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독교역사학회 제417회 학술발표회
한국기독교역사학회 제417회 학술발표회가 온라인 줌으로 진행됐다. ©한국기독교역사학회

한국기독교역사학회(이재근 회장)가 지난 7일 오후 제417회 학술발표회를 온라인 줌을 통해 진행했다. 손승호 교수(한국기독교역사학회 편집이사, 명지대 객원교수)의 사회로 시작된 이날 학회는 ▲전인수 교수(강서대)가 ‘성서조선의 검열 연구’ ▲양홍석 교수(다릿목교회 담임, 감신대)가 ‘개교회사 집필과 활용방안에 관한 연구’라는 주제로 각각 발제했고, 홍이표 교수(山梨英和大學)와 김일환 연구원(서울장신대 미래목회연구소)이 각각 논찬했다.

◇ “「성서조선」, 흩어진 구독자들에게 하나의 보이지 않는 교회”

먼저, 전인수 교수는 “「성서조선」은 6명의 동인(同人)이 1927년 7월, 제1호를 발간함으로써 시작되었다”며 “「성서조선」 제15호(1930. 4)까지는 정상훈(鄭相勳, 1901-?)이 책임을 맡았고, 제16호(1930. 5)부터는 김교신이 단독 발행했다. 이후 제158호(1942. 3)를 끝으로 폐간되었다. 「성서조선」은 다른 언론과 마찬가지로 일제의 검열을 감수해야 했다”고 했다.

이어 “김교신은 「성서조선」 때문에 많은 치욕을 당했는데, 검열이 많은 부분을 차지했다”며 “그가 발행한 「성서조선」은 다른 잡지보다 당시의 검열 상황을 파악하는데 몇 가지 유리한 점이 있다”고 덧붙였다.

전 교수는 “먼저, 「성서조선」은 15년 동안 발행되었기에 1920년대 후반부터 1940년대 초반까지 일제의 검열을 비교적 자세히 파악할 수 있는 자료가 된다”며 “특히 김교신은 일명 ‘공개 일기’라고 불리는 ‘성서통신’(城西通信)과 ‘성조통신’(聖朝通信)에 검열에 대한 기록을 남겼다”고 했다.

또 “둘째로 검열문제로 볼 때 「성서조선」에서 특히 주목되는 글은 함석헌(咸錫憲, 1901~1989)의 ‘성서적 입장에서 본 조선역사’(이하 조선역사)”라며 “셋째로 「성서조선」의 검열 상황을 더 상세히 파악할 수 있는 개인 자료가 있다. 바로 「김교신 일보(日步)」와 몇 통의 편지”라고 했다.

그는 “김교신은 일제의 검열 시스템을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이 시스템에서 열외 될 수 없었고, 그 구조 안에서 최선의 길을 모색할 수밖에 없었다”며 “왜냐하면 이것을 어길 경우 잡지발행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어 “김교신이 조선의 엄격한 검열 시스템을 우회하기 위해, 심각하게 고려했던 것이 「성서조선」의 본사를 도쿄로 이전하고, 발행인을 일본 지인으로 두는 것이었다”며 “일본에서 문제없이 출판된 책도 일부는 검열을 통과하지 못해 출판 금지 처분되는 곳이 조선이었다. 조선과 대만은 사전검열(허가주의)이 원칙이었지만 일본은 사후검열(신고주의)이 원칙이었다. 일제는 조선과 대만의 특수성을 내세우며 이런 차별을 합리화했다”고 덧붙였다.

전인수 교수는 “함석헌은 「성서조선」의 폐간을 권면했고, 한림(韓林, 1900-?)은 ‘준순(浚巡)할 때가 아니라고 역설’했다. 김교신 자신도 몇 번이나 폐간을 결심했지만 끝내 생각을 번복했다”며 “그 이유는 잡지 발행의 최우선 목적이 복음 전도에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어 “「성서조선」은 총회와 같은 중앙 조직이 없는 무교회 신자들, 전국에 흩어져 있는 구독자들에게 하나의 보이지 않는 교회였던 것”이라며 “모든 요소는 김교신이 잡지 발행에서 신앙적 측면을 가장 중시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김교신은 잡지가 강제 폐간
될 때까지는 계속 발행하려는 의지가 강했다”고 했다.

또 “김교신은 일제의 요구 사항을 소극적이더라도 수용하는 쪽으로 양보했다”며 “「성서조선」은 복음만을 이야기하는 경향이 강해졌다. 「성서조선」의 일차적인 목적이 복음을 전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아울러 “「성서조선」은 제158호를 끝으로 폐간되었다. 폐간은 행정처분으로서, 언론 통제의 마지막 단계라고 할 수 있다”며 “그러나 폐간의 빌미가 된 ‘조와’라는 글은 살벌한 식민통치 기간에도 김교신의 의기가 꺾이지 않았음을 보여준다”고 덧붙였다.

◇ “개교회사 집필, 한사람의 영웅설화 아닌 지역사로 연결하는 중요한 고리돼야”

이어서 두 번째로 발제한 양홍석 교수는 “지역교회사라 기록하고 일반적으로 개교회사라 명명되는 교회역사 집필과정은 몇 가지의 두드러진 큰 문제를 안고 있다”며 “하나는 교회라는 프레임을 통해 스스로를 드러내고자 하는 목회자의 욕망이며, 또 하나는 지역교회사로 읽어지는 지역 내 교회임에도 불구하고 지역의 역사에 대한 부재가 현저하게 드러난다는 것”이라고 했다.

양 교수는 “이를 위해 교단과 개교회의 적극적인 노력과 투자로 라키비움(larchiveum) 설립을 제안한다”며 “이미 100여년의 넘은 교회들의 경우 대부분의 노후 된 건물이라 할지라도 자신만의 건물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대다수이기에 더욱 가능할 것으로 여겨진다”고 했다.

이어 “미래세대와 지역주민들과 교우들의 소통 공간으로서 라키비움(larchiveum) 건립은 이후 세대와 소속을 넘어 역사를 잇는 가교가 되어 주고, 교회 공간이 복합문화공간을 향한 첫걸음이 되어줄 것”이라며 “복합문화공간의 콘텐츠를 더욱 연구 개발한다면 도서관과 기록관과 박물관을 넘어 카페로, 영상관으로, 공연장으로도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또한 “개교회사 집필이 가진 난제였던 역사의 가교역할을 공간으로부터 시작하게 된다”며 “개교회사 집필로 시작된 지역교회의 기록물 관리와 보존은 지역 이야기를 품고 전시하거나 나눌 공간이 되어줄 것”이라고 덧붙였다.

아울러 “한사람의 영웅설화가 아닌 교회 안에 속한 역사 자료의 정리뿐만 아니라 지역사로 연결하는 매우 중요한 고리가 되어야하며, 지역에 속한 소장가치가 있는 민간 기록물로서 정의하고자 하는 노력의 출발점이 되어야한다”며 “단지 한 권의 책이 아닌 민간기록물에 부합한 집필과정을 거친 개교회사 기록물이 시작되어 나아가 지역의 기록물이 되고 지역사가 되어 지역을 품고 미래를 품게 되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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