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진수
미국 월드미션대학교 예배학과 가진수 교수 ©가진수 교수 제공

하나님을 만남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각자의 일상의 삶 속에서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자하는 깊은 임재의 시간을 보내고 나면, 이제 하루의 일상을 마무리를 해야 할 시간이 다가온다. 하지만 예배에서의 ‘파송’은 예배 예식이 단지 마무리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것은 새로운 예배의 삶으로의 시작이며 세상과의 영적 싸움으로 들어가는 진군가와 같다.

하루를 마무리하면서 우리는 어떤 일상 예배를 마무리할 것인가? 더 나아가 어떤 새로운 결단과 내일을 계획할 것인가? 나는 오늘 하루의 마무리가 내일의 삶을 좌우한다고 믿는다. 더 나아가 우리 일생 예배의 삶의 동기가 될 수 있다. 하나님으로 하루를 마무리하면 새 날을 하나님으로 시작할 수 있는 기쁨을 주신다.

예배의 4중 구조의 네 번째 순서는 ‘파송’이다. 파송은 예배의 끝이 아니라 세상으로 나아가는 결단의 자리이자 영적 선언이다. 파송은 ‘세상으로 나아간다.’는 의미를 가지며 예배 예식의 마침이자, 삶의 예배의 시작이다. 예배 예식에서는 ‘자, 이제 예배가 끝났으니 세상으로 나아갑시다.’, ‘예배가 끝났으니 집으로 돌아가서 각자의 삶을 삽시다.’ 등의 마침의 인사를 나눈다.

하지만 이 파송의 인사는 단순한 인사 그 이상의 의미가 담겨있다. ‘세상으로 나아간다.(go forth)’는 것은 삶의 예배로의 전환이자 시작을 말한다. 바울은 로마서 12:1에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라며 그 중요성을 언급했다.
파송은 ‘축복(Blessing)’의 의미가 가장 크다. 파송에서의 축복은 구약성경 ‘아론의 축복(Aaronic Blessing)’에서 기원한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아론과 그 아들들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이렇게 축복하여 이르되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안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 그들은 이같이 내 이름으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축복할지니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리라”(민 6:22-27)

파송은 하나님께서 우리 예배자들에게 주시는 축복의 말씀이다. 로버트 웨버는 이 축복의 말씀을 다음과 같은 우리 일상의 언어로 바꾸었다.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께서 가정과 직장에서 관계가 치유되고 힘을 얻기 위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께서 여러분을 강건하고 활력 넘치며 모든 일에서 힘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안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
편히 쉬기를 그리고 직장에서 힘을 얻기를
또 이웃과 평안하기를 원하노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Robert E. Webber, 예배의 고대와 미래(The Complete Library of Christian Worship), 201.)

여기서 핵심이자 축복이 발견되는 곳은 마지막 부분이 시작되는 곳이다. “그들은 이같이 내 이름으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축복할지니” 이 축복에서 하나님은 그의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다. 그것이 우리가 살아가야 할 방식이다.(Robert E. Webber, 예배의 고대와 미래(The Complete Library of Christian Worship), 200.)

‘파송’ 예식의 세 가지 근간은 ‘축복’과 ‘찬양’ 그리고 ‘파송의 말씀’이다. 축도는 하나님의 축복을 간구하는 것이다. 파송 찬송은 사명을 가지고 나아가게 하는 것으로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지금은 엘리야 때처럼” 등의 찬양이 불린다. 그리고 파송의 말씀으로 마무리한다. 예를 들어 목회자가 “세상으로 나가 주님을 사랑하고 섬기라.”고 하면 회중들은 “하나님께 감사합니다.”라고 화답한다.

‘세상으로 나아간다.’는 의미의 파송은 지금과 같은 사회적 환경에서는 매우 중요한 예배 예식이다. 그러므로 파송의 예식을 조금 더 강화하여 마침이 아니라 새롭게 시작하는 1주일 동안의 세상에서의 삶에서 승리할 수 있는 영적 동력이 되어야한다. 세상을 이기신 예수 그리스도를 선포하며 예배 공동체가 하나가 되어 결단의 외침을 가져야할 것이다. 그리고 다가올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소망하며 하나님이 주시는 영적 능력을 가지고 세상에서 담대하게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예배자가 되어야하는 것이다.

또한 파송은 예배자에게 있어 중요한 예식이다. 일상의 예배를 시작하는 영적 능력의 충전소이자 결단의 시간이기 때문이다. 초대 교회 시기에는 로마의 치하에서 언제 잡혀가 죽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다시 만나 얼굴을 보는 것이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다시 만날 때까지 하나님이 우리를 지켜주시고, 혹 죽게 되면 언제가 우리가 하늘나라에서 다시 만날 것을 소망하는 그런 결의의 시간이기도 했다. 지금은 그런 위험에 놓여있진 않지만, 어쩌면 세속의 삶에서 영적으로 길을 잃어버리고, 주님을 잊고 사는 것만큼 위험한 일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파송’의 시간은 세상을 이길 영적인 호흡을 고르고, 성령의 임재가 있는 강력한 결단의 시간을 통해 삶의 예배를 열어야한다. 우리 예배자들이 예배를 통해 하나가 되고 서로가 서로를 붙잡고 기도해주고, 힘껏 찬양하며 서로를 북돋는 그런 시간이어야 한다. 다시 말하지만 ‘파송’은 예배의 마침이 아니라 새로운 예배의 시작이다. 모든 예배의 예식은 여기에 중점을 두어야한다.

‘파송’의 성경적 의미는 삶에서 축복의 마침이자 새로운 시작이다. 직장에서 또는 학교에서의 일상의 삶이 끝나면 보통 집으로 돌아오게 된다. 돌아와서 식사를 하다든지 아니면 씻고 가족 또는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다. 그리고 우리는 무엇을 하는가?

일상의 업무가 끝나고 잠자리에 들기 전까지의 시간은 하루를 마무리할 수 있는 ‘파송’의 시간이다. 파송의 시간은 하루를 마무리하면서 내일을 준비하는 반성의 시간이자 결심의 시간이기도하다. 이 시간에 보통 우리는 하루를 되새김하게 된다. “오늘 하루는 너무 힘들었구나.” “오늘 하루도 수고했어.” 이러한 고백 이후에 우리는 예배자로서 중요한 마무리를 해야 한다. “오늘은 하나님께서 함께해 주셔서 힘들지 않게 보낼 수 있었네.” “오늘은 무척 힘들었지만 하나님 덕분에 그나마 견딜 수 있었어.”

하루를 마무리하면서 한 가지 중요한 점은 단 1분만이라도 하나님과 대면하는 고요의 시간을 보내야한다는 것이다. 매우 고요한 1분을 느껴야한다. 어느 자리에서든 상관없다. 나의 경우 침대 위에서 불을 끄고 나서 짧은 시간 어두움 속에서 기도의 시간을 가진다. “하나님, 오늘 하루를 감사드립니다.” 매우 피곤할 때에는 이 한마디의 감사의 고백이 최고다. 모든 하루의 피로가 싹 사라진다. 당신도 한번 느껴보라. 그 평안과 위로의 기쁨을.

우리는 오랫동안 침잠의 터널에서 하나님을 영적으로 갈망하고 경험했던 헨리 나우웬의 말에 경청할 필요가 있다. “하나님과 교제하는 진정한 기도는 다분히 밤에 이루어진다. 우리에게 닥쳐오는 어둠 속에서, 신앙의 밤에 이루어진다. 하나님의 빛은 한없이 밝아서 우리를 눈멀게 한다. 우리가 배우는 내용을 우리의 마음과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다.”(Henri J. M. Nouwen, 삶의 영성(A Spirituality of Life), 48.)

우리가 분명 하나님의 예배자라면 하루의 마감은 반드시 하나님과 우리의 마무리를 결부시켜야한다. 그것이 예배자의 기본이며 책무다. 우리의 일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이 땅위에서의 청지기일 뿐이다. 나에게 맡겨주신 하루에 대해 하나님께 결재와 보고도 하지 않는다면, 창조주이자 주님께 얼마나 불성실한 것인가? 우리의 주인이신 하나님께 오늘이라는 일상을 보고하고 감사의 고백을 하지 않는 예배자는 참된 예배자가 아니다. 시간이나 공간에 압박을 느끼지 마라. 평안한 공간에서든, 아니면 침실의 끝에서든 내일로 넘어가는 시간에서든, 우리는 반드시 하루의 마무리를 통해 하나님께 감사의 고백을 해야 한다. 단 10초라도 말이다. 그것이 살아계신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이다.

성경에서 서로 다른 삶을 살았던 수많은 예배자들과 이 세상의 삶에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던 서로 다른 수많은 예배자들이 하루의 일과를 마무리하면 기도와 감사를 드렸던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우리의 하루 마무리는 우리 일생의 마무리로 연장된다. 우리 일상의 하루를 잘 마무리하고, 하나님께 감사하며 영광을 돌리면 우리의 삶은 참된 예배의 삶으로 축적되며, 우리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예배자로 만들어져간다.

파송의 궁극적인 의미는 축도를 마친 후 예배가 끝나는 것이 아니라 세상으로 새롭게 나아가는 삶의 예배로서의 전주곡이다. 그러므로 파송은 영적 전쟁으로 본다면 작전 회의와 같다. 세상에서의 영적 승리를 위한 결사항전인 것이다. 진짜 예배자로서의 예배를 위한 출발점이다.

일상 예배에서의 파송은 어떻게 나타나는가? 하루의 업무를 마치고 집으로 들어와 식사를 마치거나 혹은 씻고 나면 파송이 시작된다. 이후 TV를 시청하거나 독서를 하거나 아니면 가족 간의 대화를 하는 등의 시간을 보내고 하루를 마무리할 것이다.

일상에서의 파송의 시간을 위한 실제적인 두 가지를 안내한다면, 파송은 첫째, 하루를 마무리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오늘 하루에 대한 감사와 고백이다. 장소와 시간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의미의 시간을 갖는가가 중요하다. 일상 예배는 일시적인 아닌 계속적인 영적 습관이 중요하므로 단 한 번의 굉장한 이벤트가 아니라 매일의 삶에서의 계속성이 필요하다. 단 1분의 시간이라도 하나님과의 진정한 대화가 중요한 것이다. “하나님, 오늘 하루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또는 단 한마디의 속삭임도 좋다. “하나님 사랑합니다.”

한 사람의 영향력을 조명할 때 우리는 마지막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가 이룬 업적과 열매가 과연 어떻게 나타나는가?’로 사람들을 평가하기도 한다. 모든 스포츠 경기는 마지막에 웃는 자가 진정한 승자라 말하기도 한다. 일상의 오늘도 하루를 마무리하는 중요한 시간이다. 오늘 나는 과연 승리했는가?

둘째, 파송은 내일을 위한 준비의 시간이다. 파송이 하루를 마무리하는 것으로만 끝난다면 그것으로도 족한 은혜이겠지만 하나님은 당신의 예배자들에게 더 중요한 축복을 허락하신다. 그것은 ‘내일’이라는 선물이다. 내일이라는 선물은 오늘을 살면서 쉼을 통해 내일을 꿈꿀 수 있는 희망과 같다. 다시 말하면 오늘 실패했어도, 내일이 있다는 것만으로 희망이라는 뜻이다.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쉼을 주시고 잠을 주신다.

시편 기자는 하루를 마무리하면서 새로운 날을 위한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 너희가 일찍이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의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시 127:1-2)

기도

일상의 하루를 마무리하면서 내일을 위한 쉼과 안식을 위한 수면은 하나님의 은혜이며 창세기에서 선포하신 예배자를 위한 쉼의 연속이다.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어지니라 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창 2:1-2)

하루의 일상을 이야기로 잘 풀어낸 티시 해리슨 워런(Tish Harrison Warren)은 잠자리에 들기 전 기도하며 마무리하는 것이 성공회 신자들의 전통적인 습관이라고 말했다. “『성공회 기도서』를 보면, 성공회 신자들은 하루 네 번 짧은 시간을 갖는다. 아침, 점심, 저녁(베스퍼스, Vespers라고 알려져 있다), 그리고 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기도 시간은 밤에 드리는 콤플린(Compline)이다. 이때의 기도는 마음을 차분하고 평안하게 해 준다. 속삭이듯 기도하라고 초대하는 것 같다. ‘오 주님, 우리의 걸음을 인도하시고, 자는 동안 우리를 지켜 주소서. 깨어 있을 때는 그리스도와 함께 깨어 있게 하시고, 잠들 때는 평화롭게 쉬게 하소서.’”(Tish Harrison Warren, 오늘이라는 예배(Liturgy of the Ordinary), 221.)

우리는 모든 것을 잃은 후에야 그것의 소중함을 깨닫는다. 건강을 잃은 후에 건강의 소중함을 깨닫고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후에 진정한 사랑의 눈을 뜬다. 일상 예배에서의 ‘파송’은 오늘 하루에 대한 예배자로서의 감사와 내일이라는 선물을 통한 희망을 꿈꾸는 것이다. 오늘이라는 일상의 파송에 대한 거룩한 습관은 계속되는 오늘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를 평생 참된 예배자로서 세워주실 것이다.

가진수(월드미션대학교 예배학과 교수)

  • 네이버 블러그 공유하기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press@cdaily.co.kr

- Copyright ⓒ기독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독교 종합일간지 '기독일보 구독신청 바로가기'

#가진수 #일상에서하나님을경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