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크리스천데일리인터내셔널(CDI)은 J.존의 기고글인 ‘천국이 이 땅에 임했던 순간을 기억하며’(Remembering when heaven came to earth)를 13일(현지시각) 게재했다.
J. 존은 목사, 연사, 방송인, 작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개인 팟캐스트인 ‘J.John Podcast’를 운영하고 있다. 다음은 기고글 전문.
매년 12월이 되면 세상은 잠시 멈춘다. 어떤 이들은 기꺼이, 어떤 이들은 마지못해, 역사를 둘로 가른 이야기를 다시 떠올린다. 우리는 그것을 ‘크리스마스’라고 부르지만, 하늘은 그날을 ‘구원의 날’이라 불렀다.
베들레헴의 그 마구간에서, 영원이 시간 속으로 들어왔고, 위엄은 구유 안으로 내려왔으며, 신성은 인성 안으로 스며들었다. 창조주가 피조물의 일부가 되었다. 무한하신 분이 한 아기가 되었다. 전능하신 분이 다가갈 수 있는 분이 되었다. 말씀은 육신이 되어 우리 이웃 가운데 거하셨다.
C.S. 루이스의 말처럼,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이 되신 것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아들이 되게 하시기 위함이었다.” 이것이 진짜 성탄 이야기다. 단지 한 아기가 태어났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하나님이 내려오셨다는 이야기다.
구유에 담긴 기적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한때 예수가 그저 또 다른 위대한 인물에 불과한지 묻는 질문을 받았다.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사람들을 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결코 단순한 인간이 아니다. 그와 이 세상의 다른 모든 사람 사이에는 비교라는 것이 성립하지 않는다.”
그의 말은 옳았다. 가이사는 군대를 가졌지만, 예수는 천사들을 거느리셨다. 가이사는 권력으로 제국을 세웠지만, 예수는 사랑으로 왕국을 세우셨다. 가이사는 사람들을 떨게 만들었지만, 예수는 마음을 노래하게 하신다. 베들레헴은 우연한 선택이 아니었다. 그것은 전능자의 도착이었다. 별을 지으신 분이 그 별들 아래서 잠드셨다. 생명의 떡이 먹이통에 누워 있었다. 우주를 말씀으로 창조하신 분은 옹알이하며 울 수밖에 없었다.
성탄은 하나님이 우리가 그분께 올라가기를 기다리지 않으셨음을 상기시킨다. 그분이 우리에게로 내려오셨다.
가까이 오신 하나님
혹독한 눈보라가 몰아치던 어느 겨울밤, 난롯가에 앉아 있던 농부에 대한 오래된 이야기가 있다. 그는 창문을 두드리며 안으로 들어오려는 작은 새 떼를 보았다. 농부는 헛간 문을 열고, 건초를 뿌리며 새들을 불러들였지만, 새들은 두려움에 들어오지 못했다. 그는 생각했다. ‘내가 잠시라도 새가 될 수 있다면, 내가 그들을 살리려 한다는 걸 알 텐데.’
그 순간 농부는 깨달았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성탄에 하신 일이었다. 이것이 성탄이다. 피부를 입으신 하나님. 하늘에서 사랑을 외치지 않고, 땅에서 사랑을 보여주신 하나님. 예수 안에서 하나님은 만질 수 있을 만큼 가까이 오셨고, 울 수 있을 만큼 가까이 오셨으며, 피 흘릴 수 있을 만큼 가까이 오셨다. 구원하시기 위해 그렇게 가까이 오셨다. 그분은 우리가 그분과 하나가 되도록, 우리 가운데 한 사람이 되셨다.
메시지를 놓치지 말라
비극은 많은 사람들이 이 메시지를 놓친다는 사실이다. 어떤 이들은 이를 부정한다. “그건 신화일 뿐이야. 샌들 신은 산타 이야기 같은 거지.” 어떤 이들은 무디게 만든다. “이미 다 들어본 이야기야. 나 학교 성극에서 당나귀였어.” 어떤 이들은 왜곡한다. 성탄을 캠페인이나 문화, 혹은 아늑한 전통으로 바꿔버린다.
더 많은 사람들은 반짝이 장식과 칠면조 요리, 텔레비전 속에 그것을 묻어버린다. 그러나 포장지와 선물을 혼동하지 말자. 포장은 일시적이지만, 선물은 영원하다. 성탄의 참된 선물은 ‘무엇’이 아니라 ‘누군가’이며, 그분은 하나님 자신이다.
모든 것을 바꾸는 경이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 2장 6–11절에서 이를 완벽하게 표현했다: “그는 하나님의 본체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당연히 여길 것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과 땅과 땅 아래에 있는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요람은 십자가로 이어지고, 십자가는 왕관으로 이어진다. 십자가 없는 성탄은 중심 조각이 빠진 퍼즐과 같다. 그 아기는 자라 우리 죄를 지셨고, 그 간극을 메우셨으며, 우리를 집으로 데려오셨다. 베들레헴은 십자가를 가리키고, 십자가는 하늘로 가는 문을 연다.
이번 성탄에 주어지는 두 가지 초대
첫째, 깊이 들어가라. 이번 성탄에는 이야기를 겉핥기로 지나치지 말고, 그 안으로 잠수하라. 빌립보서 2장 6–11절을 묵상하라. 그 진리가 당신을 낮추고, 움직이며, 경이로 채우게 하라.
둘째, 개인적으로 받아들이라. 그저 듣는 이야기가 아니라, 살아내는 진리가 되게 하라. 스스로에게 물어보라. “하늘이 내 안에 내려왔는가?”
성탄의 기도
주 예수님, 이번 성탄에 소음과 분주함 속에서 제 마음을 잠잠하게 하소서. 빛들과 할 일 목록 너머에서, 어둠 속으로 들어오신 세상의 빛을 보게 하소서. 우리를 찾기 위해 하늘을 떠나신 것에 감사드립니다. 위엄을 내려놓고 구유를 택하신 것에 감사드립니다. 왕관을 벗고 우리의 인성을 입으신 것에 감사드립니다.
주님은 멀리 계시려 오신 것이 아니라 가까이 오셨고, 정죄하시려 오신 것이 아니라 용서하시려 오셨습니다. 주 예수님, 다시 오소서. 세상에만이 아니라, 제게로 오소서. 이번 성탄에 제 삶과 마음에 다시 태어나소서. 주의 평안과 임재와 목적로 저를 채우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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