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정의를 한국 사회에 적용해 보면, 최근 일부 언론이 교회의 애국운동을 ‘극우’로 규정하는 것이 과연 정당한가 하는 의문이 제기된다. 올해 초 세계로교회 담임 손현보 목사가 주도한 ‘세이브코리아’ 운동은 지난해 12월 계엄 선포 직후, 거대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줄탄핵과 예산 삭감 등 의회 독주에 대한 저항의 성격으로 시작됐다. 신자들은 부산, 대구, 광주, 서울 등 각 지역에서 모여 나라의 위기를 염려하며 기도한 것이다. 그 현장에 폭력은 존재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위협하는 의회독재와 삼권분립의 위기를 지적하며,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호소하는 목소리가 주를 이뤘다. 무데의 정의대로라면 당시 세이브코리아 등 교회의 애국운동을 언론들이 극우로 부르는 것이 타당한가.
조지 레이코프의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가 보여주듯, 언론은 단순한 사실 전달자가 아니다. 언론은 특정 언어와 반복된 표현을 통해, 사고의 틀 즉 프레임을 만든다. 예컨데 ‘세금 완화(tax relief)’라는 표현은 세금 자체를 ‘고통’으로 규정하는 프레임을 설정한다. 중립적 언어처럼 보이지만 이를 접하는 독자는 세금을 부정적으로 인식하게 된다. 마찬가지로 한국의 좌파 성향 레거시 미디어들이 교회의 애국운동을 ‘극우 집회’라 호명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대한민국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외치는 교회의 목소리를 단지 나치즘과 같은 전체주의 국가에 대한 맹목적 복종으로 오인하게 만드는 프레임 전략인 것이다. 그 프레임 과정이란 명확한 용어 설명이나 정의도, 근거도 없이 선동을 양산하는 것에 가깝다. 극우의 표면적 양상이 집단적 폭력이라면, 과연 세이브코리아 집회에 극우가 지향하는 집단적 폭력이 있었는가. 오히려 민주노총 집회에서 폭력적 양상이 드러난 경우가 많았다. 이는 좌파 레거시 미디어들이 주로 구사하는 사실보다 프레임이 앞선, 정치적 매도의 언어전략이라고 본다.
역사적으로 극우의 전형은 아돌프 히틀러의 나치 독재다. 나치는 1933년 집권 직후부터 자유민주주의 제도를 하나하나 파괴했다. 첫째, 의회 무력화다. ‘국회의사당 방화 사건(Reichstag Fire)’을 빌미로 기본권을 정지시키고, 의회 권한을 박탈했다. 둘째, 법치 해체다. ‘수권법(Enabling Act)’을 통과시켜 입법권을 의회에서 총통에게 이양함으로써 법치주의를 근본적으로 무너뜨렸다. 셋째, 권력분립 붕괴다. 사법부는 나치당의 도구로 전락했고, 반대 판결을 내린 판사들은 숙청되거나 교체됐다. 넷째, 반대 세력의 탄압이다. 유대인 대규모 학살을 비롯해 교회의 저항세력들이 ‘나치즘의 적’으로 낙인찍혀 박해당했다. 특히 디트리히 본 훼퍼 등 고백교회 인사들은 하나님의 뜻에 반한다며 나치에 맞서다 교수형 등 혹독한 탄압을 받았다.
카스 무데의 정의에 따르면, 극우적 행태는 교회가 아닌 현 이재명 정권에서 드러난다. 최근 이재명 정권과 더불어민주당은 사법부를 향한 압박에 나서고 있다. 조희대 대법원장 인사청문회를 통한 정치적 압박,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 대법관 증원 시도 등이 그것이다.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최근 국회에선 검찰청 폐지 등을 골자로 한 정부조직법 개정안까지 통과됐다. 더구나 정부조직법에 따르면 기획재정부가 해체되고 새로 신설되는 기획예산처가 국무총리실 산하로 편성되면서, 이로 인해 내년 1월부터 대통령실이 예산권을 직접 장악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이는 명백히 삼권분립의 위기를 불러오는 조치들이다.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 교수는 최근 한 언론 인터뷰에서 현재 상황을 베네수엘라, 튀르키예, 헝가리 등 민주주의가 퇴행한 국가들의 사례와 유사하다고 지적했다. 그에 따르면, 이들 국가는 선거를 통해 의회와 행정 권력을 장악한 뒤, 점차 사법부까지 통제해 나갔다. 입법·행정 권력을 바탕으로 사법부 불신을 조장하는 여론전을 펼치며 정치 공세를 이어간 게 공통된 특징이라는 것이다. 이재명 정권과 거대여당의 최근 행보도 바로 이러한 ‘민주주의 퇴행 국가들의 전형적 패턴’을 답습하고 있다는 비판이다.
실제로 여권과 지지자들은 이재명 대통령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사건에 대한 대법원의 유죄 취지 파기환송 결정을 ‘대법원의 대선 개입’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손현보 목사의 경우, 정치 관련 설교 발언이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단순 벌금형에 그쳤던 앞선 전례들과 달리, ‘도주 우려’로 법정 구속으로 이어진 이례적 상황이 벌어졌다. 법과 원칙보다 권력 전횡과 선동에 기초한 여론전이 우세해지면, 결국 죄를 죄라고 판결하지 못하고 사법부가 권력의 눈치를 보는 사회가 도래할 수 있다. 이는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무너지는 징조다. 만약 이러한 일이 이재명 정권에서 벌어지고 있다면, 레거시 언론들은 그들을 비판하고 시정을 요구해야 마땅하지 않은가?
일각에서는 교회의 애국집회를 순수한 신앙운동으로 볼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분명한 사실은 자유민주주의 체제는 종교개혁의 산물이라는 점이다. 왕의 독재에 따른 개신교 박해를 막고 종교의 자유를 수호하고자 의회·사법·행정의 삼권분립을 확립한 것이다. 그래서 청교도 신학자 사무엘 러더포드는 왕권신수설을 부정하며, 왕이 하나님의 법과 언약을 어길 경우 백성은 저항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청교도들의 역사적 투쟁이 자유민주주의 체제 확립에 기여했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손현보·전광훈 목사의 행보를 극우라 단정지을 수 있겠는가. 오히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려는 자유민주주의 체제 수호 운동이었다. 종교의 자유가 보장된 자유민주주의 체제 안에서 교회는 복음통일과 선교한국, 세계복음화 등 하나님나라 확장에 매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극우의 본질은 단순한 정치적 보수성을 넘어 자유민주주의 제도의 뿌리를 뽑고 독재로 치닫는 데 있다. 한국 사회에서 이 용어가 정치적 전략으로 소비될수록, 언론은 손쉬운 낙인인 ‘극우 프레임’에 기대며 교회를 향한 마녀사냥에 전념하기보다, 누가 자유민주주의 토대를 위협하는지를 자성하고 반성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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