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지영
장지영 교수

2018년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약 60%의 미국인들은 ‘모든 경우 또는 대부분의 경우 낙태는 합법적이어야 한다’고 답했다(출처: 퓨 리서치 센터). 반면 여론과는 대조적으로 트럼프 대통령은 선거운동 시기부터 지속적으로 낙태 반대 입장을 명확히 밝히고 있으며, 2019년 2월 국가 조찬기도회에서는 예레미아 1장 5절 말씀 “내가 너를 모태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배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성별하였고…”를 인용하며 “생명의 존엄성과 신성함을 소중히 여기는 문화를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과거 낙태를 찬성한다고 밝혔던 트럼프 대통령이 강력한 낙태 반대자가 된 이면에는 보수주의 기독교 그룹의 ‘복음주의 생명운동’이 관련되어 있다.

미국에서 낙태 문제는 문화 전쟁(culture war)이 벌어지는 대표적인 전투지이다. 미국의 건국 이념인 유대 기독교적 가치와 문화가 쇠퇴함에 따라 미국의 크리스천들은 다원주의 현실에 적응하여 살 것인지, 아니면 종교 자유의 권리를 지킬 것인지에 대한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된다. 과거의 사회적 갈등이 전통 도덕과 개인 자유의 충돌이었다면 현재의 갈등은 자유 유형의 상충, 즉 권리의 충돌인데 크리스천의 종교의 자유와 이를 적대시하는 또 다른 권리(동성결혼 합법화, 성정체성에 대한 차별금지법 등)가 충돌하는 양상이다.

남침례교를 중심으로 한 미국 복음주의 생명운동 그룹은 이 새로운 갈등에 직면하여 과거 계몽되어야 할 평신도의 모습에서 탈피하여 갈등을 해결하는 주체로서 ‘종교의 자유를 수호’하고 있다. 그리고 기독교적 권리를 인식한 개개인들은 지배적인 도덕적, 문화적 세력을 형성함으로써 정치적 의결을 행사하는 데까지 지경을 확장하였다.

낙태에 대한 대중의 의식을 전환하는데 있어 중심적 역할을 한 인물은 복음주의 선교사, 장로교 목사, 기독교 변증가인 프란시스 쉐퍼(Francis A. Schaeffer, 1912-1984)이다. 그는 낙태 자유화를 “악의적 세속 국가의 결과물(product of malevolent secular state)”로 평하며 낙태는 국가의 부도덕, 무질서의 결과이자 신학적, 정치적, 사회적 문제로 인식했다. 따라서 낙태 반대는 기독교의 고유 가치인 가정의 가치를 회복하는 것이며, 도덕적 무질서와 세속적 사법부에 대한 투쟁이자 크리스천 중심의 법질서를 회복하는 길이라 설파했다. 또한 낙태는 영아살해 및 안락사와도 연결되는 인간 존엄성에 대한 문제임을 지적했다. 이러한 쉐퍼의 논지는 뉴딜주의에 입각하여 인권, 복지, 사회적 정의의 명분으로 낙태를 반대한 카톨릭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약자이자 소수자인 태아를 보호해야 한다는 카톨릭의 논지는 뒤이어 등장한 페미니즘 운동의 여성의 신체적 자기결정권, 평등권과 상충되며 점차적으로 입지를 잃게 되었고 1970년대 말-1980년 낙태 반대 운동의 주류 그룹을 재편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이러한 의식 전환이 있은 후 미국 보수주의 기독교계의 대표적 목회자이자 복음전도사인 제리 파웰(Jerry Falwell, 1933-2007)은 크리스천의 정치 참여에 대한 관심을 고양시킨다. 파웰이 설립한 ‘도덕적 다수(Moral Majority)’는 가족을 중시하며 낙태 및 동성애 반대, 기독교인의 투표 독려, 보수주의 후보자를 지지, 후원함으로써 기독교적 가치를 현실 사회에서 실현하고자 하였다. 실제로 도덕적 다수는 기독교 학교 면세를 철회하고 이스라엘-이집트 간 캠프 데이비드 협정 중재를 이끈 지미 카터에 대한 지지를 철회함으로써 레이건 대통령 당선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당시 전체 기독교인의 2/3 투표율 달성).

이에 따라 복음주의 크리스천들은 종교적 권리와 자유를 정치적 권리로 확대하고자 하였으며, 정치적 보수주의자와의 협력을 통해 박해 받는 소수자에서 벗어나 도덕적 다수 그룹이 되기 위한 도약을 시도한다. 또한 단순히 개인의 도덕성에 호소하여 설득을 이끌어낸 과거의 방식에서 탈피하여 낙태를 방치하는 것은 생명권 보호에 대한 국가의 의무 위반이자 가족 가치에 대한 공격이라는 견고한 반론적 틀을 확립한다.

이 시기 레이건 대통령은 신보수주의(복음주의 기독교 우파) 그룹과 본격적인 협업을 시작하였고 유대-기독교, 반공 그리고 가정을 중시하는 당의 정체성을 명확히 한다. 당 내 기독교 보수주의자들은 낙태 이슈를 통해 연합하였고, 이로 인해 많은 프로초이스 공화당원들이 출당하며 당의 공적 이미지와 정체성에 변화가 온다. 1980년부터 2016년까지 밥 돌(Bob Dole)을 제외한 공황당 내 모든 대선 후보가 낙태를 반대했으며, 레이건 대통령은 1984년 세계금지명령을 통해 해외 낙태 시술을 지원하는 비영리단체에 대한 정부 지원을 금지시키는 법을 통과시킨다,

복음주의 생명운동 그룹은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부분 분만 낙태(임신 20주 이후 시행되는 낙태 방법으로 초음파 가이드 하에 시술자가 포셉으로 머리를 제외한 아기의 몸 전체를 분만시키고 흡입 튜브로 아기의 뇌를 흡인하여 두개골을 와해시킨 후 죽은 아기를 산도를 통해 배출시키는 방법, 빌 클린턴 대통령 재임 시 승인)를 금지시키는 데도 기여하였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후 복음주의 생명운동 그룹에 힘입어 낙태를 제한하는 여러 법률 및 제도를 통과시켰다. 2017년에는 낙태를 제공하는 국외 단체에 대한 세금 지원을 금지하는 멕시코시티정책에 서명하였고, 유엔인구기금 지원을 중단하였다. 유엔 인구기금지원은 155개국의 모자보건, 가족계획 사업을 지원하는 기금으로 2015년 연례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은 영국, 노르웨이에 이어 3번째로 많은 7천 500만 달러(843억 원)의 기여금을 냈다. 당시 톰 새년 국무부 정무차관은 “유엔인구기금으로 간 지원금이 중국의 강제 낙태나 비자발적 피임 프로그램의 운영에 쓰이고 있다”고 철회 배경을 설명했다.

2018년에는 보건사회복지부 산하 양심과 종교자유국을 신설하고 25개의 양심·권리 보호조치를 통해 낙태 및 의사 조력 자살 거부권을 합법적으로 허용하였다. 2019년에는 타이틀 엑스의 지원을 받는 클리닉에서의 낙태 알선을 금지하는 정책을 추진하였다. 타이틀 엑스는 정부의 가족 계획 프로그램으로, 유방암, 자궁경부암, 성병 검사 및 치료 등에 매년 2억8600만 달러를 지원하는데 전체 클리닉의 40%는 저소득층 여성에게 임신중절 수술을 지원하는 가족계획연맹이 운영하고 있다. 이에 워싱턴 주가 트럼프 행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으며 1심 연방법원이 일종의 가처분 조치인 예비금지령을 내렸으나 2심 법원은 연방 정부의 손을 들어줬다. 또한 많은 논란 끝에 태아 조직을 이용하는 연구를 제한하는 정책을 통과시키기도 했다.

현재 복음주의 생명운동의 가장 큰 목표 중 하나는 ‘로 대 웨이드’의 위헌 판결을 이끌어 내는 것이다(위헌 판결은 낙태를 불법화 하는 것은 아니지만 개별 주의 낙태법을 강화하는 근거가 된다). 미국 연방대법원의 대법관은 대통령의 지명과 상원의 권고와 동의에 따라 임명되지만 연방대법원은 정치적으로 중립적인 기관이며 국민들의 정서에 반한 독자적 의견을 제시하는데 한계를 지닌다. 따라서 ‘로 대 웨이드’의 위헌 판결을 위해서는 국민의 의식을 변화시키는 것이 선행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이를 위해 추후의 활동은 정치적 그룹(유권자 조직, 입법/입안), 직접 활동 그룹(낙태 공급 감소, 프로라이프 단체 간 커넥션 증대), 공공 교육 그룹(낙태에 대한 대중의 인식 전환, 목회자와 평신도 교육), 그리고 개인 활동 그룹(임산부와 직접적 교류, 실질적 사회, 경제적 문제 해소를 통한 낙태 수요 감소)으로 구체화 및 세분화 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성경은 진리임을 인정하고(공리주의적 사용에 반대), 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그리스도의 주되심을 인정하며(현실정치 참여 등), 인간성 상실에 도전하여(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의 존엄성 수호), 궁극적으로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데 힘을 쏟아야 할 것이다.

미국의 복음주의 생명운동 그룹은 ‘생명권 수호’라는 종교적 권리와 태아는 독립적이며 고유한 생명체라는 명확한 의학적 사실을 통해 낙태에 대한 논점을 재정비하여 험난한 투쟁을 지속하고 있다.

장지영(성산생명윤리연구소 학술연구팀장, 이대서울병원 임상 조교수)

* 이화여대 의과대학 졸업 후 동대학원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수여했다. 현재 이화여대 서울병원 임상 조교수로 재직 중이며, 성산생명윤리연구소 연구팀장, 기독교 보수주의 청년단체 트루스포럼의 이화여대 대표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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