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진수 교수
가진수(월드미션대학교 찬양과 예배학과 교수)

요한복음의 저자는 이탈리아 화가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 1452 - 1519)가 그린 ‘최후의 만찬(The Last Supper, 1495~1497)’의 예수님 바로 옆자리에 앉았던 예수님의 사랑하는 제자 요한입니다. 예수님의 생애가 중심 내용인 마태, 마가, 누가복음이 ‘하나님의 나라’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 요한복음은 ‘예수 그리스도’가 중심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요한의 시각은 태초로 거슬러 올라가 하나님께서 갖고 계신 구원 계획과 한없고 넘치는 은혜를 보여줍니다.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요 1:16) 그리고 인간의 형상으로 이 땅에 오셔서 죄악으로 파괴된 창조 질서를 회복하고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게 합니다. 이 구원의 신학은 이후 베드로의 인생을 바꾼 구원의 신학으로 끝납니다. 죄 사함 받은 베드로의 이야기는 우리들에게 하나님과의 관계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려줍니다.

창세기에서 하나님은 아담, 하와와 함께 거니셨지만, 아담, 하와의 죄로 인해 관계는 깨지고 말았습니다. “그들이 그 날 바람이 불 때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아담과 그의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창 3:8) 요한복음은 그렇게 깨진 관계가 인간의 모습으로 사람들과 함께 걸으신 예수님을 통해 어떻게 회복되었는지를 보여줍니다. 예수님의 성육신은 화해를 위한 하나님 계획의 첫 단추였습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셔서 우리를 위로해주시고 생명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요한복음은 예수님의 사역과 생애를 풍성한 언어로 그려냈습니다. 예수님은 선한 목자시자 길이시고 진리이셨으며, 생명이시고 생명의 떡이시며, 문이자 포도나무이시고, 세상의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의 말과 행위를 통해 분명히 드러났습니다.

요한복음은 예배에 관한 중요한 말씀을 담고 있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이 예배 드리기 적합한 장소에 대해 질문했을 때 예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대답하셨습니다.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는지라”(요 4:21, 23) 하나님께서 예배드릴 사람들을 찾으신다는 말씀을 읽을 때 하나님의 사랑으로 인해 우리의 마음은 뜨거워집니다.

‘영으로’ 예배한다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통해 그분을 예배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요 4:24)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그리고 하나님의 영이 우리 안에 거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을 멀리서 예배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 속에서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랑을 통해 예배하는 것입니다.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요 14:17)

‘진리’로 예배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스스로 보여주신 모습과 말씀 그대로 믿고 예배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 마음대로 하나님의 형상을 만들어내고 이를 경배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진리는 하나님 말씀이자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영’의 예배는 하나님께서 그분의 말씀 가운데 진리로 계시해주신 것에 대한 반응입니다. 요한은 이 말씀이 성경 안에 담겨 있을 뿐 아니라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살아있는 분이며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이 되신 분 즉 예수님 안에 담겨있다고 말합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 1:14) 그분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며, 그분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께 나아갑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 그러므로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을 알고 그분을 경배합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성품과 영광을 나타내시며, 우리를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해주십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이 말씀의 중요한 의미는 장소나 형식이 예배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참된 예배는 ‘영’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라는 것입니다. ‘영’과 ‘진리’의 의미에 대해 존 파이퍼(John Piper)는 다음과 같이 주장했습니다. “영으로 드리는 진정한 예배는 성령에 이끌려 드리는 것이라 생각한다. 아울러 그것은 외형적이며 육체적인 사건이 아니라 주로 내적이며 영적인 사건으로 나타난다. ‘진리’로 드리는 진정한 예배는 하나님의 참된 시각에 응답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하여 그 예배는 그분의 참된 시각에 따라 구체화되고 인도된다.”

또한 예배 신학자였던 로버트 웨버(Robert Webber)는 ‘영과 진리’를 “하나님의 영에 우리의 영이 반응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영과 진리로 참된 예배를 드리게 되면, 요한계시록 4-5장 말씀에서와 같이 하늘 보좌에 계신 하나님께 장로와 천사와 함께 이렇게 고백하게 되는 것입니. “큰 음성으로 이르되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은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 하더라 내가 또 들으니 하늘 위에와 땅 위에와 땅 아래와 바다 위에와 또 그 가운데 모든 피조물이 이르되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 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권능을 세세토록 돌릴지어다 하니 네 생물이 이르되 아멘 하고 장로들은 엎드려 경배하더라”(계 5:12-14)
그러므로 참된 예배는 영적입니다.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예배는 하나님의 영에 우리의 영이 합치되는 것이며, 성령님이 우리를 영으로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이 땅 위에서 예배자로서 추구해야 할 진정한 예배이며 모본입니다.

요한복음 4장을 제외하고 요한은 예배의 행위들인 찬양, 경배, 감사 등에 대해 크게 언급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요한은 우리에게 예수님을 믿음으로 예수님을 통해 나타내시는 하나님의 행위에 응답하라고 강조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 3:16) 이는 우리가 예수님이 “그리스도시요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인정하고 우리 자신을 전적으로 그분께 맡길 때 가능한 일입니다.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요 20:31)

우리가 성부 하나님 그리고 성자 예수님과 맺은 관계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으로부터 시작됩니다(요 3:16). 요한복음은 예수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을 언급하지만,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응답으로 그분을 사랑하라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나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내 말을 지키지 아니하나니 너희가 듣는 말은 내 말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말씀이니라”(요 14:24) 오히려,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 같이 우리도 서로를 사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요 15:12) 물론 우리가 드리는 예배는 하나님을 향한 사랑을 포함하지만, 요한은 그리스도 안에서 받은 사랑을 통해 서로 사랑할 때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임을 알려줍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막 12:30)

‘서로를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계명을 지키고 그분을 사랑할 때 예수님과 성부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 안에 거하십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요 14:23) 또한 성부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사랑하신 것과 같이 우리도 예수님의 사랑 안에 거합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요 15:9) 그러므로 요한복음은 우주 어딘가 저 멀리 계신 하나님께 예배 드리는 것이 아니라, 성부, 성자, 성령이신 하나님과 사랑으로 연합해 하나님께 예배 드릴 수 있게 합니다.

예수님의 생명과 죽음 그리고 부활은 신약에서 예배의 본질입니다. 요한은 메시아를 기다려 온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예수님으로 인해 그 소망이 성취되었다고 선포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신성과 인성이 함께 일하고 있음을 반복적으로 표현하면서 요한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듣는 자들에게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적을 보고 예배할 것을 강권합니다.

요한복음은 우리를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라는 것을 믿게 하고 또 그분의 이름을 믿음으로 생명을 얻도록 합니다. 이것이 참된 예배이자 우리를 기쁘게 하는 소식입니다.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요 20:31)

요한복음 통해 우리는 몇 가지 중요한 예배의 통찰을 배우게 됩니다. 첫째, 우리는 영적으로 다시 태어남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요 1:12-13)

둘째, 겸손한 제자는 하나님의 의가 드러나는 것을 기뻐합니다. “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나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뻐하나니 나는 이러한 기쁨으로 충만하였노라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하니라”(요 3:29-30)
셋째, 예수 그리스도는 율법주의가 아닌 참된 영적 예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요 4:24)
넷째, 참된 예배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이 중요하고 소중히 다루어집니다.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나니 너희가 듣지 아니함은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였음이로다”(요 8:47)
다섯째, 참된 예배란 예수 그리스도의 주인 되심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이르되 주여 내가 믿나이다 하고 절하는지라”(요 9:38)
여섯째, 우리는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셨듯이 모든 일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해야 합니다.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이 이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라 하시더라”(요 11:4)
일곱째, 인정받으려는 인간의 욕망은 참된 예배를 방해합니다. “그들은 사람의 영광을 하나님의 영광보다 더 사랑하였더라”(요 12:43)
여덟째, 인간의 죄성과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자각하는 것이야말로 성령님께서 일하고 계신다는 증거입니다.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요 16:8)

사람들은 종종 예수님의 기적을 두려워했습니다. 그들은 인간의 상식을 넘어서는 권능과 마주했습니다. 그 기적들은 예수님이 단지 한 명의 위대한 스승이 아닌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분명히 보여주었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하나님의 권능과 거룩함에 대한 깊은 경외감에 압도되어 무릎을 꿇거나 엎드려 경배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임재에 대한 자연스러운 반응입니다. 사도 바울은 모든 창조물이 압도적인 경외함으로 예배드릴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하늘과 땅과 땅 아래 있는 자들이 모두 예수님의 이름에 무릎을 꿇게 하시고”(빌립보서 2:10)

요한은 참된 예배 공동체는 사랑의 공동체라고 명확하게 정의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에 예수님을 영접한 우리 예배자들은 하나님의 사랑의 빛을 드러내야 합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요 13:35-36) 예배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마 22:37-39) 이 말씀은 구약 십계명으로부터 예수님의 말씀을 포함해 성경 전체에 흐르는 예배의 본질이자 예배자가 삶에서 지켜야 할 필수적 의무입니다.

진리의 말씀을 깨닫고 삶의 예배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참된 자유를 누리는 예배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 8:32)

가진수(월드미션대학교 찬양과 예배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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