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 C. 라일은 이렇게 말했다. “To be a Christian will cost a man the favour of the world.”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려면 세상의 인정을 포기해야 한다”라는 뜻이다.” 나를 비롯한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주는 소중한 말이다. 이 말은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일이 언제나 사람들의 칭찬과 지지를 받는 길은 아니라는 사실을 일깨워 준다.
살다 보면 사람들로부터 비난받거나 욕먹는 경우가 생기게 된다. 그럴 만한 실수를 저질렀다면 모를까, 전혀 그런 일이 없음에도 상대방의 오해나 시기 질투로 인해 부정적인 말을 듣는다면 억울하고 속상해질 수밖에 없다.
더욱이 정직하게 행동했거나 신앙의 양심을 지킨 것으로 인해 주위 사람들에게 따돌림을 당하거나 비난의 대상이 된다면 더욱 마음이 아프게 된다.
그때 우리는 중요한 질문 앞에 서게 된다. 다음에 그런 비슷한 경우를 만났을 땐 ‘오해나 비난을 사지 않게 현실과 타협할 것인가, 아니면 지금처럼 손해 되는 일이 발생하더라도 하나님만 생각하면서 의로움을 지속할 것인가?’라는 질문 말이다.
한 회사의 회계 담당자가 있다고 생각해 보자. 연말 결산을 앞두고 상사가 실적을 좋게 보이도록 일부 비용을 다음 해로 미루어 처리하라고 지시한다. 그렇게 하면 부서의 실적이 좋아지고 상사도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 다른 직원들은 관행이라며 별다른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직원은 장부를 사실대로 기록해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상사의 지시를 정중하게 거절하고 정확한 회계 처리를 해버린다. 그 결과 상사의 눈 밖에 나고, 중요한 업무에서 제외되며, 동료들로부터 융통성 없는 사람이라는 말을 듣는다. 정직하게 행동했는데 오히려 손해를 본 것이다.
과거 대학생 시절, 같은 아파트에 한 교회에 출석하는 남자 집사님이 살고 있었다. 대학 교수를 하던 분인데, 어느 날 그분이 우리 어머니가 너무 융통성이 없다며 비난하는 말을 내게 하는 것이었다. 이유를 물었더니, 우리 어머니가 같은 구역의 구역장이신데, 목요일 구역 예배 참석률이 떨어지는데도 계속 자기의 조언을 뿌리치고 참석 인원수를 사실 그대로 적어서 담당 목사님에게 제출하신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내가 사실대로 제출하시는데 어째서 융통성이 없다고 말씀하시냐고 했더니, 자기는 부구역장인데 있는 그대로 보고하면 담당 교역자에게 낯이 서질 않기 때문에 고집을 좀 꺾어주시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그분의 얘기에 실망하고 화가 난 나는 ‘그건 융통성의 문제가 아니라 거짓과 진실의 문제’라며 도전했던 기억이 있다.
그렇다. 담당 교역자에게 송구한 게 뭐 그리 대수란 말인가? 그게 그렇게 부끄럽다면 구역원들이 많이 모이도록 독려해야지, 사실대로 보고하는 어머니를 융통성 없는 사람이라 비난하다니, 그것도 아들에게 말이다.
그날 나는 그가 제대로 된 그리스도인이 아님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살다 보면 이보다 더 어렵고 난처한 상황이 벌어질 때가 많다. 그럴 때 우리는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할 것인지를 미리 정해놓을 필요가 있다.
‘어색하거나 비난받는 결과가 초래되지 않도록 다소간의 융통성을 발휘할 것인가, 아니면 양심과 정직,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부끄럽지 않게 살려는 믿음을 지킬 것인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 반드시 온다.
그런데 모든 사람에게 좋은 사람으로 평가받으려는 욕망이 강해지면 결국 옳은 일을 하기보다는 사람들이 좋아할 일을 선택하게 된다.
예수님은 사람들의 인정에 대한 집착이 얼마나 위험한지 분명하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서로 영광을 취하고 유일하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광은 구하지 아니하니 어찌 나를 믿을 수 있느냐”(요한복음 5:44).
사람들의 칭찬 자체가 잘못은 아니다. 문제는 그 칭찬을 얻기 위해 하나님의 뜻은 뒤로 하고 불의함을 선택하는 데 있다.
신앙의 진정성은 ‘사람들이 우리를 얼마나 좋아하느냐’가 아니라,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순간에도 ‘우리가 누구를 기쁘시게 하려고 살아가느냐’에서 드러난다. 사람들의 칭찬을 얻기 위해 거짓말을 했다면 칭찬이나 박수를 받더라도 마음이 편하지 않을 것이다. 반대로 정직하게 행동한 결과 손해를 보고 비난에 처했더라도 하나님 앞에서 양심을 지켰다면 그 선택은 결코 헛되지 않고 마음에 평안을 누릴 수 있다.
세상은 타협하는 사람을 지혜롭다고 부르고, 하나님의 의를 지키는 사람을 어리석다고 평가할 때가 많다. 그러나 사람들의 칭찬과 인정이 우선 유익해 보여도 결국은 멸망의 지름길이며, 하나님을 슬프게 해드리는 앞잡이가 됨을 기억하고 살자. 사람들의 호평이나 호의를 잃더라도 의와 진실을 지킬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헛된 삶은 아니리라.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것보다 하나님께 인정받는 것을 더 귀하게 여기며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이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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