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장 합동총신 증경총회장 최철호 목사
한교연 바른신앙수호위원장, 예장 합동총신 증경총회장 최철호 목사 ©합동총신

전쟁은 참혹하다. 도덕적인 전쟁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역사의 모든 전쟁에는 항상 잔혹한 피가 흘렀다. 그것은 곧 모든 인간 속에 감추어져 있는 죄성(罪性)에 다름 아니다. 과거 로마제국도 예외가 아니어서, 새로이 정권을 잡은 자는 정적들을 무자비하게 숙청하였고, 그 또한 다른 자에게 패하면서 같은 보복을 당하였다. 그러한 상황을 아우구스티누스는 자신의 《신국론》에 이렇게 기술하였다.

“그 후 술라(Lucius Corlelius Sulla, BC 138-78)가 승리하자 곧바로 마리우스(Gaius Marius, BC 156-86)의 잔학상에 대한 보복이 뒤따랐다. 서민들의 엄청난 피가 흐른 다음, 그 피를 대가로 해서 얻어진 승리였다. 전쟁은 이미 끝났지만 원수관계는 살아남아 전시보다 평화시에 더 잔악하게 이루어졌다. 여기저기 사방에서 광포하게 사람들의 목을 베는 살인 허가가 중단되자, 이번에는 두 명예로운 계급, 곧 기사 계급과 원로원 계급에서 사형에 처하고 재산을 몰수할 사람들 2,000명을 수록한 저 유명한 명단이 대단한 박수갈채 속에 공개되었다. 어떤 사람은 창칼을 쓰지 않고 맨손으로 사지를 잡아 찢는 사람들의 손에 찢겨 죽었다. 맹수가 던져진 시체를 갈기갈기 찢어내는 것보다 더 잔인하게 사람들이 산 사람을 토막내 죽이는 것이었다. 몇몇 고귀한 도시들이 무슨 장원(莊園)이나 되는 것처럼 경매에 붙여지는가 하면, 범인 한 사람 처형하듯이 한 도시 주민 전부를 몰살하라는 명령이 내려지기도 했다. 내가 묘사하는 이 사건들은 전쟁이 끝난 다음 평화시에 일어난 것들이다. 승리를 얻기 위해 서둘러 학살을 자행한 것이 아니라, 확보한 승리를 무시하지 못하게 하려고 자행된 학살이었다. 평화가 전쟁과 시합을 벌여 어느 편이 더 잔인해질 수 있는가 겨룬 결과 평화가 이긴 셈이다. 그런데 이 평화는 죽음을 모면한 사람을 살려준 것이 아니라, 아무 저항을 못하고 죽게 만드는 것이 평화였다.”

2천여 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인간사회에 변한 것은 거의 없다. 단지 좀 더 세련되고, 교묘하고, 그리고 법(法)을 가장할 뿐이다. 그러므로 ‘적폐’라는 용어를 사용할 때, 숙고하고 또 숙고해야 하는 것이다. 잘못 사용하면 ‘적폐’가 ‘숙청’이 되고 말기 때문이다. 모든 인간의 심성에 자리하고 있는 이 사악한 죄성이 스스로 어떻게 없어지겠는가? 희망은 오직 하나, 우리 모두 하나님 앞에 스스로 죄인임을 고백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영인 성령을 받는 것이다. 그러면 굳은 마음이 부드러운 새 마음으로 변화하게 될 테고(겔 36:26), 그리하여 참된 사랑을 서로 나누며 향유할 수 있게 될 것이다. 특별히 권력을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이점을 명심해야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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