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진수 교수
가진수 (월드미션대학교 찬양과 예배학과 교수)

하박국은 분열 왕국 시대인 기원전 7세기 후반에 사역했던 예레미야, 스바냐, 나훔, 요엘 등과 동시대인의 선지자입니다. 이 시대는 이웃 나라들의 침공이 잦았고 하나님과의 관계도 위태로웠던 내외적으로 위기의 시기였습니다. 이 위기의 시기에 하나님께서 세운 하박국 선지자는 다른 선지자들과는 다른 몇 가지 불평으로 시작합니다.

“여호와여, 내가 언제까지 부르짖어야 주께서 들어주시겠습니까? 내가 '횡포!'라고 외쳐도 주께서 구해 주시지 않으십니다. 어째서 나에게 불의를 보게 하시며 악을 목격하게 하십니까? 파괴와 폭력이 내 앞에 있고 다툼과 분쟁이 곳곳에 있습니다. 그래서 법이 무시되고 정의가 실현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악인이 의로운 자를 둘러싸고 있으므로 부정이 판을 치게 되었습니다.”(합 1:2-3, 『현대인의 성경』)

바벨론 침공이 유다에 임박함을 느끼면서 하박국 선지자는 아주 멀리 계신 것 같은 하나님께 이렇게 부르짖습니다. 비록 하박국 선지자와는 다르지만 우리는 그가 하는 질문의 고통을 느낄 수 있습니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범죄에 대한 뉴스를 보거나 사랑하는 이가 병으로 죽어가는 침상 곁에 서서, 또는 유행병과 같은 심한 질병이 세상을 덮는 상황에서 우리 또한 하나님께 외칩니다. “하나님은 도대체 어디 계십니까?”

하박국은 하나님 앞에서 담대하고 솔직함을 보여줍니다. 그는 분명 하나님의 절대적 위엄을 인식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자신이 가진 의심들을 솔직하게 주님 앞에 내놓고 있습니다. 그는 말을 참거나 가식적이지 않으며 자신의 기도를 주님께 잘 보이기 위해 꾸미거나 공허한 말로 채우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이와 같은 하박국의 대담함을 벌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하박국의 질문에 직접 대답하지도 않으셨습니다. 반면 하나님은 하박국에게 앞으로 다가올 더욱 큰 고난을 보여주시며 신비로운 주권을 나타내주셨습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여러 나라를 보고 또 보고 놀라고 또 놀랄지어다 너희의 생전에 내가 한 가지 일을 행할 것이라 누가 너희에게 말할지라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리라 보라 내가 사납고 성급한 백성 곧 땅이 넓은 곳으로 다니며 자기의 소유가 아닌 거처들을 점령하는 갈대아 사람을 일으켰나니”(합 1:5-6)

하박국은 나중에서야 하나님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세상에 가득하게 될 날을 비로소 깨닫게 됩니다.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세상에 가득함이니라”(합 2:14)

하박국은 하나님의 백성이 그들의 죄로 인해 심판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인정했지만, 어떻게 하나님이 바벨론처럼 악한 이들을 사용하셔서 그 뜻을 이루시는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선지자가 이르되 여호와 나의 하나님, 나의 거룩한 이시여 주께서는 만세 전부터 계시지 아니하시니이까 우리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리이다 여호와여 주께서 심판하기 위하여 그들을 두셨나이다 반석이시여 주께서 경계하기 위하여 그들을 세우셨나이다 주께서는 눈이 정결하시므로 악을 차마 보지 못하시며 패역을 차마 보지 못하시거늘 어찌하여 거짓된 자들을 방관하시며 악인이 자기보다 의로운 사람을 삼키는데도 잠잠하시나이까”(합 1:12-13)

기원전 597년, 갈대아 왕으로 바벨론을 세운 느부갓네살 왕은 예루살렘을 약탈하고 만 명이나 되는 백성과 지도자들을 끌고 갔습니다. 이 같은 절망의 상황에도 불구하고 하박국은 낙심을 예배로 바꿀 수 있었습니다. 하박국은 하나님의 심판으로 인한 절망 속에서 희망의 노래를 부릅니다. 그는 오직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인해 기뻐하겠다고 고백합니다. 어떤 것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오직 할 수 있는 오직 유일한 한 가지인 마음을 다해 하나님께 찬양과 경배를 드립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를 나의 높은 곳으로 다니게 하시리로다”(합 3:17-19a)

우리는 하박국의 태도를 통해 모든 것이 무너질 때 본질로 돌아가야 함을 보여줍니다. 그리스도인이자 예배자인 우리들에게 어떠한 상황에서도 가장 본질적 자세는 살아계신 하나님께 무릎 꿇고 예배하는 것입니다. “여호와여 내가 주께 대한 소문을 듣고 놀랐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하게 하옵소서 이 수년 내에 나타내시옵소서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옵소서”(합 3:2)

하박국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온전한 솔직함’임을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솔직하다는 것과 말이 많은 것은 같지 않습니다. 하박국서는 우리가 때론 경외의 하나님 앞에서 잠잠할 때가 있음을 알려줍니다. “오직 여호와는 그 성전에 계시니 온 땅은 그 앞에서 잠잠할지니라”(합 2:20) 죽어있는 바벨론의 우상들과는 달리 하나님은 실제로 살아계시므로 시끄러운 예배로 하나님을 깨울 필요가 없음을 증명합니다. 이 당시 이교도들의 숭배의식은 북과 꽹과리를 치고 가슴을 치며 소리를 지르는 시끄러운 호소와 간절함이 중요했기에 하박국은 그렇게 하지 않아도 항상 살아계신 능력의 하나님임을 확실히 선언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때로는 하나님 앞에서 큰 소리로 기뻐할 때가 있습니다. “이 날에 무리가 큰 제사를 드리고 심히 즐거워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크게 즐거워하게 하셨음이라 부녀와 어린 아이도 즐거워하였으므로 예루살렘이 즐거워하는 소리가 멀리 들렸느니라”(느 12:43) 하박국은 경외함을 가지고 겸손하게, 두려움의 침묵으로 예배할 때가 있음을 일깨웁니다. 이 말씀을 통해 간절한 외침의 예배와 침묵의 예배 모두 하나님이 받으신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도 그리고 영원히 살아계신 참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우리의 환경이 힘들고 고통스러운 상황이라 할지라도 그럴수록 하나님을 더욱 신뢰해야만 한다고 말합니다. 바벨론의 불의를 비난하면서 하박국은 덧붙여 말합니다.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나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합 2:4)

이 말씀은 기본적으로 하나님의 행위가 인간의 선악과 판단 능력이 미치지 못하는 범주에 있다고 할지라도, 진실로 의로운 자들은 하나님이 약속을 반드시 지키신다는 믿음 속에서 살아야 함을 말해줍니다. 그리고 그 상황이 비록 절망스럽고 부조리하게 보일지라도 그 믿음을 계속 유지해야 한다는 선언입니다. 훗날 사도 바울과 많은 종교개혁자, 신학자들에게 깊은 영향을 준 이 확고한 말씀은 원래 고통받는 백성들에게 하나님에 대한 신뢰를 더 강하게 하려는 뜻이었습니다.

하박국은 고난의 때에도 하나님께 신실한 예배자로 남아 있을 것을 말해줍니다. 그것은 하나님께 거짓 없는 순전하고 진실한 예배를 드림으로 가능한 것입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합 3:17-18). 우리는 하박국의 고백처럼 나의 힘과 열정을 다한 일들이 비록 결과가 좋지 않고 열매가 없어도 주 안에서 기뻐할 수 있는 참된 예배자가 되어야 합니다.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 아직 해결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하박국은 과거에 하나님이 베푸신 구원을 기억했으며, 따라서 미래에도 그분을 믿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여러 면에서 욥기를 닮은 하박국서를 통해 하나님은 결코 솔직한 질문들을 무시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물을 때에는 언제나 겸손하고 진실한 마음을 가지고 물어야 하며, 동시에 하나님께서 우리의 의문들을 반드시 해결해주실 것이라는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한 의문들은 하나님을 더 깊이 이해하는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혼란의 순간에도 우리는 언제나 예배 드릴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시련과 절망의 시기에도 믿음과 기쁨으로 예배했던 하박국과 같이 우리에게도 하나님께서 어느 곳에서든 예배할 수 있는 힘과 능력을 주실 것입니다. “여호와여 내가 주께 대한 소문을 듣고 놀랐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하게 하옵소서”(합 3:2)

우리는 하박국서를 통해 몇 가지 예배의 통찰을 깨닫습니다. 첫째, 하나님께서는 겸손함과 진실이 담긴 질문들을 언제나 받아주십니다. “여호와여 내가 부르짖어도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니 어느 때까지리이까 내가 강포로 말미암아 외쳐도 주께서 구원하지 아니하시나이다 어찌하여 내게 죄악을 보게 하시며 패역을 눈으로 보게 하시나이까 겁탈과 강포가 내 앞에 있고 변론과 분쟁이 일어났나이다”(합 1:2-3) “선지자가 이르되 여호와 나의 하나님, 나의 거룩한 이시여 주께서는 만세 전부터 계시지 아니하시니이까 우리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리이다 여호와여 주께서 심판하기 위하여 그들을 두셨나이다 반석이시여 주께서 경계하기 위하여 그들을 세우셨나이다”(합 2:12)

둘째, 예배는 하나님이 과거에 이루신 구원의 행위를 다시 떠오르게 하고 미래에 대해 우리의 확신을 굳세게 합니다. 예배는 하나님이 하신 구원의 사역과 십자가의 보혈,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공생애, 죽으심과 부활 그리고 재림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예배는 구원의 선포와 과거 하나님께서 하신 일들에 대한 감사와 찬양이 넘쳐야 하며 더 나아가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기대하며 기쁨으로 가득 차야 합니다. “그의 영광이 하늘을 덮었고 그의 찬송이 세계에 가득하도다 그의 광명이 햇빛 같고 광선이 그의 손에서 나오니 그의 권능이 그 속에 감추어졌도다 역병이 그 앞에서 행하며 불덩이가 그의 발 밑에서 나오는도다 그가 서신즉 땅이 진동하며 그가 보신즉 여러 나라가 전율하며 영원한 산이 무너지며 무궁한 작은 산이 엎드러지나니 그의 행하심이 예로부터 그러하시도다 내가 본즉 구산의 장막이 환난을 당하고 미디안 땅의 휘장이 흔들리는도다”(합 3:3b-7)

셋째, 비록 우리의 상황이 매우 어렵더라도 언제나 하나님이 보호하신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안전하게 산을 넘는 것 같이 모든 것이 합력해서 선을 이루도록 이끄실 것입니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를 나의 높은 곳으로 다니게 하시리로다 이 노래는 지휘하는 사람을 위하여 내 수금에 맞춘 것이니라”(합 3:19)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합 2:4) 이 진리의 말씀은 하박국의 시대부터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힘이 되어 왔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 주제를 로마서에 제시하며 어떻게 은혜가 믿는 자들의 삶을 변화시키는지 설명했습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롬 1:17) 그리고 갈라디아서에서도 하박국의 믿음의 선언을 고백합니다. “또 하나님 앞에서 아무도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 이는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하였음이라”(갈 3:11)

바울이 인용한 하박국의 이 고백은 하나님 말씀의 본질로 돌아가는 종교개혁의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Martin Luther)는 믿음과 은혜에 관한 이 오래된 진리를 재발견했습니다. 1545년에 그는 이렇게 썼습니다. “나는 그 말씀을 밤낮으로 묵상했으며 마침내, 하나님의 자비로 그 말씀을 깨닫게 되었다. 의인은 믿음으로 살 것이다. 갑자기 이 말씀으로 나는 다시 태어났고 열린 문을 통해 천국에 들어감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의 구원은 행위가 아니라 은혜로 얻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약속 자체가 바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가 행함으로 의롭다함을 얻을 수 없기 때문에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복음’입니다.

예배를 통해 우리는 ‘믿음을 통한 은혜’를 깨닫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은혜로 다시 하나님을 예배하게 됩니다.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며 믿음으로 은혜를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예배자들은 우리의 환경과 여건에 상관없이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며 은혜 가운데 감사의 찬양과 예배를 드려야 할 것입니다.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세상에 가득함이니라”(합 2:14)

가진수(월드미션대학교 찬양과 예배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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