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인이 바라보는 조력존엄사
한국기독교목회지원네트워크가 성락성결교회에서 '기독교인이 바라보는 조력존엄사'라는 주제로 세미나를 개최했다. ©최승연 기자

한국기독교목회지원네트워크(원장 이근복)가 28일 오후 성락성결교회(담임 지형은 목사)에서 '기독교인이 바라보는 조력존엄사'라는 주제로 세미나를 개최했다.

세마나는 환영사, 세미나 취지, 조력존엄사에 대한 이해와 법률 소개, 기조강연, 질의응답 및 토론 순으로 진행됐다 지형은 이사장이 환영사를 전하고 개회기도를 드렸으며 이어 이근복 원장이 세미나 취지에 대해 설명했다. 안해용 목사(사단법인 라이프호프 사무총장, 한국기독교목회지원네트워크가 부원장)는 조력존엄사에 대한 이해와 법률을 소개했다.

안해용 목사
안해용 목사(사단법인 라이프호프 사무총장, 한국기독교목회지원네트워크가 부원장)가 조력존엄사에 대한 이해와 법률을 소개했다. ©최승연 기자

안 목사는 “죽음은 누구도 피할 수 없는 현실이며, 그 마지막 순간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지는 우리 모두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문제다. 주변에서 치매나 말기 질환으로 오랜 시간을 보내는 가족의 모습을 지켜보는 경험은 이 고민을 더욱 깊게 만든다. 최근 대중문화 속에서도 의사 조력 사망 같은 주제가 자연스럽게 등장하며 사회적 관심을 넓히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논의가 활발한 것과 달리, 생명과 죽음의 문제를 바라보는 윤리적·신앙적 시각은 여전히 충분히 다뤄지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현재 세계 여러 나라에서는 안락사, 조력 사망, 존엄사 등 다양한 형태의 제도를 운영하고 있지만, 용어 자체부터 혼란이 큰 것이 현실이다. 우리나라의 ‘존엄사’는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중단하고 자연스러운 죽음을 수용하는 소극적 방식에 가깝고, 이는 이미 법적으로 시행 중이다. 반면 의사가 치사 약물을 투여하거나 환자가 스스로 복용하도록 돕는 방식은 국내에서 여전히 불법이다. 그럼에도 국민 다수는 조력 사망 제도 도입에 긍정적인 의견을 보여 사회적 논쟁은 점점 더 커지고 있다”고 했다.

이어 “조력 사망을 찬성하는 쪽은 자기결정권, 무의미한 고통의 해소, 품위 있는 죽음 보장을 강조한다. 반대하는 쪽은 생명의 주권을 인간이 결정할 수 없다는 점, 사회적 약자가 제도에 떠밀릴 위험, 의료기관과 돌봄 체계 약화 문제 등을 지적한다. 특히 한국은 말기 환자 진통제 처방이 매우 소극적이라는 지적이 있어, 환자가 느끼는 극심한 고통이 조력 사망을 선택하도록 만드는 또 다른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호스피스 체계의 부족 역시 중요한 문제로 꼽힌다. 사회적 논의가 조력 사망 쪽으로 쏠릴 경우, 마지막 순간을 전문적 돌봄으로 지원하는 호스피스가 더욱 약화될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 국내 대형 병원조차 경제적 이유로 호스피스 병동을 충분히 운영하지 못하고 있으며, 말기 환자를 위한 영적·정서적 돌봄이 충분히 제공되지 못하는 현실도 존재한다. 결국, 죽음을 둘러싼 선택을 논의하려면 법과 제도의 문제뿐 아니라 사회적 돌봄, 의료 윤리, 환자의 고통을 줄이기 위한 현실적인 대책까지 함께 고민해야 한다는 점이 분명해지고 있다”고 했다.

이어진 기조강연에서 박충구 박사(감신대 명예교수, 생명과 평화 연구소 소장)가 '조력존엄사에 대한 긍정적인 입장: 조력사 합법화의 정당성에 대하여'라는 제목으로 강연했다.

박충구 박사
박충구 박사(감신대 명예교수, 생명과 평화 연구소 소장)가 '조력존엄사에 대한 긍정적인 입장: 조력사 합법화의 정당성에 대하여'라는 제목으로 강연했다. ©최승연 기자

박 박사는 “오늘날 논의되는 ‘조력사’ 개념은 단순한 자살 보조가 아니라, 죽음을 앞둔 사람이 의료적 도움 속에서 마지막 시간을 선택하는 방식을 의미하는 방향으로 변화해 왔다. 자살이라는 부정적 뉘앙스를 줄이고, 인간이 삶의 마지막 과정에서 의료적 돌봄을 받는 행위로 이해하려는 흐름이 특별히 캐나다를 중심으로 확산되었다. 이러한 논의의 배경에는 인간이 스스로 삶을 선택할 수 있는 존재라는 철학적 전환이 자리하며, 인간 존엄성에 대한 칸트적 사상이 현대 생명윤리의 기초로 작용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이러한 철학적 기반 위에서 자율성은 현대 생명윤리의 핵심 원칙으로 자리 잡았다. 과거에는 의사, 종교, 법조인 등 권위 있는 사람들이 환자의 삶과 죽음을 대신 결정하는 일이 흔했지만, 지금은 환자 본인이 자기 운명을 선택할 권리를 존중해야 한다는 인식이 강해졌다. 특히 이 변화는 종교적 권위 구조에도 도전을 주어, 과거의 ‘보호자 중심’ 목회 방식에서 벗어나 개인의 판단과 선택을 존중하는 새로운 접근을 요구하게 만들었다”고 했다.

이어 “또한 생명윤리에서 중요한 원칙 중 하나는 충분한 정보에 근거한 동의이다. 환자가 자신의 상태, 치료 가능성, 삶의 질과 관련한 정보를 정확히 알고 있어야만 제대로 된 선택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의료계뿐 아니라 임종을 자주 마주하는 종교계에도 적용된다. 죽음 앞에 선 사람을 돌보는 목회자의 말 한마디가 당사자의 결정에 영향을 줄 수 있기에, 정보 없이 관습적 가치만을 앞세우는 태도는 더 이상 설 자리가 없다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오랜 종교적·사회적 전통이 갖는 의미는 분명하지만, 그것만으로 복잡한 현대의 생명윤리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변화하는 현실과 새로운 의학적 상황과 대화하며 판단해야 하며, 그 과정에서 지나치게 좁은 세계관에 갇혀 현실을 보지 못하는 ‘갈라파고스 현상’을 경계해야 한다. 오늘날 조력사 논의는 바로 이런 전통·이성·자율성의 충돌과 조정 속에서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이길찬 목사(새길교회 담임, 한국기독교생명윤리협회 사무총장)가 '조력존엄사에 대한 부정적인 입장: 자살할 권리가 있는가'라는 제목으로 강연했다.

이길찬 목사
이길찬 목사(새길교회 담임, 한국기독교생명윤리협회 사무총장)가 '조력존엄사에 대한 부정적인 입장: 자살할 권리가 있는가'라는 제목으로 강연했다. ©최승연 기자

이 목사는 “최근 한국 사회에서 조력자살과 관련한 입법 논의가 본격적으로 등장한 배경에는 몇 차례의 법안 발의가 있다. 2022년에는 기존 연명의료결정법에 조력자살 조항을 추가하려는 시도가 있었고, 그에 대한 비판이 거세지자 이후에는 별도의 ‘조력존엄사법’이라는 형태로 다시 발의가 이루어졌다. 겉으로는 다른 이름을 사용하지만 결국 핵심은 “의사가 환자의 죽음을 돕는 것을 법으로 허용할 것인가”라는 문제이며, 이는 사회가 ‘자살’을 제도적으로 용인할 것인지에 대한 매우 중대한 논점이다”고 했다.

이어 “또한 ‘조력존엄사’라는 용어 자체도 본질을 흐린다는 지적이 있다. 원래는 ‘의사조력자살’이 정확한 표현인데, 자살이라는 단어가 주는 거부감을 피하기 위해 ‘존엄’이라는 긍정적 이미지를 붙여 미화하려는 의도가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존엄사는 원래 소극적 안락사를 지칭하는 용어였음에도, 지금은 조력자살을 포장하는 데 사용되고 있다. 용어 선택은 여론을 크게 좌우하는 만큼, 실제 내용을 정확히 반영하는 표현을 사용해야 하며 ‘좋게 들리는 말’에 속아서는 안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여론조사 결과만 보면 국민 다수가 조력자살 또는 존엄사에 찬성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는 질문이 어떻게 구성되었는지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존엄사’라는 긍정적 단어를 중심으로 묻는 경우 찬성이 80~90%까지 나오지만, 실제 내용을 충분히 설명하거나 다른 대안(예: 호스피스 완화의료 강화)을 제시하면 결과는 전혀 다르게 나타난다. 동성애 차별금지법 논의에서 보듯, 이름만 보고 판단하면 오해하기 쉽기 때문에 용어와 질문 설계가 여론을 어떻게 왜곡할 수 있는지 주의가 필요하다”고 했다.

끝으로 그는 “조력자살을 허용하자는 주장은 이미 오랜 논의와 사회적 합의 끝에 만들어진 ‘연명의료결정법’의 정신을 흔드는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된다. 이 법은 의료계, 윤리학계, 종교계, 정부, 시민단체 등이 10년 이상 논의하여 마련한 사회적 합의의 산물이다. 충분한 숙고를 통해 마련된 기존 제도가 있는데, 이를 무너뜨리는 방향의 입법을 서두르는 것은 위험하며, 생명 관련 정책은 더욱 신중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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