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상 원장
이효상 원장

아침이면 쓴 맛을 보며 하루를 연다. 마치 인생의 쓴 맛처럼, 다름 아닌 ‘커피(coffee) 한 잔’의 유혹(Temptation)으로 시작된다. 눈 뜨자 마자 또는 출근과 동시에 마시는 커피 한잔은 직장인들의 즐거움이자 적(敵)이다. 언제부터인가부터 커피는 일상이 되었고 습관이 되었다. 중독이 따로 있나. 선택이 아니라 반복되면 중독이다.

베토벤(Beethoven)은 매일 의식을 치르듯 커피를 내리는 것으로 아침을 시작했다고 한다. “매일 아침 나는 더할 수 없는 내 벗과 만난다. 아침에 커피보다 더 좋은 것은 있을 수가 없다. 한 잔의 커피에 담긴 60알의 원두는 내게 60개의 아이디어를 가르쳐준다”고 말했다는데. 커피 한 잔이 예술가들의 혼을 일깨우고, 귀가 들리지 않는 베토벤에게 누구보다 소중한 친구가 되어주었으리라 생각된다.

대한민국 국민 1인당 1년에 몇 잔의 커피를 마실까. 2018년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성인 기준 1년에 커피 353잔을 마신다고 한다. 하루에 1잔은 마신다는 의미인데, 세계 평균 소비량 132잔의 2배 이상이다. 하지만 커피를 안 마시는 사람도 다수 있으니 엄청난 양이다. 커피는 예전 ‘숭늉’의 자리를 밀어내고 그 자리를 차지했다.

커피의 고향이 어디일까? 커피의 원조국은 아프리카 북동부에 위치한 에티오피아(Ethiopia)다. 커피의 3대 품종 중 가장 향미가 뛰어난 아라비카종([라틴어]Arabica種)의 주산지로 이슬람 문화권인 아랍과 함께 아프리카 북동부에서 재배를 시작했다. 사실 커피를 마시게 된 기원에 관해서는 에티오피아의 옛 이름인 아비시니아(Abyssinia)에 ‘칼디’라는 목동이 있었다. 어느 날 염소들이 빨간 열매를 따먹고는 흥분하며 잠을 못 자는 것을 본 그는 직접 빨간 열매를 따서 먹어봤다. 목동은 열매를 먹고 나자 온몸에 힘이 나면서 이상한 기운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 씨앗을 이슬람 사제에게 가져다주었는데 부정한 음식을 먹기 전, 의식으로 빨간 열매를 불에 태웠더니 그윽한 커피향이 퍼지면서 사제들과 이슬람교도들이 커피 열매를 먹기 시작했다. 이후 척박한 땅에서 양이나 염소를 치며 유목생활을 하는 이슬람교도들은 힘이 나는 열매를 가지고 다니며 약으로 사용하기도 하고 사제들은 밤에 기도를 드릴 때 잠을 쫓기 위해 즐겨 먹게 되었다고 한다.

또 다른 이야기는 홍해 바로 건너편 나라인 예멘(Yemen)에서 비롯됐다. 이슬람 대사제인 오마르는 모함을 받아 쫓겨 모카(Mocha)라는 항구 도시로 건너오게 되었다. 너무나 배가 고팠던 그는 새가 먹고 있던 빨간 열매를 보고 알라의 계시라 생각해 그 열매로 허기를 달랬다. 그랬더니 배고픔도 사라지고 기운이 나서 그 뒤 그 열매로 병약한 이들을 치료했다. 예멘의 모카 항은 그 뒤로 커피를 수출하는 주요 항구로 이름을 알려지며 모카커피(Mochacoffee)의 원조가 되었다.

그렇다면 커피는 어떻게 세계적으로 보급되었을까. 그 시간은 천년이 넘게 걸렸다. 아랍인은 지중해를 넘나들며 유럽과 활발히 교역을 이어나갔고 그 와중에 커피가 점차 유럽인에게 퍼져나갔다. 유럽에서는 한때 커피를 금하기도 했다. 그 당시 유럽은 로마 카토릭교회의 교황이 가진 힘이 막강했는데, 이교도들이 들여온 음료 때문에 밤에 잠을 안자고 범죄와 음탕한 생활을 한다고 믿었기에 커피를 ‘악마의 음료’라 부르고 금지하기도 했다. 17세기경부터 유럽 전역에 유행처럼 번져 나갔으며 네덜란드와 프랑스 사람들을 통해 아시아와 중남미로 보급되며 브라질과 콜롬비아, 베트남과 인도네시아 같은 커피 최대 생산지들이 생겨나게 된다.

1900년대 초 미국에서는 인스턴트(instant) 커피가 나왔는데, 1차 세계대전 당시 군인들에게 휴대용 커피를 마시게 하므로 전쟁에서 승패가 결정되기도 하였다고 전한다. 전쟁 후에는 인스턴트 식품의 물결을 타고 널리 일반화되었다.

우리나라에는 고종 황제가 러시아 공관에 머물 당시 커피를 마셨다는 기록이 있다. 이 문서로 봐서 우리나라 최초의 커피 드링커(Drinker)는 고종황제라 할 수 있다.

우리는 언제부터 커피를 마시게 되었을까? 최초의 커피를 마신 기록은 미국의 천문학자 퍼시벌 로월(Percival Lowell, 1855.3.13-1916.11.12)은 그의 저서『Chosőn: The Land of the Morning Calm』에 보면 1884년 1월의 추운 어느 날 조선 고위관리의 초대를 받아 한강변 별장으로 유람을 가게 되었는데 꽁꽁 얼어붙은 겨울 한강의 정취를 즐기던 중 “우리는 다시 누대 위로 올라 당시 조선의 최신 유행품이었던 커피를 마셨다.”라는 기록을 남겼다.

우리나라 최초의 커피 전문점은 20세기 초, 독일인 러시아 공사의 처형인 손탁(Antoniette Sontag, 1854-1925)이라는 독일계 러시아 여인에 의해 들어섰다. 정동에 세운 한국 최초의 호텔인 손탁호텔 안에 첫 커피숍을 개업한 이후 일제 강점기에는 명동과 소공동 등지에 일본식 다방들이 생겨났다.

대중보급은 6.25 전쟁 이후 미군들의 식량에 속해 있던 인스턴트커피가 익숙해지고 인기를 얻어 본격적으로 시판되면서부터다. 다방식 커피든 인스턴트커피든 요즘 유행하는 브랜드 커피든 간에 커피는 그 향미를 즐기며 소통하는 접촉점임에는 틀림없다.

우울한 날에는 달달한 커피가 좋다. 사람도 커피를 잘 사는 사람이 더 좋다. 그런 사람은 대개 소통의 마음을 가지고 있다. 따뜻한 나눔이 행복이다. 우아하게 함께 나누는 커피 한잔의 여유로움은 일상의 소소한 행복이다. 사람은 그렇게 행복하기로 마음먹은 만큼 행복해 진다.

커피 한 잔이 주는 선물은 분명 매혹적이다. “커피 한잔 하시죠?” 사람들을 자주 만나다보면 그럴 때마다 커피를 권하고 마시는 일들이 생긴다. 사람과 대화를 나누고 소통할 때, 으레 마실 커피를 권하는 것이 예의처럼 여겨진다. 좋은 이미지를 지닌 매너 있는 사람으로, 통찰력을 겸비한 에너지 넘치는 사람으로 인정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맑은 정신을 갖게 하는 도구 역할도 톡톡히 해 내서 바쁜 현대인들과 쉽게 친숙해진다. 모든 만남과 거래에서 첫인상은 매우 중요한데 커피 한 잔은 상대방이 보여주는 태도와 매너가 그 사람에 대한 이미지를 결정하거나 첫인상을 다지는 데 중요한 기여를 한다. 누군가와의 첫 만남이나 미팅 자리에서 마시는 한 잔의 커피는 소통을 열어주고 거래를 성공적으로 성사시키며 멋진 이미지를 심어주는 데 도움을 준다.

에덴동산부터 사람은 누구나 유혹에 약하다. 커피 한잔의 유혹은 쉬지 않고 다가온다. 주일에 출석하는 교회는 로비에 커피숍(coffee shop)을 차리신 담임 최 목사님은 바리스타(barista) 교육까지 받고 커피머신(coffee machine)을 신나게 당기신다. 커피 나누는 즐거움을 누리신다. 일회용 컵은 이 장로님이 제공하셨다. 그런가하면 남양주 다산동 자치위원회 사무실에도 새해부터 커피머신을 설치하고 별다방(?) 커피가 항상 제공된다. 당연히 안 마실 수 없는 구조다. 대학로 사무실에 나오면 주로 점심을 사먹는데 식후에 단 맛 좀 보려고 달달한 자몽차로 마셔야지 하다가도 식당에서 주는 공짜커피인 믹스커피(mix coffee)나 지인들이 사는 아메리카노(Americano)의 유혹에 넘어가게 된다.

이런 유혹에는 후유증이 반드시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혹에 쉽게 넘어가는 이유는 중독성 때문이다. 한 잔 마시면 기분이 업그레이드(upgrade) 되는 것 같고 집중이 잘 된다. 가끔 안 마시면 뭔가 허전하고 집중이 안 되는 이 느낌은 뭐지 싶다. 어찌보면 ‘카페인 부작용’이나 ‘카페인 중독’같기도 하다.

정말 커피 한 잔은 약일까? 독일까? 커피를 마시면 정신이 맑아지고 집중력이 생기는데 반해 너무 많이 마시면 밤에 깊은 숙면을 하지 못한다. 필자의 경우, 커피의 민감성은 오후 2~3시 이후에 커피를 마시면 수면의 질이 떨어져 밤 12시경 잠깐 잠들었다가 새벽 2~3시경에 깨면 화장실에 갔다오면 그 다음부터는 다시 잠들기 힘들어 진다. 그래서 아침이면 몽롱하고 그 잠에서 깨기 위해 다시 커피를 마시는 일이 반복된다.

커피가 가진 카페인 성분은 두 얼굴로 나타난다. 뇌를 각성시키지만 반면 두통과 신경과민, 불안, 현기증을 가져다준다. 심장박동수를 증가시켜 가슴 두근거림, 혈압상승을 유발하기도 한다. 위산 분비를 촉진시키다 오히려 위궤양, 역류성 식도염 등 위 질환을 주기도 하고, 철분과 칼슘을 흡수를 방해해 빈혈이나 뼈의 성장을 저해한다. 한국인들은 칼슘섭취가 부족한데 하루에 3잔 이상 커피를 마시면 칼슘의 배출로 오히려 독이 되기도 한다. 이런 커피가 알츠하이머 질환을 예방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연구결과도 흥미롭다.

건물마다 커피 전문점이 많이 생겨나고 점심시간이면 직장인들이 테이크아웃 컵을 손에 든 채 길을 걷는 광경을 보게 된다. 매일 마시는 일회용 잔에 들어있는 커피, 간편하게 먹는 컵라면, 배달음식의 랩 포장은 공통점이 있다. 이들은 코팅용 환경호르몬의 영향을 받는다. 그래서 휴대용 개인 텀블러를 이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환경호르몬을 완벽하게 배제하면서 살기는 어렵지만 최대한 멀리하는 습관이 중요하다.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사용하는 일회용 컵, 캡슐과 캔 음료 등에서 나오는 쓰레기를 생각하면 커피가 만들어내는 폐기물의 양은 엄청나다. 음악을 들으며 마시는 커피 한잔의 여유와 사색이 인생을 열정을 쏟은 창조적 에너지로 승화되기를 기대하지만 1g의 원두에서 커피는 0.002g, 나머지는 커피 찌꺼기로 버려진다. 기후위기의 환경 변화에서 비상행동이 필요한 때에 지구의 미래를 생각하며 이것을 재활용하는 지혜가 필요해 보인다. 일회용 컵 등 쓰레기를 최소화함으로 환경호르몬도 줄이고 지구도 보호할 수 있다. 한 잔의 커피의 유혹 앞에서 지혜롭게 일회용 컵 대신 머그컵이나 텀블러를 사용해 일회용품의 사용을 줄이는 습관은 어떨까 싶다.

이효상 원장(시인, 칼럼니스트, 사진작가, 서지학자, 근대문화진흥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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