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호 목사
김민호 목사(회복의교회 담임)

대한민국은 지금 거대한 정치 격변을 겪고 있는 중이다. 레거시 미디어의 목소리에만 귀를 기울이는 사람들은 대한민국에서 일어나는 이 ‘격변’이 정권 다툼 문제 정도로만 오해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인터넷을 서치(search)해 보라. 그러면 이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은 6.25 ‘사변’(事變)의 연장이라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더 정확하게 말한다면 이 전쟁은 공산주의로부터 자유민주주의를 지켜내려는 체제 수호 전쟁이다.

놀라운 점은 이 체제 수호전쟁의 흐름을 주도하는 사람들이 주로 기독교인이라는 것이다. 처음에는 대통령 계엄령에 대다수 기독교인들도 회의적으로 반응했다. 그러나 점차 정치 기류의 변화를 보면서 대통령의 진심을 알게 된 상당수 기독교 유튜버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각성된 상당수 기독교인들이 광장으로 나온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교회가 자꾸 정치에 목소리 내는 것을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사람들이 있다. 정치는 세속 영역이므로 교회가 정치에 목소리를 내는 것을 일종의 타락처럼 프레임 씌우는 것이다. 그러면 정말로 기독교가 정치에 목소리 내는 것이 타락을 의미하는가? 이에 대한 진위를 성경적으로 따져보자.

구약을 보면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선택하시고 그들에게 율법을 주셨다. 율법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첫 번째는 도덕법이다. 일명 십계명이라고도 한다. 두 번째는 의식법이다. 다른 말로 제사법이라고도 한다. 세 번째는 시민법이다. 다른 말로 사회법이라고도 한다. 대다수 성도들은 이 세 가지 법 가운데 도덕법만이 신약에도 존속하는 존속법이라고 생각한다. 나머지 두 개의 법인 제사법과 사회법은 폐기된 율법이라고 알고 있다. 과연 그럴까? 우리가 구약의 율법을 이런식으로 존속 율법과 폐기 율법으로 이해하는 것이 정당한지 생각해 보자.

무엇보다 우리가 먼저 염두에 둘 성경구절은 마태복음 5:17의 예수님 말씀이다.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여기서 예수님은 자신이 율법을 폐하러 온 것으로 생각하지 말라고 하셨다. 분명히 완전하게 하려고 오셨다고 선언하셨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사람들은 예수님이 완전케 하신 율법을 오로지 도덕법에만 해당된다고 생각한다. 다른 두 개의 제사법과 시민법을 폐하러 오셨다고 이해한다. 성경 어디에도 제사법과 시민법의 폐기를 말하고 있지 않다. 물론 오해하지 말라. 구약의 제사 의식과 이스라엘의 시민법이 신약시대에도 동일하게 존재해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단지 이것을 그림자로 보아야 한다는 말이다. 그림자라는 차원에서 본다면 도덕법도 사실 폐기로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더 이상 간음한 자, 동성애자, 신접한 자를 돌로 쳐 죽이지 않기 때문이다. 구약적 개념으로서 율법의 폐기 개념은 제사법과 시민법과 마찬가지로 도덕법도 다 포함한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율법의 완성 개념은 이 세 가지에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한다.

그러면 도덕법만이 아니라, 제사법과 시민법이 오늘날 어떤 식으로 완성되었다고 보아야 하는가? 첫째로, 도덕법은 더 이상 십계명의 조문을 기계적으로 지키지 않고 예수님의 가르침처럼 하나님을 마음과 뜻과 힘과 지혜와 생명을 다해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 것으로 완성된다. 이 완성은 율법 조문이 더 이상 돌로 된 두 석판에 기록되지 않고, 마음의 본성(심비/心碑)에 각인됨으로 가능해진다. 형식이나 의식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두 번째로, 제사법의 완성은 어떻게 성취되는가? 일차적으로 제사법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수난과 죽으심을 통해 완성하셨다. 그런데 이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제사법의 완성은 다시 그리스도와 연합된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참여함으로 완성된다. 바울은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고 명령하면서 이것이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고 가르쳤다. 이제 구약의 제사법은 우리가 날마다 우리 전 인격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a living sacrifice)로 드림으로 완성되는 것이다. 흥미롭게도 이것은 율법의 이중계명 가운데 ‘하나님 사랑’에 해당된다.

마지막으로 시민법의 완성에 대해 생각해 보자. 시민법은 율법의 이중계명 가운데 ‘이웃 사랑’과 직결된다. 그리스도인들은 누구나 자신이 몸담고 있는 나라의 시민으로 살아간다. 성도의 시민권은 하늘나라에 있으면서, 동시에 자기가 몸담고 있는 나라의 시민으로 살아간다. 그리스도인들은 이중 국적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이 가운데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이 사는 세상의 시민으로 살아가면서 이웃 사랑을 실천한다. 그 방법 가운데 하나를 개혁자들은 ‘직업의 소명’이라고 한다. 그런데 국가의 시민으로 ‘이웃 사랑’ 실천의 방편은 직업만이 아니다. 그 외에도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철학, 과학, 예술 등의 영역에 적극적으로 참여함으로 이웃 사랑을 구체적으로 실천한다. 우리는 천주교처럼 종교적인 영역은 거룩하고, 그 외의 일은 속되다는 성속 이원론으로 살지 않는다. 혹은 구약시대처럼 부정을 무조건 멀리하여 이방인이나 세상과 단절된 삶을 살지 않는다. 예수님은 율법에서 부정하게 됐다는 사람들을 멀리하지 않으시고 직접 손으로 만져서 치료하셨다. 거룩하게 하신 것이다. 마찬가지로 이 시대의 교회는 세상 속에 들어가서 소금과 빛의 역할을 하도록 부름 받았다. 교회는 썩은 고기를 멀리하고, 어둠을 멀리하도록 명령 받지 않았다. 도리어 썩은 세상 속에 소금이요, 어두운 세상 속에 빛으로 살라고 명령 받았다. 신약의 교회는 부정한 세상에 들어가 정화시키도록 부름 받은 것이다.

정치 문제로 돌아가자. 이 원리를 정치 영역에도 적용해 보자. 우리가 만일 정치 영역을 부정으로 여기고 멀리한다면, 그것은 여전히 구약 율법주의의 올무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새 언약의 관점에서 본다면 도리어 우리는 정치 영역에 들어가서 그 영역을 거룩하게 정화시켜야 한다. 정화를 시키되 그냥 정화시키는 것이 아니다. 그 전제가 있다. 우리는 하나님 사랑에서 출발해야 한다. 다시 말해서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자기 몸을 거룩한 산 제물로 하나님께 드리는 태도로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교회는 세상을 정화시키는 소금이 아니라, 도리어 세상 죄에 오염된 맛 잃은 소금이 된다. 이런 성경적 원리를 망각하고 섣부르게 세상에 뛰어든 기독교인들이 세속에 들어가 같은 모습으로 오염되었다. 우리는 이 사실을 망각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은 정치와 어느 하나도 분리해서 존재할 수 없다. 정치는 사실 공기와 같다. 우리가 의식하지 못할 뿐, 정치체제는 우리의 삶과 우리의 신앙의 전 영역을 공기처럼 영향을 미친다. 작금의 대한민국은 무신론과 유물론을 전제로 하는 인민민주주의, 다시 말해서 공산주의 체제로 전환시키려는 세력의 전방위적 공격을 받고 있다. 대통령은 이런 사실을 알지 못하는 국민들을 계몽하기 위해 계엄령을 내렸다. 계엄령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공산주의 체제가 될 상황에 처한 것이다. 마치 냄비 속의 개구리처럼 우리는 서서히 익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공산주의체제가 대한민국을 완전히 장악한다면 우리가 이제까지 공기와 물처럼 자연스럽게 여기던 자유와 인권과 풍요와 안식은 한 순간에 사라지게 될 것이다.

이런 사실을 안다면 기독교가 정치에 관심을 갖고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무너뜨리려는 세력 앞에 목소리를 내는 것이 이웃 사랑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도리어 이런 긴박한 상황을 외면하며 침묵하며 사랑을 말한다면 그 것은 ‘위선’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태어난 조국, 내 나라를 사랑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이웃 사랑을 말할 수 있는가? 이것은 마치 하나님 사랑을 강조하면서 고르반을 가르치며 부모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도록 가르쳤던 위선적 종교 행태와 다를 바 없다. 이런 행태를 우리 주님은 회칠한 무덤이라 하지 않겠는가? 우리 기독교인들이 정말로 이웃을 사랑한다고 하면, 이제 국가적 위기 앞에 침묵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 선배 신앙인들이 조국의 위기 앞에 온 몸을 던져 나라를 지켰던 것처럼 우리도 그 본을 따라야 한다. 이것이 율법의 완성을 바라보는 그리스도인들의 정당한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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