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석
▲이만석 선교사ㅣ한국이란인교회 담임목사

이슬람 인구가 급성장하고 있다. 이제 아무리 넉넉히 잡아도 금세기 중반에 이르면 이슬람은 세계 최대의 종교가 될 것이 확실시 된다. 그런데 이슬람이 들어가는 곳마다 폭력과 테러가 범죄행위가 급증하기에 이제까지 온건한 눈으로 이슬람을 바라보던 유럽인들까지도 이슬람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이 급속도로 퍼지고 있다.

사무엘 헌팅턴 박사는 20세기가 낳은 인류 최고의 정치학자였다고 할 수 있다. 23세부터 81세의 나이로 은퇴하기까지 58년 동안 하바드 대학 교수로 재임했다. 그는 역대 미국 대통령의 자문위원을 역임했기에 이론과 실제 정치의 최고 권위자였다고 해도 이의를 제의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그가 1993년 "포린 에페어즈"라는 잡지에 "문명의 충돌"이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그 논문은 냉전 시대가 끝나면 지구촌은 이슬람권의 인구폭발과 폭력적인 속성 때문에 기독교 유대교 불교 힌두 등 문명 간의 충돌이 일어날 것이라는 예언적 논문이었다.

그 때까지만 각기 다양한 문화를 가진 사람들이 서로 이웃의 다른 문화에 대해 인정하고 포용해 줌으로 인류는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이론이 선진화된 지성인의 태도라는 보편적인 믿음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 문명의 충돌론을 발표한 헌팅턴 박사는 학계의 웃음거리가 되어버리고 말았고 아무도 그 논문에 주목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 논문이 발표되고 8년 만에 미국에서 9/11 테러가 발생했다. 승객들이 가득 타고 있는 비행기를 납치하여 세계무역센터 건물을 들이받아 3000명에 달하는 생명을 살해한 테러였다. 온 세계가 애통할 때 중동의 무슬림들은 거리로 뛰어나와 축포를 터뜨리며 기뻐했다는 것은 뉴스 동영상을 통해서 보았을 것이다. 그 후 끊임없이 세계 도처에서 발생하는 무슬림들의 테러 때문에 문명의 충돌론이 상상이나 추측이 아닌 정확한 이론에 근거한 현실이었음이 확인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교회가 이슬람에 대한 바른 시각을 가지고 대처해야 할 절박한 필요성을 느끼게 되어 이 글을 쓰게 되었는데 최소한 아래와 같은 몇 가지는 바로 알아야 유럽과 같은 실패를 반복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 이슬람의 정체를 알아야 한다.

대한민국이 이슬람에 대하여 바르게 대처해야할 필요가 있다면 가장 먼저 이슬람의 정체를 알아야 한다. 흔히 이슬람은 기독교인과 유대교인들이 섬기는 창조주 유일신 절대자 전능자 여호와 하나님을 알라(Allah)라는 이름으로 섬기는 종교라고 알고 있다. 그러나 비록 그들이 같은 신이라고 주장을 하지만 이슬람의 알라는 기독교의 하나님과 전혀 다른 신이다.

*알라(Allah)는 무함마드가 속했던 꾸라이시족이 섬기던 종족신이었다. 이슬람 역사에 의하면 알라에게는 라트(Lat) 우짜(Uzza) 마나트(Manat)라는 세 딸 신이 있었다.
*알라는 예수를 주님으로 섬기는 자는 이미 믿음을 떠난 저주받은 자라고 한다.(꾸란5:17)
*알라는 예수의 십자가의 죽음을 부인한다.(꾸란4:157)인류의 죄를 해결하기 위한 유일한 길인 십자가를 부인하는 것은 인류 구원을 막아보겠다는 사단의 모략이다.
*알라는 예수의 부활을 부인하고 산채로 승천했다고 한다.(꾸란4:158)
*알라는 삼위일체를 부인한다.(꾸란7:73)
*알라는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부인한다.(꾸란19:88-91)
*알라는 예수가 세상을 구하러 온 것이 아니라 무함마드의 출현을 미리 알리러 왔다고 한다.(꾸란61:6)
*예수는 무슬림이었으며 알라만을 믿으라고 전파했다고 말한다.(꾸란5:72)

그러므로 이슬람은 인류를 구원하러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무함마드의 발 밑의 신분으로 전락시키고 인류 구원을 막아보려는 다른 신 알라(Allah)를 믿는 종교이다. 그들의 목적은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세계를 지배하려는 것이며 이는 거짓 영이요 적그리스도의 영이다.(요일2:22) 그러므로 이슬람의 영은 성령의 역사를 방해하여 인류를 지옥으로 빠뜨리려는 악한 영이라는 기본적 정체를 아는 일이 중요하다.

둘째: 타끼야(Taqiyya)교리를 알아야 한다.

이슬람의 정체는 시중에 나와 있는 책들을 읽어 보면 알 수 있을 것 같지만 그 방법은 전혀 효과가 없다. 왜냐하면 이슬람에서는 타끼야(위장)라 부르는 거짓말해도 좋다는 편리한 교리가 있어서 이교도들을 속이는 것이 전혀 죄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아래 꾸란 구절들을 보자.
알라께서는 너희가 생각 없이 한 맹세에 대해서는 처벌을 하지 않으시며 진심으로 한 맹세에 대해서만 책임을 물으신다. 알라는 잘 용서하시고 관용하시는 분이시다.(꾸란2:225)
배교한 자는 알라의 가혹한 징계가 있을 것이지만 강요 때문에 어쩔 수 없어서 배교한 자는 예외로 한다.(꾸란16:106)

그래서 무슬림 학자들은 책이나 방송을 통해서 거짓으로 미화시킨 이슬람을 홍보한다. 순진한 사람들은 그들이 미화시킨 거짓말을 듣고 대신 홍보해 주는 어리석음을 범한다. 그 결과 쏟아져 나오는 무수한 미화된 자료들 중 어느 것이 참된 이슬람을 소개하는 것인지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이 없는 사람들은 아무리 뛰어난 지혜가 있어도 속을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미화되지 않는 순수한 이슬람의 정체를 알기 위해서는 이슬람의 경전 꾸란을 읽어봐야 한다.

셋째: 무슬림이라는 용어의 정의를 알아야 한다.

보통은 기독교를 믿는 사람을 기독교인이라고 하며 이슬람을 믿는 사람을 무슬림이라고 칭한다. 보편적인 인식으로 볼 때 이것은 올바른 견해라고 할 수 있으나 이슬람의 경전인 꾸란에 의하면 자칭 무슬림이라고 해도 그들을 무슬림으로 인정하느냐의 여부는 꾸란에 의해서 다시 정의되어야 한다. 무함마드가 주후 622년 메카에서 메디나로 이주하여 온 후 군사적 힘이 생기자 주변 사람들을 무력으로 점령하고 이슬람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잔인하게 살해하였다.

그러자 사막의 유목민들은 이슬람이 뭔지는 모르지만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 자칭 무슬림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무함마드는 계시가 내려왔다고 하면서 그들은 무슬림이 아니라고 하면서 진정한 무슬림의 정의를 선포했다.
사막의 베두인들이 "우리가 믿나이다"라고 하나 말해주라 "너희는 믿는 자가 아니라 아직 믿음이 너희 마음에 들어가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항복했다고 말하라"... 오직 알라와 무함마드를 믿으며 절대로 의심치 않으며 생명과 재산을 바쳐 알라를 위해서 지하드 하는 자들만이 진정한 믿는 자(무슬림)들이다.(꾸란49:14-15)

그러므로 생명과 재산을 바쳐 지하드 하는 자들이 아니면 진정한 무슬림들이 아니다. 이것은 이름 없는 소수학자들의 주장이 아니라 아무도 부인할 수 없는 꾸란의 구절이다. 그러므로 어떤 무슬림이 "이슬람은 평화의 종교다"라든지 "무슬림들은 평화를 사랑한다"는 등의 말을 한다면 그는 속이고 있든지 속고 있든지 둘 중의 하나라고 보면 된다.

꾸란의 정의에 의하면 알카에다, 탈레반, 무자헤딘, 헤즈볼라, 오사마 빈라덴, 보코하람... 이런 사람들이 진정한 무슬림이며 우리 주변에 있는 평화스런 무슬림들은 사실은 속고 있는 사람들이지 진정한 의미의 무슬림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들은 그저 창조주에게 복종하며 복을 받기 원하는 순진한 우리의 이웃일 뿐이다.

넷째: 지하드의 정의를 알아야 한다.

이슬람의 궁극적인 목적은 세계의 이슬람화이며 세계를 알라의 종교로 통일시키는 것이다.(꾸란8:39, 꾸란2:193) 이 목적을 위하여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들 혹은 무신론자들과 싸우는 전쟁을 지하드라고 한다. 어떤 이들은 지하드를 성전(聖戰:Holy war)이라고 번역하는데 이 전쟁을 거룩한 전쟁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무슬림들이다. 지하드란 그저 알라를 위하여 혹은 이슬람을 확산시키기 위하여 비무슬림들과 싸우는 전쟁을 말한다.
그들은 한 사람씩 설득하는 포교를 통해서 이슬람의 확산을 꾀하기 보다는 이교도들을 전쟁으로 점령하여 국가의 체제를 바꿔서 이슬람 율법으로 통치하는 것을 선호한다. 왜냐하면 이는 이슬람의 창시자 무함마드가 보여준 행동모델이기 때문이다. 무함마드 당시에도 이런 방법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었다. 왜 평화롭게 공존하던 이웃들과 싸우고 죽여야 하는지를 이해하지 못하며 전쟁을 피하고 출전을 꺼리는 사람들이 있었다.(꾸란9:86-90) 무함마드는 그들에게 새로운 계시가 내려왔다며 아래 구절을 선포했다.

그리고 신자인체 하는 위선자도 알고 계신다. 알라의 길을 위해서 싸우라, 와서 적을 격퇴시키라는 명령을 받았을 때 우리가 싸우는 법을 알았더라면 따라갔을 것이라고 하는 자들은 신자라기보다는 불신자에 가깝다. 알라께서는 너희가 숨기는 것을 잘 아신다.(꾸란3:167)

너희가 비록 싫어할지라도 전쟁은 너희에게 부과된 의무니라.(꾸란2:216)
이런 꾸란의 전쟁명령을 거부하는 자들을 위선자라고 하며 위선자들은 가혹한 징계를 받을 것이라고 선포했다.(꾸란4:145)

어떤 이들은 지하드 용사들을 이슬람 율법도 잘 모르는 몰지각한 광신자들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또 어떤 이들은 지하드라는 것은 내면의 영적 전투를 의미한다고 둘러대기도 한다. 그러나 꾸란은 전혀 그렇게 말하고 있지 않으므로 속지 말아야 한다.

다섯째: 샤리아의 근본정신을 알아야 한다.

이슬람의 교리에 의하면 모든 종교를 이슬람으로 통일시켜 알라 앞에 굴복시키고 샤리아로 통치하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다. 그래서 무슬림이 아닌 사람이 한 사람도 남지 않을 때까지 계속 싸우라고 한다.(꾸란8:39) 샤리아로 통치한다는 말은 그들의 종교를 이슬람으로 바꾸지 않았어도 이슬람 율법의 통치하에 묶어두는 것이 목적이다.

그래서 어떤 무슬림이 마음은 이미 타종교로 개종했으므로 이를 합법적으로 인정해 달라고 하면 절대로 인정하지 않는다. 마음이 이슬람을 떠났다면 이미 무슬림이 아니지만 그들에게는 마음속에 있는 신앙보다는 이슬람의 율법 아래 복종하는 자로 남아 있다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슬람은 종교나 신앙의 범주에 국한되지 않고 정치적인 통치수단을 포함한 총체적인 삶의 시스템으로 볼 수 있다.

샤리아의 근본정신은 유명한 알왈라 왈바라(Al Walla Wal Bara)이다. 알왈라(Al Walla)라는 말은 "모든 무슬림들은 인종 국적 성별 빈부귀천에 관계없이 서로 돕고 지지하고 사랑하고 존경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리고 왈바라(Wal bara)라는 말은 "모든 무슬림들은 인종 국적 성별 빈부귀천에 관계없이 절대로 비무슬림을 돕거나 지지하거나 친구로 삼거나 사랑하거나 존경해서는 안 되며 철저히 증오하고 미워하고 대적해야 한다"는 정신이다.

이런 정신 때문에 무슬림들이 많아지면 사회에 총체적으로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유럽의 잘 발달된 복지정책으로 그들을 보호해주고 도와주고 의식주와 교육까지 챙겨주었어도 그들은 유럽에 절대로 동화될 수 없고 동화되려고 노력하지도 않고 그들을 공격하고 파괴하고자 하는 이유는 바로 이런 샤리아의 근본정신 때문이다. 꾸란에서도 비무슬림들을 친구로 삼지 말라고(꾸란3:28, 꾸란4:144) 여러 구절을 통해서 반복해서 명령하고 있다. 그래서 무슬림들이 숫자가 많아지면 집단행동을 하고 사회를 교란시키고 법과 제도를 바꿔서 자신들의 활동에 유리하도록 바꾸기 원하며 비무슬림들을 공격하고 더 나아가면 한 지역을 장악하고 이슬람 국가로 분리 독립을 꾀하며 결국은 무력으로 자신들의 목표인 이슬람 통치 체제를 만들기 위해서 전쟁을 일으키기도 한다.

이런 현상들은 인도에서 이슬람 종교 때문에 분리 독립한 파키스탄이나 방글라데시의 경우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유럽의 보스니아 사태 또는 필리핀의 민다나오, 태국의 남부 3개 주, 중국의 신장성, 나이지리아 북부 등 세계 각처에서 볼 수 있는 현상이다. 이는 이교도들을 친구로 삼지 말고 절대로 사랑하지 말며 알라의 원수요 무함마드의 원수요 모든 무슬림들의 원수로 대하라는 꾸란의 가르침 때문에 그렇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꾸란60:1)

여섯째: 대한민국의 딸들을 지켜야 한다.

무슬림들이 한국에 들어오면 이슬람국가에서 자신들을 억누르고 있던 숨 막힐 것 같은 율법의 족쇄가 풀리는 것을 느끼며 자유를 경험하게 된다. 그들은 가능하면 자신들의 나라로 돌아가지 않고 한국에 머물고 싶어 한다. 그런데 한국의 출입국 관리법에 의하면 특별한 용무가 없으면 정상적인 비자를 발급받아 한국에 왔더라도 방문 목적이 끝난 후에는 3개월 내에 출국해야 한다. 그래서 특히 무슬림들 중에 불법체류를 하면서라도 한국에 머무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이들이 불법의 굴레를 장기간 벗어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한국 여인들과 결혼하는 것이다. 이슬람 율법에 의하면 고국에 처자식이 있더라도 4명까지 부인을 둘 수 있기 때문에 한국인 아내 한 사람을 더 취하는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슬람의 결혼관은 한국의 결혼관과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만일 무슬림과 결혼하고자 하는 한국인 자매가 있다면 다음의 몇 가지 질문을 해볼 필요가 있다.

*남편이 숨겨둔 다른 아내가 있거나 또는 다른 아내들을 더 취하면 같이 살 수 있는가?(꾸란4:3) 무슬림 남자들은 4명까지 아내를 취할 합법적 권리가 있다. 내 남편은 무슬림이지만 안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무서운 유혹이다.

*이혼은 남편만의 권리이며 남편이 원할 때 언제든지 구두로 3회 통보만으로 이혼이 성립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꾸란2:229-230) 최근에는 문자 메시지나 e-mail로 3회 통보해도 이혼이 성립된다고 한다.
*남편이 아내를 구타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꾸란4:34) 무함마드는 "남편이 자기 아내를 때릴 때 제 3자는 왜 때리느냐고 물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이슬람으로 개종하지 않으면 결혼자체를 인정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가?(꾸란2:221) 이슬람국가에서는 타종교인들과 결혼을 인정하지 않는다. 타국에서 합법적으로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수십 년을 살았어도 남편의 나라에서는 탈선행위일 뿐이다.

이슬람의 결혼 개념은 한국 사람들의 개념과 전혀 다르다. 결혼을 아랍어로 니카(Nika)라고 하고 결혼 계약을 "니카 계약"이라고 하는데 니카라는 단어는 원래 성교행위를 의미하는 것이다. 결혼 계약서에는 반드시 메흐르(Mehr)라는 아내의 몸값을 기입해야 한다. 이 금액이 기록되지 않으면 혼인이 성립되지 않는 것은 어떤 상품의 가격이 기입되지 않으면 계약이 성립되지 않는 원리와 같다. 무슬림 학자들의 견해에 의하면 이는 평생 독점 성행위를 하는 대가로 지불되는 금액이다. 아내는 몸값으로 받은 돈만 자신의 재산으로 인정받을 수 있으며 남편 재산에 대해서 공동 재산권을 주장할 수 없다.

남편은 돈 주고 아내를 샀기 때문에 아내의 주인이며 소유권자가 된다. 따라서 원할 때는 언제든지 버릴 수 있는 이혼의 권리가 있기 때문에 결혼식을 할 때 평생을 이 여인만을 아내로 사랑하며 살겠다는 맹세를 하지 않는다. 이혼은 아랍어로 딸락(Talaq)이라고 하는데 이 단어는 제한적 용법으로 사용된다. 즉 문장을 구성할 때 남편은 딸락을 "한다"는 표현이 가능하지만 아내는 딸락을 "당한다"는 표현만 가능하다. 더구나 한국에서는 몸값을 받고 결혼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무슬림들이 원할 때는 부담 없이 버리고 귀국해버리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따라서 교회에서 자매들이 무슬림들을 섬기는 봉사를 할 때 결혼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철저히 주의해야 한다.

일곱째: 무슬림들을 미워하지 말아야 한다.

무슬림들은 이슬람의 거짓 영에 속고 있는 피해자들일 뿐이며 사실은 하나님의 피조물로서 우리의 형제요 자매들이다. 무슬림들은 일반적으로 거의 체계적인 꾸란에 대한 교육을 받지 않기 때문에 꾸란을 7세기 문어체 아랍어로 외우는 사람은 많지만 그 의미를 이해하는 사람은 극히 적다. 환자를 미워하는 의사는 병을 고칠 수 없으며 환자의 비정상적인 모든 행동을 볼 때 의사는 더욱 안타까운 마음으로 환자를 사랑해야 병을 고칠 수 있다.
그러나 병의 증세는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우리가 이슬람의 악한 영의 정체는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하며 그 영에 속고 있는 무슬림 형제자매들은 불쌍히 여기며 봉사하고 섬기며 사랑하며 기도하는 영적인 분별력이 필요하다. 그래서 그들의 눈을 뜨게 하여 참 주님을 만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여덟째: 이슬람 문화를 이해해야 한다.

지금 대한민국에는 수많은 무슬림들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다. 정부에서는 정책적으로 산유국들인 이슬람 국가들과 친선 분위기를 유지하고자 한다. 간혹 이슬람 국가에서 온 무슬림들이 교회를 찾는 경우가 있다. 한국에 오래 체류했던 무슬림들끼리는 "문제가 생기면 무조건 교회에 가서 도움을 요청하면 최선을 다해 도와주니까 적당히 이용하라"는 매뉴얼까지 소개한단다. 이 모든 현상들은 복음전파의 기회인가? 아니면 유럽처럼 사회혼란으로 가는 위험상황 직전 단계인가?

한국 사람들은 보편적으로 이슬람에 대한 거부감이 있다. 그래서 무슬림들을 박대하기도 하고 경멸하기도 한다. 이에 무슬림들은 차별대우를 당한다고 항의한다. 물론 우리가 최선을 다해 유럽처럼 복지를 완벽하게 제공했더라도 근본주의 무슬림들은 트집을 잡아 항의를 할 것이지만 이것도 이슬람의 문화라는 것을 알고 지혜롭게 대처해야 한다. 그러나 일부러 그러는 사람은 없겠지만 실수로라도 그들에게 트집잡힐만한 일은 피해야 할 것이다.
예를 들면 돼지고기나 술 등은 권하지 말아야 하며 여성들은 가슴골이 드러나는 복장이나 초미니 바지나 치마는 삼가는 것이 좋다. 여성은 혼자서 무슬림 남성에게 차나 식사를 대접하는 일은 금해야 할 것이며 혼자 집으로 초대를 받으면 정중히 거절을 해야 할 것이다. 무슬림들이 금식을 하는 라마단 기간에는 무슬림들 보는데서 음식을 먹는 것을 삼가는 것이 좋고 꾸란을 발로 차거나 낙서를 하거나 찢는 행위는 절대로 금해야 한다.

그러나 무슬림들이 근무 중 이슬람식 기도시간을 요청하면 회사 내규를 들어 거절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이는 다른 사람들과 형평성이 어긋나는 특혜를 요구한 것이기 때문이다. 한 가지를 양보하면 집단행동을 통해서 또 다른 것을 요구할 것이다. 설교를 할 때도 "하나님의 아들" 개념은 무슬림들이 특별히 혐오스러워한다는 것을 알고는 있어야 하며 "천국"을 설명할 때도 무슬림들은 침상에서 술잔을 받쳐 들고 후리(선녀)들이 기다리는 곳을 연상하기 때문에 조심해야 할 필요가 있다.

아홉째: 전문화 되어야 한다.

우리 주위에 와 있는 무슬림들을 주님께로 인도하기 원하면서 그들의 문화를 이해하고 소통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절대로 정상적인 열매를 기대할 수 없다. 선교에 있어서 가장 기초가 되는 것은 언어 소통이다. 언어가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 얼마나 큰 장애인지 모른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시장을 볼 수 있을 정도로는 한국어를 하겠지만, 신앙 서적을 읽고 이해할 수 있을 정도의 언어 능력은 갖추고 있지 않은 것이 보통이다. 그러므로 그들의 언어를 이해하고 그들의 문화와 역사를 알고 그들의 종교에 대해서 사전 지식을 갖추는 전문화가 필요하다. 전문화를 위해서는 지역교회 연합회에서 외국인들을 전도하려는 교회의 목회자들이 모여서 한 언어권씩 적절히 분배해야 한다.

그래서 그 지역의 몽골 사람들은 A교회로 보내고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B교회로 보내고 아랍인들은 C교회로 보내는 등 서로 합의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래서 예를 들어 몽골 사람들을 맡은 교회는 담당자를 세워 몽골의 역사와 사회와 정치상황과 토속신앙과 언어를 익히고 본인이 할 수 없다면 잘 할 수 있는 사역자를 찾아서 배정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래서 그들의 언어로 복음을 들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좋다. 최근에는 각 나라 언어를 익히고 추방된 선교사들이 많아서 원하면 적임자를 쉽게 찾을 수 있으며 원어민 목회자를 초청하는 것이 가장 좋기는 하지만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형편에 따라 방법을 선택해야 할 것이다.

목회자가 십여 개 언어권의 외국인들을 모아 놓고 회중이 알아듣지도 못하는 한 가지 언어로 설교를 하면 편리할지는 모르겠지만 효과는 거의 없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열째: 무슬림들의 질문에 답변할 준비를 해야 한다.

무슬림들은 대체로 자신들의 경전인 꾸란에 대해서 잘 모른다. 흔히 무슬림들이 기독교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태도는 "기독교인들이 가지고 있는 성경은 변질되었기 때문에 알라께서 하늘의 원본을 내려 보내신 것이 꾸란이다"라고 하는 소위 성경 변질론에 기초한다.

무슬림들이 기독교인들은 왜 변질된 성경을 믿고 있느냐고 정색을 하고 물을 때는 이렇게 답변하면 된다. "아 그렇습니까? 저는 성경이 변질된 줄을 전혀 몰랐는데요. 그런데 언제 변질된 거죠?" 하고 되물으면 대답할 말이 없을 것이다. 그저 변질되었다는 말만 들어왔기 때문이지 언제 어디가 변질되었다는 말을 할 수 없다. 사실 성경은 역사적으로 고고학적으로 변질되지 않았다고 확실히 말할 수 있는 이유는 쿰란사본과 사해 사본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그 발견에 의해서 최소한 주전 1~2세기부터 현재까지는 변질되지 않았다고 확실히 말할 수 있다. 그런데 무함마드도 메카에 있을 때 즉 주후610년부터 622년까지는 성경이 진리라고 했다고 꾸란에 기록되어 있다.(꾸란3:3) 그러나 무함마드가 메디나에서 통치권을 확보한 후에 힘이 생기자 주후624년부터는 기독교인과 유대교인이 가진 성경은 변질되었다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언제 변질되었다는 것인가? 대답할 방법이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성경이 변질된 것이 아니라 기독교인들에 대한 무함마드의 입장이 바뀌었기 때문에 말을 바꾼 것뿐이기 때문이다.

무슬림들이 흔히 하는 질문 중에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말에 대단히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인다. 하나님에게 아들이 있다는 것은 유일신을 부정하는 신성모독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아들도 딸도 없는 알라(Allah)만이 유일신이라고 주장하면서 기독교인들은 왜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느냐고 물으면 어떻게 대답할까? 그 때는 이렇게 대답하면 좋을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할 때 무슬림들은 하나님이 육체적인 성관계를 통해서 자녀를 출산하는 것만 생각한다. 우리도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신성모독으로 생각한다."

이는 요한에게 우레의 아들이라는 의미의 보아너게라는 이름을 지어주셨을 때 우레가 누구와 결혼해서 요한을 낳았다는 말이 아닌 것과 같다. 우레는 결혼할 수 없고 아이도 낳을 수 없지만 우레의 아들이라는 말은 성격과 인품과 인간 됨됨이가 우레처럼 급하고 과격하고 강하다는 의미다.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말도 하나님은 영이시니 결혼할 수 없기 때문에 성관계를 통해서 예수를 낳았다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과 성격과 인품과 됨됨이가 동일하다는 의미이다. 이는 평화의 아들, 정의의 아들, 위로의 아들 ... 등의 칭호와 같은 것이라고 하면 반박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외에도 많은 질문들이 있을 수 있으나 그 때마다 즉흥적으로 대답하지 말고 전문가들과 상의하면 그 질문들을 전도의 기회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열한 번째: 귀국 후 사후 관리가 필요하다.

한국에서 열심히 교회에 다니던 무슬림 출신의 개종자들이 귀국 후에도 계속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확률은 매우 낮다고 본다. 왜냐하면 이슬람 율법에 의하면 개종자들은 가혹한 징계를 당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무런 사후관리를 하지 않는다면 그동안 그에게 쏟은 사랑과 정성은 무효가 되어 버린다. 따라서 본교회에서 돌보던 무슬림 출신의 성도가 귀국할 때는 그의 주소가 어디인지 연락처가 어디인지를 물어서 지속적인 소통이 있어야 하며 그 부근에서 사역하고 있는 선교사들이나 현지 목회자들에게 연결시켜 주는 일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런 노력을 기울인다면 위협과 살기가 등등했던 사울이라는 청년 한 사람을 통해서 유럽이 변화된 것처럼 우리 교회에서 양육한 한 사람의 무슬림 출신 개종자를 통해서 한 나라가 변화될 가능성도 기대해 볼 수 있을 것이다.

* 위 글은 한국이란인교회(4him.or.kr) 홈페이지에서 가져온 글임을 밝힙니다. 

  • 네이버 블러그 공유하기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press@cdaily.co.kr

- Copyright ⓒ기독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독교 종합일간지 '기독일보 구독신청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