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덕영 박사
조덕영 박사

‘함의 아들은 구스와 미스라임과 붓과 가나안이요’(창세기 10:6)

구스 후손들의 정착지

구스는 함의 자녀였다. 함은 노아의 두 번째 아들이었다. 함은 구스와 미스라임과 붓과 가나안을 낳았다. 함의 장남 구스의 후손들은 스바(세바, Seba)와 하윌라와 삽다와 라아마와 십드가였다. 스바는 남서부 아라비아에서 홍해를 건너 지금의 수단 지역으로 들어가 스바족이 되었다(시 72:10; 사 43:3; 사 45:14). 하윌라와 삽다와 라아마와 십드가도 모두 아라비아와 관련되어있다. 여기서 하윌라는 셈족 욕단의 아들 하윌라와는 다른 인물이다(창 10:29; 대상 1:23). 삽다는 아라비아 고대 도시 “사바타”의 이름에 그 흔적이 남아 있다.

구스의 이들 네 자녀 가운데 창세기 10장은 라아마의 아들 스바(쉐바, Sheba)와 드단(Dedan)만을 소개하고 있다. 왜 이들만 소개되었는지 그 이유는 불분명하다. 하지만 구스의 후손 가운데, 라아마의 후손들은 창세기에 기록될 만큼 당시 잘 알려진 주목할 만한 가문이었음은 분명하다. 아브라함이 소실 그두라를 통해 낳은 여섯 자녀 가운데 욕산의 아들들 이름을 스바와 드단으로 지은 것도 이를 증명하고 있다(대상 1:32-33).

에디오피아의 조상이 된 구스

요세푸스는 구스가 에디오피아(주: 성경은 에디오피아, 일반 맞춤법은 과거에는 이디오피아, 요즘은 에티오피아로 표기, 여기서는 성경의 어법을 따름)인의 조상이라 전하고 있다. 칠십인 역(Septuagint)은 구스를 아이디오피아(Αἰθιοπἱα)로 번역하고 있다.

에디오피아(Ethiopia)는 “검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고 구스인들이 모두 검다는 의미는 아니다. 또한 구스 후손을 단순히 에디오피아만이라 보기도 어렵다. 구스는 또 다른 한 후손(아들?)을 두었다. 바로 중동의 중심에서 이름을 떨친 유명한 니므롯(Nimrod)이었다(창 10: 8-9; 대상 1:10). 이들 역사적 이름과 지명들을 살펴볼 때 구스 후손들은 아프리카 동부 지역과 아라비아 그리고 고대 앗수르 지역 등 폭 넓은 초기 정착지 지역에 포진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구약 성경에 나타난 에디오피아 구스족

성경은 구스족에 대한 몇 가지 정보를 알려준다. 구스는 구스 땅이름과 구스 사람의 이름으로 성경에 자주 등장한다. 특별 이스라엘 민족과의 꾸준한 접촉 역사를 보여주고 있다. 모세 오경 뿐 아니라 역사서(대상, 삼하, 대하, 에)와 경험서(욥, 시), 선지서(암, 나, 습)에 두루 등장하고 특별히 대선지서(사, 렘, 겔, 단)에 많이 등장한다.

구스가 이스라엘 민족과 접촉이 많았다는 증거는 모세가 구스 여자를 아내로 취하여 아론과 미리암에게 비방을 받았다는 기록을 보아도 알 수 있다(민 12:1). 마하나임 근방에서 큰 전투가 벌어졌을 당시 다윗 왕에게 압살롬이 죽은 소식을 알려주려 달려간 자도 구스인이었다(삼하 18:21-23).

시드기야 왕 당시 바벨론이 예루살렘을 포위하였을 때(기원전 587년경), 이것을 ‘하나님의 징계로 여기고 바벨론에 항복해야 된다’고 예언한 것을 못마땅하게 여긴 대적자들에 의해 선지자 예레미야가 물 없는 우물 진흙구덩이에 던져졌을 때 그를 구한 궁중 내시 에벳 멜렉(Ebed-Melech)도 구스 사람이었다. 그는 시드기야 왕이 베냐민 문에 앉아 있을 때에 용감하게 왕에게 나아가 ‘예레미야를 대적하는 자들은 악하다’고 말한 사람이었다. 그는 ‘성 안에 빵이 다 떨어졌으니 우물 속에 그대로 두면 잘못하다가는 선지자가 굶어 죽는다’고 시드기야 왕을 설득, 간청한다. 결국 그는 우물 속에 던져진 예레미야 선지자에게 헝겊과 낡은 옷을 밧줄과 함께 내려 주어 그를 우물 속에서 끌어올린 의리의 사람이 되었다(렘 38:7-13). 예레미야 38장의 내용은 예레미야가 위험을 무릅쓰고 담대히 자기를 구해 준 이 구스 사람의 의로운 행동에 얼마나 감격하였는지를 잘 표현해주고 있다.

구스족과 이스라엘의 접촉사 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주요한 역사적 사건 가운데 하나는 바로 솔로몬 왕과 시바 여왕의 역사적 만남이 있다. 고대 아랍 국가였던 시바의 여왕은 직접 솔로몬을 찾아 왔다. 성경은 스바 여왕이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미암은 솔로몬의 명성과 지혜를 어려운 문제를 통해 친히 그를 시험코자 함이었다 했다(왕상 10: 1-13; 대하 9:1-12). 또한 예루살렘에 이르니 수행하는 자가 심히 많고 향품과 심히 많은 금과 보석을 낙타에 실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가 솔로몬에게 나아와 자기 마음에 있는 것을 다 말하매 솔로몬이 그가 묻는 말에 다 대답하였으니 왕이 알지 못하여 대답하지 못한 것이 하나도 없었다. 스바 여왕은 솔로몬의 모든 지혜와 그 건축한 왕궁과 그 상의 식물과 그의 신하들의 좌석과 그의 시종들이 시립한 것(지위에 따라 질서 있게 늘어선 것)과 그들의 관복과 술 관원들과 여호와의 성전에 올라가는 층계를 보고 크게 감동하였다.

스바 여왕은 자신이 자기 나라에서 들은 솔로몬의 행위와 지혜에 대한 소문이 사실이라고 고백한다. 스바 여왕은 본래 솔로몬의 명성을 신뢰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친히 본즉 자기가 들었던 솔로몬의 명성은 들은 내용의 절반도 못되니 솔로몬의 지혜와 복은 자신이 들은 소문보다 더하다고 고백하고 있다.

스바 여왕은 “복되도다 당신의 사람들이여 복되도다 당신의 이 신하들이여 항상 당신 앞에 서서 당신의 지혜를 들음이로다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할지로다 여호와께서 당신을 기뻐하사 이스라엘 왕위에 올리셨고 여호와께서 영원히 이스라엘을 사랑하시므로 당신을 세워 왕으로 삼아 정의와 공의를 행하게 하셨도다 하고 이에 그가 금 일백이십 달란트와 심히 많은 향품과 보석을 왕에게 드렸으니 스바의 여왕이 솔로몬 왕에게 드린 것처럼 많은 향품이 다시 오지 아니하였더라”(왕상 10: 1-13)고 기록하고 있다.

오빌에서부터 금을 실어온 히람의 배들이 오빌에서 많은 백단목과 보석을 운반하여 오매 왕이 백단목으로 여호와의 성전과 왕궁의 난간을 만들고 또 노래하는 자를 위하여 수금과 비파를 만들었으니 이 같은 백단목은 전에도 온 일이 없었고 오늘까지도 보지 못하였던 것들이었다. 솔로몬 왕은 왕의 규례대로 스바의 여왕에게 물건을 준 외에 또 그의 소원대로 구하는 것을 주니 이에 그가 그의 신하들과 함께 본국으로 돌아갔다.

이 놀라운 사건은 많은 에피소드와 아름다운 전승과 설화를 인류 역사에 남겨 놓았다. 이들 전승은 페르시아 전설과 에디오피아 왕국 그리고 이슬람 경전 꾸란에 까지 변형된 모습으로 남아있다. 또한 많은 예술 작품 등으로 승화되어 지금까지 인구(人口)에 회자(膾炙)되고 있다.

그렇다면 이 스바 여왕의 나라는 과연 어디였을까? 북부 아라비아에서 시작된 ‘스바’는 기원전 2천 년경 중엽 아라비아 남쪽으로 이동하여 정착했다고 알려진다. 옛 스바족들의 고대 왕국 ‘사바’는 지금의 예멘 지경인 아라비아 반도 남서부 구석에 위치하여 있다. 즉 스바 여왕 당시의 영역은 지금의 아라비아 남부(예멘) 지역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그 시바 여왕의 영역은 홍해 건너편 에디오피아에까지 이르렀다.

성경은 이 에디오피아인들을 늘 의리있고 신앙에 열려있는 사람들로 묘사하고 있음을 주목하지 않을 수없다. 솔로몬과 시바 여왕의 접촉과 전도자 빌립 초대 집사를 만난 구스의 여왕 간다게의 모든 국고를 맡은 큰 권세를 가진 내시도 이사야서(53장, 행 8장 26-39절 참조)를 읽다가 기꺼이 복음을 받고 세례를 받았다. 이후 에디오피아는 지금까지 성경적 신앙속 기독교 신앙을 자신들의 종교적 전통으로 이어오고 있다. 성경 속 사라진 법궤가 여전히 존재한다고 알려진 지역도 이곳 도시 악숨의 성 마리아 교회이다. 물론 검증된 것은 아니다.

구스 후손 니므롯, 수메르와 앗수르와 바벨론의 초기 개척 조상이었을까?

성경은 또 다른 구스 후손도 있었다고 소개한다. 구스가 낳았다고 소개된 니므롯은 이 세상 최초의 정복자요 용사였다. 그의 영역은 시날 땅 바벨론, 에렉, 악갓, 갈레에서 시작하어 앗수르, 니느웨, 르호봇 일, 갈라, 그리고 니느웨와 갈라 사이에 세운 큰 성 레센까지 이르렀다.

시날은 바벨론을 의미하는 말이며(단 1:2), 에렉(일명 우룩)은 바벨론 동남쪽 40킬로미터 떨어진 전설의 왕 길가메시(주전 3천년 경) 고향이며, 악갓은 수메르 제국과 동의어가 되어버린 아카드 제국의 지역이다.

탈무드에 따르면 갈레는 에렉과 바벨론 사이에 위치한 ‘닙푸르’(Nippur)의 중요한 도시였다. 니느웨는 요나 선지자가 간 바로 앗수르 왕국의 수도로 우리나라의 유엔 파병군 자이퉁 부대가 주둔하고 있는 모술 지역 근방을 말한다. 앗수르 전설은 “니누스”를 앗수르의 건설자라 한다. 니누스는 “니므롯”을 말함이 분명하다. 그래서 미가 선지자는 앗수르를 ‘니므롯의 땅’이라 불렀다(미가 5:6).

성경(공동번역)은 니므롯을 여호와께서 알아주시는 용감한 사냥꾼이 되었다고 묘사하고 있다. 니므롯은 “여호와 앞에 니므롯 같이 용감한 사냥꾼”이라는 유행어까지 생기게 할 만큼 고대에 유명한 자였다.

고대 수렵 상황을 모르는 우리들이 “주님 은혜로(=앞에서, 리프네 아도나이) 용감하고 힘센 사냥꾼이 되었다”는 이 말의 본뜻을 구체적으로 이해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다만 다음과 같은 기록이 도움이 될 수 있다. 700년경 나타난 히브리학자들이 해석한 사본인 예루살렘 탈굼(Targum)은 니므롯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그는 사냥과 여호와 앞에서 악함으로 유명했는데 이는 그가 사람의 아들들에 대한 사냥꾼으로서 그들에게 이렇게 말했기 때문이다. ‘여호와의 판단을 떠나 니므롯의 판단을 따르라!’ 그러므로 속담에 이르기를 아무는 강한 자 니므롯처럼 사냥과 여호와 앞에서 악함에 있어 강하다’고 했다.”

이 말은 니므롯이 사냥에 능한 자이면서도 여호와 하나님 앞에 불순종한 자로 유명해지게 되었음을 암시하고 있다. 육식이 허락된 당시 사냥이 무조건 악한 행위는 아니었으나 능란한 사냥 솜씨는 곧 권력 지향의 힘을 누리게 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니므롯은 그것을 선하게 사용하지 않고 인간이 가진 죄성 가운데, 타인을 억압하고 권세를 누리기 위한 폭력적 권세로 사용했음이 분명하다. 홍수 이후 최초 문명의 땅이었던 시날 땅 바벨론(바벨)의 초기 주인은 니므롯이었다. 즉 이곳에 성읍을 건설하고 바벨탑을 세운 사람들의 원조는 분명 니므롯이었다. 인류는 여기서 언어의 분산을 경험하고 온 지면에 흩어지게 되었다.

그렇다면 구스의 후손들은 요세푸스가 말하듯 단순히 에디오피아만이 아닌 지금의 이집트 남부 수단 지역과 아라비아 남부 그리고 중동 앗수르 지역까지 고루 정착하였으며 그 곳을 바탕으로 아프리카 전역과 유프라테스 강과 앗수르의 티그리스 강을 따라 역사 속 아카드, 바벨론 그리고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 강의 하류 수메르까지 비옥한 초승달 지역의 핵심 지역에 일찌감치 포진하였다고 볼 수 있겠다. 이 지역들은 세상 학문과 성경 모두가 인류 문명 발생 지역으로 주목하고 있는 곳들이다. 문명이 개화하면서 니므롯 이후 이 비옥한 초승달의 메소포타미아 지역에는 또 다른 다양한 민족의 후손들이 찾아와 정착하였다.

인간의 죄성과 아브라함과 창조주 하나님의 섭리

아브라함도 메소포타미아 수메르 지역 갈대아 우르 출신이었다(창 11장). 유프라테스 강 건너 이 도시는 1854년 J.E. 테일러가 오늘날 텔엘무카이아르라는 지역의 폐허를 조사하면서 확인되었으며 1922부터 1934년까지 발굴이 재개되었다. 수많은 문자 파편과 사원과 지구라트 등이 확인 된 이곳 유물 가운데는 달의 신과 광명의 신에게 바쳐진 드넓은 성단의 잔해들도 발견되었다. 이스라엘 민족 시조 아브라함의 조상들이 달 신 등 여러 신을 섬기던 우르 사람들이었다는 성경 기록대로였다(수 24:2). 수메르 사람들의 일곱 신(하늘, 산, 바람, 달 물, 태양, 금성) 가운데도 달이 있었다.

우르 발굴의 압권은 “사자(死者)의 궁전”이라 불릴만한 왕실 분묘의 발굴이었다. 이곳에서는 호화로운 금제 장식과 보석으로 만든 장신구뿐 아니라 가구와 악기와 무기들과 각종 보물들이 쏟아졌다. 70기가 넘는 순장(殉葬) 유골도 발굴되어 큰 충격을 주었다. 고대 순장 풍습은 동서양을 가리지 않는다. 우리의 고조선, 신라, 가야 등의 무덤에서 보이는 순장 풍습도 다를 바 없다.

영원한 저 세상을 향한 인류의 집착은 죄성과 더불어 권력이 강화되면서 일찌감치 폭력적으로 발휘되었던 것이다. 우리 민족이 욕단과 수메르를 닮아 문명화 된 복된 민족이라는 자화자찬 격의 비성경적 주장은 이제 이만 그쳐야 한다. 이렇게 인간 중심의 역사란 그저 죄악과 피투성이의 역사요 잔인하고 우울하며, 그저 영원의 삶을 향해 발버둥 치다가 결국은 창세기 마지막 구절(창 50:26)처럼 입관(入棺, in a coffin)의 비극과 심판(히 9:27)으로 막을 내리는 슬픈 역사일 뿐이다.

하나님은 이 죄악 된 구제불능의 우르에서 불쌍한 인간을 위해 아브라함을 이끌어내었다. 그리고 그 손을 친히 잡고 구원의 여정을 시작하신다. 그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다. 저주는 처절해도 온전히 끊어야 한다(신 21:23; 갈 3:13). 사랑이신 창조주 하나님은 절대 주권의 은혜와 칭의와 믿음으로 이 세상 폭력에 기꺼이 맞선 세상과 다른 십자가 구속의 여정을 시작하신 것이다. 이 피 묻은 십자가의 손을 요한처럼 알고 사도 바울처럼 믿는 것이 바로 신앙의 신비다. 이 십자가 신비가 바로 성경 66권의 일치된 주제다. 이 신앙의 파라독스는 세상에는 숨겨진 진리기에 이 세상 지식만으로는 결코 알 수가 없다. 오직 은혜 속 믿음으로만 열린다. 그러기에 그리스도인들이여 이 진리 안에서 자유함을 가져라. <계속>

조덕영 박사(창조신학연구소 소장, 조직신학, 전 김천대·안양대·평택대 겸임교수)

  • 네이버 블러그 공유하기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press@cdaily.co.kr

- Copyright ⓒ기독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독교 종합일간지 '기독일보 구독신청 바로가기'

#조덕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