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규 목사
▲이동규 목사(앵커한인교회 담임)

[기독일보=칼럼] 눈은 몸의 지체에서 소중합니다. 눈은 모든 육체의 시각 기관이며, 눈으로 인하여 보고 본 것이 머리로 들어가 생각하게 됩니다. 만약 우리가 볼 수 없다면 단순히 들음으로 상상을 하게 됩니다. 모든 사람들에게는 두 가지의 눈이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 세상의 피조물들을 볼 수 있는 눈이며, 다른 하나는 영의 세계를 바라볼수 있는 영적인 눈입니다.

옛말에 ‘몸이 천 냥이면, 눈은 구백 냥’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눈이 이처럼 귀하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지요. 우리의 육신의 눈이 귀하듯이 영적인 눈도 참으로 소중합니다.

"지금 우리의 눈은 건강합니까? 그 당신의 눈은 지금 무엇을 보고 있습니까?”

육신의 눈이 아무리 떠져 있어도 제대로 볼 것을 보지 못한다면 소경이나 마찬가지 입니다. 눈은 그 사람의 마음의 빛이라고 합니다. 그 눈이 무엇을 보고 생각하고 판단 하느냐는 본인이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그 육신적인 눈으로 우리는 많은 것을 보고 판단을 합니다.

성경에는 눈에 대해 참으로 많은 내용이 나옵니다.
“이 백성의 마음으로 둔하게 하며 그 귀가 막히고 눈이 감기게 하라 염려컨대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서 고침을 받을까 하노라” (이사야 6:10)

그뿐 아니라 비유적인 것으로도 표현을 하는데 눈은 인식하는 능력을 말하기도 합니다. 시편 기자는 말하기를 “귀를 지으신 자가 듣지 아니하시랴 눈을 만드신 자가 보지 아니하시랴”(시 94:9)고 언급합니다.
“대답하되 두려워하지 말라 우리와 함께한 자가 저와 함께한 자보다 많으니라 하고 기도하여 가로되 여호와여 원컨대 저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 하니 여호와께서 그 사환의 눈을 여시매 저가 보니 불말과 불병거가 산에 가득하여 엘리사를 둘렀더라” (왕하 6:16)

'영의 눈'을 열었다는 말입니다. <요한복음 3장 3절>에 예수께서 니고데모에게 주신 말씀 중에 '하나님 나라를 보는 눈'(요 3:3)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요한 3:3)

<누가복음 22장>에 엠마오의 두 제자도 영안이 열리지 않았기 때문에 무거운 슬픔과 탄식만을 갖고 있었습니다. 지도자였던 예수님도 죽고 그냥 터벅터벅 길을 내려가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영안이 열려서 예수님을 보게 되었고 예수님의 부활을 믿게 되었을 때 그들은 오던 길을 되돌아가서 남은 제자들에게 알리고 주님을 전하는 강력한 전도자들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육신의 눈이 아닌 영의 눈으로 내 옆에 주님이 동행 하고 계시다는 것을 믿을 때 우리는 두려움을 극복하고 승리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영적인 싸움은 오래전부터 시작되었습니다.

터어키인들의 행운을 상징하는 악마의 눈을 아십니까? 이 악마의 눈을 몸에 지니고 다니면 화(禍)가 따르는게 아니라 '나자르 본주'에 갇혀 있는 '악마의 눈'이 가장 센(힘) 악마이기 때문에, 다른 악마들이 그 눈을 보고 '줄행랑을 친다'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유대인들은 예수님께서 귀신을 내쫓을 때 귀신의 왕 바알세불의 힘을 빌어 귀신을 내쫓았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귀신이 귀신을 내쫓으면 그 집은 망한다고 하셨습니다.

정말 필요한 것은 영적인 눈인데 오늘날 목회자나 교계지도자 그리고 평신도에 이르기가지 과연 얼마나 영적인 눈이 띄여져 있어 영적인 올바른 것을 보느냐 입니다. 아무리 육신의 눈이 좋고, 열려있어도 영의 눈이 소경이라면 우리는 진정으로 볼것을 보지 못하는 소경이나 다름 없는 것입니다.

자칭 그리스도인들이여, 자칭주의 종들이여! 당신들의 영적인 눈이 열려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창조해주신 존귀한 눈으로 인하여 하나님 앞과 사람앞에서 범죄하십니까? 중지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들의 눈이 볼 것을 보아야 함에도 보지 못할 것을 보기에 많은 문제들을 야기 시키고 있습니다.

사단의 영과 하나님의 영을 분별할 줄 모른다면 우리는 어디에 잇어도 패배할수 밖에 없습니다. 오늘 이 사회의 현실, 이미 예견 된 것들입니다. 그러나 목회자들이 앞으로의 일들을 제대로 파악을 하지 못하고 분별력이 없다면 대처 할 수가 없을 거입니다.

왜 그리 목사들이 인간의 눈으로 보이는 것, 정욕과 권력과 명예욕과 허망한데 욕심을 두어 망하는지 도저히 이해가 가지를 않습니다. 사랑하는 목회자들이여 지금 당신들은 무엇을 보시나요?

눈 앞에 보이는 것, 발등의 불을 끄기에 급급하십니까? 정신차리시기 바랍니다. 정말 종말이 가까이 오고 있습니다. 바울은 <에베소서 4:17-18>에서 “그러므로 내가 이것을 말하며 주 안에서 증언하노니 이제부터 너희는 이방인이 그 마음의 허망한 것으로 행함 같이 행하지 말라 그들의 총명이 어두워지고 그들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그들의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 그들이 감각 없는 자가 되어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여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되”라며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진 상태의 인간의 심각한 특성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조상들은 믿음으로 하나님 말씀으로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이끌어 갔습니다. 목회자가 눈에 보이는 것만 가지고 사니 타락할 수 밖에 없고, 교회가 하나님을 위한 교회가 아니라 목사를 위한 교회로 변모해가니 세상의 질타를 받는 것이 아닙니까?

<요한삼서 11절>은 말씀합니다. "악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을 뵈옵지 못하였느니라." 영적인 세계를 무시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눈은 교회의 할 일들을 발견하는 사람(리더자, 하나님을 바라보게 함) 역할을 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영의 눈을 뜨시고 이세대를 분명히 파악하시고 분별하시어 성도들이 나갈길 교회가 나갈길, 이 세상이 나아갈길을 제시 하시기 바랍니다.

영적인 눈이 열리기 위해서 먼저, “회개하라, 기도하라, 말씀을 묵상하라, 그 가운데서 하나님을 만나라, 마음을 비우고 성령으로 채우(인간의 욕심과 정욕적인 욕망을 보려라)라는 것이 필요하며, 심령이 가난한자로서 이 세상것보다 우선순위를 하나님나라의 것에 두고, 사모해야 할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쓰시는 귀한 존재가 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디모데후서 2:15> "너는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며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 나를 위한 목사로서 살아가지 마시고 하나님을 위해, 하나님 나라를 위해, 하나님 백성을 위해 죽기까지 올바른 것을 보시고, 분별하셔서 이 세대를 올바른 곳으로 이끄시기 바랍니다.

■ 이동규 (DONG KYU LEE) 목사는...
 한국에서 칼빈대와 총신대 신대원을 졸업하고 미국 리버티신학대학(신학 석사)과 아주사페시픽대학(기독교교육학 석사)을 거쳐 풀러신학교에서 목회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고, LIFE UNIVERSITY와 WORLD CHRISTIAN UNIVERSITY 교수를 역임했다. 현재 앵커한인교회 담임목사로 섬기고 있으면 캘리포니아 CHONGSHIN UNIVERSITY THEOLOGICAL SEMINARY 총장 및 ALL THE NATION INTERNATIONAL EVANGELICAL GENERAL ASSEMBLY 총회장을 맡고 있다. 저서로는 <전인적 기독교교육>(2015.11. 밀알서원 펴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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