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계의 원인

박현숙 목사
박현숙 목사

대한민국은 1천여만 명의 기독교 인구를 가진 국가이다. AI 개요에 따르면, 22대 국회의원 당선자 중 기독교인 비율은 29%로, 인구 비율에 비해 높은 편이라 한다. 정당적으로도 성경적 기독교적 가치를 중시하는 비율에 큰 차이가 없는 현실이다.

진정한 의미에서 기독교인의 정체성을 가진 자라면, 자신들의 국가에서 일어나는 정치, 법, 경제, 문화, 사회적 현상을 사회과학적 관점만이 아닌, 우선적으로 성경적인 영적 관점에서 인식할 수 있는 통찰력이 필요할 것이다.

하나님께선 인간의 역사와 국가들을 주관하시며, 통치자들을 세우시고 폐하시는 권한을 가지신 분이다. 하나님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 가계의 다윗을 통해 이스라엘 왕국을 세우셨고, 믿음의 사람, 조지 워싱턴과 이승만 박사를 통해 미국과 대한민국을 세우셨다.

그런 하나님께선 하나님을 업신여기고 우상숭배에 빠진 이스라엘 민족을 70년간 바벨론 포수로 유배하셨을 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승천 이후 유대인들이 2000여년간 지난한 디아스포라의 삶을 통과하게 하신 후에 유대국가인 이스라엘의 건국을 허락하셨다.

성경의 영적 원리는 시공을 초월해 개인적인 차원과 집단적인 차원을 공유하고 관통하는 섭리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국가 차원에서 일어나는 제반 현상들의 원인과 추이와 장래를 성경을 통해 꾸준히 깨닫고 예감할 수 있는 자세를 가지는 것이 우리의 영적 성장에 도움이 될 것이다.

하나님의 징계는 하나님이 택하신 자들 특히 영적 지도자들이 ‘말씀’을 무시하는 범죄와 허물로 인해 내려지는데(사1:4), 판단의 기준은 그들의 ‘언어와 행위’가 하나님의 ‘거룩하신’ 본성에 거슬림이라고 성경은 지적한다.

“그들의 언어와 행위가 여호와를 거역하여 그의 영광의 눈을 범하였음이라”(사3:8)

또한 하나님이 노를 발하시고 벌하지 않으실 수 없도록 견디지 못하시는 것은, 기독교 지도자들을 포함한 기독교인들의 형식적이고 위선적인 신앙생활이다. 즉 교회 안과 교회 밖의 이중적이고 표리부동한 삶의 태도이다(사1:12-13).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13)

어떤 교단에서 한 지도자가 성령의 몇몇 특성을 강조한 것을 두고, 그 영성의 정통성의 원조가 자기 신학교라고 산하 신학교들끼리 서로 다투며 고소하는, 실로 웃지 못할 촌극이 벌어지는가 하면, 성적 일탈은 물론, 교인들과 돈거래를 하는 목사들이 부지기수인 현실을 도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반면 영성에 냉소적인 세련된(?) 어떤 교단의 기독교 지도자들은 철저히 인본주의적 합리적 사고에 물들어 영적 깊이와 신비에 전혀 무지한 현실이다. 이들에겐 타종교와의 경계선이 희박하고 세상의 가치관이 뒤섞여 혼잡하고 위해적이다.

생각컨대 혹자가 비방하듯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진노와 벌’의 하나님이신가? 그렇지 않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진노하실때, 자신에게 대적하고 원수가 된 자식을 바라보는 부모의 미어지는 가슴처럼, 하나님의 한탄섞인 슬픈 마음을 송구함을 가지고 먼저 깊이 헤아려야 한다…

“슬프다 내가 장차 내 대적에게 보응하여 내 마음을 편하게 하겠고 내 원수에게 보복하리라”(사1:4)

현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국가적 재앙을 내리시는 목적은 기독교 지도자들의 마음에 들러붙은 찌꺼기와 혼잡물를 제하시어 우리를 청결케 하시려는 것임을 깨닫고(사1:25), 각자가 겸비하고 통렬히 상한 심정으로 울부짖고 회개해야 할 때이다.

진정한 영적 지도자의 구령/구국열

윤 대통령의 구원이 대한민국의 구원과 연결된다는 정치적 구호가 국내외적으로 회자되는 현실이라면, 모든 기독교 지도자들은 연대의식과 책임감을 가지고 윤 대통령 내외의 영적 성장과 부흥을 위해 그간 심혈을 기울여 노력하지 못한 것에 대해 통분히 참회하는 마음으로 이제부터라도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윤 대통령의 재직동안 실로 어떤 영적 지도자가 구령/구국열을 가지고 대통령 내외를 개인적으로 꾸준히 만나 ‘천국의 보물’을 성실히 전하였었던가?

이 절체절명의 시기에 어떤 영적 지도자가 그들을 찾아가 구령/구국열을 가지고 ‘천국의 보물’을 건넬 것인가?

“저같이 아무 것도 아닌 사람이…”

적어도 영혼에 관심을 품고 영혼을 사랑하는 신앙 지도자라면, 김여사의 말에 대해 여론의 몰매를 맞았다고 성토하기 보다, 그녀의 이 언표가 하나님 앞에 선 스스로의 참회의 고백이 되길 간절히 바라고 기도하는 마음이어야 하지 않을까?

인본주의적 우상

하나님은 사랑하는 백성을 징계하실 때 여러가지 방법을 사용하시는데 그중엔 타국의 통치자나 동족인 정쟁(政爭)자도 도구로 사용하신다. 비록 상황과 내용엔 현실과 상이점이 있으나 성경을 통해 우린 본질적 영적 원리를 깨닫게 된다.

유다를 진노하신 하나님께선 아하스왕을 아람-이스라엘 손에 붙이셨다. 그러나 아하스는 인본주의적인 생각에서 국제정세상 세력이 있는 앗수르에게 도움을 요청하였다(열하16:5). 그 결과 유다는 앗수르에게 조공을 바치는 신세로 전락하였다.

그후 에돔과 블레셋의 침략으로 아하스가 앗수르에게 재차 도움을 요청했을땐 먼저와 달리 오히려 앗수르에게 군박과 공격을 당하고 말았다(역하28:16-21). 이 모든 것의 결과는 이스라엘 민족 속에 역사해오신 하나님을 떠나 이방의 우상숭배란 어리석고 치욕스럽고 참담한 열매뿐이었다

오늘날 기독교 안의 우상숭배는 청결한 양심과 예배정신을 뒤로한 채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에 대한 순종보단 세상의 권력과 세상적 지혜와 지식에 의존하고 재물과 명성을 추구하는 위장된 인본주의적 영이다.

하나님의 징계의 도구

하나님께서 유다를 징벌하시기 위한 도구로 앗수르와 북이스라엘을 사용하셨을 때 이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손에 들린 진노와 심판의 막대기임을 모르고 도리어 무절제하고 무자비한 살육과 학대를 저지름으로써 하나님의 진노를 촉발하였다.

만약 도구화된 객체가 스스로 주체인 것처럼 자신의 힘과 지혜를 과시하고 분수에 지나친 행동을 하면, 그것은 곧 주체이신 하나님께 대들고 반역하는 범죄행위이다. 그럴 때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은 머잖아 도구화된 대상에게로 옮겨간다(사10:13-15, 24-25).

“시온에 사는 내 백성들아, 앗시리아 사람들이 이집트 사람들을 본 받아 막대기로 너희를 때리고 몽둥이를 들어 너희를 칠지라도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아라. 내가 곧 너희에 대한 분노를 그치고 그 분노로 앗시리아 사람을 벌할 것이다.”(24-25)

한편, 남유다와 같은 형제인 북이스라엘은, 동족학대를 금지하는 하나님의 율법보다는 이방의 인본주의적이고 실용주의적 정치문화에 젖어, 자신들에게 패전한 유대 동족을 원수를 갚듯 살륙하고 압제하던중 하나님의 선지자 오뎃의 꾸지람을 듣게 되었다.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함이 없느냐? 그런즉 너희는 내 말을 듣고 너희가 형제 중에서 사로잡아 온 포로를 놓아 돌아가게 하라 여호와의 진노가 너희에게 임박하였느니라 한지라”(역하28:9-11)

다행히도 저들은 오뎃 선지자를 통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후, 마음에 찔림을 받고 돌이켜 포로로 끌고온 동족 형제들중 헐벗고 굶주리고 병약한 자들을 성심껏 돌보아 풀어주고 안전하게 귀환시켰다(:15).

한국의 여당의 지도부는 ‘하나님의 메시지’는 상황과 사람들을 통해 전해짐을 반드시 깨닫고 하나님의 진노를 두려워해야 한다.

시력은 다른 신체의 부분 중에서도 특히 정신적 스트레스와 직결이 되는 매우 민감한 부분이다. 아무리 육체가 건재해 보여도 시력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은 것과 같다. 시력은 한번 시기를 놓치면 복구가 안되기에 상식적이고 인도적 차원에서 반드시 배려가 되어야 하는 중요한 사안이다! 영양은 물론 수면시 전기 소등도 시력보존에 결정적으로 중요한 이슈이다(수면 안대를 공급함도 방법이다).

생각컨대

하나님께선 모세와 다윗과 바울처럼 천성이 의로운 자를 크게 들어 쓰시는 분이시다. 아마 윤대통령의 청년적 기질을 아는 지인들로서는 이번 그의 계엄에 대해 그저 묵묵히 고개를 끄덕일 자들이 적지 않았을 것이다.

윤 대통령은 한국적 분단상황이란 십자가를 지고 특유한 한국의 정치적 제단 위에 놓여진 제물과도 같다. 그래서 국내외 많은 사람들이 그에 대해 연민의 정을 느끼고 응원을 하는 것이리라… 그러나 우리 인간이 이 세상에서 지는 십자가는 주님이 말씀하신대로 “쉽고 가벼운 십자가”이다(마11:28-30). 왜 그런가?

우리 주님께서 지신 십자가는 인류의 죄를 짊어지신 십자가였다. 주님께서 받으신 십자가의 고통은 전인류의 죄에 대해 진노를 쏟아부으신 하나님의 ‘불심판’이었기에 주님께선 영적으로 하나님과 철저히 단절되었고, 육적으로도 유황불못과 같은 처참한 고통을 감내하셔야 했다.

그러나 고난중에 흘리신 ‘주님의 보혈’은 그 분의 ‘대속’의 공로로 말미암아 우리의 죄를 말갛게 씻어주시는 ‘생명수’가 되었고, 사망권세를 이기신 주님의 ‘부활’로 인해 죄악을 ‘소멸하는 불’, ‘성령의 불’이 되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고통스런 십자가를 짐으로써 더욱 더 영적으로 하나님/주님과 연결이 되고, 육적으로도 성령의 능력으로 치유와 회복을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할렐루야!

국제 정세를 다스리는 분은 이 세상의 통치자이신 하나님이시다.

누구나 성경적인 통찰력이 없이는 원시안적이고 사차원적 세계관에 눈을 뜨지 못하므로, 그저 인본주의적이고 로컬적 협소한 안목으로 눈 앞의 이익만을 쫓는 조삼모사(朝三暮四)한 정책을 펼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에 영합하는 세속적 미디어들이 본제와는 무관한 지엽적 개인사의 흑역사를 캐거나 창작하여 대중들을 선동하기 위한 저질음해 문화를 만연시키는데 주력하는 행태를 일삼는다면 이는 민도와 국격의 저해만을 가속화 할 뿐이다.

이런 위중한 시기에 한국의 모든 교회들이 합심하여 자정력을 키우고, 윤대통령도 이대통령도, 여당도 야당도 성경적 진리에 눈을 뜨도록 간절히 부르짖어 기도하자!

대한민국이 선교국가로서 열방에 빛을 발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와 사랑이 속히 회복될 수 있도록 모두가 한 마음으로 기도의 힘을 모아야 할 때이다.

“내가 네 재판관들을 처음과 같이, 네 모사들을 본래와 같이 회복할 것이라 그리한 후에야 네가 의의 성읍이라, 신실한 고을이라 불리리라 하셨나니 시온은 정의로 구속함을 받고 그 돌아온 자들은 공의로 구속함을 받으리라”(사1:2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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