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4일 국무회의에서 낙태 약물 도입과 관련해 “의사의 양심과 재량에 따른 처방도 하나의 방법일 수 있다”라고 말해 논란이 일고 있다. 임신 중지 약물 ‘미프진’이 해외 직구 등 불분명한 경로로 유통되는 현실을 지적한 것이란 해명에도 의료계와 교계, 생명윤리단체 등은 해당 발언이 무분별한 약물 도입을 부추길 수 있다고 우려하며 일제히 “무책임하다”고 비판했다.

이 대통령은 “지금 우리는 (낙태 약물이) 허용이 안 돼서 여성들이 해외 직구로 복용하는 모양”이라며 “정부에 좀 어려움이 있더라도 적정하게 투약할 수 있게 해줘야지, 이런 식으로 정부가 하는 건 무책임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법 밖에 방치하면서 정부는 책임을 모면하겠지만 국민들은 위험에 빠지는 것”이라며 “‘몇 주로 할거냐’ 하다가 임기가 끝날 것 같다. 그 문제가 해결되기 전이라도 의사 재량으로 판단하게 허용한다든지, 그게 법률적으로 불가능한 건 아닐 것 같다”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해당 발언은 청와대의 설명처럼 임신 중지 의약품 도입과 허용 기준 논의가 계속 지연되는 상황에 대해 문제점을 지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해외 직구를 통한 무분별한 낙태 약물 사용 실태에 대해 관련 부처가 좀 더 책임 있게 문제 해결에 나서라는 취지일 것이다.

하지만 취지가 어떠하든 낙태 약물 도입에 법률적 근거가 전무한 현실에서 약물 도입을 허용하고 그 사용에 대한 선택을 의사의 재량에 맡기자는 식으로 말하는 건 다른 문제다. “법으로 반드시 몇 주까지”라고 정하는 방식만이 절대적 기준은 아니“라고 말한 데서 알 수 있듯이 대통령으로서 법을 가벼이 여기는 태도로 오해받을 소지가 있다.

이 사안에 대해선 이 대통령이 관계부처에 적정 투약 방안 마련을 지시한 후 정부가 안전 사용 기준과 임상진료지침 검토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식약처는 법 개정과 허용 범위 확정이 선행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런 현실에서 대통령이 관련 법률을 정비하라고 하지 않고 우회적인 방법을 동원하라는 식의 발언을 한 건 진의와 상관없이 우리 사회를 혼란에 빠트릴 수 있다.

당장 의료계가 반발한 것도 이 때문이다. 대한산부인과의사회는 “임신중절에 관한 대체입법과 사회적 합의에 따른 법 개정이 완료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해외 직구 방치를 막겠다는 명분으로 의사의 재량에 판매를 맡기자는 것은 여성의 건강권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위험한 시도”라고 비판했다.

교계와 생명윤리 단체들도 일제히 우려와 쓴소리를 쏟아냈다. 한국교회연합은 16일 발표한 성명에서 낙태 약물 도입을 의사의 양심과 재량에 맡기자는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대한 무책임한 회피일 뿐 아니라 생명 보호 최일선에 서 있는 대통령으로서 헌법적 의무를 방기한 매우 위험한 발언”이라며 “작고 약한 태아의 생명이 완전한 인격체로 성장하기까지 국가는 모든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성산생명윤리연구소는 낙태 약물 처방을 의사의 재량과 양심에 맡겨 봉합하자고 제안한 것에 대해 “법치국가의 기본 원리를 부정하는 일”이라며 “이는 태아의 생명권을 보호해야 할 헌법적 의무를 방기하는 것이고 의사들에게 태아 살상의 책임을 떠넘기는 비윤리적 행태”라고 비판했다. 태아·여성보호국민연합도 국회 소통관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저출생 극복을 국가적 과제로 추진하면서 동시에 낙태약 도입을 성급하게 추진하는 것은 정책의 일관성 측면에서도 충분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며 “정부는 법과 제도, 의료 안전체계를 먼저 마련한 뒤 국민적 합의를 바탕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했다.

이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낙태 약물 도입에 관한 문제를 제기한 배경에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 길어지고 있는 제도상의 공백이 깔려 있다. 헌재가 지난 2019년 낙태죄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지만, 정부와 국회가 대체 입법 시한을 넘기는 바람에 낙태 허용 시기와 방법 등을 정한 후속 법안이 마련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행 ‘모자보건법’은 인공임신중절을 수술로만 규정하고 있어 약물 사용의 근거가 전무한 상황이다. 이 대통령의 발언으로 식품의약품안전처의 국내 품목 허가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지만, 안전성 문제 등 해결해야 할 과제가 한둘이 아니다.

이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언급한 건 최종 정책 결정이라기보다 관계부처에 절충안을 다시 가져오라고 지시한 것이으로 볼 수 있다. 그렇더라도 이 중대한 사안을 “모자보건법 개정 전이라도 약을 안전하게 사용하면 되지 않느냐. 허용 주수를 몇 주로 할 것이냐를 두고 논쟁하다가는 임기가 끝날 것 같다”라고 한 건 지나친 표현이다. 보건복지부와 식약처로선 엄청난 압박으로 느껴졌을 거다.

낙태 약물을 도입하는 문제는 그리 간단히 해결될 사안이 아니다. 아무리 입법 절차가 복잡하고, 시간이 많이 소요돼도, 설령 대통령의 임기 중에 마무리되지 못하더라도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할 것이다. 사회적 합의도, 법적 제도적 근거도 없는 상태로 대통령이 서두른다고 해결될 성질이 아니라는 말이다.

의료계는 ‘모자보건법’ 개정을 통해 합법적인 사용 주수와 허용 기준을 명시하는 등 명확한 법률적 테두리부터 설정하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태아의 생명권 보호가 중요한 만큼 여성의 안전한 임신 중지 권리도 중요하다는 뜻이다.다만 국민 생명의 안전한 보호망을 구축하는 데 힘써야 할 정부가 제 할 일은 하지 않고 법과 제도 미비의 책임을 모두 의사에게 떠넘기는 방법으론 해결이 더 요원하다. 정부는 법 정비를 서둘러 국민 생명의 사각지대를 없애는 일부터 시작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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