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창국 교수
최창국 교수 ©유튜브 영상 캡처

최창국 교수(백석대 실천신학)가 최근 복음과 도시 홈페이지에 ‘야고보서의 기도 문법을 배우자’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최 교수는 “야고보서는 교회 공동체의 기도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무엇보다도 교회 공동체는 서로 죄를 고백하며 기도해야 한다고 말한다(약 5:13~16)”며 “여기서 서로 죄를 고백하며 기도하라는 명령문은 현재시제로, 기도는 교회 공동체의 일상적인 행위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암시한다”고 했다.

이어 “그런데 야고보서 5:16 하반절은 효과적인 기도에 대해 제시한다. 즉, 의인의 기도는 효과가 있다는 내용이다. 이 내용은 기도에 대한 전체 단락의 핵심(존 윌킨슨, 성경과 치유, 374~75)”이라며 “효과적인 기도는 바로 의인의 진심 어린 믿음의 기도”라고 했다.

그러나 “모든 믿음의 기도가 효과적인 결과를 낳은 것은 아니다. 믿음의 기도가 반드시 효과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라며 “바울은 자기 육체의 가시가 치유되기를 전심으로 기도했지만 치유되지 않았다(고후 12:8). 여기서 바울의 기도는 하나님의 초자연적 기적을 통한 질병의 제거가 아니라 하나님과 자기 동료들 사이에서 만들어지는 바울의 관계성 속에서 나오는 질병의 새로운 용도가 곧 치유였다”고 했다.

그러면서 “중요한 것은 야고보서에서 말하는 기도의 효과를 의미하는 현재분사 에네르고우메네(energoumene, 효과적인)에 대한 문법적 또는 해석학적 논쟁이 있다”며 “분사 에네르고우메네가 수동태 혹은 중간태로 해석되어야 하느냐에 대한 논쟁”이라고 했다.

그는 “우리는 보편적으로 기도의 문법을 수동태로만 이해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의 기도에 대해 성령은 능동적으로 역사하고 우리는 수동적으로 응답을 받는다고 여긴다”며 “하지만 기도의 문법을 중간태로 이해할 때 우리는 기도를 통해 우리 안에 내재하는 은총 또는 창조적 선물이 활성화되도록 하나님의 생명력과 리듬에 참여하는 행위로 이해하게 된다”고 했다.

특히 “하나님의 숨-영이 이미 우리 속에 있다는 것을 확신한다면, 기도 방법도 달려져야 한다. 우리 안에 있는 숨-영이 우리를 자극하도록 기도할 필요가 있다”며 “출생 시 주어진 우리의 영이야말로 일차적인 기도의 동인이고, 하나님과 신자 간의 처소이며, 인간이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는 장소이다. 하나님의 영이 이 기도를 승인할지는 몰라도 불러일으키지는 않는다. 이런 촉발과 영감은 내면에서 나온다(잭 레비슨, 성령과 신앙, 84)”고 했다.

최 교수는 “야고보서에서 효과적인 기도의 문법이 수동태의 특성보다는 중간태의 특성이 더 타당하다고 할 때, 현대 교회의 기도 이해에 주는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다”며 “교회가 기도의 중간태의 특성에 대한 이해가 상대적으로 미흡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어 “기도의 문법은 능동태와 수동태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아주 독특한 중간태의 특성을 지니고 있다. 기도의 궁극적 목적은 단지 기도하는 사람이 성령의 능동성, 즉 기적과 능력을 수동적으로 경험하는 데만 있는 것이 아니”라며 “하나님과 인간의 교제인 기도는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통제하는 데 텔로스(telos), 즉 궁극적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함께 생명력을 나누는 데 있다”고 했다.

그는 “기도는 하나님의 마음과 뜻에 참여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우리가 기도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가 된다. 존재론적 동역자가 아니라 실천적 동역자가 된다. 물론 인간의 욕구가 기도 생활의 가장 원초적인 동기가 된다”며 “그러나 기도에서 욕구를 위한 차원이 기초적이지만 모든 것은 아니다. 기도의 본질적 목적은 단지 우리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과 생명력을 경험하는 데 있다”고 했다.

그리고 “방향이 잘못된 기도는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통치 관계로 만들지만, 진정한 기도는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사랑의 관계로 만든다”며 “구체적으로 서술하면, ‘사랑이 통치를 무너뜨리고 사랑이 드러남을 알게 되는 바로 이 점에서 기도 또한 작용한다. 그것은 사랑의 한 언어다. 그리고 기도가 사랑의 언어가 아닌 곳에서는 그것을 생략할 수 있다’(Dorothee Solle, The Silent Cry, 296)”고 했다.

아울러 “여기서 사랑은 ‘나는 너 없이 살 수 없어’라고 말하는 종속성과 같은 것”이라며 “이 종속성은 서로를 충만하게 하는 종속성이다. 그리스도가 내 안에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자유와 사랑이 넘치는 종속성이다. 기도의 목적이 바로 여기에 있다”고 했다.

  • 네이버 블러그 공유하기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press@cdaily.co.kr

- Copyright ⓒ기독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최창국 #최창국교수 #복음과도시 #칼럼 #야고보서 #기도 #기독일보 #기독일보일간지 #기독일보일간지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