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전쟁이 일어난 지 꼭 71년의 세월이 흘렀다. 풍전등화에 놓인 조국을 구하기 위해 전쟁에 뛰어들었던 10·20대 소년과 청년들은 이제 90줄에 들어섰거나 세상을 떠난 분들도 적지 않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모든 게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에 71년 전 이 땅에서 벌어진 동족상잔의 비극적 전쟁의 기억을 애써 끄집어내고 싶을 사람은 없다.

그러나 6.25 전쟁은 엄밀히 말해 서로 간에 교전이 멈춘 것이지 전쟁이 완전히 끝난 게 아니다.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의 기습 남침으로 시작된 한국전쟁은 1953년 7월 27일 유엔군, 북한군, 중공군 사령관 사이에 휴전협정이 맺어지면서 멈춘 상태일 뿐 언제든 다시 전쟁 상태로 돌아갈 가능성까지 완전히 사라진 게 아니다.

그런데 다시 이 땅에서 전쟁이 일어나리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너무 오래 전 일이라 기억에서 지워진 것도 있고 아무래도 지금의 평화가 이대로 영원히 지속되리라 믿고 싶은 마음이 크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전쟁은 상대적이다. 막연한 기대와 희망만으로 평화를 지킬 수는 없다. 언제 어떻게 일어날지 모르기 때문에 그날을 철저히 대비하는 길밖에 없다.

1945년 연합군에 의해 일본 제국주의가 패망하면서 우리에게 광복이 찾아왔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뿐 북위 38도 선을 기준으로 북에는 소련군이, 남에는 미군이 진주했다. 한반도에 통일국가를 수립하기 위해 모인 미소공동위원회는 신탁통치 문제를 둘러싼 좌우의 대립 끝에 결렬되었다.

그런 가운데 북한에는 소련 공산당 주도 아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남한에서는 유엔 결의에 따른 총선을 거쳐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됐다. 한반도에 완전히 다른 두 개의 체제가 들어선 것이다. 남쪽은 자유민주주의, 북쪽은 공산주의였다.

김일성은 북한 정권 수립 직후인 1948년 9월부터 무력 남침을 꾀하였다. 1949년 신년사에서 ‘국토완정’(國土完整)이라는 용어를 무려 13회나 사용한 걸 보면 그의 무력 남침 의지가 얼마나 강한지 알 수 있다. 김일성은 그 후 수차례 소련을 방문해 무력 남침 계획을 타진하였다.

1949년 6월 미군이 남한에서 철수하고, 이어 8월에 소련이 핵실험에 성공하자 스탈린은 1950년 4월 초 비밀리에 모스크바를 방문한 김일성과 박헌영에게 중국이 동의한다는 조건으로 북한의 선제 남침 전쟁을 승인하게 된다. 1949년 10월에 마오쩌둥이 중국 공산화에 성공한 것도 그런 분위기에 일조했다. 마침내 1950년 6월 16일 스탈린은 남침 개시 일자를 6월 25일로 정하고 최종 승인했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북한의 기습 남침에 전혀 대비하지 못했다. 국군 지휘부는 북한의 병력과 무기의 대규모 이동 정보를 알고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6월 23일부로 경계강화 조치를 해제시켜 전방부대 병력의 3분의 1가량이 외출이나 농번기 휴가를 나갔다. 결과적으로 북한의 남침에 가장 유리한 상황으로 만들어준 것은 유비무환(有備無患)이 아닌 무비유환(無備有患)의 느슨한 안보태세였던 셈이다.

6.25는 한반도를 공산화하려는 소련과 중국의 지원은 받을 북한 김일성 정권의 침략전쟁이다. 이런 분명한 사실은 전쟁을 겪은 분들의 생생한 증언과 체험, 그리고 1990년대 소련의 해체 이후 발굴된 각종 문서와 기록으로 재차 입증되었다.

그런데 참으로 안타까운 사실은 우리 국민 다수가 이 전쟁이 왜, 어떻게 일어났는지 또 어떤 결과를 낳았고 현재까지 우리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고 또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고교 역사 교과서에는 6.25 전쟁이 ‘양민 학살’이라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고 우리가 공산주의에 맞서 자유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쳤다는 말은 아예 찾아볼 수 없을 정도다.

우리가 71년 전에 일어난 6.25를 잊어선 안 될 분명한 이유는 바로 오늘 현재에 있다. 북한은 외형상 ICBM(대륙간탄도미사일) 및 SLBM(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 핵실험 등 이른바 고강도 전략적 도발은 자제하는 분위기나 지금 이 순간에도 북한 도처에서 핵 시설이 가동돼 핵무기 숫자가 점점 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일부 군사전문기관은 북한이 올해 말까지 핵탄두를 최대 100개가량 가질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북한과 중국 등 주변국의 안보 위협이 점점 커지고 있는 데 반해 이에 맞서야 할 한국군은 한 마디로 만신창이 상태다. 각종 무기 체계는 물론 최근 불거진 공군 성추행 부사관 사망 사건이 보여주듯 군 기강까지 해이해져 있다. 이런 안보태세로 평화를 말하는 것은 막연함을 넘어 기망(欺罔)이다.

한국교회가 지난해 70주년 만큼은 아니지만 올해도 6.25를 잊어선 안 된다는 절실한 목소리를 계속 내고 있음은 그나마 다행스럽다. 한교연과 5개 단체가 23일 연합해 드린 6.25 전쟁 71주년 한국교회 연합성회 참석자들은 “이 땅에 진정한 자유와 평화가 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강한 군사력으로 무장해 안보를 튼튼히 해야 한다”며 “자유와 인권, 생명과 존중하는 십자가 사랑만이 핵무기를 이길 수 있다”는 메시지를 채택했다.

서울 지하철 삼성역에 얼마 전부터 가슴 뭉클하게 하는 문구의 전광판이 지나가는 시민의 눈길을 끌고 있다. “Freedom Is Not Free”(자유는 공짜가 아니다). 이 땅의 자유 민주주의를 위해 목숨 바쳐 싸운 국군 용사들과 학도병, 유엔군 참전용사들에게 가슴 깊이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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