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상을 만들고 절하지 말라”(출 20:5)
하나님은 시내 산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선포한 십계명의 제1계명에서부터 제3계명에 이르기까지 하나님 외 다른 신을 두지 말고 우상을 만들어 절하거나 섬기지 말라고 엄히 명하셨다(출 20:1∽6). 그러나 1500년에 걸치는 구약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면 백성들은 끊임없이 우상을 만들고 숭배하다가 하나님의 징계를 받는 일이 반복되는, 우상과의 싸움의 연속이다. 신약시대도 마찬가지이다. 사도바울은 당시 세계 철학과 지성의 중심지 아테네에 와서 온 도시를 가득 메운 우상을 보고 분개하면서 “사람이 하나님의 소생이 되었은즉 하나님을 금이나 은이나 돌에다 사람의 기술과 고안으로 새긴 것들과 같이 여길 것이 아니라”고 설교하였다(행 17:29).
흔히 우상이라고 하면 나무나 돌 또는 금 등 보물에 사람의 형상을 새기거나 큰 나무나 바위 등 거대한 자연 현상 앞에 절하거나 소원을 비는 것을 연상한다. 유럽의 대성당이나 궁전에 가보면 수많은 거장들이 남긴 조각상이나 그림들이 건물을 장식하고 있다. 뉴욕에 가면 자유의 여신상, 광화문의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의 동상과 같은 국가의 이념이나 위대한 인물들을 기념하는 조형물들도 많다. 이러한 예술작품이나 국가적 기념물 또는 상징물은 그 자체로는 우상이 아니다. 그러나 그것이 아무리 아름답고 정교하고 또 위대한 인물을 기념한다고 해도 창조주이신 하나님과 같이 여기면 우상이 될 수 있다. 사도바울의 아테네 설교는 바로 이것을 지적한 것이다.
국가적 기념물 중 으뜸은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태극기다. 국민들은 중요한 행사 때 국기에 대한 경례와 애국가를 제창한다. 문제는 국기에 대한 경례가 하나님이 금하신 우상에게 절하는 행위인가 이다. 유신시절인 1973년 예장 고신교단 소속교회 신자이었던 김해여고 학생 5명이 전교생이 모인 합동교련 시간에 국기에 대한 경례를 거부하는 사태가 발생한 적이 있다. 태극기는 사람이 만든 물체로써 비인격인체이므로 국기에 대해 경례를 함은 우상숭배라는 것이다. 학교는 학생들이 학교 교육방침에 위배하였다고 퇴학시키자 부모들이 퇴학처분의 취소 소송을 제기하였다.
대법원은 "학교의 징계처분은 우상을 숭배해서는 아니된다는 종교적인 신념을 그 처분의 대상으로 삼은 것이 아니고 나라의 상징인 국기의 존엄성에 대한 경례를 우상숭배로 단정하고 그 경례를 거부한 행위 자체를 처분의 대상으로 한 것이므로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종교의 자유가 침해되었다고 할 수 없다"는 취지에서 소송을 기각했다. 이에 반해 미국 대법원은 애국심의 고취는 국기경례와 같은 강제적인 방법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달성될 수 있으므로 국기에 대한 경례거부는 합법이라고 한다.
국기법시행령 제3조는 경례 방법으로 거수경례와 함께 가슴에 손을 얹고 주목(注目)을 추가하여 갈등의 소지를 없앴다. 다만 국기에 대한 경례는 국가의식이므로 신앙의 자유와 무관하다는 판결의 취지에는 동의할 수 없다. 역사적으로 극심했던 로마제국의 기독교 박해도 그 표면적인 이유는 국가의 상징인 로마황제 동상에 절하는 ‘국가의식’을 거부한 것이었다. 일제 때 신사참배 거부로 인한 박해도 마찬가지다.
이와는 그 결이 다르지만 조상에 대한 제사가 자손들이 마땅히 행할 효도인지 아니면 우상숭배인지가 기독교인의 신앙양심을 괴롭힌다. 유교권 국가에서 제사 거부로 엄청난 박해와 순교자들이 잇따르자 1939년 로마교황 비오 12세(Pius XII)는, 제사는 조상에 대한 효성을 표시하는 ‘민간의례’로 허용된다는 교서를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결국 어떤 형상이나 상징물 그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이를 하나님과 같이 여기면 우상숭배가 될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기독교인들도 따르고 지켜야 할 ‘국가의식’이나 ‘민간의례’가 되기도 할 것이다. 신앙인의 지혜가 요구되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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