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욱 교수
신성욱 교수

목회자들의 일과 중 하나는 상담하는 일이다. 그런데 요즘 성도들은 목회자들에게 상담하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이유는 너무 뻔한 얘기를 하기 때문이란다. “기도 많이 하세요.”라든가 “성경 많이 읽으세요.”와 같은 답을 해결책으로 제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런 답변은 상담하지 않아도 다 알고 있는 사실 아닌가!

견딜 수 없는 고난과 고통 속에 상담을 필요로 하는 이들이 있다. 그런 이들에게 전혀 도움이 안 되는 조언을 하는 경우를 많이 본다. “하나님은 감당할 수 없는 시험 주시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그러니 용기 있게 이겨내시기 바랍니다.” 그게 말대로 쉬울 거 같으면 왜 상담하러 가겠는가? 견딜 수 없는 고민과 갈등으로 죽고 싶은 지경에 있는 이들에게 도움은커녕 화를 돋구는 권면이 될 뿐이다.

니체는 “신은 죽었다”라는 말을 해서 기독교인들로부터 비평을 많이 받는 인물이다. 하지만 그가 말한 의미가 욕먹을 정도로 부정적인 의미는 아니라 하더라도, 그가 가진 신앙이 성경이 말하는 신앙과는 꽤 많이 다르다는 점에서 나는 니체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데 그가 한 말 중에 귀담아들을 내용도 있음을 본다. 나는 니체가 남긴 다음 한 문장을 무지 좋아한다.

“무너진 사람에게 ‘이겨내!’라는 외침은 ‘죽으라!’는 독설처럼 들린다.”

삶이 통째로 무너져내리고 있는 이에게 “용기를 가지라!”거나 ‘힘내!’라거나 ‘이겨내야지!’라는 말은 약 올리는 거나 마찬가지일 수가 있다. 도움이 필요한 상대방에게 그가 처한 현실에서 벗어나게 유도하는 것은 역효과가 날 뿐이다. 오히려 그 힘겨운 상황 자체를 이해하면서 함께 아파하고 고뇌하면서 공감을 가져야 한다. ‘함께함’에는 엄청난 위력이 있다. 올바른 해답을 제시하는 것보다 상대방의 슬픔에 동참하여 하나로 느끼게 함이 더 효과적이다.

서양 철학에 “깨진 틈이 있어야 그 사이로 빛이 들어 온다.”라는 말이 있다. 여기서 ‘빛’을 얘기하기 전에 먼저 ‘깨진 틈’에 마음을 써야 한다. 어둠이 깊을수록 태양은 밝게 빛나는 법이다. 때로는 침묵이 금일 때가 있다. 욥이 고난을 당할 때 친구들이 와서 위로한답시고 한동안은 침묵을 지켰다. 그게 욥에게는 적잖은 위로가 되었을 게다. 하지만 그들이 침묵을 깨고 한 두 마디씩 말을 하자 욥의 고통은 심각해지고 말았다.

고뇌가 평안을 낳고, 혼돈이 질서를 생산하는 법이다. 요셉에게 이복형들과 보디발의 아내는 철천지 원수같은 존재들이다. 하지만 요셉을 애굽의 총리로 만든 주역들이 그들이었음을 기억하는가!

하나님은 때로 당신의 백성들을 고난과 질병과 파산 등 인간적으로 볼 때, 실패와도 같은 환경 속으로 몰아넣거나 그런 부정적인 환경에 처하는 것을 막아주지 않으신다.

그런 아픔과 시련을 통해 하나님을 의지하게도 하시고 당신의 섭리를 깨닫게도 하시기 때문이다. 미국에 나이가 든 한 판사의 판결 영상을 여러 차례 본 적이 있다. 법을 어긴 이들에게 법조문에 따라 엄격하게 판결하는 것이 아니라, 그럴 수밖에 없었던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함께 울고 함께 웃어주면서 너그러운 판결을 내리는 걸 보았다. 그로부터 혜택을 받은 이들은 다시는 법을 어기지 않을 것이란 확신이 들었다.

법이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공감과 관심과 사랑이 사람을 제대로 뒤바꿔놓기 때문이다. 그렇다.

최고의 상담은 ‘공감’과 ‘관심’과 ‘사랑’이다. 그것들이 잘 발휘될 때 비로소 도움을 요청하는 이들이 용기를 얻고 힘을 내서 자발적으로 승리하는 삶을 이끌어낼 수 있게 된다. 나부터가 그런 최고의 상담가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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