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샛별 경기농아인협회 미디어접근지원센터
이샛별(경기농아인협회 미디어접근지원센터)

나는 엄마다. 배 아파 낳은 아들은 나와 남편의 유전자를 고스란히 물려받았지만, 다른 게 한 가지 있다. 바로 음성언어를 사용하는 것이다.

아들은 집에서 부모와 같이 있을 때 몸동작을 동원해 또박또박, 천천히 엄마, 아빠가 사용하는 수어와 음성언어로 자기의 생각을 표현한다. 맞벌이인 부모의 품을 잠시 떠나 있는 어린이집에서는 선생님과 친구들 사이에서 음성언어로 재잘재잘 말을 배우느라 여념이 없을 것이다.

나는 아들 예준이와 비슷하면서도 다르게 성장했다. 태어나자마자 달팽이관 기형으로 세상의 소리를 듣지도 배우지도 못했다. 잔존 청력이 있어 청각 보조 기기인 보청기로 소리의 유무만 느낄 수 있었다. 소리가 있거나 없는 구분은 가능했지만, 어떤 소리인지 구별할 수 없었다. 그래서 부모의 언어를 따라 배우며 성장하는 것이 너무 어려웠다. 어릴 때부터 장애를 스스로 극복하며 크면서 부정적인 감정을 많이 배우기도 했다. 그 경험 덕분에 엄마가 된 나는 예준이가 최대한 즐겁고 기쁜 마음으로 부모의 언어를 배웠으면 했다.

어느 날 예준이가 동화책 한 권을 집어 들고 내 무릎에 앉았다. 예준이는 책을 같이 보면서 중간중간 엄마의 얼굴을 돌아봤다. 엄마의 표정이 어떤지, 무슨 수어가 나올지 궁금했던 모양이다. 그 마음을 알아챈 나는 평소보다 크게, 우스꽝스럽게, 오버해서 아이의 웃음이 터질 때까지 반복했다. 아들의 시선이 수어를 따라 움직이더니 이내 귀여운 손가락으로 엄마의 손가락을 따라 하기 시작했다. 아들의 모습을 보는 순간 미소가 번졌다. 둘의 웃음소리가 거실을 채우면서 서로의 마음도 더 가까이 이어졌다. 이것이 '소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다른 게 뭐가 어때서?"

엄마와 아들로 만난 관계에서 언어가 다르다는 이유로 우리의 사이에 균열은 생기지 않았다. 오히려 서로의 언어에 공감해 주고 눈 맞추며 진심으로 대하니까 사랑이 더 굳건해졌다.

최근 발생한 아동학대 사건을 보면서 서로의 관계에서 '미움과 증오, 어떠한 차이가 방해물이 되었을까' 하며 안타까웠다. 친부모든, 입양가정이든 사랑의 본질은 서로를 이해하는 데에서 시작한다고 본다. 이해하기 힘들어서, 이해하기 싫다는 이유로 서로를 밀어내느라 지쳐서 결국 비극을 만난 것이 아닐까?

사랑은 서로를 위해 자신의 반절 정도는 내려놓아야 한다고 배웠다. 나의 언어가 아들의 언어와 다르다고 해서 아들의 언어를 반쯤 포기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아들의 언어를 먼저 이해하고 수용하면서 나의 언어를 알려주는 마음이 진정한 소통으로 이어진 것처럼 말이다.

이샛별(경기농아인협회 미디어접근지원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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