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완전히 내어 맡기는 태도

이태희 목사
이태희 목사

하나님의 주권을 진정으로 깨닫게 되면 하나님에게는 그분의 뜻이 무엇이든 그분의 뜻대로 우리에게 행하실 “완전한 권리”가 있음을 우리가 인정하게 된다. 즉, 하나님께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이 무엇이든 그 뜻대로 우리에게 행하실 수 있는 절대적 권리를 인정하게 된다.

하나님이 가난이나 질병이나 가정의 아픔을 주기로 선택하신다면, 그 마음이 온통 피투성이가 되어도 하나님은 그렇게 하실 수 있는 완전한 권리가 있음을 인정하는 태도를 갖게 된다. 이생의 삶이 끝나는 순간까지 우리들의 마음 속에서는 바로 이 부분과 관련하여 끝까지 내면의 싸움이 지속될 것이다.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마 26:39)

“당신은 가서 수산에 있는 유다인을 다 모으고 나를 위하여 금식하되 밤낮 삼 일을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소서. 나도 나의 시녀와 더불어 이렇게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 하니라.” (에 4:16)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빌 1:21)

우리의 삶 가운데 어느 순간에는 누구나 예외 없이 이와 같은 결단의 순간, 모든 것을 내어 맡겨야만 하는 의탁의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 그리고 그 최종적인 순간은 누구나 피할 수 없는 죽음의 순간이다.

그와 같은 순간에 하나님의 주권이라고 하는 진리를 진정으로 받아들인 자는 내면의 사나운 폭풍이 잔잔해지게 되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이고, 그렇게 차분해진 영혼은 비록 눈에는 눈물이 가득할지는 모르지만 확신에 찬 눈으로 하늘을 바라 보며 예수님처럼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눅 10:21)라고 고백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사무엘상 3 장에 보면 하나님은 어린 사무엘에게 계시를 주셨다. 엘리 대제사장의 두 아들을 그들의 사악함 때문에 죽이시겠다는 것이다. 다음날 사무엘은 이 메시지를 늙은 엘리 대제사장에게 전한다. 아버지에게 이보다 더 무서운 소식은 없을 것이다. 전혀 마음의 준비가 안된 상태에서 자신의 두 아들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죽게 되리라는 말을 들었을 때 엘리 대제사장은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엘리 대제사장은 어떻게 반응했는가?

“그가 이르되 이는 여호와이시니 선하신 대로 하실 것이니라 하니라.” (삼상 3:18)

그는 이 말 밖에 하지 않았다. 인간의 마음에 이는 강력한 파도를 잠잠케 하며 거역하는 의지를 제압하여 여호와의 주권적인 뜻에 완전히 복종시키는 하나님의 은혜의 놀라운 능력은 바로 이와 같은 태도로부터 나온다.

욥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에서 떠난 자였다.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마땅한 사람. 그러나 그가 어떤 보상을 받았는가. 한동안 그의 삶은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하나님은 그에게 일곱 아들과 세 딸을 주셨다. 그리고 그가 하는 일마다 번성하게 하셨고 큰 부자가 되게 하셨다. 그러나 순식간에 모든 게 바뀌었다. 단 하루 사이에 욥은 가축 뿐 아니라 자녀까지 모두 잃었다. 도둑떼가 가축을 강탈해 갔으며 자녀들이 큰 바람에 집이 무너져 모두 죽었다. 욥은 자신의 고통의 원인을 끝까지 추적했다. 결국 자신의 가축을 강탈한 자들과 자녀들의 생명을 앗아간 큰 바람 뒤에 하나님의 손이 있음을 보게 되었다.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지 아니하니라.” (욥 1:21-22)

하나님의 주권을 진정으로 인식하면 토기장이 되신 하나님께서 자신의 뜻대로 진흙을 빚을 절대적 권한이 있음을 인정하게 된다. (렘 18:6)

(4) 깊이 감사하는 태도

손양원 목사님 두 아들의 순교 – 감사 제목.

첫째, 나 같은 죄인의 혈통에서 순교의 자식들이 나오게 하셨으니 하나님 감사합니다.
둘째, 허다한 많은 성도들 중에 어찌 이런 보배들을 주께서 하필 내게 맡겨주셨는지 그 점 또한 주님 감사합니다.
셋째, 3 남 3 녀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두 아들 장자와 차자를 바치게 된 나의 축복을 하나님 감사합니다.
넷째, 한 아들의 순교도 귀하다 하거늘 하물며 두 아들의 순교이리요, 하나님, 감사합니다.
다섯째, 예수 믿다가 누워 죽는 것도 큰 복이라 하거늘 하물며 전도하다 총살 순교 당함이리요, 하나님 감사합니다.
여섯째, 미국 유학 가려고 준비하던 내 아들, 미국보다 더 좋은 천국에 갔으니 내 마음이 안심되어, 하나님 감사합니다.
일곱째, 나의 사랑하는 두 아들을 총살한 원수를 회개시켜 내 아들 삼고자 하는 사랑의 마음을 주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여덟째, 내 두 아들의 순교로 말미암아 무수한 천국의 아들들이 생길 것이 믿어지니 우리 하나님 감사합니다.
아홉째, 이 같은 역경 중에서도 이상 여덟 가지 진리와 하나님 사랑을 찾는 기쁜 마음, 여유 있는 믿음 주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감사합니다.
열 번째, 이렇듯 과분한 축복 누리게 되는 것을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높여 드리는 적극적인 방식이다. 모든 상황 속에서 하나님에게 감사를 드릴 때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온전한 태도를 완성하게 되는 것이다.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라.” (엡 5:20)

“주의 인자하심이 생명보다 나으므로 내 입술이 주를 찬양할 것이라.” (시 63:3)

내가 설령 내 아들 압살롬의 칼에 죽임을 당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나를 향하신 주의 인자하심이라고 고백하는 것이다. 자신의 삶을 지배하는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완전한 신뢰, 완전한 의탁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감사는 그냥 자연적으로 발생하지 않는다. 노력이 필요하다. 힘이 들어간다. 그래서 힘을 써야 한다.

“이러므로 나의 평생에 주를 송축하며 주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나의 손을 들리이다. 골수와 기름진 것을 먹음과 같이 나의 영혼이 만족할 것이라. 나의 입이 기쁜 입술로 주를 찬송하되 내가 나의 침상에서 주를 기억하며 새벽에 주의 말씀을 작은 소리로 읊조릴 때에 하오리니 주는 나의 도움이 되셨음이라. 내가 주의 날개 그늘에서 즐겁게 부르리이다.” (시 63:4-7)

(5) 경배하며 예배하는 태도

하나님의 주권은 무한히 지혜롭고 선하신 분이 행하시는 뜻이다. 하나님은 무한히 지혜롭기 때문에 오류를 범하지 않으신다. 그릇 행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의 뜻은 불가항력적이며 되물을 수 없다는 사실 자체는 나를 두려움에 잠기게 한다. 그러나 일단 하나님이 선한 것만 뜻하신다는 사실을 깨달으면 내 마음이 기뻐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가.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인식과 그 주권자가 나의 아버지라는 깨달음이 내 마음을 압도하며 그로 인해 내가 그 분 앞에 엎드려 그분을 경배하고 예배해야 한다. 그래서 예배란 이 3 가지를 유지하는 것이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살전 5:16-18)

이와 같은 예배가 내 삶의 반석이 되고 기초가 될 때, 우리는 모든 상황 속에서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게 되며, 모든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여 모든 것을 내어 맡기게 되고, 절대 복종하며 경건한 두려움을 가진 자로 회개할 수 있다.

바로 이와 같은 삶의 회개가 하나님의 징계의 목적이다.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단받은 자들은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느니라.” (히 12:11)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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