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자들에 대한 ‘보여주기’식 사역과 지원 제고해 봐야
금전 지원 받아서 막걸리에만 탕진해
실상 제대로 이해하고, 이들의 필요와 마음 읽는 것 중요
가족들 있어도 ‘무연고’ 죽음 되는 노숙자들의 현실
가장 큰 문제는 외로움과 고독… ‘말벗’ 돼주는 사역 중요
사회적 책임 느껴, 작품활동은 이들 향한 ‘사명감’

배기선 작가
배기선 작가가 킨텍스에서 열린 전시회에서 그의 작품 앞에 서 있다. ©이상진 기자

경기도 고양시 일산에 위치한 킨텍스에서 대한민국 미술박람회라는 큰 행사가 열렸다. 이곳에서 조금 독특한 주제를 가지고 전시에 나선 한 작가가 있다. 희끗한 머리의 그는 나이답지 않게 젊은 스타일과 개성을 가졌다. 오랫동안 패션사업에 종사했기에 나오는 맵시다.

그런 배기선 작가는 드라마틱하게 그리고 조금은 아이러니하게 쪽방촌의 가장 비참하고 고독한 자들을 위한 사역에 종사한다. 동시대의 같은 공간에 살지만 전혀 다른 세상을 사는 ‘생과 사’의 갈림길에 놓인, 외로움이라는 경계선에 선 자들에 대한 이야기다.

전시장을 아무리 둘러봐도 쪽방촌 혹은 그에 근접한 주제나 소제로 그리는 작가들은 보이지 않는다. 그는 과연 어떤 사연을 가지고 전시회에 작품을 걸게 되었을까? 아래는 배 작가와의 일문일답.

Q. 자기 소개 부탁드린다.

A. 30년 동안 섬유패션사업을 했다. 그리고 60이 넘어 은퇴하고 사회복지를 공부해서 서울역에서 노숙자들을 위한 사역을 하게됐다. 쪽방 주민들의 삶은 내 삶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다.

Q. 섬유패션사업, 어떤 일이었나?

A. 대학에서 섬유 디자인을 전공했다. 그리고 의류 사업, 스포츠 웨어 쪽에서 우리나라 1세대 사업가로 일했다. 원단을 짜고, 염색도 하고 옷까지 만드는 완제품을 납품했다. 나중에는 나의 브랜드도 있었다. 100명 이상의 직원들과 20곳의 하청 공장도 있었다. 그런데 나중에 중국으로 의류 사업들이 넘어가고, 섬유사업들이 값싼 해외로 이주하는 환경 속에서 국내에서는 사양산업이 됐다. 그래서 나이를 먹고 무엇을 할까 고민하다가 주변의 권유로 사회복지를 하게 됐다. 그래서 서울역에서 근처 쪽방촌에서 사역을 하게 됐다. 사실은 거기서 의류나 원단 쪽으로 사역을 섬길까 하다가 실제적으로 이들이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고민했다.

Q. 쪽방촌 사역에 대해 얘기해 달라.

A. 60이 넘어서 퇴직한 후에 지금의 ‘강서대학교’에서 사회복지 대학원을 다녔고, 내가 온누리 교회를 다니기에 그래서 ‘온누리 복지 재단’ 소속으로 서울역 인근 쪽방촌에 가게 됐다. 거기서 빨래터를 운영했다. 처음에는 쪽방인지 뭔지도 모르고 갔다. 거기서 빨래터를 시작하게 됐는데, 처음에는 사역할 때, 동역자들이 쪽방촌 사람들의 옷을 빨아 주려고 하더라. 그래서 내가 “옷을 빨게 되면 문제가 많이 된다. 이거 하면 안된다”고 제안했다. 왜냐면 내가 염색도 해보고 섬유에 대해 많이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 대신 이불을 빨자고 제안했다. 그런데 이것이 그들에게 진짜 필요했던 일이었다. 그래서 이불을 빨기 시작했고, 그들의 이불을 빨면서 그들의 삶이 직접적으로 내게 다가왔다. 처음에 빨래터 사역을 할 때는 멱살도 잡혀봤다. 한 사람이 술에 취해 들어와서 나에게 "빨래 같은 것 말고 집을 달라"고 멱살잡고 소동을 피웠다. 그분들은 술에 취해 사는 것이 의례 있는 일이다. 물론 감사하게도 지금은 나와 너무 친해졌다. 지나가다 만나면 사탕하나 주고 가고 그런다. 그리고...쪽방의 악취는 여름에 너무 심하다. 왠만한 사람들은 아예 들어가지를 못할 정도다.(웃음)

배기선 작가
작품명: 간호사 방문 ©배기선 작가

“옷을 벗고 있는 모습은 한여름에 쪽방은 작고 너무 덥기에 볼 사람도 없고 하니 옷을 전부 벗고 생활하는 경우가 많기에 옷을 벗고 있는 모습을 표현하게 됐다. 그리고 몸이 많이 야윈 모습으로 서울시 쪽방상담소 상주 간호사가 방문하여 건강을 수시로 상담하고 점검하는 모습을 표현한 그림이다. 쪽방 안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표현됐지만 표현 방법상 그리 추하게만 보이지 않게 표현하여 그들의 삶의 모습의 단면을 보게 했다.”

Q. 그림을 그리게 된 계기는?

A. 온누리의 미술 사역단체인 ‘아트 비전’에서 작가로 활동하시는 권사님이 작업실을 같이 얻어서 그림을 그리자고 제안을 하셨다. 왜냐면 내가 디자인을 전공했었고, 예전에는 종종 그리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도 아트 비전에 가입해 가입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내가 생각해도 인물 그림을 너무 잘 그리더라(웃음). 그래서 본격적으로 대형 그림도 그리게 됐다. 그랬더니 사람들이 나더러 ‘뜨는 새싹’이라고, 나이를 먹은 늙은 ‘새싹’이라고 그러더라(웃음).

아무래도 내 능력보다 그림이 잘 그려진다. 내가 그림을 그릴 때, 성령께서 함께 하셔서 도와주시는 것 같다. 나도 항상 기도하며 그림을 그린다. 이것은 단순히 그림을 잘 그리기 위한 것이 아니다. 주님께서 내게 취약계층을 향한 마음을 주시는 것 같다. 그들을 향한 긍휼의 마음을 주신다. 그래서 나는 일종의 사명감을 가지고 그림을 그린다. 그래서 그림을 그리고 나면 너무 감사하다. 왜냐면 내가 하는 일이 아니니까, 그림을 그리면서 나의 믿음이 예전보다 성장하는 것을 느낀다. 이것은 첫 번째 나의 개인전 같은 것이다.

Q. 쪽방촌 사역은 어땠나?

A. 온누리 ‘서울역희망공동체’에서 사역을 같이 한다. 필요한 식재료나 옷도 가져다 주고 한다. 그런데 나는 가장 중요한 것이 ‘말벗’ 봉사이다. 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외로움’을 해결하는 것이다. 이 사람들 혼자 있기에 하루 종일 말을 안 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말 상대가 필요하다. 왕년에 살았던 얘기도 들어주고...이들은 또 60% 정도가 수급을 받는다. 수급을 받아서 ‘막걸리’ 먹는 것 밖에 없다. 하루종일 말 상대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말벗이 되어 얘기하다 보면 ‘내가 어디가 아프다’ 그런 얘기를 한다. 저번에 갔더니 ‘양말 좀 하나 달라’고 해서 보니 발이 다 썪었더라. 노란 덧버선 두툼한 것 하나 달라더라, 어디가서 사기도 그렇고... 그런거다, 소소한 것. 그거 갖다주면 또 너무 좋아한다. ‘말벗 봉사’라는 것은 작고 소소하지만 이를 통해 정말 그들과 마음과 소통하고 그렇게 대화하다 보면 실제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게되고 적절한 때에 채워 줄 수 있는 것이 ‘말벗 봉사’의 취지이다. 이것은 그들의 ‘친구’가 되어 주는 것이다. 나는 이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믿는다. 그래서 그 친구들은 이제 나를 다 안다. 내가 빨리터를 운영했기 때문이다. 거기 가만 쪽방촌 사람들이 막 와서 인사하고 그런다.

배기선 작가
작품명: 외로움. size: 60.6cm x 72.7cm Oil on canvas 2023 ©배기선 작가 제공

“현대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가장 큰 문제인 외로움이다. 이곳은 서울역 주변이며 주변 환경은 세련된 첨단의 초고층 건물과 멋진 정원과 숲은 도심 속에서도 안정되고 멋있어 보인다. 그런 환경 속에서 노숙인들은 갈 곳 없고 이야기할 곳 없어 혼자 막걸리 한 통을 비우고 그 옆에서 가방을 베고 쪼그려 잠들고 있는 모습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바로 우리의 외로움을 잘 표현하는 작품으로 제안하고 싶다.”

Q. 쪽방촌 사역을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

A. 이들하고 ‘워크샵’을 다녀왔다. 이것은 이들은 조직 사회에서나 경험할 수 있는 것이데, 쪽방촌 사람들은 이런 경험이 사실 없다. 그래서 안성에 농장이 하나 있다. 굉장히 넓은 밭이다. 뻥 뚤려 있어서 굉장히 시원한데 그곳에 2층 집이 하나 있다. 너무 좋다. 거기서 3박 4일을 보냈다. 사실 내가 요리 쪽에 관심이 좀 있다. 요리 자격증이 있다. 취약 계층을 위한 요리강의도 했었다. 서울역쪽방상담소에서도 ‘행복한 밥상’이라는 사역을 했었다. 이것을 2년 정도 운영했다. 밥을 해주는 사역인다.그런데 이것은 그냥 대량으로 밥을 해 주는 것이 아니다. 잘 차린 밥상에 10명 정도를 초청한다. 사실 이 장소는 창고 같은, 아니 창고이다. 그런데 하얀 테이블로 깔고 격식있게 음식을 만든다. 마치 호텔 식당처럼 만드는 것이다. 거기서 쪽방촌 사람들을 불러서 같이 만든다. 그러면 그들은 “오~ 누구 생일이에요?”라고 깊은 감탄의 말을 내뱉는다. 격식있는 것을 경험해 보지 못 해봤기 때문이다.

암튼, ‘워크샵’을 갔다. 밤에 같이 갔던 쪽방촌 사람들이 “뭘 해야 하냐?”라고 물어보더라. 그래서 내가 “그냥 놀아라”라고 그랬다. 그랬더니 “어? 정말 놀아도 돼요?” 그러더라. 왜냐면 이 사람들은 쪽방촌에 살면서 무엇을 받기 위해서는 항상 어떤 댓가를 지불하고 살아왔다. 그런데 아무 댓가 없이 이런 것들을 받으라고 하니 어려워 하더라. 다만 놀아도 되지만 저녁에는 티타임을 갖자고 제안했다. 그래서 저녁 티타임 시간에 과일 깎아 놓고, 차도 마시면서 살아온 얘기를 했다. 이 사람들이 얼마나 할 얘기가 많겠나. 거기서 이 친구들이 울면서 얘기하는 것이 무엇이냐면, 거기는 죽는 사람들이 많다. 쪽방에서... 그런데 이들이 죽으면 80% 이상은 ‘무연고’ 죽음이다. 왜냐면 남의 방을 서로 안 열어 보기 때문이다. 아주 친하지 않으면. 그런데 어느 날 어떤 집에 악취가 심하게 나고 구더기가 막 돌아다닌다.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다. 문을 따고 들어가 보면 사람이 죽어있는데 시체가 썪어있다. 119가 와서도 안 만지더라. 그런데 거기서 봉사하는 사람들이 이런 사람들을 처리해 준다. 내가 거기서 ‘무연고’ 죽음이라는 것을 경험하고 보고 느낀 것이다. 내가 죽어도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 사실을 생각해 보면 내 삶에서 관계가 얼마나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무연고 죽음’이라는 것이 얼마나 비참한가! 가족이 있지만 가족들이 오지 않는다.

어떤 가족의 경우는 “우리 안 본지 10년이나 됐는데, 내가 거기를 왜가냐!”라며 “무연고 죽음 해주세요!”라고 하더라. 참 깝깝한 얘기다. 내가 여기서 이것을 새롭게 느꼈다. 삶의 외로움이라는 것이 무엇인지...시립 병원 같은데 가보면 거기서 수급자들은 이용이 공짜이다. 그러면 노숙자들이 거기서 죽는 경우를 본다. 이런 사람들은 술을 매일 먹는다. 외롭고 고독하기에 일부러 죽기를 작정하고 술을 먹는 것이다. 그리고 길거리에서 잔다. 그러면 보통 한 두 달 있으면 죽는다. 스스로를 관리하지 않는다. 삶이 괴로우니까 일종의 자살을 하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워크샵에서 펑펑 울면서 얘기한다. 그때 했던 그 워크샵이 잊혀지지 않는다. 그렇게 아픈 이야기들...우리가 아무리 어렵다고 해도 이 사람들의 삶에 비하면 그런 일들은 일도 아니다. 그래서 내가 사람들에게 그런다. “우리가 한 번 쪽방 투어를 하자. 우리가 얼마나 행복한지 알게 된다.” 또 이들을 돕기도 하기 위한 목적도 있다. 그런 프로그램도 제안을 하기도 했다.

그래서 성공적으로 워크샵을 잘 마쳤다. 그중에 한 사람이 마지막 날 생일이라 케익도 사고 카드도 만들어 줬다. 이들은 누군가에게 축하를 받거나 혹은 격이 있는 대우를 잘 경험하지 못한다. 외부에서 누군가 이들을 돕기 위해 온다고 해도, 도시락 하나 주고 빵하나 툭 건내 주고 끝이다. 그냥 줄서서 밥 받아서 먹고, 그러나 헤어지고 다 이런 것이다. 그래서 내가 ‘행복한 밥상’ 사역을 할 때, 격식있게 그들에게 잘 대접한 것이다. 장소는 비록 창고이지만, 호텔처럼 깨끗한 테이블에 꽃도 꽂아 놓는다. 단 ‘한 끼’라도 거기서 그렇게 먹을 때 그들이 행복감을 느끼는 것이다. 인격적인 대우를 받는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이것은 내 인생에서 가장 보람있는 일이 아닌가 싶다. 왜냐면 이들이 살아가는 소망과 비전을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그들이 다시 살수 있는 힘을 갖는다.

내 작품 중에 쌀 포대를 들고 몇 사람들이 모여서 웃는 그림이 있다. 우리가 쪽방촌에 쌀포대를 나누는 사역을 하는데 그 일을 쪽방촌 사람들 불러서 봉사하게 했다. 이것은 이 쪽방촌에게 임금을 주기 위해서 일부러 그렇게 한 것이다. 저들은 거기서 보람을 느낀다. 그런 일을 통해서 삶의 의미를 느끼는 것이다.

조금 안타까운 것은 한여름이나 한겨울이 되면 의례적으로 뉴스와 미디어가 앞 다투어 서울역 쪽방촌을 보도한다. 아마 인접성이 있어서 그런 것 같다. 그런데 그들의 실상을 깊이 있게 추적하고 필요한 내용을 적절히 보도하기 보다는 정말 형식적인 내용을 내보낸다. 심지어 어떤 경우는 설정으로 사진을 찍는 것 같기도 하더라. 그리고 정부부처나 기관에서도 의례적으로 와서 도와주는 모습을 보인다. 쪽방촌 주민들도 이것을 안다. 그런데 기독교 기관이라고 해서 많이 다른지 잘 모르겠다. 쪽방촌 주민들은 찬송가들 많이 알고 있다. 그거 교회나 기독교 봉사 단체 사람들과 같이 불러주면 지원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 말을 꼭 강조하고 싶다. 그들을 지원할 때 중요한 것은 그들의 실상을 잘 살펴보고 마음으로 그들의 필요를 채우는 것이다.

배기선 작가
작품명: 날개잃은 천사1. size: 130cm x 89cm Oil on canvas 2023 ©배기선 작가 제공

“위 작품은 쪽방촌 노숙자들로서 하루 일당을 받으며 쪽방촌 자활작업에 직접 참여한 모습이다. 술에 찌들어 희망 없이 살아가는 이들이 함께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것은 단순한 봉사가 아니다. 쪽방촌 주민들의 일반적 삶의 모습을 생각해 보면, 이것은 그들에게 엄청난 의미가 있다. 그들에게 없는 소망과 사회의 일원으로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는 자신감을 불어 넣어준다.”

Q. 빨래터에서 사역하셨는데, 어떤 사역이었나?

A. 돌다리 빨래터는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무료빨래터를 시범적으로 만들었다. KT후원을 하고 서울시에서 운영비를 내서 쪽방 주민들을 위한 무료 빨래터를 개장했다. 지금은 쪽방상담소에 통합됐다. 쪽방주민들을 위한 환경개선사업의 일환인데 너무 필요한 사업이다. 소독 같은 일이겠다.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결국 쪽방 주민들이 하루 종일 덥고 이용하는 이불을 빨래를 선택했다. 그런데 주민들이 거의 버려야 하는 이불을 들고 온다. 가져오면 바퀴벌레가 우수수 떨어지고, 오물들이 뭍어있다. 이들이 술을 많이 먹으니까 이불에 오줌싸고 똥 싸는 것은 예삿일이다. 술을 먹으니 기억도 잘 못한다. 이런 것을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면 잘 이해를 못한다. 이들은 그저 가난한 수준 정도가 아니다. 이들은 그냥 삶의 비전이 없다. 그러니 저 빨래터에 나와서 봉사하는 즉, 사회생활을 하는 쪽방촌 주민들은 참으로 대단한 것이다.

그곳 사람들이 참 외로워한다. 이번에 프랑스인가 독일인가는 ‘외로움’을 문제를 담당하는 정부부처의 장관이 생긴 것으로 안다. 현대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외로움’인 것 같다. 이것이 표면적으로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곳이 이런 ‘쪽방’이라고 생각한다. 이 ‘고독사’는 무엇이라고 표현하기가 참 그렇다...내 작품노트에도 이 이야기를 적었는데, 이것은 ‘생사를 넘나드는 외로움’이다. 이 얘기를 어떤 권사님들께 했더니 “우리도 외로워요!”라고 하시더라. 그런데 그런 외로움은 갈비 먹고 수다 떨면 없어지는 외로움이다. 그렇지 않나? 그런데 이 사람들의 외로움은 그런 차원의 것이 아니다. 이들을 보며 ‘외로움’과 ‘인간 관계의 소중함’에 대해 느낀 것이 참 많았고, 이런 약자들에 대해 사명감을 갖고 사회적 관심과 책임을 느꼈다. 그래서 그림을 그리면서 이것을 정리하게 됐다.

배기선 작가
작품명: 무료빨래터 개업식. size: 60.6cm x 72.7cm Oil on canvas 2023 ©배기선 작가 제공

“서울시에서 노숙인과 쪽방 주민을 위한 무료 빨래터인 ‘돌다릿골 빨래터’의 개업식 모습이다. 서울시장, 용산구청장, KT 회장, 온누리교회의 담임목사님 등의 인사들과 쪽방 주민, 그리고 빨래터 운영자인 제가 함께한 사진으로 같이 찍힌 모습이다. 너무 형식적이거나 사회적으로 포장되지 않고 그냥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노숙인과 쪽방지역의 모습을 은유적으로 표현했다. 50여 명 정도 되는 기자들과 외부 사람들이 방문했었다. 사진기자들이 대거 몰려 찍은 사진으로 9시 뉴스에 실린 사진을 그림으로 그린 것이다.”

“빨래터는 의류 세탁은 안 하고 이불과 같은 큰 세탁물만 취급한 환경개선사업이다. 주민들이 좁은 공간에서 편안한 잠을 잘 수 있도록 하는 것은 건강과 환경개선에 실질적으로 필요한 사업이다.”

Q. 이런 사역을 통해서 많은 것을 느끼고 변화됐다는 얘기를 종종 하셨는데 어떤 것들인가?

A. 처음에 빨래터에서 근무할 때는 아까 말했듯이 멱살도 잡혀보고, 또 하도 더러운 것들을 직접 손으로 만지다 보니 피부병에 걸리기도 했다. 그래서 손이 퉁퉁 부었다. 그렇게 주민들과 가까워지고 교제를 하면서 보게된 것들이 있다. 뭐, 예를 들어 어떤 친구들은 한참 안 보여서 주변에 물어보면 감옥에 갔다고 하더라. 거기는 범죄자들이 많이 숨어드는 곳이다. 그래서 경찰들이 주시하는 곳이기도 하다. MT를 같이 갔던 한 친구는 순진하게 나에게 인사하던 친구였는데, 그 다음날 보니까 공원에서 홀딱 벗고 돌아다니더라. 그래서 정신병원에 데리고 갔다. 너무 착하고 순한 사람들인데 그들의 삶을 생각하면 너무 눈물이 난다. 한 친구는 높은 건물에서 막 뛰어 내리려고 했고...이런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노숙자들이 술 먹고 길거리에 누워있으면 지나가던 사람들은 ‘그런가보다!’라고 짐짓 생각하며 지나가겠지만 저들의 삶은 그런 차원의 것이 아니다.

그래서 나의 전시의 제목이 ‘자연과 인간’이다. 자연의 창조의 원리대로, 그들에게 사랑을 베풀고 우리가 그 사랑을 전달하는 도구가 돼야 한다. 그래서 ‘행복한 세상을 만들자’는 것이 결론이다. 그래서 후원할 수 있으면 후원하고 동참할 수 있으면 동참해서 그들의 사회에 적응해 나가고 사회 일원으로서 살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Q. 그러면 그림을 그릴 때 어떤 마음가짐 혹은 자세 같은 것이 있나?

A. 이런 그림들은 내가 처음 다루는 것 같다. 왜냐면 이것은 그 현장에서 부딪히지 않으면 그리기 어렵다. 그리고 나는 이런 나의 그림이 그들에게 피해를 주거나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독자들이 사회적으로 책임과 공감하는 마음을 가지고 이 그림을 바라보면 좋겠다. 어떤 의미냐면, 나는 사람들이 이들에게 후원을 해 주시면 좋겠다. 사실, 또 사람들이 많이 후원해 주신다. 대기업이라던지 여러군데에서 해 주신다. 그런데 너무나 뻔한 후원을 많이 하신다. 보여주기식, 일회성 이런 후원들이 있다. 예를 들어 누군가는 이들에게 ‘에어콘을 달아 주자’고 하더라. 말로 들으면 참 좋다. 그런데 이들이 어떻게 그 전기료를 대겠는가. 이런 것들이다. 너무 현장을 모르는 얘기를 한다. 현실을 모르고 이들을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즉 이들에 대한 실제적인 관심은 없다. 이들에 대한 공감이 없다는 얘기이다. 후원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진심이 부족한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정부든 신앙인이든 이것이 매우 중요하다. 내가 그림을 그리는 맥락은 이런 것이다. 이런 부분에서 문제제기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고 공감하셨기에 우리도 그렇게 하자는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지 않았다. 우리도 저들에게 그렇게 하자는 것이다. 진정 누군가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들면 사랑할 수 밖에 없다. 냄새나도 들어갈 수 있고, 냄새나도 만질 수 있다. 처음엔 나도 많이 힘들었다. 이 말을 꼭 하고 싶다. ‘이런 사람들이 내 옆에 산다.’ 하나님이 대계명에서 둘째 계명에 ‘이웃을 사랑하라’고 하셨다. 그런데 사람들은 형편 좋은 이웃만을 사랑한다.

Q. 많이 반성하게 되는 것 같다. 그런데 선뜻 뭔가 하기가 어려울 것 같다.

A. 한 번쯤 계절에 맞는 과일 한 박스 사 가지고 그냥 가서 나눠줘 보라. 그것만 해도 얼마나 좋은가? 이것만 해도 공감이 되는 것이다. 뭐 큰 것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쪽방상담소가 관리를 하고 있으니 부담 없다. 나이 드신 분을 대상으로 혹은, 아픈 사람들 같이 특정 대상을 나눠줘도 좋다. 예를 들면 그렇다는 것이다. 나는 이것이 행복한 사회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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