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부가 지난 26일 ‘제4차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NAP)을 수립·공표했다. 교계는 초안 발표 당시 우려했던 ‘성 평등’이 ‘양성 평등’으로 바뀌고 ‘성 소수자’ 문제가 제외되는 등 내용면에서 상당부분 개선된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은 인권의 법적 보호와 제도적 실천을 위해 2007년부터 5년마다 수립해 온 범국가적 종합계획이다. 이번 4차 계획은 오는 2027년까지의 인권정책 방향으로 지난 2022년 3차 계획 종료 직후에 확정됐어야 했는데 공청회 등을 거치면서 일부 안이 수정되는 과정에서 발표가 조금 지연된 것으로 보인다.

법무부는 제4차 NAP를 발표하며 “유엔 국제인권협약상의 권리를 참고해 새로운 사회 변화와 요구에 부응하고 인권의 사각지대를 없애는 한편, 보다 더 두터운 인권의 보호 및 증진을 위해 다양하고 폭넓은 인권 정책과제를 반영했다”고 밝혔다.

이번 제4차 NAP에는 △생명존중과 기본적 자유의 보호와 증진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의 보장 △사회적 약자 및 소수자의 인권 보호 강화 △디지털 시대의 인권 보호 및 증진 △기업의 인권 존중 책임 강화 △인권 의식과 인권 존중 문화 확산 등 6개 정책목표를 중심으로 31개 분야, 271개 정책과제가 제시됐다.

가장 눈에 띄는 건 ‘생명존중과 기본적 자유의 보호와 증진’ 부분이다. “인간의 존엄은 생명존중으로부터 시작되며, 신체의 자유와 안전의 보장은 인권 보호와 증진의 기초”라고 했다. 인권 정책에 있어 ‘생명 존중’이 가장 중심이 되는 가치라는 것을 선언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사회적 약자 인권에 ‘북한이탈주민’을 별도 분야로 신설한 것도 긍정적인 변화다. 법무부는 “북한이탈주민 정착 지원 강화 등 현 정부의 정책기조에 맞추어 ‘북한이탈주민’에 관한 별도의 분야를 신설해 북한이탈주민의 인권 보호를 강화할 예정”이라고도 밝혔다. 이 부분은 이전 NAP에서 찾아볼 수 없었던 내용으로 정부가 북한이탈 주민의 인권 보호와 정착을 위해 법제 개선 등에 나서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해석된다.

‘디지털 시대의 인권 보호 및 증진’을 별도 정책목표로 신설한 것도 눈에 띈다. 윤석열 정부가 제시한 ‘디지털’ 비전과 새 시대 인권수요에 부응하기 위해 디지털 정보 접근권을 보편적 권리로 보장하고, 사이버 범죄 등 디지털을 활용한 인권침해에 국가가 적극적으로 대응하겠다는 뜻이다.

교계는 제4차 NAP 초안이 공개됐을 때 동성애 등을 포함해 이른바 ‘젠더 이데올로기’를 담고 있다며 강하게 반대 의사를 표했다. 소위 ‘유사 차별금지법’과 같은 성격을 띠지 않을까 우려해서다.

제4차 NAP 초안엔 남녀간 ‘양성평등’이 아닌 수십 가지의 성 정체성 사이의 평등을 말하는 ‘성 평등’ 용어가 여러 곳에서 사용되고 차별‧혐오 표현을 금지하는 등의 내용이 들어있었다. 또 국가인권위원회 권한 강화와 다양한 가족 용어 통해 동성 결혼 합법화, 낙태약의 사용을 허용하는 등의 내용이 들어있는 것도 문제로 지적됐다. 교계가 사실상 ‘차별금지법’이나 마찬가지가 아니냐며 반발했던 이유다.

그러나 확정 발표된 제4차 NAP에는 그런 문제점들이 삭제되거나 상당 부분 개선됐다. 논란이 된 ‘성 소수자’ 문제를 빼고 ‘성 평등’ 용어가 ‘양성 평등’으로 대체됐다는 것만으로도 이전 제3차 NAP에 비해 상당히 개선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는 대목이다.

지난 2018년에 확정된 제3차 NAP와 비교해 봐도 그땐 ‘성소수자’ 인권 문제를 중요하게 다뤘다. 차별금지법과 관련해서도 “성소수자를 보호하기 위한 법적 근거가 마련되어야 한다는 주장에 국민적 공감대가 필요하다”고 하는 등 다소 어정쩡한 듯 태도를 취하면서도 의지를 숨기지 않았었다.

하지만 이번 4차 NAP에는 성소수자 문제가 거의 사라졌다. 제3차 NAP에 ‘국어사전 성차별 내용 개선’, ‘공무원 및 인권 종사자 교육’을 성소수자 인권 관련 정책 과제로 제시했던 내용도 찾을 수 없다. 차별·비하·혐오 표현 확산 방지 및 인식개선 과제 대상을 ‘난민, 장애인, 이주노동자, 사회적 약자’ 등으로 지칭했는데 이건 교계가 주장해온 내용과도 일맥상통한다.

다만 법무부는 제4차 NAP 서문에서 ‘사회적 약자 및 소수자의 인권보호 강화’를 주요 과제로 제시했다. 그러면서 인종, 피부색, 성, 장애 및 연령, 성적 지향과 성정체성, 외국인 등에 대한 차별을 금지하는 ‘국제인권규범’을 언급하기도 했다.

성 소수자 옹호단체에선 이번 NAP가 국제인권규범에 부합하지 않고 ‘인권정책기본계획’이라고 부르기 부끄러운 수준이란 혹평을 쏟아내고 있다. 성 소수자 문제가 빠진 것에 대한 불만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 전반에서 ‘모든 사람의 인권과 기본적 자유에 대한 존중’이 전제되지 않는 소수만을 위한 인권이 존재해야 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차별이다.

그런 점에서 4차 NAP는 정부의 인권정책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바뀌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하겠다. 인권은 만인이 존중받고 누려야할 권리이지 성 소수자들만의 특권이나 전유물이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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