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용조 목사와의 추억을 회상하는 이재환 선교사. ⓒ신태진 기자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故 하용조 목사의 선교 동역자였고, 현재 온누리교회의 선교훈련원장을 맡고 있는 이재환 선교사(컴미션 대표). 그는 하 목사의 소천 소식에 “마치 아내 잃은 남편처럼, 자식 잃은 아비처럼, 동료 잃은 친구처럼, 하 목사님을 잃은 슬픔에 마음에 큰 구멍이 뚫린 것 같다”고 애통한 마음을 전했다.

 

1983년 하 목사와 함께 영국에서 유학하며 선교훈련을 받았던 이 선교사는, 하 목사가 영국에서 교회를 개척했을 당시 목회에 동참했을 정도로 오랜 우정을 나눈 사이다. 그 시절 하 목사는 선교사의 삶을 살고자 했지만, 건강 문제로 한국에 들어오면서 ‘선교적 목회자’의 길을 가게 됐다고 한다.

이 선교사는 “하 목사님은 영국에 있는 동안 이미 선교에 대한 구상을 끝내놓고 있었다”며 “어떤 면에서는 선교가 하용조 목사님을 만들었다고 볼 수 있다”고 했다.

하 목사는 온누리교회를 선교적 교회로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1,000명이 넘는 선교사를 파송하면서 단 한 번도 선교사의 수를 줄이지 않았다. 이 선교사는 “하 목사님은 사도행전적 사역이 곧 선교라는 것을 깨달았고, 복음을 전하면 주님이 오신다는 선교적 종말론을 꿈꾸셨다”고 강조했다.

이어 “하 목사님은 선교에 목숨을 거셨던 분”이라며 “대부분의 교회는 선교를 ‘부르심’이라고 믿고 있지만, 하 목사님은 선교는 ‘사명’이며 모든 크리스천은 선교사라는 믿음으로 사셨다”고 전했다.

또한 생전에 하 목사는 가난한 선교사를 지원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없었다. 선교는 돈을 보고 하는 것이 아니라는 의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선교사는 “미국에서 미전도 종족에게 선교사를 파송하기 위한 컴미션선교회(Come Mission)를 시작했을 때, 하 목사님이 두 번이나 찾아오셔서 종이와 펜을 주며, 필요한 것을 적으라고 하셨다”고 말했다. 필요한 것이 있어도 부담이 되기 싫어 말하지 않는 이 선교사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직접 미국까지 찾아온 것이다.

결국 하 목사는 선교회에 차가 없어 이동이 불편하다는 것을 알고, 차를 사주고 갔다. 이 선교사는 “보통 목사님들은 선교사가 돈을 바라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는데, 하 목사님은 두려움이 없었다”며 “선교가 그분에게는 심장이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 선교사는 “하 목사님은 선교를 제스처로 하지 않으셨다. 선교를 사랑하셨고 선교를 통해서 하나님 나라가 온다는 확신이 있으셨다”며 “하 목사님에게 선교는 주님 오실 때까지 하는 것이기 때문에, 하 목사님은 죽지 않으셨다”고 전했다.

생전에 하 목사는 ‘아이디어 맨’이라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 이 선교사는 “하 목사님의 아이디어의 원천은 사랑에 있다”며 “사랑하면 보이는 것이다. 그 분은 주님을 사랑했고, 선교를 사랑했고, 성도를 사랑했기 때문에 아이디어를 무진장 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끝으로 그는 “만약 온누리교회가 하 목사님이 없어도 계속 선교를 할 수 있다면 하 목사님은 우리와 함께 살아계신 것이고, 선교가 중단된다면 하 목사님은 단지 한 인물로 남을 것이다”며 “한국교회에 하 목사님이 단지 한 인물로 남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 속에 하나님 나라의 꿈으로 남기 바란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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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용조 #이재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