과를 들여다보면 그 원인에 보다 근접할 수 있다. 한국리서치가 조사한 2021년 종교인식조사 결과에 따르면 천주교와 불교에 대한 호감도는 50.7점인 반면에 기독교는 31.6점으로 매우 낮았다. 개신교에 대해 호감을 사람이 18%에 불과한 반면에 매우 부정적이라고 한 응답자는 48%로 절반에 육박했다.

물론 이 조사 하나로 모든 걸 단정 지을 수는 없다. 교회가 내할 본분을 다하고 있다면 세상의 평가나 조롱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그것이 한국교회의 위기가 어디에서 시작됐는지를 가리킨다면 얘기가 다르다. 이는 곧 나와 교회공동체가 새로워지지 않는 한 예수님을 더욱 고립시키는 결과로 나타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최근의 인구센서스에서 기독교의 교세는 불교와 천주교에 앞서 있다. 교세가 줄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가장 많은 신자 수를 보유한 영향력을 가진 종교임이 틀림없다. 그래서인지 내년 대선을 앞두고 종교계 표심이 절실한 대선후보들이 교회를 방문하는 횟수도 부쩍 늘었다.

지금은 시기적으로 정치가 기독교를 대하는 가장 겸손한 태도를 보일 때다. 그러나 그것이 세상에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기회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이 교회에 온 목적이 무엇이든 간에 하나님께 자신을 의탁하는 영적 예배를 드릴 때 주님이 그 기도에 응답하신다는 것을 교회가 가르칠 기회다.

성탄절에 마치 정치인처럼 행동하는 교인들도 더러 있다. 1년에 한번 성탄축하예배에 참석해 헌금을 드리고, 돌아오는 길에 구세군 자선냄비에 몇 푼 넣은 후 이만하면 나도 성도의 자격이 있다고 스스로를 위로하는 사람이다.

예수님은 태초에 계신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이 되어 세상에 나섰다. 그 안에 생명이 있었고 어둠을 몰아내는 빛을 세상에 비추셨다. 6만여 한국교회와 1천만 성도들이 세상을 변화시키기는커녕 세속에 동화되는 것을 주님이 가장 슬퍼하실 것이다. 성탄절을 그저 먹고 즐기고 쉬는 날로 보낼 수 없는 이유가 여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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