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진(한국기독교생명윤리협회 상임운영위원, 성산생명윤리연구소 전 소장)
이명진(한국기독교생명윤리협회 상임운영위원, 성산생명윤리연구소 전 소장)

이재명 정부의 시작과 함께 우려했던 것들이 속살을 드러내고 있다. 오직 자신들의 자리보존을 위한 법과 제도를 만들어 자유민주주의와 국민의 삶을 위협하고 있다. 존 로크는 정부의 목적은 생명과 자유를 창조하는 데 있지 않고 보존하는 데 있다고 했다. 정치가 자유의 보호자를 넘어 설계자와 심판자를 자처하는 순간, 자유는 권리가 아니라 허가가 된다. 정치가 국민을 우습게 여길 때, 국가는 관리자가 아니라 지배자가 된다. 전체주의를 넘어 전제주의 독재로 향하게 된다. 대한민국 곳곳에서 정치가 국민을 우습게 여기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정치가 인간존엄성을 우습게 여기면

최근 보건복지부 업무보고에서 “연명의료 중단에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방안을 고민하라”는 취지의 대통령의 발언으로 논란이 있었다. 인간존엄성에 대한 대통령의 낮은 이해와 가치관을 드러냈다. 성정치에 매몰된 성평등가족부 장관은 먹는 낙태약을 법 개정 없이도 도입해야 한다는 비상식적인 발언으로 빈축을 사고 있다. 생명윤리의 문제를 ‘행정 편의’로 처리하고, 생명을 죽여야 성평등을 이룬다는 위험한 성정치로 국민의 생명을 위협하고 있다. 정치가 인간존엄성을 경시할 때 가장 먼저 침해되는 것이 생명이다. 국가가 공익과 효율이라는 이름으로 생명의 가치를 선별하고 등급화하려고 한다면, 인간의 존엄성이 인간이 지닌 지능이나 능력으로 재단되어 버린다. 태아의 생명, 노인의 생명, 장애인의 생명은 언제든지 ‘사회적 비용’이라는 계산대 위에 올라가게 된다. 생명은 더 이상 존엄한 절대적 가치가 아니라, 정책적으로 조정이 가능한 상대적 개념으로 전락한다. 생명권이 국가의 승인 여부에 따라 결정된다면 자유는 이미 무너진 것이다.

정부의 목적은 생명과 자유와 재산을 보존하는 데 있다. 특별히 대통령과 내각 한 사람 한 사람은 말 한마디에 인간존엄성이 무너지고 생명이 죽어 갈 수 있다는 점을 깊이 생각해야 한다. 정치가 인간의 존엄성을 우습게 여기면 안 된다.

정치가 윤리를 우습게 여기면

최근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는 그의 블로그를 통해 생명윤리와 연구윤리를 총체적으로 무너뜨렸던 황우석 사태의 전개 과정을 자세히 설명했다. 이 사건은 정치가 과학을 정치적 도구로 이용할 때 발생하는 대표적 사건이다. 황씨의 개인 비리를 넘어, 정치가 과학을 오염시키면서 연구자의 탐욕과 연합하여 만들어낸 대국민 사기극이다.

지난 문재인 정권은 신재생에너지 사업을 시작하면서 태양광 발전을 들고나왔다. 그 결과 안전하고 효율적인 원자력 발전을 무력화시켜 버렸다. 태양광 발전 사업을 주도하던 운동권 출신 인사는 쇠고랑을 찼다. 전국의 논과 밭 그리고 저수지가 태양광 발전 시설로 도배됐다. 국민은 값싸고 안전한 원전 전기 대신 비싼 전기료를 물어내고 있다. 정책이 ‘사익’과 결합하면, 국민이 모든 비용을 떠안게 된다.

대장동 개발 사업으로 기네스북에 기록될 만한 이익을 독식한 자들이 구속 중이다. 하지만 1심 판결 이후 항소 포기로 인해 이들이 벌어들인 천문학적 수익을 보존해 주는 보호막을 만들어 주고 말았다. 윤리를 저버린 정치가 사법부를 압박한 결과다. 법이 구현해야 할 정의를 외면하고 범죄자를 도와주는 불의를 저질렀다. 법치를 변질시켰다.

다산 정약용의 목민심서(牧民心書)에서 다음과 같이 적어 놓았다 “지방관은 백성과 가장 가까운 직책이기 때문에 그 임무가 중요하므로 덕행, 신망, 위신이 있는 적임자를 임명해야 하며, 청렴과 절검(節儉)을 생활신조로 명예와 부(富)를 탐내지 말고, 뇌물을 받지 말아야 한다.”

정치가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하게 되면 국민은 저효율, 고비용의 비용을 지불하고 이익은 정책을 작당한 자들의 배만 불리게 된다. 정경유착으로 국민의 호주머니를 털어 자신들의 배를 불린다. 포퓰리즘 정책으로 국민의 근로 의욕을 빼앗고 도덕적 해이를 발생시킨다. 국가주의 망상에 빠져 전체주의 정치로 달려간 국가들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정치는 국민을 위해서 하는 것이지 돈을 벌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다. 정치가 윤리와 도덕을 헌신짝처럼 여기면 안 된다.

정치가 종교를 우습게 여기면

전체주의는 정치, 경제, 교육, 예술, 과학, 심지어 시민의 사적인 도덕관념까지 모든 생활 영역에 걸쳐 통제를 시도한다. 전체주의로 가는 가장 큰 장애물이 종교다. 종교는 인간 사회를 넘어서는 도덕적 기준과 양심의 최후 보루 역할을 해왔다.

정치가 종교를 우습게 여기면 국가는 종교를 사적 영역으로 밀어내고, 공적 발언과 실천을 제한하려 한다. 신앙은 허용되지만, 신앙에 따른 판단과 행동은 억압된다. 결국 국가는 스스로를 최고 도덕 권위로 자리매김하며, 양심의 자유마저 관리하려 든다. 정치가 종교를 우습게 여길 때, 종교탄압의 문제를 넘어 자유 민주주의의 근간을 붕괴시키는 범죄가 된다. 전체주의 지배자는 법 위에 자신이 군림하는 전제주의 독재에 빠지게 된다.

법의 목적은 자유를 폐지하거나 억압하는 데 있지 않고, 자유를 보존하고 확대하는 데 있다고 한다. 최근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통해 교리 기준을 무시하고 위축시키려는 시도가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종교는 인간의 윤리와 도덕을 지켜주는 가장 위대한 힘을 가지고 있다. 때로는 종교인들은 교리와 신앙을 지키기 위해 순교까지도 불사한다.

법으로 종교를 탄압하려 했던 영국 왕과 신앙을 지키기 위해 저항했던 언약도가 남긴 역사적 교훈을 잊어서는 안 된다. 언약도는 그들의 신앙에 반하는 법에 굴복하지 않았다. 그들은 지붕이 없는 벌판의 감옥에서 혹독한 추위와 굶주림을 온몸으로 맞으며 순교의 길을 거부하지 않았다. 어떤 이는 화형을 당하면서도 정부의 종교탄압에 저항했다. 결국 언약도의 정의로운 저항은 명예혁명을 낳았다.

정치가 종교를 우습게 여기고 신앙인들의 고결한 신앙을 위협하면 종교인들은 신앙을 지키기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면서 저항하게 된다. 역사적으로 정치가 종교를 이용하려고 하거나 종교를 탄압해서 성공한 전례가 없다.

정치가 국가안보를 우습게 여기면

얼마 전 군의 경계병에게 총 대신 삼단봉을 가지고 근무를 세우겠다는 지침이 강원도 전방 사단에서 하달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졌다. 여론의 뭇매를 맞고 취소했다지만 몽둥이로 총을 든 적을 대항하겠다는 발상이 참담하다. 전방 경계를 동네 방범 순찰 수준으로 생각하는 군인정신의 상실 현상이다. 이런 발상 자체를 한 자들을 모두 엄하게 징계해야 한다.

강한 군인정신은 그들을 존중하고 보상이 이루어질 때 유지된다. 최근 국방비 지급이 늦어져 전역 군인들의 봉급 지급이 미루어지고, 방사청 무기 대금 지급 지연이 현무 미사일, KF-21 관련 업체까지 포함됐다는 보도가 있었다. 현 정부의 퍼주기 선심 정책으로 나라 곳간이 빈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구한말 임오군란이 군인의 임금체불로 인해 발생했다는 사실을 알고는 있는지 모르겠다. 정치가 국가안보를 우습게 여긴다면 국민의 불안은 사회불안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정치가 군인정신을 무너뜨리고 군대를 무장해제 하면 안 된다. 국가안보를 너무 우습게 여긴 결과다.

국민을 존중하는 정치를 바란다

정치인은 ‘국민이 국민의 권리와 생명을 지키고, 국민의 재산을 지켜 달라’고 위임받은 자들이다. 정치권력을 이용하여 자신들의 치부를 감추고, 인간 존엄을 파괴하면 안 된다. 도덕과 윤리를 무너뜨리고 사익을 추구하면 안 된다. 종교의 신성한 교리를 위협하는 법을 만들어 종교를 다스리려고 하면 안 된다. 국민과 국토를 지켜야 할 정부가 안일한 안보의식으로 국가를 위험에 빠뜨리면 안 된다. 역사적으로 국민을 우습게 여겼던 정치인은 후대에 불명예스러운 이름을 남긴다. 2026년에는 ‘고양이에게 생선가게를 맡긴 것’같다는 국민의 염려를 떨쳐내 주기 바란다. 국민을 존중하고 국민을 두려워하는 정치를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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