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지영 이대서울병원 임상조교수
장지영 이대서울병원 임상조교수

얼마 전 몇몇 여성단체들이 낙태죄 폐지와 관련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99% 이상의 응답자들이 낙태를 처벌하면 안된다고 답했으며, 해당 조사 결과를 의견서 형태로 법무부, 보건복지부 등 관련 기간에 제출할 것이라 발표했다. 하지만 설문조사의 내용을 살펴보면 ‘답정너(답은 정해져 있고, 넌 대답만 하면 돼. 라는 뜻의 신조어)’에 가까운 흑백 질문들로 구성된 조사임을 알 수 있다.

다음은 설문조사에 사용된 몇 가지 질문이다.

질문 2-1. 낙태죄는 어떻게 바뀌어야 할까요? 선택지: 처벌은 안된다 (99.2%) 또는 처벌해야 한다(0.8%),
질문 2-2. 낙태죄는 어떻게 바뀌어야 할까요? 선택지: 여성 권리 우선(99.8%) 또는 국가 주도의 인구 통제 우선(0.2%),
질문 6-1. 정확한 임신 주수 파악이 어렵다면, 안전한 임신 중지를 위한 법은 어떻게 만드는 것이 좋을까요? 선택지: 여성의 상황에 맞춰 안전한 의료 제공(99.9%) 또는 국가가 정한 기준에 따라 여성을 통제하고 어기면 처벌(0.1%).

과연 이런 질문들을 통해 응답자들의 낙태에 대한 생각을 온전히 담아 낼 수 있을까?

사실 여론조사의 이름으로 행하지는 많은 조사들이 선택 편파성을 적절히 통제하지 않은 채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조사들은 질문을 교묘히 설계함으로써 조사자의 의도를 반영한 왜곡된 결과물을 생성할 뿐 아니라 이를 전체 국민의 생각인 양 호도할 수 있다. 그리고 이를 근거로 입법 과정에까지 개입하려는 것은 매우 우려스러운 일이다.

이러한 왜곡된 여론 조사의 위험성은 미국 프로라이프 운동에서도 일찌감치 경험한 바이다. 과거 미국에서 시행된 대부분의 여론조사는 응답자에게 “낙태와 관련하여, 당신은 프로초이스와 프로라이프 중 어디에 해당합니까?” 또는 “당신은 로 대 웨이드 판결을 지지합니까?”라고 물었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흑백 논리적 질문이나 찬성 또는 반대의 범주로만 의견을 묻는 것은 낙태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를 담지 못할 뿐 아니라 예외적인 상황에서만 낙태에 찬성하는 사람들을 프로초이스로 분류함으로써 낙태에 찬성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 보이게 하는 결과를 낳았다.

한 예로, 2014년 갤럽 조사에서는 응답자의 47%가 본인을 프로초이스라고 답했고, 46%는 프로라이프라고 답했다. 반면 낙태의 허용 사항에 대한 세부 질문에서는, 모든 경우 합법적이어야 한다가 28%, 근친상간, 강간 및 산모의 건강 문제로 임신을 지속할 수 없을 때와 같은 특정 상황에만 허용되어야 한다가 50%, 모든 경우 불법이여야 한다라는 응답이 21%로 나왔다.

두가지 결과를 종합해보면, 특정 상황에서만 낙태를 허용해야 한다는 사람의 약 반 정도가 자신을 프로초이스로 인식했음을 보여주는 결과인데 이는 통계 해석에 있어 두가지 문제점을 보여준다. 우선 미국의 전체 낙태 건 수 중 약 1.5%만이 강간 및 근친상간으로 인한 경우임을 고려해 볼 때, 이를 제외한 98%의 낙태에 찬성하지 않는 응답자들을 프로초이스로 분류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또한 응답자들이 프로라이프/프로초이스에 대한 정확한 정의를 알지 못한 상황에서 프로초이스(낙태 찬성) 또는 프로라이프(낙태 반대)로만 자신을 식별하도록 요청했을 때 실제보다 프로라이프를 지지하는 사람들의 규모가 축소되어 통계가 왜곡될 수 있다.

이번 설문조사를 기획한 여성단체의 조사항목에서도 정확한 의학적 지식을 알지 못하는 응답자들에게 답을 요구한 경우가 있었는데,

6. 현재 병원에서는 초음파 검사 또는 마지막 월경 시작일을 통해 임신주수를 추정하는데, 현재의 추정 방식으로 여성의 임신 주수를 100% 정확히 알 수 있을까요? 선택지: 정확하게 알 수 없다 (91.4%) 또는 정확하게 알 수 있다 (8.6%)가 그 경우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그 어떤 의학적 검사도 100% 정확도를 보일 수 없다는 것은 상식적인 이야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부인과 전문의들은 기존의 방법들이 매우 높은 정확도로 임신 주수를 추정할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검사의 내용을 정확히 알지 못하는 일반 여성들에게 의학적 전문가 집단에게 자문해야 할 내용을 설문이라는 명목으로 묻는 것은 숨겨진 의도를 의심할 수 밖에 없다.

몇몇 여성단체는 이런 설문조사를 통해 대다수의 국민들은 낙태에 찬성하고 낙태죄 폐지를 지지한다고 주장하지만, 이와 상반된 결과들도 존재한다. 2018년 헌법재판소 판결을 앞두고 진행된 낙태죄 폐지 찬성 청와대 청원은 23만명(온라인 서명)이었던 반면, 낙태죄 폐지 반대 국민서명에는 121만명의 시민들이 자필로 서명했다. 뿐만 아니라 낙태법 위헌 판결 후 성산생명윤리연구소가 여론조사공정에 의뢰해 전국 만 19세 이상 남녀 1001명을 대상으로 2019년 실시한 전화 설문조사(신뢰수준 95%, 오차범위 ±3.1%p)에 따르면, “무조건 낙태를 허용해야 한다”는 응답은 17.5%에 불과했다. 응답자의 29%는 산모의 생명 위험을 제외한 모든 낙태를 반대했고, 임신 초기인 12주까지 허용하자는 응답이 23.4%, 태아의 심장박동이 감지되는 6주 이전까지는 허용하자는 의견이 22.7%로 뒤를 이었다.

여러 의미에서 프로라이프 운동은 왜곡된 사실과 맞서는 진실의 싸움이다. 우선은 태아를 잠재적/불완전한 인간으로 보는 시각, 생명보다 사생활권이 우위에 있다는 생각에 대응해야 한다. 생명은 수정 순간 시작되며, 태아와 여성은 모두 개별적인 고유의 인격체이다. 여성의 자기결정권은 중요한 가치이지만, 여성의 자기결정권이 아기의 생명권보다 우위에 존재하는 가치는 아니다.

또한, 낙태 찬성 진영 측의 여론 왜곡에도 지혜롭게 대처해야 한다. 잘못된 조사들을 감시하고 대응해야 할 뿐 아니라, 국민들의 실제적인 생각을 잘 반영할 수 있는 조사 방법도 개발해야 한다. 때로는 거짓이 진실보다 강한 힘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영원히 승리할 수는 없는 법이기에 오늘도 우리는 진리에 기반한 진실을 외친다.

장지영(성산생명윤리연구소 연구팀장, 이대서울병원 임상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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