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베르토 알비노
로베르토 알비노. ©Christian Post

미국 크리스천포스트(CP)는 로베르토 알비노의 기고글인 '다양성이 분열이 될 때: 교회가 회복해야 할 진리 중심의 연합'(When ‘diversity’ divides: A call for truth-centered unity in the Church)을 27일(현지시각) 게재했다.

로베르토 알비노는 펜실베이니아 패밀리 인스티튜트(Pennsylvania Family Institute)에서 교회 대사 네트워크 아웃리치 및 라티노 참여 코디네이터로 활동하고 있다. 또한 펜실베이니아주 베들레헴에 위치한 센트럴 어셈블리 오브 갓 교회(Central Assembly of God)에서 부목사로 섬기고 있다. 다음은 기고글 전문.

오늘날 ‘다양성’은 의심할 여지 없는 도덕적 가치처럼 여겨지는 시대가 되었다. 그러나 교회는 이 개념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기보다 분별력을 가져야 한다. 문화적 배경이나 경험, 관점의 차이는 하나님의 창조적 다양성을 반영하는 아름다운 모습이 될 수 있지만, 모든 형태의 ‘다양성’이 반드시 연합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오늘날 교회 안에서 나타나는 깊은 분열 가운데 상당수가 ‘다양성’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되고 있는 현실을 볼 수 있다.

따라서 중요한 질문이 제기된다. 언제 다양성은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역할을 하고, 언제 그것이 교회를 서서히 분열시키는 요인이 되는가?

성경은 교회의 연합이 성격이나 경험의 획일성에 근거하지 않고, 객관적인 진리 위에 세워져야 한다고 분명히 말한다. 사도 바울은 교회를 “한 몸”에 비유하며, 각 지체가 서로 다른 은사를 가졌지만 한 성령 안에서 연결되어 있다고 설명한다. 성경적 연합은 차이를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권위 아래에서 그 차이를 올바르게 질서 있게 두는 것이다.

진리와 의, 그리고 성경적 가르침 위에 세워진 다양한 의견은 분열을 낳지 않는다. 오히려 교회를 더욱 단단하게 세우는 역할을 한다. 잠언의 표현처럼 “철이 철을 날카롭게 하는 것 같이” 신앙 안에서의 진실한 토론과 겸손한 논의는 이해를 깊게 하고 공동체를 더욱 성숙하게 만든다.

그러나 오늘날 교회 안에는 또 다른 형태의 ‘다양성’이 자리 잡고 있다. 이는 성경의 기준이 아니라 변화하는 문화적 가치, 감정적 호소, 그리고 성경과 분리된 해석에 기반한 왜곡된 다양성이다. 이러한 형태는 하나님이 의도하신 다양성이 아니라, 미덕처럼 포장된 혼란에 가깝다.

포용과 진보라는 이름으로 비성경적인 원리가 교회 안으로 들어올 때, 그것은 교회를 하나로 묶기보다 오히려 복음의 증언을 약화시킨다. 인간의 모든 관점을 수용하기 위해 진리를 타협하게 되면 교회는 세상의 빛이 되기보다 오히려 세상의 혼란을 반영하는 공동체가 되고 만다.

이러한 긴장은 새로운 문제가 아니다. 초대교회 역시 문화적·민족적·신학적 차이로 인해 갈등을 경험했다. 그러나 사도행전은 그들이 갈등을 해결하는 방식이 진리를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진리에 순종하는 것이었음을 보여준다. 이방인의 공동체 참여 문제나 내부적 의견 차이 속에서도 사도들은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인도하심을 기준으로 판단했다.

그들의 연합은 갈등이 없었기 때문이 아니라, 공통된 확신 위에 서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오늘날 교회 역시 이러한 기초를 회복해야 한다. 사역과 가정, 직장과 교육, 그리고 사회 참여에 이르기까지 모든 영역에서 진리를 향한 헌신은 흔들려서는 안 된다. 접근 방식이나 의견의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그것이 성경적 기준을 약화시키는 이유가 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모든 생각을 무비판적으로 ‘다양성’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하려는 태도를 경계해야 한다. 교회 안에서 모든 관점이 동일한 권위를 가질 수는 없다. 기준은 문화적 유행이나 감정적 호소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충실함이어야 한다.

동시에 우리는 성령의 역사와 성장의 가능성을 가로막는 경직된 획일주의에도 빠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목표는 단순한 동일성이 아니라, 그리스도께 대한 순종과 말씀에 대한 헌신, 그리고 사랑 안에서 서로에게 복종하는 태도다.

교회가 필요로 하는 것은 다양성의 축소가 아니라 올바른 형태의 다양성이다. 진리에 대한 공동의 헌신에서 흘러나오는 다양성, 교회를 분열시키기보다 더욱 강하게 만드는 다양성, 그리고 요한복음 17장에서 예수께서 기도하신 연합을 드러내는 다양성이다. “그들이 다 하나가 되게 하사 세상이 믿게 하옵소서.”

만일 어떤 다양성이 이러한 연합에서 우리를 멀어지게 만든다면, 그것은 선물이 아니라 경고일 수 있다.

앞으로 나아갈 길은 복잡하지 않지만 결코 가볍지 않다. 우리는 진리를 굳게 붙들고, 연합을 추구하며, 그리스도께서 이미 하나 되게 하신 공동체를 분열시키는 거짓된 다양성을 거부해야 한다.

그럴 때 교회는 타협이 아니라 확신 위에 세워진 연합된 공동체로서 세상 앞에 신실한 증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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