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큐메니칼 성경관은 해방신학 등의 영향을 받아 성경과 상황 중 상황에 우선성을 두는 경향을 지님을 살펴보았다. 전통적인 신학의 경우는 성경의 명령을 신중하게 여기면서 상황과 관계없이 성경의 명령을 순종하는 것이 사명이요 기쁨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을 지닌다. 이러한 신학을 지닌 교회는 성경의 선교 명령을 시대와 여건을 초월하여 순종해야 하는 명령으로 인식하면서 어떤 어려움과 손해가 있다 할지라도 그 명령을 수행하는 데 열심을 보인다. 반면에 상황에 우선성을 두는 에큐메니칼 신학의 경우는 성경보다 상황을 중시하므로 상황에 따라 성경의 명령을 다르게 해석하거나 상황이 원하는 것을 성경의 명령으로 해석하는 경향을 보인다.
성경은 사복음서 마지막 부분에서 공통적으로 선교를 명하고 있다. 그것은 예수의 최후 명령이고 대위임령이다. 그런데 기독교가 성경에 나타난 ‘오직 예수’ 라는 배타적인 복음을 전하면 세상에서의 공존과 평화에 방해가 될 수 있고, 이런 점이 기독교를 고민하게 만드는 면이 있다. 또한 세상은 기독교가 성경의 명령을 따라 오직 예수의 복음을 전하는 것보다는 세상의 공존과 평화에 기여해주기를 기대하고 요구한다.
여기에서 기독교는 어렵고 힘들더라도 복음을 전하는 방향으로 가는 것에 강조점을 두어야 할지, 아니면 세상이 원하는 공존과 평화로 가는 것에 강조점을 두어야 할지를 두고 고민하게 되는 것이다. 이 때 인간의 본성은 기본적으로 분쟁 없이 평화롭게 지내는 것이 행복에 도움이 되므로 자연스럽게 평화 공존을 선호하게 되는 경향이 있다. 특별히 성경보다 상황을 더 중시하는 관점을 지닌 경우에는 더더욱 갈등을 유발할 수 있는 복음 전도보다는 평화 공존을 선택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이미 이런 상황을 예견하시고 제자들을 파송하시면서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라고 말씀하신 후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버지와, 딸이 그 어머니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35절) 라고 말씀하셨다. 선교를 수행할 때 복음 전도로 인해 잠시 평화 공존이 무너지는 상황이 있다 해도 그것 때문에 복음전도를 포기하지 말고 전도에 우선순위를 두라는 말씀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것은 평화 공존이 중요하지 않다는 의미가 아니라 평화 공존 때문에 복음 전도를 포기하지는 말라는 말씀일 것이다. 말씀보다 상황을 우선순위에 두지 말라는 말씀일수도 있다. 그런데 에큐메니칼 진영은 말씀보다 상황을 우위에 두는 경향으로 말미암아 선교를 말할 때 정의, 평화, 생명살림, 공존, 화해 등의 주제는 많이 강조하는 반면, 복음전도는 형식적으로 조금 언급할 뿐 거의 언급하지 않는 경향을 보인다. 결국 말씀보다 상황에 우선순위를 두는 관점은 종국적으로 전도의 소홀로 이어지는 경향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 좀 더 자세한 내용과 각주 등은 아래의 책에 나와 있다.
안승오 교수(영남신대)
성결대학교를 졸업하고 장로회신학대학원(M.Div)에서 수학한 후, 미국 풀러신학대학원에서 선교학으로 신학석사(Th.M) 학위와 철학박사(Ph.D) 학위를 받았다. 총회 파송으로 필리핀에서 선교 사역을 했으며, 풀러신학대학원 객원교수, Journal of Asian Mission 편집위원, 한국로잔 연구교수회장, 영남신학대학교 대학원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는 『선교와 신학』 및 『복음과 선교』 편집위원, 지구촌선교연구원 원장, 영남신학대학교 선교신학 교수 등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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