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의대 증원 계획에 반발하는 대형 종합병원 전공의들의 집단 사직으로 맞은 의료 공백 사태가 한 달이 지나도록 정상화의 길이 여전히 요원하다. 정부와 의료계가 서로 한 발도 물러서지 않고 맞서면서 그 피해가 온전히 국민에게 돌아가고 있는 점을 살펴야 할 때다.

정부의 의료 개혁은 어떤 의미에선 시대적 과제이자 국민적 요구일 수 있다. 정부의 의대 증원 계획에 88%의 국민이 지지를 보내고 있는 게 단적인 증거다. 하지만 단순히 의사 수를 늘리는 것이 개혁의 전부일 순 없다. 시간이 갈수록 의료 공백의 피해가 커지는 상황에서 하루라도 빨리 사태 해결의 돌파구를 찾는 게 최선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9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연 국무회의 모두발언에서 “지금 우리 앞에 있는 의료 개혁이 바로 국민을 위한 우리 과업이며 국민의 명령”이라며 “국민 생명을 살리기 위해 부여된 의사 면허를 국민을 위협하고 불안하게 만드는 수단으로 사용해선 안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환자의 곁을 지키고, 전공의들을 설득해야 할 일부 의사들이, 의료 개혁을 원하는 국민의 바람을 저버리고 의사로서, 스승으로서 본분을 지키지 못하고 있어 안타깝다”고 했다.

윤 대통령이 지적한 대로 현재의 의료 공백에 대한 일차적인 책임은 한꺼번에 사직서를 내고 환자 곁을 떠난 전공의들에게 있다. 이들의 잘못된 행동을 부채질하는 듯한 의대 교수들의 집단 사직 결정 또한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볼모로 한 집단행동이나 다름없다는 점에서 정당화될 수 없다.

하지만 의료대란이 현실로 닥치면서 정부의 국정관리 능력에 대한 국민적 우려 또한 커지는 분위기다. 갈등에 대한 국민적 피로감이 의료 개혁의 변수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정부의 의대 증원 계획에 의료계가 강력히 반발할 거란 건 충분히 예상했던 일이다. 그렇다면 사전에 보다 철저히 대비했어야 했다.

정부와 의료계의 강대 강 대결로 빚어진 의료대란 사태가 한 달을 넘기면서 여론의 흐름이 조금씩 바뀌고 있다. 한국갤럽이 지난 12~14일 전국 성인 100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정부의 의대 정원 2000명 확대 계획에 ‘원안대로 추진해야 한다’는 응답자는 47%, ‘규모나 시기를 조정해야 한다’는 41%로 나타났다. 하지만 ‘의대 증원에 반대한다’는 응답자가 6%인 걸 감안하면 찬성과 신중론이 엇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사태 해결이 지연될수록 정부에 부담이 가중될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정부가 의대 정원을 5년간 2000명씩 늘리는 계획에서 한 치도 물러서지 않고 있는 가운데 의료계에서 절충식 중재안이 나와 주목을 끌고 있다. 홍승봉 대한뇌전증센터학회 회장은 지난 19일 “정부의 5년 동안 2000명 의대 증원 계획 대신 10년 동안 1004명 증원으로 속도를 조절하자”고 제안했다. 의료시스템이 우리와 비슷한 미국, 일본, 대만 의대 정원의 평균값을 산정한 것이라는 데 5년 후 필수의료와 지방의료의 상황을 재평가해 의대 정원의 증가, 감소를 다시 결정하자는 안이다.

성균관대 의대 교수협의회 회장인 홍 회장은 자신의 제안에 교수협의회의 의견이 아닌 개인적 견해라는 단서를 달았다. 하지만 정부가 매년 2000명씩 의대 정원을 늘리겠다고 한 발표가 현 사태의 핵심인 만큼 의료계에서 나온 이런 중재안이 의-정 갈등을 푸는 단초가 될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교계는 더 이상의 의료 공백은 국민에게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주게 된다며 의사들이 병원으로 돌아와 환자 곁을 지켜달라고 연일 호소에 나서고 있다. 한교총은 지난 19일 발표한 ‘의료계에 드리는 호소문’에서 “의대 정원 증원 문제와 관련한 의료 현장의 갈등이 길어지면서 많은 국민들이 고통받고 있다”면서 “정부가 보다 유연한 대응으로 (전공의들의) 현장 복귀 분위기를 조성해 주고 향후 필수 진료과 기피와 의료수가 문제 등 세부적인 의료 개혁 방안에 대한 의사들의 주장과 고충을 충분히 수렴해 보완 정책을 만들 것”을 요청했다.

한교연도 얼마 전 발표한 성명에서 “의사들은 본연의 자세로 돌아와 환자 곁을 지켜 주길 요청한다. 환자는 투쟁의 대상이 되어서도 갈등의 피해자가 되어서도 안 된다”며 “이번 사태가 국민의 무한 희생이 뒤따르는 의료 ‘파국’이 아니라 국민적 고통을 나눠짐으로써 사회 통합의 소중한 밑거름이 되는 성숙한 기회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라고 했다.

교계가 한목소리로 의료 공백을 우려하면서 갈등이 대화와 타협으로 해소되기를 바라고 있지만, 지금 정부와 의료계는 강대 강 대결 국면에서 서로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고 있다. 마치 마주 달려오는 기차를 보는 것처럼 불안하기만 하다. 정부는 법과 원칙대로 하겠다며 강경 대응을 고수하고 의사들은 가운을 벗어던지고 정권 퇴진에 나서겠다고 맞불을 놓은 자세로는 이 사태가 해결될 수 없다.

의료 개혁이 국민의 미래가 달린 외면할 수 없는 과제인 건 맞지만 그것이 단순히 의대 정원을 급격히 늘린다고 달성될 문제인가 하는 점은 재고의 여지가 있다. 의사도 가운을 벗으면 국민의 한 사람이란 점에서 의료계와 국민이 서로 등을 돌리게 만드는 건 성공하는 개혁이 될 수 없다.

의료 개혁은 칼자루 싸움이 아니다. 인간의 생명, 그 존엄성을 가운데 두고 서로 승리를 자신하는 건 국민을 패배자로 만들겠다는 오만의 극치다. 다시 말하지만, 의사들이 병원과 환자 곁을 떠나서 하는 그 어떤 주장도 국민을 설득시킬 수 없다. 정부 또한 개혁을 위해 국민의 무한 희생을 강요해선 안 된다. 지금은 정부와 의료계 모두 싸움에서 승리할 생각을 할 게 아니라 국민에게 피해가 돌아가지 않는 최선의 길을 모색할 때다. 국민이 무슨 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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