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선교사가 아닌, 준비된 선교사가 필요
영적 무장 되지 않은 선교사는 오히려 선교에 문제 야기하기도...
선교에는 믿음과 함게 전략과 전술도 중요해
50000개 가까운 섬 있는 동남아, 선교할 사람이 없어...
은퇴 앞둔 목회자, 연륜과 경험 선교사로 최적

김명규 세부미션랜드
세부 본부교회의 모습 ©김명규 목사 제공

영화에 나올 법한 드라마를 실제 현장에서 찍는 선교사들이 있다.

이들은 오지를 두루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섬긴다. 쓰레기가 덮인 마을, 태풍을 피해 배를 타고 가야 하는 섬,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산 등이다. 미전도 종족과 마주치게 되면 많은 경우는 문맹과 같은 비 문명인들과의 소통도 쉽지 않다. 뿐만 아니라 바이러스 같은 또 다른 위협도 따른다.

한국에서 목회를 이어가던 중 60이 되어 선교지로 떠난 김명국 선교사와 최추순 사모는 관광의 도시로 알려진 필리핀 세부에서 14년 동안 선교를 했다. ‘세부’, 언뜻 보면 관광의 도시로 아름답기만 할 것 같은 이 지역을 비롯해, 이들은 오지와 미전도 종족을 대상으로 사역했다.

숱한 죽음의 위험에 방대한 선교지 이야기에 대해 모두 들을 수는 없었지만, 70대 중반의 김 선교사는 아직도 오직 선교에 대한 걱정이 앞서는 사역자이다. 나아가 한국교회와 세계선교에 대해서도 애정 어린 비판을 아끼지 않는다.

필리핀 신학교의 짧은 방학기간을 통해 한국에 돌아와 바쁜 일정 가운데 있는 이들과 필리핀으로 다시 출국하기 하루 전, 김 선교사 부부를 그들의 집 근처의 한 카페에서 만나 파란만장한 사역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 아래는 김 선교사 부부와의 일문일답.

Q. 자기소개 부탁드린다.

김 목사: 늦은 나이에 신학을 공부하게 됐다. 사실 내가 목사가 될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었다. 어렸을 적부터 목사는 굉장히 범접하기 어려운 사람이라는 편견을 갖게 됐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삼각산에서 기도를 하는 중에 한 장로님으로부터 목회에 부르심이 있다는 말씀을 들었지만, 순종하지 못했다. 그런데 나중에 셋째 아이가 유산되고, 첫째 아이가 사고를 당하는 등 아픔을 겪고 35살에 신학교 공부를 시작하게 됐다. 그렇게 개척을 하면서는 금방 100명이 되었다. 나는 개척하기 전에 고생을 많이 했는데 막상 개척을 해서는 금방 부흥이 됐다. 하나님이 축복하신 것 같다.

서울에서 목회를 하다가 기도를 하는 중에 선교에 대한 부담감이 생겼다. 그래서 필리핀의 세부 ‘땅끝마을’이라는 곳에서 선교하게 됐다. 결정적으로 그 당시 우리 교회에 신실한 학생이던 김종회라는 자매가 있었다. 그런데 그 자매가 필리핀에 선교사로 파송을 나가 순교하게 됐다. 그녀의 죽음 앞에서 나는 “내가 너의 뒤를 따라 가마”라는 고백을 하게 됐다. 이것이 내 인생을 바꾸게 됐다.

종회의 죽임 이후, 서울에서의 목회와 필리핀 선교, 양쪽의 일을 하고 있다가 환갑이 되는 시기에 결단을 했다. 조금 일찍 은퇴를 하고 선교지로 떠나기로 결정한 것이다. 그러나 나도 마음이 흔들리까봐, 교회에 일방적으로 폭탄선언을 했다. 다들 만류했었다. 그 후 14년 동안 13개 교회, 유치원 2개, 세부 연합신학교, 코피노 사역 등을 해오고 있다.

선교 대상을 미전도 종족으로 삼았다. 가장 값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필리핀은 7107개의 섬을 가진 나라다. 섬과 산에는 의술이 부족하고 전기도 없다. 그래서 사람이 많이 필요하다. 사람들이 죽어 나간다. 쓰레기 마을, 산 속에서 사는 아이들, 섬에서 사는 아이들을 도와준다. 섬겨야 할 사람들은 많다. 그런데 인력은 부족하다. 예배나 사역을 하면 이들은 멀리 섬에서 배를 타고 오기도 하고, 멀리서 몇 시간씩 걸려서도 온다.

Q. 故 김종혜 자매의 순교에 대해 얘기해 주실 수 있는가?

최 사모: 우리 교회 성가대에서 봉사하며, 간호사로 일하고 있었다. 참 신실한 자매였다. 그녀를 필리핀 선교사로 파송했다. 그런데 파송 한 달 만에 순교했다. 그 자매는 어린아이들을 헌신되게 치료했었다. 한동안은 너무 힘들어서 목사님이 도저히 목회를 할 수도 없을 지경이었다. 그래서 종혜의 피가 뿌려진 필리핀으로 우리가 들어가게 된 것 같다. 그리고 나도 아이들을 치료했던 종회처럼 사람들을 치료하는 사역을 하게 됐다. 죄송하지만, 더 이상은 얘기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 아직도 그때 생각은 마음이 좀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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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김종회 자매의 묘지에서. ©김명규 목사 제공

Q. 미전도 종족 사역을 많이 해오셨다. 죽을 고비도 많이 넘기셨다고 들었다.

최 사모: 힐루동안이라는 섬에 들어간 적이 있다. 그 섬에는 가끔 한 번씩 바다 토네이도가 생긴다. 사역을 마치고 섬을 나와 목사님이 쪽배에 탔다. 섬에 수심이 얕아서 그곳에는 큰 배가 못 들어간다. 쪽배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토네이도가 일어나서 배가 바다에 잠겼다가, 나왔다 하는 위험한 상황을 반복하고 있었다. 나와 남편은 죽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하나님께 “아들을 지켜달라” 같은 유언 같은 기도도 했다. 그렇게 죽을지, 살지 모르는 깜깜한 바다를 1시간 반 동안 뱃사공과 셋이서 헤맸다. 그랬더니 우리 교회 목사가 기다리다 늦은 밤에 불을 밝히고 부두로 나왔다. 그 빛을 보고 뱃사공이 길을 찾아, 살아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런데 뱃사공이 “토네이도가 이는 그런 상황에서는, 일반적으로 살아 돌아올 수가 없다”고 말하더라. 결국 이 일로 믿음이 없던 뱃사공은, 가족들과 다 예수님을 믿게 됐다. 지금까지 교회에서 신실하게 사역하고 있다.

김 목사: 산꼭대기에 성전을 건축을 하며 저체온증으로 죽을 뻔한 기억, 댕기열에 걸려 죽을 뻔한 적 등등 여러 가지가 있다. 그래도 후회하지 않는다. 60이 넘어 선교지에 갈 때는 회의도 많이 있었고, 사람들의 반대도 컸다. 멀쩡히 목회를 잘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선교사로 가는 것을 참 잘했다고 생각한다. 한국에 있었으면 이렇게 많은 열매가 맺는 것을 못 봤을 것 같다. 하나님께서 세부에 가장 큰 교회를 세우게 하셨고, 이를 통해 많은 사회 공헌도 할 수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교회의 이미지를 많이 새롭게 하는데,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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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루동안 섬 교회의 모습. ©김명규 선교사 제공

Q. 관광도시로 화려한 세부의 뒷골목 풍경이 있다고 들었다. 어떤가?

김 목사: 세부 안에는 섬과 오지 산들이 엄청 많다. 이런 곳에는 교회도 없다. 한 마을이 있다. 이곳은 쓰레기 마을이다. 관광도시로 알려진 세부의 많은 쓰레기가 이곳에 몰린다. 이 난지도에는 2500명 정도 사람들이 있다. 이곳에 들어가서 산다. 극심한 냄새가 난다. 가난하고 위생이 엉망일 뿐만 아니라 마약, 술 등 이곳에는 수많은 문제들이 있다. 그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무엇인가 돈이 될 만한 것을 건지려고 있는 것이다. 너무나 문제가 심각하고 위험해서 10년 전에 같이 했던 호주 선교사와 미국 선교사는 철수하기도 했다.

또한, 섬에는 물과 전기가 없다. 이곳은 문명이 발달할 수가 없다. 교육이 안 되기에 글을 쓸 줄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거기서 찬송가도 가르치고 예배도 드리고, 치료사역도 해야 한다. 그런데 이런 곳은 풍랑이 많아서, 참 위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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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피노 아이들과 필리핀 엄마들. 한국 아버지에 버림을 받고, 오갈 곳이 없는 어머니와 코피노 혼혈 아이들을 김명규 선교사가 섬기고 있다. ©김명규 선교사 제공

Q. 코피노 사역은 어떤가?

김 목사: 이들은 아비가 누군지 모른다. 한국 남성들이 아이를 낳고 내팽겨 치고 도망간다. 이런 아이들을 선교사가 키워서 하나님 나라의 백성을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슬픈 점이 있다. 그것은 이런 사역을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한다는 것이다. NGO 쪽 사람들 말이다. 물론 이것은 좋은 일이다. 이들은 돈도 많고 후원도 많이 받는다. 그래서 많은 코피노 엄마들이 그리로 간다. 그런데 문제는 거기엔 ‘복음’이 없다는 것이다. 이 일을 선교사들이 해야 한다. 할 일은 많은데 사람들이 없다.

조금 더 말하자면, 바다에 와서 술 먹고 물에 빠진 사람, 자살하는 사람, 마약과 카지노, 조폭들과 사기 등 한국 사람들이 와서 사고치는 일들이 정말 많다. 이런 한국 사람들이 필리핀 젊은 여성들과 애를 낳고 간다. 그래서 2차 피해를 받는다. 이런 한국인의 모습은 좀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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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작년에 졸업식을 가진 세부 신학교의 학생들 모습. ©김명규 목사

Q. 신학교는 어떻게 시작하게 됐는가?

김 목사: 처음에는 교회를 건축하고 전도하면 한국처럼 교회 안에 리더가 생기고 제자가 양육될 줄 알았다. 그런데 나의 선교 대상은 미전도 종족이다. 그런데 이들은 문맹자들이 많다. 이들과 여기서 선교를 하는 것에 한계를 느꼈다. 그래서 8년 전부터 사람을 키우자고 생각을 하게 됐다. 이것이 감사하게 잘 됐다.

이 학교는 아직 정규 신학교는 아니다. 이곳을 합법적으로 정규화하려니까 너무 어렵다. 내가 외국인이기에 그렇다. 그래서 고민하던 과정 중에 예전에 우리 역사 속 ‘평양신학교’를 모토로 삼았다. 이것은 지식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무릎 꿇고 주님께 매달리는 것이 중요하다. 지식적인 부분에서는 미국 선교사, 한국 목사들을 초청해서 특강을 많이 한다. 또, 내가 필리핀 학생들에게 한국어도 가르친다. 그래서 학생들이 한국어도 웬만큼 한다.

공부뿐만 아니라, 우리는 운동도 많이 한다. 그리고 ‘산기도’도 시킨다. 우리는 학점 따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 그렇지만, 허술하게 운영되지는 않는다. 학생들이 들어올 때는 많은 사람들이 들어오지만 모두 졸업하지는 못한다. 왜냐면 나는 마음이 없거나, 열심이 없는 학생들은 커트시키기 때문이다. 사람 키우는 일은 정말 어렵다. 우리 신학교에 들어오는 학생들은 숙식과 교육비가 무료이다. 그래서 학생 중에 학교 공부에 최선을 다하지 않고, 밥을 얻어먹으려고 들어오거나 많이 게으른 친구들도 있다. 이런 친구들은 거른다.

그러나 사역 중에 가장 보람을 느끼고 재미있고 감사한 것이 신학교이다. 학생들이 성장하고 크는 것을 보는 것이 너무 재미있다. 작년 10월 목사안수는 7명이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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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규 선교사가 난지도에 힘들게 사는 필리핀 아이들을 위해 식사를 제공하는 모습. 아이들은 쓰레기가 쌓인 곳에서 돈이 될 만한 물건을 찾으며 살고 있다. ©김명규 선교사 제공

Q. ‘미션랜드’는 어떤 곳인가?

김 목사: ‘미션랜드’는 세부 국제공항과 10분 거리에 있다. 20여 년 전에 종회의 죽음 후에 그곳에 계속 다녔다. 왜냐면 종혜의 묘지에 왔다 갔다 했기 때문이다. 그런 가운데서 길거리 전도, 초가집 전도를 하게 됐다. 그러다 거기서 제자를 만들게 됐다. 그 제자 중 하나가 다니와 마르떼스 부부인데 그들이 지금 세부에서 가장 큰 교회를 목회하고 있다.

지금의 미션랜드는 원래 버려진 쓰레기 땅이었다. 그래서 조금 싸게 매입할 수 있었는데 그것도 돈이 없어서 한 10년을 분할해서 냈다. 감사하게 그렇게 할 수 있었다. 돈이 없어서 한국에서 사역하고, 모금한 돈으로 그 돈을 지불했다. 쉽지 않았다.

지금은 세부에서 가장 큰 교회가 됐다. 그곳은 사람들이 사람들을 양육하는 선교 캠프의 본부가 됐다. 많은 한국교회가 아웃리치, 단기선교로 들어온다. 이들이 들어오면 같이 훈련도 받고 한다. 선교훈련 겸 산에도 가고 섬에도 가서 사역한다. 이런 종합적인 사역을 미션랜드에서 하고 있다. 일종의 컨트롤 타워이다.

Q. 한국교회의 선교 상황에 대한 평가나 의견이 있으신가?

김 목사: 선교에도 다양한 스펙트럼이 존재한다. 도시 선교, 원주민 선교, 캠퍼스 선교 등등 다양하다. 그런데 미전도 종족의 경우에는 대개 문맹자들과 빈민들이다. 이것은 결이 좀 다르다. 그런데 가끔 후원 교회들이 모든 선교를 동일선상에 놓고 평가한다. 예를 들면 한인 사역은 헌금이 많이 걷힌다. 어떤 지역은 사람들이 몰린다. 그런데 미전도 종족은 많은 것들을 이들을 위해 투자하고 쏟아부어야 한다. 그런데 후원 교회들이 겉으로 드러난 상황만 보고 선교상황을 평가한다. 그래서 심지어 어떤 선교사님들은 후원이 끊일까 두려워 선교 보고를 거짓으로 작성하기도 한다. 선교지의 어두운 그림자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선교 현장을 제대로 이해하고 평가해야 하는 것이다. 이들의 섬에 가서 태풍을 만나 보고, 산에 가서 산사태를 한번 경험해 보면 생각이 많이 달라질 것이다. 선교지의 상황과 환경을 제대로 파악한 후에, 그것에 합당한, 적절한 평가와 지원이 따라야 한다. 이런 부분들이 선교지를 지원하는 한국교회가 많이 부족한 부분이다. 선교에 대한 정확한 인식을 위해 배움이 필요하다. 선교사들에게 섣부르게 조급한 열매를 강요하는 것은 매우 부적절하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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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추순 사모와 의료 선교 팀들. "항생제 한 방이면 쉽게 해결될 상처도 큰 문제가 된다"고 한다. 잔뜩 몰려 있는 오지의 필리핀 아이들. ©김명규 선교사 제공

최 사모: 미전도 종족 선교는 깨진 독에 물을 붓는 것과도 같다. 교회가 선교사들에게 섣부른 열매를 강요하는 것은 좋지 않다.

김 목사: 그리고 나는 은퇴를 앞둔 연륜있는 목회자들이 선교지에 오시도록 권장한다. 젊은 선교사들은 아이들을 키우느라고 바쁜 경우가 많다. 그리고 어린아이들을 보낼 적당한 학교가 많지 않기 때문에, 보통 국제학교에 보내는데 여기는 돈이 많이 든다. 그런데 은퇴를 앞둔 목사님들이 한국에서 5년, 10년 정도만 일찍 은퇴해서 일찍 선교사로 간다면, 자녀들을 키워야 할 부담에서 벗어나기 때문에 적은 비용으로 선교를 할 수 있다. 또한 이들이 가지고 있는 오랜 목회의 경험과 연륜, 그리고 지식과 다양한 자원을 선교지에 충분히 쏟아부을 수 있다. 이런 목회자들이 되도록 늦게 은퇴하려고 하기보다는 조금 일찍 선교지로 나와 새로운 사역으로 들어오시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정말 최적의 자원들이라고 생각한다.

대형교회의 평신도 선교사들의 문제점이 있다. 은혜를 받고 뜨거움으로만 가면 안 된다. 선교는 충분히 준비가 되어야 한다. 이들은 때로, 본인도 고생하고, 현지 사람들에게도 크게 도움이 안 된다. 사실, 여러 가지 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 대형교회에서 물량으로 쏟아붓기 보다는 정예부대를 보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전쟁터에는 잘 훈련받은 군인들이 가야 한다. 영적으로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다른 사람까지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 그렇다고 모든 대형교회의 선교가 다 문제가 있다거나, 모든 평신도 선교사가 잘못됐다는 얘기는 아니다. 오해 없기를 바란다.

그러나, 영적 전쟁터에는 잘 훈련된 군사와 훈련된 병사가 있어야 한다. 사도 바울도 전신갑주를 입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전략적인 면이 있어야 하는데, 때로 선교사들이 전략이 없다. 무조건 믿음으로 간다. 적절한 전술과 전략이 있어야 한다.

특히, 선교지의 한인교회 목사들은 미전도 종족이나, 오지 목회를 하는 야전 선교사들과 협력선교하는 것이 정말 필요하다. 미국이나 일본에 비해 한국 선교사들은 협력선교가 매우 약하다. 또한, 미국의 선교사들이 잘하는 것이 맞춤식 선교이다. 경제 수준, 환경, 교육 수준 등에 맞춰서 접근하는 것이 필요하다. 선교지에 무조건 많은 사람들을 보내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잘 배우고, 훈련된 선교사들을 보내는 것이 필요하다.

지금 미전도 종족에 대한 대책이 필요한 시기이다. 인도네시아만 2만 개의 섬이 있다. 남태평양에도 2만 개이다. 필리핀만 7107개가 있다. 이것은 황금어장이다. 여기에 많은 선교사들과 인력들이 필요하다.

그러나 전체가 살기 위해서는 빨리 다음 세대가 일어나야 한다. 선교도 계속 새로워져야 한다. 빨리 발전하고 성장하려면, 빨리 새로운 방법이 들어와야 한다. 50년을 반성해보고 새로운 방향 설정과 방법으로 나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한국 선교도 사양길로 가게 될 것이다. 한국은 선교를 통해 축복 받은 나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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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규 목사와 최추순 사모. 그의 집 근처 카페에서... ©이상진 기자

Q. 오랜 기간 필리핀 선교사역을 하셨다. 소감이 따로 있으신가?

최 사모: 15년 동안 선교를 하며 많이 느낀 것은 ‘참 고달프다’는 것이다. 선교사로 훈련을 받기는 했지만 일단은 남편을 좇아서 필리핀에 간 것이다. 지금은 다 극복했지만, 초창기에는 많이 힘들었다. 지금은 많은 보람을 느낀다. 우리가 키운 아이들이 미션랜드에서 공부도 하고, 나가서 취직도 했다. 이것이 나에게 큰 기쁨이다. 아쉬운 부분이 있다면, 지금은 한국교회가 선교지역에 관심을 가지고 귀를 기울여 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갖는다. 고난을 당하면 조금 외롭기는 하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느낀다. 그래서 감사하다. 나의 남은 삶을 건강이 허락하는 동안은 불쌍한 아이들을 위해 헌신하고 싶은 마음이 많이 커졌다.

Q. 미자막으로 앞으로 방향은?

김 목사: 내가 신학교를 갈 때 잡은 목표가 있다. 목사는 목회와 선교를 해야 한는 것이다. 이것을 위해 여기까지 달려왔다. 미완성 상태이지만 어쨌든 왔다. 다른 친구들과 목사님들에게 권면하고 싶은 것은 목사의 연륜과 지식을 선교지에 쏟으면 어떨까 하는 것이다.

교회는 선교를 해야 하고, 선교지는 협력하는 교회가 필요하다. 모든 선교사는 한국교회가 잘 되기를 바란다. 그런데 사실 한국교회는 많이 쇠약해지고 있다. 젊은 세대는 교회를 떠나고, 교회는 동력을 잃는다. 영국이 세계선교를 할 때, 해가 지지 않는 나라가 됐다. 그런데 선교가 멈출 때 교회도 나라도 쇠퇴한다. 목회와 선교는 두 날개이다. 떼려야 뗄 수 없다. 이 두 날개가 서로 합이 맞아 높이 날고 멀리 날아갔으면 좋겠다. 이것이 나의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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